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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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향토무대
- 양녕대군 (유흑렬 편극)

양녕대군 (유흑렬 편극)
1967.12.29 방송
(음악)

향토무대. 일곱 번째 시간. 유흑렬 편극, 양녕대군. 안평선 연출로 보내 드립니다.

(음악)

이 강산 산하를 누벼온 역사의 뒤안길에서 배달겨레의 얼을 찾아보는 향토무대.

오늘은 왕세자의 몸으로 거짓 미친 체 하던 양광의 폐세자 양녕의 모습을 새겨보자.

- 어찌 안 된단 말이오?! 태상왕께오서도 이 나라를 개창하셨으나 보위에 겨우 7년간 머무르셨소.

경들도 생각해보오. 이제 과인은 연만했으니 보위를 동궁에게 넘기려 하는 거요. 세자가 이제 컸으니

과인은 뒤에서 뒷배나 보아주고 싶으오.

- 좌의정 하륜 아뢰오. 전하, 연부역강하오신데 세자마마께 전위하시긴 아직 이른가 아뢰옵니다.

마마, 영을 거두옵소서.

- 신, 이화 아뢰옵니다. 국가조찬이 불과 스무 해도 못 됐으니 나이 어린 동궁께 전위하심은 불가한 줄 아뢰오.

아직 어두운 밤길을 걷듯 성은에 힘입고 살아가는 억조창생을 전하는 더욱 보살피심이 가한 줄로 아뢰오.

- 신, 조영무도 어명을 거두시옵기 아뢰옵니다.

(음악)

왕은 어전에 부복한 백관들의 얼굴을 묵묵히 쏘아봤다.

(음악)

- 음... 너희들이 과인을 위함보다도 정녕 한 번 뒤집히는 것을 두려워하는구나. 아하하하하.

오늘의 권두가 좋아서, 권두가 좋아서.

대왕의 용안엔 활활 타듯 붉은 입술 위로 뜻 모를 미소가 빙그레 올라갔다.

때는 이조 제3대 태종 17년. 이윽고 용안에서 웃음을 거둔 왕은 승전빗을 따라

일렀으며

- 과인은 진정리, 경들은 더욱 생각해보오.

내전으로 왕은 들어갔다. 휘는 방원. 이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고초 끝에 3대 왕으로 오른 보위를

지키기 17년. 곤전에게서 네 아들과 네 딸을 보고 빈과 후궁들 몸에서도 스물 하나나 되는 군과 옹주를 본

다복한 왕은 이제 보위를 세자에게 넘기려 한다. 그날 밤, 사동부원군 민제의 큰 사랑에는-.

(음악)

- 쉬이, 동궁저하 납시오.

스물셋 홍안의 양녕세자가 납시었다. 마침 모여 있던 외숙 무구, 무휼들이-.

- 저하, 세자저하. 강령하옵셨습니까.

-세자저하, 이제 보위에 오르신다죠?

- 임금 되는 것이 그리 좋으오?

- 이를 말씀이오니까. 남아가 이승에 태어나서 백성을 잘 다스려 보아야

만세에게 이름을 되날릴 수 있는 법이죠.

- 저하도 영특하신 기질로 선정을 베푸셔서 후세에 왕명을 남겨주시오, 저하.

- 내 아직 나이 어려 무슨 힘으로 천하의 덕치를 배우겠소? 여러 외숙들이 잘 보호해야 되겠소.

- 아, 그야 염려 없소이다, 저하. 소신 네 외숙이 받들자오면 무슨 일인들 못하오리까?

- 동궁으로 옥새까지 나리셨다죠? 세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비록 지금의 대왕의 국구인 처남매부사이이나 민무구, 무질, 무휼, 무회 형제들은

그 기상이 범 같은 태종의 위력에 눌려 감히 외척의 권리를 부려볼 수 없었다.

마침내 상감의 전위로 어린 세자가 보위에 오르기만 하면 벼르고 벼르던 대권을

한번 흔들어 볼 수도 있으련만.

(음악)

이튿날, 어전회의에서는 양사 대관들의 간절한 항소로 마침내 대왕은 전위의 뜻을 거두고 말았다.

그날 어전회의에서 부원군 민제가 돌아오자,

아버님, 어떻게 됐습니까? 안정이 흐리시옵니다. 무슨 일이 있었사옵니까?

