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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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향토무대
- 도미의 아내 (김중희 편극)

도미의 아내 (김중희 편극)
1967.12.08 방송
(음악)

항토무대. 김중희 편극, 도미의 아내. 안평선 연출로 보내 드립니다.

(음악)

때는 백제나라 네 번째 임금 개루왕 성대. 서력으로는 140년대 후반.

(소쩍새 울음소리)

건국한 지 150여 년이건만 아직 한강유역인 서울 근교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있던 백제는

전쟁을 모르는 무사태평에 평화스러운 왕국이었다.

(방울소리)

- 이랴! 아니, 이놈의 소가! 이랴!! 아, 이쪽이야!! 아, 똑바로 걸어!

(소 울음소리)

- 이랴!! 이랴!!

- 여보! 아이, 여보!! 함께 가요!

- 어?

- 아이 참, 어쩜 그리두 빨리 가우? 아유, 아유, 숨차, 아이 참, 같이 좀 가자니까.

(방울소리)

- 아, 이렇게 서 있잖어! 어서 와요.

- 아이...

(방울 소리)

- 아...

- 아니? 그거 웬 바구니요?

- 아하하하, 나물 캐려구요. 싱싱한 산나물은 몸에도 좋대요. 자, 갑시다. 어서.

(방울 소리)

- 아...

- 너무 깊은 덴 가지 말어. 봄 뱀이 득실거리니까.

- 아하하, 걱정 말아요. 실은 말이죠, 여보.

- 응?

- 저, 오늘은 당신하고 단둘이 있고 싶었어요. 어쩐지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아니에요. 꿈같은 건 겁나지 않아요. 흠, 그냥 이렇게 호젓이 거닐고 싶었어요.

(방울 소리)

-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요즘은 좀 걱정이 생기는구려.

- 무슨 걱정이죠?

- 우리 두 사람에 대한... 공론들이 하도 많아서 말요. 그러니 당신인들 꿈자리가 편할 리 있겠소.

당신은 너무도 예뻐. 나한텐 정말-.

- 아이, 또 그런 소리. 미색은 내 타고난 팔자. 당신을 지아비로 모신 것은 내 의지였어요.

누가 뭐래도 그런 문젠 끄떡도 안 해요. 다만 걱정되는 건 혹 당신이 나를 저버리진 않을까

하는 그 걱정뿐이에요.

- 당치도 않은 소리! 정말 그건 당치도 않은 소리요!! 내가 당신을 저버리다니! 여보.

- 당신, 나를 두려워해요. 그럴 필요 조금도 없어요.

- 사실이요, 허나 이젠 그렇지 않소. 자, 그 얘길랑 그만두고 우리 저 강가로 가요.

- 아, 네. 가요.

(방울 소리)

- 야, 야!!

(소 울음소리)

도미와 그 아내. 지금 백제고을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 젊고 아름다운 부부는

화창한 봄볕을 온몸에 지니며 새파란 두멧길을 거닐고 있다.

(방울 소리)

- 아유, 어쩜 저렇게도 다정할까.

- 아유, 아무리 원앙새기로 저렇기야 하겠수? 쯧쯧쯧, 아유, 눈이 부셔 볼 수가 있어야지. 변상 맞어 든다니까.

- 누가 아니라우, 하하하하하!

그것도 그럴 것이 도미의 아내는 그 인물이 예쁘고 아름답기로 백제 서울뿐 아니라 온 백제땅에 그 이름이

높았으니 말이다.

- 아, 정말 도미에겐 과하지.

- 그럼요. 과하다마다요. 사람됨이 똑똑하고 영리한 점에서두 도미와 비교도 안 되죠. 아유, 그런데 그

숱하고 훌륭한 신랑감을 죄다 밀어제치고 하필이면 저런 무지랭이한테 왔는지 모르겠슈. 아유, 그것도 운수소간인가요?

아니면 연분이라는 건가요?

- 오긴지도 모르죠.

- 오기? 하아이구, 정말 그럴 지도 몰라. 왕족이다, 장군 아들이다 집안 좋고 세도 꽤나 쓰는 사내들이

하도 지지고 볶으니깐 귀찮아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아유, 그렇더래도 오기치곤 너무너무 분수가 없어.

