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세계명작 주옥편 시리즈 열세 번째로 푸쉬킨 원작 하지동 각색, 사나이 이병주 연출로 막을 올립니다.
(음악)
-난 결코 결투라는 이름을 빌어 그를 쏘아죽이지 않을 것을 스스로 맹세한다. 왜냐구요? 흐흐흐. 그에 대해서 난 언제나 한 발의 총알을 남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나 그를 조준할 수 있는 마지막 한 발이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음악)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및 구두 발자국 소리)
- 자, 여러분들. 오늘도 일과가 끝났으니 또 우리집에서 한잔들 하십시다.
- 오, 시루이요 씨. 오늘은 한잔 하는 것에다 하나 더 곁들어서 트럼프를 한번 벌려보는 게 어떻겠소?
- 흐흐흐. 그거 참 좋은 착상입니다. 한판 벌리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서두 밑천들이나 두둑하게 마련해오슈.
-그럽시다. 어떻소. 오늘 시루이요 씨 집에서 한잔 하면서 한판 벌리는 게?
- 아하하, 좋지.
(사람들의 환호성 및 박수 소리)
- 아하하, 그럼 뒤따라들 오슈. 난 먼저 가서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을 테니까.
- 그럽시다. 두둑하게들 밑천들이나 마련해가지고들 와요.
(구두 발자국 소리)
- 흠, 알 수가 없는 사람이야. 대체 뭔데 저 사람은 군대만 득실거리는 이 거리에서 살고 있을까. 더욱이나 이런 삭막한 거리에 혼자 남아서 군복 입은 우리들한테 시중들면서 만족하고 있을까.
(구두 발자국 소리)
하긴. 이곳에 온 지 몇 해가 된 나한테도 시루이요의 정체를 알 수가 없는데 하물며 부임해온 지 불과 며칠 밖에 안 된 풋내기 장교가 시루이요 씨의 생활에 관해서 의문을 갖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들은 시루이요를 걸걸하고 멋있는 사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부대의 장교들을 위해서 시루이요는 언제나 그의 식탁을 개방하고 있다.
나이는 이제 서른다섯, 아니면 서른여섯밖에 안 된 시루이요. 걸걸한 성미면서도 그의 얼굴 한구석에는 침울한 그림자가 가시질 않는다.
그리고 그는 집에만 돌아가면 벽에 걸어놓은 나체상을 향해 권총을 쏘아댄다. 신묘하리만치 권총을 잘 다루는 시루이요.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신비로운 사나이로 통하기도 한다.
(음악)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 자, 이제 식사도 대강 끝이 났겠다 아까 새로 부임하신 장교님의 말씀처럼 우리 트럼프 놀이를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 아, 그렇게 합시다.(모두)
- 자, 그럼 식탁을 걷어치우고 이제부터 트럼프 판을 만듭시다.
(식탁 치우는 소리)
예정했던 대로 판은 벌어졌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차츰 트럼프 판을 둘러싼 호흡소리는 높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루이요는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어 버린 채 침착한 자세로 침묵을 계속한다.
(트럼프 섞는 소리)
이렇게 트럼프가 한창 열띠어갈 무렵, 새로 부임한 풋내기 장교와 시루이요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식탁을 치며)
- 잠깐! 속임수다! 속임수야!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시루이요의 손을 봐!
- 자, 보시오.
- 틀림없이 시루이요는 우릴 속였다!
- 잘못 보셨을 겁니다.
- 아니야, 난 분명히 봤어!
- 천만에 말씀이죠. 내가 여러분을 속이다니 그건 무슨 착오일 겁니다.
- 이 두 눈이 똑똑히 당신이 슬쩍 바꿔치는 걸 봤는데 그래도 아니라고 부인할 셈이오?
- 아하하하, 잘못 보셨을 겁니다.
- 그럴 린 없어! 천하를 다 속이는 재간일지라도 내 눈은 못 속일 거야! 속였어!
- 난 속이지 않았소.
- 뭣이 어쨌다구?!
- 난 속이질 않았소.
- 으잇!
(식탁 뒤엎는 소리)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더러운 자식.
- 뭐라고? 나더러 더러운 자식이라구?
- 그래! 더러운 자식이라구 했다! 어쩔 테냐! 날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테냔 말야!
- 당신. 어서 돌아가 주시죠. 그리고 우리집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걸 천번만번 하나님께 감사하는 게 좋을 거요.
- 어디 두고 보자. 네놈이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되나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되나!
(문 열고 나가는 소리)
- 아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모두)
- 시루이요 씨. 참으십쇼. 저 사람은 아직 어린애 같은 데가 있어서.
- 자자, 그만 진정하시고 계속해서 우린 놉시다.