- 무휼아, 어머님 들라 해라.

- 동궁께서 선위를 받자왔습니다?

- 음...

- 대감.

- 부인, 이리 좀 앉구려.

- 동궁께서는-.

- 상감께선 밀지를 거두셨소.

- 아니! 예?

- 아니, 그럼 동궁은!

- 하는 수 없구려. 상감께서 전위교서를 거두셨으니 더 세월을 기다릴밖에.

(음악)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가고 전위문제는 이제 사그려 들려는 무렵. 하루는 원로종친 이화가

의전에 부복하여 상소하기를.

- 상감마마께 아뢰오. 자고로 종실이나 외척들이 정사에 참여하면 국강이 흔들린다

하였사옵니다. 근자 듣자옵긴 민무구, 민무질 등 민 씨 형제들이 세자를 싸고돌며

어서 대권을 나눠 받길 고대한다 하오니.

- 뭣이!! 뭐라 한다?!

- 심히 황공하오나 종사를 어지럽히는 줄 아뢰오.

(음악)

원로종친 이화의 한마디는 활화산에 불을 당기듯 동궁인 양녕세자에게 전위까지 하려던

대왕의 금도를 뒤흔들어놓고 말았다.

- 안 된다! 불가 감히 과인 앞에 누가 있어? 태상왕 전하, 이 땅 위에 개국하신 사직을

흔들어 보겠단 말인고! 잔망타, 잔망해. 여봐라!!

- 예.

- 민문 일족을 잡아들여라!

- 예.

(음악)

드디어 친국이 시작되었다. 왕은 차마 처남인 외척들을 학대하지 못하고 사동에 자주 드나들던 임우와 신금례를

가혹하게 다뤘다. 민제의 네 형제 중 형 둘이 잡혀간 무휼은 동궁에 뛰어들어 세자 양녕에게-.

- 저하, 살려주십쇼. 우리 형제들은 세자의 앞날을 위해서 충성을 바치려던 충심밖엔 없었는데. 저하.

- 그러니 내 언제 외숙들께 임금으로 내세워달라 했소! 공연한 소문만 퍼트려 아바마마께 나는 어찌 되겠소?!

양녕은 젊은 세자다웁게 일단 냉염히 외숙 무휼을 돌려보냈으나 어릴 때 자라난 외가를 잊지 못해

조심조심 부왕의 처소에 나아가-.

(종소리)

- 아바마마, 민무구, 민무질 두 형제는 죄가 없사온 줄 아룁니다.

- 아니, 동궁.

-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 일은 중간에 공신들이 서로 이간키 위해 만든 일일까 하옵니다. 마마.

그러나 세자의 탄원은 그만 대왕의 노여움만 더했다.

- 동궁, 동궁은 아직 내 눈이 시퍼런데 이런 말을 하는 거 보니 외가에 말 심부름이나 하는 동궁의 꼴이

가관이구나. 동궁, 동궁이 정 대위에 앉고 싶으면 내 오늘이라도 기꺼이 내주마! 여봐라!

- 예.

- 어디, 이 민가를 두둔하는 동궁 앞에서 필시 일당일 저 신금례를 매우 쳐라!

- 예.

- 아바마마!

- 더욱 쳐라!!

- 예.

(음악)

나라의 기틀은 외골수에서만 이루어지는 것. 상감의 지엄한 법통을 태종은 왕세자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이 나라의 만년대계를 이룩하기 위해선 비록 사가로는 국구이나 법통 위에 넘실대는 외척이 있어선 국권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왕은-.

- 임우와 신금례는 처형하고 이후 민 씨 일문은 평민들과 혼인하되 무구는 종성으로 그리고 무질은

해남으로 내쳐라!

드디어 새 왕을 등에 엎으려던 민 씨 일문은 뿌리 뽑히고 말았다. 그로부터 동궁 양녕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지고 말았다.

(새 지저귀는 소리)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새 지저귀는 소리)

- 오, 왕의 길은 뭔가...