- 분수없는 게 아니라 너무 있어서 그랬나 봅니다. 저 얘기가 시집갈 때 자기 부모한테 뭐랬는지 아슈?

- 뭐라고 했대요?

- 부모들도 딱해서 왜 하필이면 천덕꾸러기 도미한테 시집가겠다는 거냐 하고 물었대지 뭐예요?

- 그랬더니?

- 그랬더니 한다는 소리가.

- 어.

- 제가 도미한테 간 덴 딴 이유가 없어요. 훌륭한 데 가서 평범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평범한 데 가서 훌륭하게 지내겠습니다. 이렇게 말했다지 뭐예요, 글쎄!

- 아, 네. 아유,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럴 듯한 말이군요.

- 뼈대 있는 말이지 뭐예요.

- 아유, 그러게 말이에요.

(음악)

도미의 아내, 백제 땅에 둘도 없는 미녀, 도미의 아내. 그녀의 얘기는 백성들의 입에서 맴돌다

마침내는 구중궁궐 왕실에까지 새어 들어갔다.

(음악)

- 아하하하하하하.

(술 따르는 소리)

- 아, 더 따라라.

- 예.

(술 따르는 소리)

- 무슨 얘기들이냐? 도미가 어쩌구저쩌구 하는 건 생선 얘기냐, 사람의 얘기냐.

- 예, 시방 우리 백제 서울에 사는 도미란 미천한 백성의 혼인후일담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 오호~ 그 평판이 자자한 백제의 미녀 얘긴가?

- 그러하옵니다.

- 하하하! 그래, 그 계집이 인물도 일색이지만 정절도 강하다면서? 그게 사실인가?

- 그러하다 하옵니다.

- 모르는 소리, 계집에게 정절이 다 뭔고? 인물, 인물 하지만 내 이 계집만큼 아름다울 수야 있겠나?

- 황공하오나 소녀 따위는 감히 옆에 서지도 못합니다.

- 그래?! 너도 천하의 미색인 줄 알았는데?

- 아이, 부끄럽습니다.

- 하하하하하!!

(술 마시는 소리)

- 캬! 미색에 정절이라... 개살구는 아닌가 보다만 그렇기로 계집의 정절이 허영보다 더 우월하진 못할 걸?

- 그러나 소신이 아는 바, 그 계집만은 천하의 계집이 허영에 홀린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아옵니다.

- 호오...

- 똑똑히는 모릅니다만 항간에 떠도는 말을 종잡아 볼 때 그 도미의 아내만은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꿋꿋한 마음을 가졌다는 정평이고 봄에 결코 무슨 유혹의 수단에도 넘어가지 않는 계집인 줄로 아옵니다.

- 그럴까? 정말 그럴까? 기막힌 유혹을 받아도 넘어가지 않을까? 좋아, 그렇다면 내기를 하세.

- 더 따르오리까?

- 아암!

(술 따르는 소리 및 술 마시는 소리)

- 캬!! 내길 하잔 말야! 내길! 알겠나?! 만약 내가 그녀의 정절을 꺾으면 그대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오.

반대로 꺾지 못하면 내가 그대들의 원하는 바를 들어주겠단 말야. 물론 내 의견을 따르는 자는 빼고 말야. 어떤가?

- 좋사옵니다.

(음악)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내기가 걸렸다.

(말발굽 소리)

- 여봐라.

- 어머, 밖에 누가 오셨나 봐요.

- 여봐라! 여기가 도미 집이냐?

- 예!

- 나가봐라.

- 예!

(문 여는 소리)

- 어디서 오셨습니까?

- 대궐에서 왔다. 도미는 어디 있느냐?

- 아, 지금 밖에 나가 일하고 계십니다. 어떤 일로 찾으셔요?

- 곧 데려오너라. 상감께서 친히 부르시는 일이라 입궐하면 알 것이다.

- 어머나, 웬일일까?

(음악)

(말발굽 소리)

- 아주머님, 무슨 일로 대궐에서 아저씨를 데려갔을까요?

- 글쎄, 난들 알 까닭이 있니? 그렇지만 벌을 주려고 데려 가진 않았을 게다. 너희 아저씨처럼 착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니?

- 그렇다고 상줄 일도 없잖아요. 아, 참 이상하죠.

- 돌아오시겠지 뭐...