- 아무렴. 계속 해야지. 이거 미안합니다. 여러분을 오십사 해놓고 이런 꼴을 보여서.
- 아하하하, 원 별 말씀을. 자, 계속 합시다. 애송이들도 돌아갔으니까.
(음악)
애송이 장교와 다투고 난 시루이요는 틀림없이 그의 권총 솜씨를 발휘할 것이라고 우리들은 수군거렸다.
그러나 시루이요는 우리들의 예상을 뒤엎고 곧 애송이 장교의 손을 잡고 화해하고 말았다.
시루이요의 놀라운 권총 솜씨를 한번 봤으면 하고 기대했던 우리들을 적잖게 실망시켰다. 심지어는 시루이요를 멸시하는 사람까지도 있었다. 나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루이요는 한 장의 편지를 받아들자, 이상하게 눈동자가 빛났고 다 읽기가 지루한 듯 시루이요는 이 고장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으면서 떠나기 전에 꼭 할 말이 있으니 조용히 둘이서만 만나자고 했다. 시루이요와 나는 무릎을 맞대고 마주앉았다.
- 내가 떠나기 전에 만나자고 청한 건 꼭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어서였습니다. 알다시피 나란 위인은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 성미죠. 그러나 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그릇된 인상을 남기고 싶지가 않습니다. 아마 날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날 밤, 트럼프 판에서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그 애송이 장교를 그냥 놔뒀다는 것이.
- 결투를 사양할 내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한텐 이런 과거가 있었죠.
(음악)
- 6년 전의 일입니다. 난 어떤 사내놈한테 보기 좋게 귀싸대기를 얻어맞았답니다.
- 그런데두 결투를 하지 않은 채 물러났나요?
- 난 그 사람과 결투를 했었죠.
(구두 발자국 소리)
- 이것이 그 결투의 진용(?)입니다.
- 아니, 그건 군대모가 아닙니까?
- 맞습니다. 나도 기병대 출신이죠. 내 성격을 알다시피 남에게 지기를 싫어합니다. 내가 군대생활을 할 무렵엔 굉장히 난폭스런 사람들이 많았죠. 그와 난 그 중에서도 난폭하기로 손꼽히는 편이었습니다. 우리 부대에서 일어나는 결투는 전부가 내 주관 하에 진행이 됐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우리 부대에 핸섬하고 대담한 녀석이 부임해오질 않았겠습니까.
- 놈은 화려했었죠. 돈을 물쓰듯 하고 행운아적인 그 거동. 부대 안에서의 내 명성은 차츰 흔들리기 시작하더군요.
부대 주변의 여인들 마음도 나한테서 떠나갔고 그놈은 보란 듯이 내 앞에서 까불어대고 아마 이런 경우에 사내들이 겪는 내심의 고통은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 갈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폴란드의 지주 집에서 무도회가 열리지 않겠습니까.
그놈이 나와 좋아지내고 있는 여인을 눈독 들이고 있는 걸 눈치 챘었죠. 그래서 난 그놈의 귀에다 대고 암시를 했습니다.
그러는 찰나, 그놈은 나의 귀싸대기를 철썩 후려치질 않겠어요. 눈에서 번개 같은 불꽃이 튀는 것을 의식했었죠.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 치고받고 무도회는 아수라장이 됐겠군요.
- 서로 결투를 약속하고 우린 무도회를 벗어났습니다.
- 결투를요?
- 그렇죠. 그 무렵엔 결투가 사나이다운 유희였으니까.
-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 내가 먼저 쏴야 할 차례였습니다만 마음의 동요가 심해 나는 상대방에게 먼저 기회를 양보했습니다.
- 아니, 그런 위험한 짓을.
- 한걸음 물러설 수 있는 여유란 사내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으니까요.
- 그리고선요?
- 놈은 나를 겨누었죠. 난 그놈의 총구를 의식하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그러자 한방의 총소리가 적막한 들판을 흔들어 놓더군요.
- 오, 총알이 빗나갔었군요.
- 흐흐흐, 이렇게 내 군모에 구멍을 뚫어놓고.
- 네.
- 그 다음은 내 차례였죠. 그놈의 목숨은 내 손아귀에 잡혀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 그랬을 테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 사람은 황천행이 되는 거니까요.
- 그런데 놈은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는 대담성을 보였습니다.
- 어떻게요?
- 그놈 태연한 기색으로 군모에 앵두를 가볍게 담아들고 우물우물 먹으면서 앵두씨를 뱉어내질 않겠습니까.
- 대담하긴 꽤나 대담한 사람이군요.