(새 지저귀는 소리)

오늘도 수척한 얼굴에 고개를 떨어뜨린 왕세자 양녕은 후원을 돌아 동궁전을 나온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0

- 오, 희빈마마, 또 맞았사와요.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및 웃음소리)

내정엔 봄볕에 겨운 항아들이 백자항아리를 가운데 놓고 투호놀이가 한창이었으나

궁전의 춘색도 잊은 듯 멀어지던 양녕의 발걸음이 문득 머물렀다.

- 쉬이-

- 동궁저하. 어디를 납시옵니까.

- 어, 효령인가.

- 봄볕이 좋아 매사냥이나 나갈까 하옵니다.

- 효령, 잠깐.

- 그렇지.

- 저... 내 하나 묻겠는데. 왕자의 도, 그 왕자의 도란 무엇인고?

- 저하, 소제는 모르옵니다. 다만 저하께서 뒷날 보위에 오르시면 그때나 이제나 봄철엔

겨울난 뭍짐승을 사냥하고 여름엔 꽃놀이오, 가을엔 달을 우러러 만끽하는 것이 소인의 길일까 하옵니다.

- 꽃놀이에 달을 우러른다?

- 그렇사옵니다. 이 철엔 뭍짐승을 후리는 일이옵니다. 저하, 그럼 소인 다녀오겠습니다.

- 뭍짐승을 후린다...

뭍짐승을 후린다고 까불까불 별배들에 휩싸여 근정문을 나서는 효령의 뒤에서

멍청하게 서 있던 양녕이 이른 것은 셋째 왕자 충녕대군의 사저였다.

- 동궁저하 납시옵니까.

- 충녕, 오늘도 만곤서한에 쌓여 있구려.

- 아직 미흡할 뿐이오니다.

- 내 하나 물으리까? 충녕, 그-.

- 무슨 말씀이온지?

- 왕자의 도란 뭐요?

- 동궁저하께 여쭈올 말씀이오이다.

- 충녕은 열여덟인데도 내 어른 같구려.

- 위로 아바마마와 세자마마를 섬기고 있는 충녕이옵니다.

- 세제, 왕자의 도란 뭐요?

- 태산 같아 흔들리지 않고, 바위 같아 더욱 푸르른 외나무길. 그곳엔 뒤바라봄도 없고

외눈으로 걸어갈 수도 없는, 오직 밝고 정대하고 공명한 길이올까 하오니다. 저하.

- 밝고 정대하고 공명의 도라...

(음악)

- 과연 밝고 정대하고 공명한 왕자의 길을 나는 갈 수가 있을까... 지엄하신 아바마마.

보좌를 위해선 아우와 형을 도륙했다는 아바마마. 대왕, 내 생가인 외가까지 몰락시킨

대왕. 그 아바마마께 진정 승복하려 해도 내 이다지 못하거늘, 장차 이 나라의 임금으로

억조창생을 끌어갈 수 있을까. 아바마마께 불효한 아들이 그 대위를 이어받을 수 있을까?

밤새도록 전전하던 동궁은 새벽녘 홀연히 무릎을 쳤다.

- 양광, 동궁이란 무어냐.

외척의 일로 아직도 용안을 찌푸리신 상감. 그 상감께 대관들은 또 언제 어느 때 정배 간 외종들이

두둔하던 동궁 자신을 모함할까. 인간사 기약 없다 생각한 동궁.

- 아하하하하하...

(음악)

- 세자저하, 어디로 납시오? 책방에서 기다린 지 오래외다.

- 음하하하하하, 책은 읽어 뭣 하나요?

- 예?

- 대감, 책을 읽어 뭣하오? 책 속에 할아버지가 있습디까?

- 아니, 저하. 세자저하.

-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 이 무슨 변괴론고? 아니, 이이이이...

(음악)

(사람들의 웃음소리)

- 자, 이번엔 내 차례니라. 꽃살을 다오.

- 마마, 또 곱게 맞치시와요.

(사람들의 웃음소리)

- 희빈마마, 다섯 살 모두 쏙쏙 넣으시와요.

- 쏙쏙 넣다니, 경망하구나.

(사람들의 웃음소리)

- 아니, 저기 동궁마마께옵서.

- 아하하하하하하하.

- 동궁이?

- 어... 동궁, 이리 오시오.

- 아하하하하하하하.

- 어두운 데 조심하시오, 마마.

- 무슨 말씀이온지...