- 그보다도 이건 제 짐작입니다만 아주머님이 하도 예쁘니 무슨 흉계를 꾸미자는 게 아닐까요?

- 아흐흥, 얜 별소리를 다 한다. 내가 예쁘면은 예뻤지 지아비를 잡아가면 어쩐다드냐? 당치도 않은 소리야.

그러나 아내의 마음은 괴롭고 설레였다. 남편을 데려간 데는 필경 상상할 수 없는 곡절이 있을 것을

아니 믿을래야 아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그러고 보니 내 남달리 예쁘게 태어난 게 죄로구나.

- 이웃 사람들도 아저씨가 대궐에 든 것은 모두 아주머님 미색 때문이라고 쑤군대더군요.

- 그래? 으흠, 없는 말도 꾸며내는 사람들인데 무슨 공론이든 못 하겠니? 하지만 참 알고도 모를 일이다.

예쁜 것이 어째서 죄가 된다는 건지 모르겠구나. 노마야...

- 네.

- 아무래도 수상하구나. 낮에 들어간 사람이 이렇게 으슥한 저녁인데도 안 돌아오니.

필시 무슨 곡절이 있나보다.

- 아유, 그러게 말이에요. 곡절이 없고서야 이렇게 늦도록 안 돌아오실 리 있어요?

필경 곡절이 있는 거예요.

- 아... 불이나 켜라. 그러고 나면은 돌아오시겠지.

(음악)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마음은 초조했다. 남달리 남편을 아끼고 사랑하던 여자다.

그러니 그 괴로운 마음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이 아리고 아렸다. 이렇게 초조와 걱정 속에

남편 도미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아내 앞에 청천벽력과 같은 놀라운 사태가 나타나고야 말았다.

(음악)

바로 그날 밤, 임금 개루왕이 도미의 집에 거동하였던 것이다.

- 여봐라. 네가 도미의 아내냐?

- 예.

- 어디, 머릴 들어라. 아... 내가 오늘 여기 거동한 것은 그대를 보고 싶어서였다. 과연 소문에

듣던 미색이구나. 한데 오늘 너 지아비를 대궐로 불러들인 것을 아느냐?

- 예, 아옵니다.

- 음... 넌 지아비를 무엇으로 아느냐?

- 예, 하늘로 아옵니다.

- 그럼 지아비의 뜻이면 무엇이든 쫓아야 하지 않겠느냐?

- 그러하옵니다.

- 설사 네 뜻과 거슬리더라도.

- 예.

- 알았다. 그럼 단장을 다시 하고 이 방으로 들어오너라.

- 아...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 가만, 내가 얘기하지. 실은 오늘 궁중에서 네 지아비와 내기 장기를 두었어. 네 지아비가 이기면

높은 벼슬을 줄 것이오, 내가 이기면 그대와 더불어 하룻밤 네 지아비 행세를 하기로 했는데

내가 이겼어! 그러니 이 또한 지아비 뜻이 아니겠는가?

- 예.

- 그러니 남편의 뜻이면 무엇이든 쫓겠다고 네가 스스로 말하지 않았나? 자, 어서 차비하고 오너라.

- 예. 어의가 그러하옵고 지아비 뜻이 그러다하면은 쇤네가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도미의 아내는 순순히 말하고 어전을 물러났다. 그리곤 자기의 계집종을 조용히 불렀다.

- 흐흑흑흑...

- 아주머니, 불르셨어요?

- 흑흑흑, 어, 노마. 흐흑, 기여코 올 것이 왔구나!

- 어찌 하란 상감의 분부십니까?

- 흑, 너희 아저씨가 장기에 졌다는군. 내기 장기에...

- 네...?

- 하아...

- 임금님과 내기 장기를 두셨군요.

- 흐흑...

- 그런데요?

- 흐흑... 긴 얘긴 나중에 하마. 니가 오늘밤 폐하를 모셔야겠어. 폐하가 여기 오신 까닭은

나를 차지하러 오신 거야.

- 어...머나...

- 그러니 피할 도리가 없구나. 여기서 만약 내가 거역을 하면 그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게 아니겠니...?

그렇다고 아무리 임금의 어명이 지엄하시다 해도 나는 이미 남편이 있는 몸. 아무리 어명이오

지아비의 뜻이라 해도 두 지아비는 섬길 수가 없어. 흐흑..