- 그렇죠. 죽음을 앞에다 놓고 앵두를 우물우물 먹어댈 수가 있는 배짱. 배짱 치고는 대단한 배짱이었죠.
난 그 순간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문뜩 깨달았습니다. 놈은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데 구태여 저놈의 목숨을 조져본 들 무슨 신통한 일이 있겠는가 이런 생각이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난 권총 들었던 손을 내리면서 이렇게 말했죠.
(과거 회상)
- 넌 지금 죽을 때가 아닌가 보다. 어서 돌아가 아침식사를 해라. 구태여 네놈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다.
- 아니, 조금도 방해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어서 사양치 마시고 방아쇠를 당기시지. 흠, 하긴 언제나 총알 하나는 당신 권총 속에 남아있을 테니까. 언제라도 원하는 때와 장소에 난 나갈 용의가 있어. 생각대로 하시지.
- 좋아. 어떻든 오늘은 너를 겨누어 방아쇠를 당기고 싶지 않으니까 다음으로 미루자.
- 그렇다면 언제라도 마음 내키는 대로.
(구두 발자국 소리)
(잔잔한 음악 소리)
- 그 후 나는 군대에서 물러나와 이 고장에 들어앉았죠. 그러나 하루하루가 그놈에 대한 복수심으로 들끓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오늘 모스코바에 있는 내 친구한테서 온 편지. 그놈이 며칠 후에 아리따운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됐다는 겁니다. 난 이제야 그놈에 대한 복수를 결심할 좋은 기회라고 단정 내렸습니다. 결혼을 앞둔 그놈이 옛날에 앵두알을 씹으면서 죽음을 기다리던 것처럼 이번에도 태연하게 죽음을 기다리는가를 보고 싶어진 것입니다. 이만하면 내 심정을 어느 정도 짐작하실 수가 있겠죠.
- 예... 부디 건투를 빕니다.
- 고맙습니다. 그럼.
(구두 발자국 소리)
(음악)
시루이요가 떠나간 지 몇 년이 지나갔다. 난 그동안 그의 소식을 알 길이 없은 채 군복을 벗었다. 그리고 집안 사정에 의해 어느 시골 한적한 곳에서 농사일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온 마을이 떠들썩해졌다. 까닭을 물은 즉, 데 백작 부부가 5년 만에 그의 농장과 별장을 찾아온다는 것이다. 난 문뜩 그들과 만나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그리하여 마을 노파를 통해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게 됐다. 데 백작의 농장은 넓은 광야를 연상시킬 정도로 규모가 컸었고 그들의 별장을 화려하기 이를 때 없었다.
(구두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아이고, 어서 오십쇼.
- 실례하겠습니다. 아, 예까지 올라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 아하하하, 원 별 말씀을. 바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도 이곳에 오면 말벗이 그리워집니다. 근데 마침 선생 같은 분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 어떻든 데 백작님을 이렇게 만나 뵐 수 있게 돼서 영광입니다.
- 오호, 아하하, 원 겸손의 말씀을. 참, 우리집 사람을 소개해야 되겠군요. 이봐요. 마샬.
- 네.
- 마을의 손님이 오셨는데 나와서 인사를 해야지.
- 어머, 그래요? 지금 곧 나가겠어요.
- 자, 앉으시죠.
- 아니요. 좋습니다. 잠깐 벽에 걸린 그림들을 감상하고 싶습니다.
- 아, 낡은 것들이라서.
(문 여닫는 소리)
- 아, 왔구만. 선생. 제 아냅니다.
- 네, 그러세요.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 아, 이렇게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 선생께서는 그림에 대해서 퍽 관심이 많으신 모양이야.
- 네. 아유, 별반 좋지 않은 그림들이라서요.
- 훌륭한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 네?
- 저 아름다운 스위스 풍경화에--
- 네.
- 아깝게도 상처가 나있군요.
- 아, 네. 어느 친구의 권총솜씨랍니다.
- 네? 아니, 그럼 탄환이 뚫고 지나간 자국입니까?
- 그렇죠.
- 오우, 놀라운 권총 솜씬데요.
- 뛰어난 권총 솜씨죠. 선생의 솜씨는 어느 정도입니까?
- 저요? 아하하, 서른 걸음쯤 떨어져서 트럼프를 맞히는 정도랄까요?
- 어머,
- 아.
- 그럼 당신은 어때요?
- 아하하, 글쎄. 어떨지. 옛날은 나도 좀 자신이 있는 편이었는데.
- 아하하하. 권총이란 습관처럼 손끝에서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가 보더군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얘긴데요.
- 네.
- 귀신같게 권총을 쏘아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 사람은 식사만 끝나면 쏘아대는 거예요.