- 햇빛이 어둡지 않소, 마마? 무슨 욕을 하고 계시오. 아하하하하하하하!

- 동궁! 놀라운 말씀 거두시오!!

- 항아야, 내가, 내가 그리, 그리 좋아? 아하하하하하하!

- 동궁!!

(음악)

삽시간에 수라장이 된 내정 투호장. 상감은 우상 조영무 등을 통해 이 말을 전갈 받았으나

웃어넘기고 며칠 뒤, 다시 비원 숲길에서 열 서넛 하나 항아의 손목을 잡히니 대왕은-.

- 내 동궁을 경연에 묶어보려 늦게 두었더니 안 되겠구나... 경들은 곧 세자빈을 간택케 하오.

- 예.

(음악)

초간택, 두 번 간택, 세 번째 간택. 50일 행사를 보름으로 줄여 중추부사 김한로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아 들였으나 양녕은 본 척도 않고 여전히 실성거린다.

- 신, 이화 아뢰오. 근자 동궁께오선 주먹을 쥐고 하늘을 치는 일이 잦다 아뢰오.

- 그래도... 동궁이 그럴 리는 없소... !

- 하륜 아뢰오. 동궁은 적수 없는 것을 일체 폐하시고 궁성 밖을 무상출입하신다 하옵니다.

- 양녕... 양녕아!

(음악)

아바마마, 이 길은 떳떳한 양녕의 길이오이다. 흠도, 티도 없는 왕자. 충녕.

충녕에게-.

- 으흐흐흑...

- 아이, 깜짝이야.

- 누구냐?!

- 아닌 밤길에 뉘시냐 일러라.

- 소리가 곱다. 뉘 댁이냐 일러라.

- 전엔 강계기생이나 이젠 어엿한 중추부사댁 소실이다 일러라.

- 응? 중추부사 소실이라... 아하, 헤, 아하하, 윽, 아하하하!

(음악)

이 끔찍한 일을 곧 조정안을 놀라게 했다.

- 윽? 무엇이라? 양녕이... 곽정의 소첩을...!

사헌부의 폐세자 상소는 꼬리를 물었다.

- 신 조영무 듣자옵긴 근자 둘째 세자 효령께서 학업 정진한다 하오니 세자위를 내려주심이

가할까 하옵니다.

이 소식은 동궁 빗을 타고 나는 듯이 동궁의 귀에도 들어갔다.

- 아하하하하... 효령. 어리석은 효령아. 아하하하하... 조랑말 타고 까불기나 하던 니가 갑자기

진중해졌다고? 으으하하하... 음... 상감을 속이다니!

맥살없이 웃어 제치던 양녕이 그로부터 한식경. 효령 잠저에 다녀온 뒤 효령은 갑자기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 효령대군께오서 입산수도승이 됐다...

- 모두가! 모두가 듣기 싫소!! 아... 좌상 하륜만 남고 경들은 물러가오...

- 예.

(음악)

- 하륜... 경. 경은 폐세자를 어찌 생각하오?

- 마마... 노신 하륜은 폐세자야말로 도량 높으신 위인이시며 역대 다시없을 훌륭한 동궁이었다

감히 아뢰옵니다.

- 아... 경만은 그 뜻을 알아주는구려. 양녕은 이 보좌를 누구보다 아꼈던 사람이오.

깨끗하게 전하려...

(음악)

한 번 눈 밖에 났던 상감의 은총을 고스란히 아우 충녕에게 티 없이 넘겨주려 살을 깎듯 제 자신을

가학한 양녕. 세상사 허무타 뒷날 산승이 된 효령을 찾아 살아생전엔 상감의 형이 되고

죽어선 부처의 형 노릇을 할 테니 이 더욱 반갑고야 하며 한 떨기 너털웃음을 웃더라는

절세명필 양녕대군.

(음악)

출연. 홍계일, 조명남, 장건일, 김태연, 이광세, 안종국, 양진웅, 김진동, 이완호, 박웅.

김을동, 명순희, 오영자, 최희정, 이소연, 노명순. 해설 김영식. 음악 오순정. 효과 심재훈.

기술 이회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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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순도와 함량이 약효를 보증하는 한일약품 제공. 항토무대.

유흑렬 편극, 양녕대군. 안평선 연출로 보내 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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