- 알겠습니다. 제가 대신 모시겠습니다.

- 흐흑...! 고맙다! 이 은혠 죽을지언정 잊지 않겠다...

- 임금에 충실히 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입니다. 상전을 위해 이바지하는 것이 종이 할 의무가 아니겠어요?

걱정 마세요.

- 고맙다...! 정말 고마워! 아... 그럼 노마. 상감께서 아무리 부르셔도 머리를 쳐들어선 안 돼.

그리고 눈도 뜨지 말고 소리도 될 수 있는 대로 낮춰서 말해라. 알지?

- 예, 알았습니다.

- 아...

(음악)

기나긴 하룻밤이었다. 도미의 아내는 끝끝내 자기 정절을 지킨 것이다. 이튿날 대궐에서 풀려나온

도미도 아내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기뻐했다. 필경 죽었으리라 믿었던 아내다. 그런데 정조까지

지켰을 뿐 아니라 멀쩡하니 살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기쁨도 한순간이었다.

- 나리, 도미의 계집을 데려 왔습니다.

- 이이, 예이! 네가 저지른 죄를 아느냐?!

- 상감마마.

- 아느냐 모르느냐 대꾸하란 말이다!!

- 모르옵니다.

- 몰라?! 네 임금을 속인 죄를 모른단 말이냐?!

- 상감마마, 소인 상감마마를 속인 죄는 죽어 마땅하오나 소인 천리를 거슬리지 않았으니

죄는 되지 않을까 하옵니다. 예로부터 두 임금은 섬길 수 없는 것이요 두 지아비도 받들 수

없는 줄 아는 것은 소인의 무식이온지 모르오나 소첩은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옵니다.

원컨대 소첩은 임금을 속였으니 백 번 죽어 마땅하오나 제발 지아비 도미만은 살려주옵소서.

흐흑... 부탁이옵니다.

-아하하하하하하, 고거 야무지구나. 하하하하하하. 이봐라, 네 지아비 도미는 임금을 속인 아내를

가진 죄로 국법에 의해 처치했다.

- 아니...!

- 지금쯤은 아마 망망대해에 떠있을지도 몰라.

- 예?!!

(음악)

도미의 아내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 흐흑... 그러면 쇤네 지아비는 여기 없단 말이오니까?!!

- 없어. 소경으로 만들어서 일엽편주 위에 띄워 보냈어.

(흐느끼며 우는 소리)

- 그러니 넌 이제 주인 없는 몸, 주인 없는 몸도 정절이 있어야 하는고?

(흐느끼며 우는 소리)

- 바칠 리 없는 정절이 무슨 정절이겠습니까?!

- 음하하하하하하하! 옳거니, 그럼 너 듣거라. 더 듣지 않아도 니 뜻하는 바를 알았으니

오늘부턴 대궐에 있거라. 알았느냐?

- 황송하옵니다. 그러나 폐하.

- 청이 있느냐?

- 예에... 대해 같으신 성은 망극하오나 소첩은 지금 몸이 더러운 중에 있사옵니다.

그러니 2, 3일만 짬을 주시오면은-.

- 좋아! 좋도록 하여라.

(음악)

그러나 이것은 그녀의 계책이었다.

- 도미... 불쌍한 당신. 내 피로 뼈가 가루가 되고 살이 흙이 되도록 당신을 잊을 수는 없어요.

나는 영원한 도미의 아내... 당신의 둘도 없는 아내예요. 아아... 도미.

아아... 저도 당신의 뒤를 쫓아가겠어요. 아아.. 네. 가고말고요. 흐흐윽...

(음악)

일엽편주로 정처 없는 유배의 길을 떠난 남편 도미. 눈마저 빼앗기고 아내마저 두고 떠난

남편 도미. 그 도미를 뒤따라 그녀도 마침내 위례성을 벗어나 푸른 한강수에 몸을 띄우니

때는 메깔숲이 하얗게 나부끼는 소슬한 가을. 하늘엔 한 가닥 조각달이 처량했다.

(음악)

출연. 도미 박웅, 아내 옥경희, 개루왕 이완호. 그리고 명순이 안종국, 홍계일, 이영민, 노명순, 이정선.

해설 이창환. 음악 오순정. 효과 심재훈. 기술 정영철이었습니다.

(광고)

순도와 함양이 약효를 보증하는 한일약품 제공. 향토무대.