- 그 사람의 명중률은 어느 정도였는데요?
- 아마, 한마디로 표현해서 벽에 붙어있는 파리라도 맞히는 정도랄까요?
- 어허허허.
- 예? 어머나, 설마 그렇게까지야.
- 아닙니다. 이건 거짓 한 푼어치 끼지 않은 정말입니다. 그 사람은 파리를 보면 권총을 가져오라고 소리칩니다. 그래, 권총을 갖다 주는 순간 방아쇠를 당기죠.
- 그래도 파리를 백발백중 맞힌다 이거겠군요.
- 아하하, 그렇습니다. 파리란 놈이 벽으로 파묻혀버립니다.
- 아이쿠, 하하하! 그거 참 놀라운 솜씨군요.
- 그래, 그 사람의 이름은 뭐라고 불렀습니까?
- 네, 시루이요라고 불렀습니다.
- 네? 시루이요...
- 백작께서도 아시는 사람입니까?
- 아... 알아도 아주 잘 아는 사이였죠.
- 네... 나와 시루이요는 같은 연대에서 생활을 했으니까요.
- 그러시다면 시루이요의 귀싸대기를 누가 갈긴 얘기도 아시겠군요.
- 선생께서도 그 얘기를 알고 계셨군요. 바로 내가 시루이요의 귀싸대기를 갈긴 장본인입니다.
- 아... 그랬었군요.
- 아, 여보. 또 그 얘기는 왜 끄집어내세요?
- 아하, 이렇게 시루이요를 아는 선생을 만났으니 지나간 얘기나 나눠보는 거지 뭐. 그리고 5년 전 우리들이 결혼해서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왔을 때의 일이었어요. 어느 날.
(음악)
(구두 발자국 소리)
- 서방님, 웬 낯선 손님이 아까부터 이름도 안 밝히고 서방님을 만나뵙겠다고 기다리고 있어요.
- 어, 그래? 누굴까.
- 어떡할까요? 그냥 돌려보내야죠?
- 아니, 예까지 날 찾아온 손님에게 그냥이야 돌아가랄 수가 있나. 응접실로 안내해요.
- 네.
(구두 발자국 소리)
- 저, 손님. 이리 오세요.
(구두 발자국 소리)
- 여깁니다. 들어가세요.
(문 여닫는 소리 및 구두 발자국 소리)
- 어때, 백작. 날 기억하겠소?
- 아니, 시루이요.
- 그렇소. 나는 시루이요요. 이번에는 내가 쏠 차롄데 괜찮을까?
- 좋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부탁이 있다.
- 무슨 부탁인지 얘기해봐.
- 우리집 사람이 돌아오기 전에 방아쇠를 당겨다오.
- 네 부인이 돌아오기 전에?
- 난, 난 이렇게 죽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다. 제발 부탁이다!
- 좋아, 그게 소원이라면.
- 자, 어서 쏴라.
- 그러고 보니까 이제 네놈이 죽음 앞에서 앵두알을 씹을 만큼 자신이 없는가 보구나.
- 이봐, 시루이요. 그렇게 날 놀리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줘.
(구두 발자국 소리)
- 아니, 아니! 이게 웬일이에요!
- 마, 마샬.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 부인. 지금 우린 농담으로 이렇게 권총 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과히 놀라지는 마십쇼.
-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이렇게 권총을 겨누고... 아유, 무서워.
- 이봐, 데 백작. 그만두지. 이제 우리 장난은 그만 끝이 난 걸세.
- 그게 정말인가?
- 아암, 정말이구 말고. 난 무기를 안 가진 사람한테 이 마지막 한 발을 사양하겠어. 그 대신---
(총성 소리 )
- 아--악!
- 부인. 놀라지는 마시죠. 내 마지막 한 발은 저렇게, 저렇게 그림폭을 꿰뚫고 빗나갔으니까.
- 시루이요!
- 아.
- 잘 있게. 데 백작. 그리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부인.
(구두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음악)
- 이렇게 시루이요는 어디론가 사라져 갔습니다.
- 네...
- 그는 정말 사나이다운 데가 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한 발을 저렇게 영원히 기념할 수 있게 내 머릿속에다
남겨놓은 사나이기도 했었답니다.
(음악)
출연. 사나이 오정한, 젋은 장교 양진웅, 데 백작 조명남, 그뤼부인 김수희, 하인 장건일. 나 이완호, 음악 오순정, 효과 심재훈, 이형종, 김벌래 기술 손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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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진약품이 보내드리는 명작극장 세계명작 주옥편 시리즈 열세 번째로 푸쉬킨 원작, 하지동 각색, 사나이 이병주 연출로 막을 내립니다.
(입력일 : 201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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