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순도와 함량이 약효를 보증하는 한일약품 제공 항토무대.
(광고)
(음악)
향토무대 다섯 번째 시간. 유흑렬 편극. 노국공주.
안평선 연출로 보내 드립니다.
(음악)
이 강산 산하를 누벼온 역사의 뒤안길에서 배달겨레의 얼을 찾아보는 향토무대.
오늘은 고려 31대 공민왕이 엮어놓은 한 편의 비련애화를 들어보자.
이름 하여 노국공주.
(말발굽 소리)
- 잠깐! 멈춰라!!
(말발굽 소리)
- 공주! 공주!
- 공주, 여기요. 여기서부터 바로 내 나라요. 아니, 이 나라 열성조가 위탁하신 한반도요.
공주, 땀이 맺혔구려.
- 참, 참 고와요.
- 곱다니, 공주?
- 열 밤을 두고 황토바람 부는 황량한 들판만 봤는데, 그 푸르른 강물, 뭐라고 하셨사와요?
- 아... 어제 건너온 압록강 수 말이요?
- 참, 깜박, 소저, 그 강물 건넌 뒤 보이는 산마다, 물마다 어쩜 이리 우리 원나라하곤 틀리는지.
아하, 그만 이 좋은 경치를 모두 왈칵 안아보고 싶군요.
- 하하하하하하하! 이제부턴 이 나라가 모두 공주의 새나라가 아니겠소?
아, 향도차는 급히 몰아라!! 태후마마께서 기다리는 송도로 가자!!
(말발굽 소리)
(음악)
젊은 왕은 온 가슴이 후두두 떨렸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615년 전인 고려 공민왕 원년.
일찍이 27대 충숙왕의 원자이던 충혜왕의 형 용산원자의 아드님으로 소년 때 원에 들어가
12년. 그곳 종실인 위왕의 딸, 아름다운 보탑실리 노국공주를 아내로 맞고 이제 만승의 몸으로
내 나라 고려에 금의환향하는 왕의 행차는 절로 그 길이 빨랐다. 북괴인 안북을 지난 사흘 뒤,
(음악)
- 상감.
- 모후마마. 문후 드리오.
- 그리고 공주도 먼 길 얼마나 고달프셨소?
- 아이, 태후마마. 소저, 예 드리옵니다.
- 상감, 정녕 이 노후가 원나라 수신사 편에 듣기를, 공주가 우리말을 배운다 하더니
과연 뛰어난 총명이구려.
- 모두가 고국에서 소자를 기다리옵던 어마마마의 홍복인가 아룁니다.
- 자, 어서 공주를 평좌케 하오.
- 황송하옵니다.
- 오늘은 이 모후의 유밀과 솜씨를 상감 양후께 보이려오.
- 독로화로 베이징서 12년. 어마마마, 뵙고 싶었나이다.
- 이 모후도.
- 마마, 소저도 어서 내 나라에 와 머물고 싶었사옵니다. 지아비의 나라가 곧 내 살 땅이라기에.
- 어마마마, 정녕 원나라에서는 공주의 두터운 힘이 컸사옵니다. 공주는 원의 공주로보다
이 나라 열성조의 명민한 왕비가 될 줄로 아옵니다.
- 공주, 진정이시오?
- 태후마마, 소저도 마마 입으신 아름다운 고려 옷 입게 하사이다. 이 나라 왕비의 도에 맞도록
가려주시와요.
- 공주, 고마우신 말이오.
- 마마, 그 옛날 이 궁성 뜰에서 듣던 우리 예악을 이제 들으니 소자, 참말로 원이 없사옵니다.
- 공주, 어서 유밀과를 드오.
(음악)
이렇게 12년 만에 만난 모자간의 상봉이 있던 그날 밤, 궁전 공주의 침전에서는-.
- 공주.
- 아이, 모르와요.
- 공주, 곤하구려.
- 곤하시더라도 소저 모르와요.
- 하하하하하하, 우리 공주가 웬 성을 다 내는구려.
- 아, 어서 거두시옵고 잠시 소저의 말씀 들어주시와요.