김중희 편극, 도미의 아내. 안평선 연출로 보내 드렸습니다.

(음악)






(음악)

항토무대. 김중희 편극, 도미의 아내. 안평선 연출로 보내 드립니다.

(음악)

때는 백제나라 네 번째 임금 개루왕 성대. 서력으로는 140년대 후반.

(소쩍새 울음소리)

건국한 지 150여 년이건만 아직 한강유역인 서울 근교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있던 백제는

전쟁을 모르는 무사태평에 평화스러운 왕국이었다.

(방울소리)

- 이랴! 아니, 이놈의 소가! 이랴!! 아, 이쪽이야!! 아, 똑바로 걸어!

(소 울음소리)

- 이랴!! 이랴!!

- 여보! 아이, 여보!! 함께 가요!

- 어?

- 아이 참, 어쩜 그리두 빨리 가우? 아유, 아유, 숨차, 아이 참, 같이 좀 가자니까.

(방울소리)

- 아, 이렇게 서 있잖어! 어서 와요.

- 아이...

(방울 소리)

- 아...

- 아니? 그거 웬 바구니요?

- 아하하하, 나물 캐려구요. 싱싱한 산나물은 몸에도 좋대요. 자, 갑시다. 어서.

(방울 소리)

- 아...

- 너무 깊은 덴 가지 말어. 봄 뱀이 득실거리니까.

- 아하하, 걱정 말아요. 실은 말이죠, 여보.

- 응?

- 저, 오늘은 당신하고 단둘이 있고 싶었어요. 어쩐지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아니에요. 꿈같은 건 겁나지 않아요. 흠, 그냥 이렇게 호젓이 거닐고 싶었어요.

(방울 소리)

-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요즘은 좀 걱정이 생기는구려.

- 무슨 걱정이죠?

- 우리 두 사람에 대한... 공론들이 하도 많아서 말요. 그러니 당신인들 꿈자리가 편할 리 있겠소.

당신은 너무도 예뻐. 나한텐 정말-.

- 아이, 또 그런 소리. 미색은 내 타고난 팔자. 당신을 지아비로 모신 것은 내 의지였어요.

누가 뭐래도 그런 문젠 끄떡도 안 해요. 다만 걱정되는 건 혹 당신이 나를 저버리진 않을까

하는 그 걱정뿐이에요.

- 당치도 않은 소리! 정말 그건 당치도 않은 소리요!! 내가 당신을 저버리다니! 여보.

- 당신, 나를 두려워해요. 그럴 필요 조금도 없어요.

- 사실이요, 허나 이젠 그렇지 않소. 자, 그 얘길랑 그만두고 우리 저 강가로 가요.

- 아, 네. 가요.

(방울 소리)

- 야, 야!!

(소 울음소리)

도미와 그 아내. 지금 백제고을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 젊고 아름다운 부부는

화창한 봄볕을 온몸에 지니며 새파란 두멧길을 거닐고 있다.

(방울 소리)

- 아유, 어쩜 저렇게도 다정할까.

- 아유, 아무리 원앙새기로 저렇기야 하겠수? 쯧쯧쯧, 아유, 눈이 부셔 볼 수가 있어야지. 변상 맞어 든다니까.

- 누가 아니라우, 하하하하하!

그것도 그럴 것이 도미의 아내는 그 인물이 예쁘고 아름답기로 백제 서울뿐 아니라 온 백제땅에 그 이름이

높았으니 말이다.

- 아, 정말 도미에겐 과하지.

- 그럼요. 과하다마다요. 사람됨이 똑똑하고 영리한 점에서두 도미와 비교도 안 되죠. 아유, 그런데 그

숱하고 훌륭한 신랑감을 죄다 밀어제치고 하필이면 저런 무지랭이한테 왔는지 모르겠슈. 아유, 그것도 운수소간인가요?

아니면 연분이라는 건가요?

- 오긴지도 모르죠.

- 오기? 하아이구, 정말 그럴 지도 몰라. 왕족이다, 장군 아들이다 집안 좋고 세도 꽤나 쓰는 사내들이

하도 지지고 볶으니깐 귀찮아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아유, 그렇더래도 오기치곤 너무너무 분수가 없어.