- 공주, 갑자기 무슨 말이오? 하하하하, 내 나라의 첫 밤 아니오?
- 상감께오선 이 한밤이 소저와의 하룻밤으로만 여기시옵니까?
- 뭐요?
- 고려국 만년대계를 세우시는 밤을.
- 아니, 공주. 무슨 말이오?
- 모르시옵니까?
- 갑자기 침상이 숙연해지는구려.
- 옛부터 나라에는 힘이 있어 다스려지옵니다. 내 아버지는 늘 기마병 5만으로 야만이라 업신여기던
몽고족이 한족을 쳐 원나라를 세웠다 일러줬습니다. 나라에 힘이 없을 때 부마국이 되옵니다.
- 응...? 부마국? 부마국... 공주, 무엇을 말하는지 내 대강 짐작하겠소이다.
- 아, 이 몸은 영웅의 아낙이 되고프오니다.
- 아...
- 원나라의 공주로보다 떳떳한 전하의 중전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와요.
- 아하하하하하하하, 정녕 훌륭한 말이쇼. 내 공주의 진정이라면 한번 일어서보려오, 공주!!
(음악)
부마국. 그 부마국에서 독립을 해야겠다. 그것은 이 나라에 돌아온 젊은 왕의 숙원이 되었다.
일종의 인질이라고 할 독로화로 원의 서울 베이징에서 돌아온 이 첫날 밤. 왕은 이방 여인
노국공주의 한마디에서 백만의 힘찬 원군을 얻은 듯했다. 날이 새고 어전회의가 열리자
노회한 친원파 대신들이 득실거리는 중신회의에서는-.
- 신 어사대감 기철은 불가하다 아뢰오.
- 신 권겸도 불가하다 아뢰오.
- 뭣이?!! 불가하다고?! 또 없소, 또 불가하다 함포하는 대신 없소?!!
대관들도 말해보오!!
- 나성참의 노척도 불가한 줄로 아뢰오.
- 으으, 고얀지고! 그래, 앞머리는 자르고 댕기머리를 한 채로 변발한 경들은 대체, 대체 어느 나라 후손들이오!!
왜, 그 머리를 못 고친단 말이오!!
- 신, 이제현은 전하의 분부가 지당하온 줄로 아뢰옵니다.
- 오, 익재. 안 그렇소? 우리 조상들은 옛부터 그 풍습이 따로 있던 법이오.
- 신, 기철은 이 돌연하신 왕명은 노국공주마마의 심금을 뒤흔들어 놓으시리라 아룁니다.
- 노국공주의?
- 노척도 이 분부는 상제국인 대 원에 모반하시는 일로 아뢰오.
- 무엄하오! 소장 최영은 감히 전하의 어전에서 모반 운운하는 대관들을 물리쳐주시옵기 부복하여
바래옵니다.
- 오, 젊은 장군. 과인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들도 있구려!
(음악)
23대 고종 18년부터 41년까지 약 20여 년을 두고 전후 여섯 차례나 이 강토를 침입하고
드디어 위로 6대나 부마국을 세운 원. 날이 가고 달이 갔다. 젊은 왕과 노국공주의 봉밀 같은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동안 중국대륙에도 변화가 와서 주원장의 명나라가 태두하자 왕의 반원정책은
더욱 치열한 불꽃을 튀겨 내정을 간섭하던 정동행성을 철폐하고 쌍성총관부를 쳐서 60여 년간이나 잃었던
옛 땅을 다시 찾기도 했으나-.
- 어마마마, 부르셨사옵니까.
- 바쁘신 상감을 납시라 했소이다.
- 어마마마, 오래오래 천수하시오면 훌륭한 나라를 만들어 뵈어 드리오리다.
- 그런데 근심 하나이 떠나질 않는구려, 상감.
- 음...
- 공주는 상감의 좋은 배필이오. 이 모후도 아끼기 그지없지마는 상감, 세손이 적막하구려.
- 하오나...
- 염려 마오. 내 은밀히 공주에게도 내락을 얻었으니 거두 후비를 간택케 하오. 상감, 부탁이오.
(음악)
노국공주가 이 나라에 온 지 아홉 해. 세자를 얻지 못하자 모후이신 명덕태후뿐만 아니라
조정백관의 근심이 끊일 날이 없었다. 드디어 이듬해 봄, 백관들은 왕께 간하여
익재 이제현의 딸을 후궁으로 들어 보내게 됐다. 그런 뒤, 송도의 꽃 피는 춘삼월 어느 밤.
- 아...
- 화촉을 끄오리까?
- 혜비, 정녕 미안구려.
- 그 말씀, 소녀 황공하옵니다.
- 내 아무리 어마마마의 분부를 따르려하오나 혜비.
- 예, 전하.
- 사랑엔 두 길이 없나 보구려, 혜비.
- 네...
- 혜비와 과인, 이렇게 만난 것도 모두 전생의 그 무슨 업보가 아니겠소. 혜비, 용서하구려.
(흐느껴 우는 소리)
- 전하... 그런 말씀, 그저 소녀는 전하의 궁에서 이렇게 가끔 전하의 용안을 우러러 뵙는 것만 하여도...
- 그만, 그만하오.
- 전하!
(음악)
- 아니, 전하.
- 공주. 아직 깨어 있었소.
- 이 심야에 어찌-.
- 공주, 내 다른 방에서 잠이 올 리 있겠소.
- 아니옵니다. 태후마마의 영이신데.
- 공주, 태자를 낳아주오. 공주, 이젠 홍건적들도 다 물러갔소. 나라에선 큰 제를 올리고
명산대찰에 세자 얻기를 축언 중이오.
- 전하.
- 공주!
- 아...
- 아니, 숨이 차구려.
- 저... 용안을 이리... 저, 저, 아이 부끄럽사...
- 뭐요?
- 태기가...
- 아, 아니, 태기요? 고, 공주, 정녕이오? 정녕이오, 공주.
(음악)
노국공주가 태자를 잉태했다. 이 기꺼운 환희의 소식은 궁중에 퍼지고 사찰들에선
흥국의 제가 원자 탄생을 축수하며 범음, 범패, 긴 축도 속에 울려지기 100일.
그리고 달이 바뀌어 그 해가 저물던 그믐. 드디어 공주의 해산이 다가왔다.
- 약방 승지는 들었는고?
- 예. 벌써 한식경이나 됐사옵니다.
- 아... 초조하구나!
- 안 되옵니다, 마마. 규례상 이곳에서 기다리셔야 되옵니다.
- 어마마마는 납셨는고?
- 예, 태후께서도 빈청으로 납셨나이다.
왕이 다시 초조하게 기다리기 세식경.
(음악)
- 아니, 공주.
- 전하, 전하.
- 아니, 이 일을, 이 일을 어이 할고.
- 전하, 전하를... 내, 내 전하를.
- 여봐라, 상궁. 어서 전하를 납시라 해라.
- 어마마마, 전하는, 으으...
- 어, 저기 전하가- 공주, 고정하오.
- 공주.
- 어어, 전하.
- 이게 웬일이오, 공주. 응?
- 아... 전하. 지금도 훤히 보여요. 바람센 베이징... 베이징 궁궐.
- 공주!
- 후원 작약 밭에서 전하와 처음 만나던 모습을... 아... 음...!
- 공주, 눈, 눈을 뜨오.
- 전하, 전하, 이리로...
- 오, 공주. 공주!!
- 공주!
(음악)
노국대장공주. 나라 안에서 노국공주라 불리던 여인은 갔다. 너무도 꿈결같이.
사랑하던 왕비, 그렇게나 곱던 왕비, 이 나라를 그처럼 사랑하던 왕비가 서른하나라는
꽃다운 나이로 훌쩍 가버리고 그 두 달 뒤엔 정릉에 국상까지 치렀건만 왕은 믿겨지질 않았다.
(음악)
- 공주, 정녕 갔소. 아니, 태자도 데리고 갔소. 공주.
왕은 이 밤도 공주의 영정 앞에 향불을 그윽이 피우고 잠이 들 줄을 모른다.
- 공주, 그림 속의 공주는 과인, 과인을 보고 웃는구려. 공주.
- 상감마마.