- 분수없는 게 아니라 너무 있어서 그랬나 봅니다. 저 얘기가 시집갈 때 자기 부모한테 뭐랬는지 아슈?

- 뭐라고 했대요?

- 부모들도 딱해서 왜 하필이면 천덕꾸러기 도미한테 시집가겠다는 거냐 하고 물었대지 뭐예요?

- 그랬더니?

- 그랬더니 한다는 소리가.

- 어.

- 제가 도미한테 간 덴 딴 이유가 없어요. 훌륭한 데 가서 평범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평범한 데 가서 훌륭하게 지내겠습니다. 이렇게 말했다지 뭐예요, 글쎄!

- 아, 네. 아유,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럴 듯한 말이군요.

- 뼈대 있는 말이지 뭐예요.

- 아유, 그러게 말이에요.

(음악)

도미의 아내, 백제 땅에 둘도 없는 미녀, 도미의 아내. 그녀의 얘기는 백성들의 입에서 맴돌다

마침내는 구중궁궐 왕실에까지 새어 들어갔다.

(음악)

- 아하하하하하하.

(술 따르는 소리)

- 아, 더 따라라.

- 예.

(술 따르는 소리)

- 무슨 얘기들이냐? 도미가 어쩌구저쩌구 하는 건 생선 얘기냐, 사람의 얘기냐.

- 예, 시방 우리 백제 서울에 사는 도미란 미천한 백성의 혼인후일담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 오호~ 그 평판이 자자한 백제의 미녀 얘긴가?

- 그러하옵니다.

- 하하하! 그래, 그 계집이 인물도 일색이지만 정절도 강하다면서? 그게 사실인가?

- 그러하다 하옵니다.

- 모르는 소리, 계집에게 정절이 다 뭔고? 인물, 인물 하지만 내 이 계집만큼 아름다울 수야 있겠나?

- 황공하오나 소녀 따위는 감히 옆에 서지도 못합니다.

- 그래?! 너도 천하의 미색인 줄 알았는데?

- 아이, 부끄럽습니다.

- 하하하하하!!

(술 마시는 소리)

- 캬! 미색에 정절이라... 개살구는 아닌가 보다만 그렇기로 계집의 정절이 허영보다 더 우월하진 못할 걸?

- 그러나 소신이 아는 바, 그 계집만은 천하의 계집이 허영에 홀린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아옵니다.

- 호오...

- 똑똑히는 모릅니다만 항간에 떠도는 말을 종잡아 볼 때 그 도미의 아내만은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꿋꿋한 마음을 가졌다는 정평이고 봄에 결코 무슨 유혹의 수단에도 넘어가지 않는 계집인 줄로 아옵니다.

- 그럴까? 정말 그럴까? 기막힌 유혹을 받아도 넘어가지 않을까? 좋아, 그렇다면 내기를 하세.

- 더 따르오리까?

- 아암!

(술 따르는 소리 및 술 마시는 소리)

- 캬!! 내길 하잔 말야! 내길! 알겠나?! 만약 내가 그녀의 정절을 꺾으면 그대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오.

반대로 꺾지 못하면 내가 그대들의 원하는 바를 들어주겠단 말야. 물론 내 의견을 따르는 자는 빼고 말야. 어떤가?

- 좋사옵니다.

(음악)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내기가 걸렸다.

(말발굽 소리)

- 여봐라.

- 어머, 밖에 누가 오셨나 봐요.

- 여봐라! 여기가 도미 집이냐?

- 예!

- 나가봐라.

- 예!

(문 여는 소리)

- 어디서 오셨습니까?

- 대궐에서 왔다. 도미는 어디 있느냐?

- 아, 지금 밖에 나가 일하고 계십니다. 어떤 일로 찾으셔요?

- 곧 데려오너라. 상감께서 친히 부르시는 일이라 입궐하면 알 것이다.

- 어머나, 웬일일까?

(음악)

(말발굽 소리)

- 아주머님, 무슨 일로 대궐에서 아저씨를 데려갔을까요?

- 글쎄, 난들 알 까닭이 있니? 그렇지만 벌을 주려고 데려 가진 않았을 게다. 너희 아저씨처럼 착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니?

- 그렇다고 상줄 일도 없잖아요. 아, 참 이상하죠.

- 돌아오시겠지 뭐...