- 누구요? 아무도, 아무도 과인을 찾지 마오.
- 소장 최영 부복하였나이다.
- 돌아가오! 압록강 너머 덕녕부는 공격해서 뭣하오?!
- 식음을 전폐하오시오면 곧 이 겨레를 버리시는 도리옵니다.
- 경은! 공주가 아직도 살아 있다 말이오. 과인이 정사는 모두 영도참의사사에 맡겼소.
그리 가서 상의하오!!
- 영도참의 신돈 입대했다 아뢰오.
- 오! 신돈. 들어왔소! 어서, 어서 이리로.
- 전하, 향내음이 너무 잦사옵니다.
- 참의, 무슨 말이오. 과인의 몸을 불붙여 공주의 영에 향을 올려도 과인은, 과인은 시원치 않겠소.
- 전하.
- 그래, 부탁한 일은?
- 인생의 힘으론 어렵사옵니다.
- 아니, 신선 같은 국사의 도력으로도 아니 되오? 부탁이오! 국사.
- 그러하오면 내일 밤 자정, 소승이 독경하는 밀실로 납시옵소서.
- 국사, 정말이오? 국사의 도력으로 공주의 영혼을 강신케 한단 말이오?! 이 밤에, 이 밤에
잠깐만이라도 뵈어주오! 소원이오! 대장공주를 잠시라도 보게 해주오!
(음악)
(목탁 두드리는 소리)
신돈은 요승이었다. 청한거사편조라 이름하고 도를 닦다 환속한 뒤 공허한 상감의 마음에 들어
왕은 영도참의사사를 주어 백관을 총리케 하고 그만을 가까이 하니 이튿날 밤.
- 이제 소승의 도술이 끝났습니다. 상감은 저 휘장 속으로 들어가 밀술을 잡수신 뒤 향불을 끄고
벽면을 보시옵소서.
- 오, 국사. 그럼 거기 공주가 내려온단 말이오? 이 끝없는 동굴 저쪽에서 공주가 온단 말이오?
- 거듭 아뢰오나 영은 노하면 승천하오니 일체의 말씀은 삼가주옵소서.
- 알았소, 그럼 국사는 가주오.
그것은 격요한 동굴 안. 페치카로 휘장 안은 한껏 온훈한데 희미한 황 촛대 하나.
왕은 떠놓은 밀술을 마신다.
(술 마시는 소리)
- 이 밀술을 마시고 나면 공주가 온다는데.
(음악)
그때다!!
- 아, 아니, 공주. 오, 정녕 공주구려. 어! 오, 정녕 숨결도 있고 공주, 숨을 쉬는구려.
오, 공주. 정녕 이리 몸이 뜨거운데. 공주, 신돈은 말을 해선 안 된다 하였지만
단, 단 한마디만 말해주오. 공주, 이 뜨거운 입술로!
- 아!!
- 오, 공주, 공주 입이-.
- 아, 소첩을.
- 아.
- 공, 공주가 아니오라.
- 뭐라고...
- 거란에서 신돈이 데려온 무녀 반야라 하옵니다.
- 아... 아... 하하하! 그래, 그러면 그렇지. 신돈. 신돈! 공주, 내 공주는 내려올 수가 없는 걸. 공주!!
차라리 날, 날 데려가주오!! 공주!! 공주!!!
(음악)
영특하던 젊은 왕, 이국 공주의 사랑에 힘입고 공주의 나라를 배반하는 반원독립정책에 큰 뜻을 품었던
공민왕이건만, 사랑하던 공주가 가자 그 뜻마저 꺾었으니 애처롭다. 좀 더 왕을 오래 받들지 못했는가.
노국공주여.
(음악)
출연. 공민왕 이완호, 노국공주 김수희, 그리고 박정자, 조명남, 이민숙, 홍계일, 양진웅, 이영민,
김태현, 이광세, 박상규, 김진동. 해설 김영식. 음악 오순정. 효과 심재훈. 기술 정영철이었습니다.
(광고)
(음악)
순도와 함량이 약효를 보증하는 한일약품 제공. 항토무대.
유흑렬 편극, 노국공주. 안평선 연출로 보내 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7.29)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