- 그보다도 이건 제 짐작입니다만 아주머님이 하도 예쁘니 무슨 흉계를 꾸미자는 게 아닐까요?

- 아흐흥, 얜 별소리를 다 한다. 내가 예쁘면은 예뻤지 지아비를 잡아가면 어쩐다드냐? 당치도 않은 소리야.

그러나 아내의 마음은 괴롭고 설레였다. 남편을 데려간 데는 필경 상상할 수 없는 곡절이 있을 것을

아니 믿을래야 아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그러고 보니 내 남달리 예쁘게 태어난 게 죄로구나.

- 이웃 사람들도 아저씨가 대궐에 든 것은 모두 아주머님 미색 때문이라고 쑤군대더군요.

- 그래? 으흠, 없는 말도 꾸며내는 사람들인데 무슨 공론이든 못 하겠니? 하지만 참 알고도 모를 일이다.

예쁜 것이 어째서 죄가 된다는 건지 모르겠구나. 노마야...

- 네.

- 아무래도 수상하구나. 낮에 들어간 사람이 이렇게 으슥한 저녁인데도 안 돌아오니.

필시 무슨 곡절이 있나보다.

- 아유, 그러게 말이에요. 곡절이 없고서야 이렇게 늦도록 안 돌아오실 리 있어요?

필경 곡절이 있는 거예요.

- 아... 불이나 켜라. 그러고 나면은 돌아오시겠지.

(음악)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마음은 초조했다. 남달리 남편을 아끼고 사랑하던 여자다.

그러니 그 괴로운 마음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이 아리고 아렸다. 이렇게 초조와 걱정 속에

남편 도미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아내 앞에 청천벽력과 같은 놀라운 사태가 나타나고야 말았다.

(음악)

바로 그날 밤, 임금 개루왕이 도미의 집에 거동하였던 것이다.

- 여봐라. 네가 도미의 아내냐?

- 예.

- 어디, 머릴 들어라. 아... 내가 오늘 여기 거동한 것은 그대를 보고 싶어서였다. 과연 소문에

듣던 미색이구나. 한데 오늘 너 지아비를 대궐로 불러들인 것을 아느냐?

- 예, 아옵니다.

- 음... 넌 지아비를 무엇으로 아느냐?

- 예, 하늘로 아옵니다.

- 그럼 지아비의 뜻이면 무엇이든 쫓아야 하지 않겠느냐?

- 그러하옵니다.

- 설사 네 뜻과 거슬리더라도.

- 예.

- 알았다. 그럼 단장을 다시 하고 이 방으로 들어오너라.

- 아...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 가만, 내가 얘기하지. 실은 오늘 궁중에서 네 지아비와 내기 장기를 두었어. 네 지아비가 이기면

높은 벼슬을 줄 것이오, 내가 이기면 그대와 더불어 하룻밤 네 지아비 행세를 하기로 했는데

내가 이겼어! 그러니 이 또한 지아비 뜻이 아니겠는가?

- 예.

- 그러니 남편의 뜻이면 무엇이든 쫓겠다고 네가 스스로 말하지 않았나? 자, 어서 차비하고 오너라.

- 예. 어의가 그러하옵고 지아비 뜻이 그러다하면은 쇤네가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도미의 아내는 순순히 말하고 어전을 물러났다. 그리곤 자기의 계집종을 조용히 불렀다.

- 흐흑흑흑...

- 아주머니, 불르셨어요?

- 흑흑흑, 어, 노마. 흐흑, 기여코 올 것이 왔구나!

- 어찌 하란 상감의 분부십니까?

- 흑, 너희 아저씨가 장기에 졌다는군. 내기 장기에...

- 네...?

- 하아...

- 임금님과 내기 장기를 두셨군요.

- 흐흑...

- 그런데요?

- 흐흑... 긴 얘긴 나중에 하마. 니가 오늘밤 폐하를 모셔야겠어. 폐하가 여기 오신 까닭은

나를 차지하러 오신 거야.

- 어...머나...

- 그러니 피할 도리가 없구나. 여기서 만약 내가 거역을 하면 그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게 아니겠니...?

그렇다고 아무리 임금의 어명이 지엄하시다 해도 나는 이미 남편이 있는 몸. 아무리 어명이오

지아비의 뜻이라 해도 두 지아비는 섬길 수가 없어. 흐흑..

- 알겠습니다. 제가 대신 모시겠습니다.

- 흐흑...! 고맙다! 이 은혠 죽을지언정 잊지 않겠다...

- 임금에 충실히 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입니다. 상전을 위해 이바지하는 것이 종이 할 의무가 아니겠어요?

걱정 마세요.

- 고맙다...! 정말 고마워! 아... 그럼 노마. 상감께서 아무리 부르셔도 머리를 쳐들어선 안 돼.

그리고 눈도 뜨지 말고 소리도 될 수 있는 대로 낮춰서 말해라. 알지?

- 예, 알았습니다.

- 아...

(음악)

기나긴 하룻밤이었다. 도미의 아내는 끝끝내 자기 정절을 지킨 것이다. 이튿날 대궐에서 풀려나온

도미도 아내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기뻐했다. 필경 죽었으리라 믿었던 아내다. 그런데 정조까지

지켰을 뿐 아니라 멀쩡하니 살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기쁨도 한순간이었다.

- 나리, 도미의 계집을 데려 왔습니다.

- 이이, 예이! 네가 저지른 죄를 아느냐?!

- 상감마마.

- 아느냐 모르느냐 대꾸하란 말이다!!

- 모르옵니다.

- 몰라?! 네 임금을 속인 죄를 모른단 말이냐?!

- 상감마마, 소인 상감마마를 속인 죄는 죽어 마땅하오나 소인 천리를 거슬리지 않았으니

죄는 되지 않을까 하옵니다. 예로부터 두 임금은 섬길 수 없는 것이요 두 지아비도 받들 수

없는 줄 아는 것은 소인의 무식이온지 모르오나 소첩은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옵니다.

원컨대 소첩은 임금을 속였으니 백 번 죽어 마땅하오나 제발 지아비 도미만은 살려주옵소서.

흐흑... 부탁이옵니다.

-아하하하하하하, 고거 야무지구나. 하하하하하하. 이봐라, 네 지아비 도미는 임금을 속인 아내를

가진 죄로 국법에 의해 처치했다.

- 아니...!

- 지금쯤은 아마 망망대해에 떠있을지도 몰라.

- 예?!!

(음악)

도미의 아내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 흐흑... 그러면 쇤네 지아비는 여기 없단 말이오니까?!!

- 없어. 소경으로 만들어서 일엽편주 위에 띄워 보냈어.

(흐느끼며 우는 소리)

- 그러니 넌 이제 주인 없는 몸, 주인 없는 몸도 정절이 있어야 하는고?

(흐느끼며 우는 소리)

- 바칠 리 없는 정절이 무슨 정절이겠습니까?!

- 음하하하하하하하! 옳거니, 그럼 너 듣거라. 더 듣지 않아도 니 뜻하는 바를 알았으니

오늘부턴 대궐에 있거라. 알았느냐?

- 황송하옵니다. 그러나 폐하.

- 청이 있느냐?

- 예에... 대해 같으신 성은 망극하오나 소첩은 지금 몸이 더러운 중에 있사옵니다.

그러니 2, 3일만 짬을 주시오면은-.

- 좋아! 좋도록 하여라.

(음악)

그러나 이것은 그녀의 계책이었다.

- 도미... 불쌍한 당신. 내 피로 뼈가 가루가 되고 살이 흙이 되도록 당신을 잊을 수는 없어요.

나는 영원한 도미의 아내... 당신의 둘도 없는 아내예요. 아아... 도미.

아아... 저도 당신의 뒤를 쫓아가겠어요. 아아.. 네. 가고말고요. 흐흐윽...

(음악)

일엽편주로 정처 없는 유배의 길을 떠난 남편 도미. 눈마저 빼앗기고 아내마저 두고 떠난

남편 도미. 그 도미를 뒤따라 그녀도 마침내 위례성을 벗어나 푸른 한강수에 몸을 띄우니

때는 메깔숲이 하얗게 나부끼는 소슬한 가을. 하늘엔 한 가닥 조각달이 처량했다.

(음악)

출연. 도미 박웅, 아내 옥경희, 개루왕 이완호. 그리고 명순이 안종국, 홍계일, 이영민, 노명순, 이정선.

해설 이창환. 음악 오순정. 효과 심재훈. 기술 정영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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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희 편극, 도미의 아내. 안평선 연출로 보내 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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