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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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명작극장
세계문학주옥편시리즈 - (13)사나이 (푸쉬킨 작, 하지동 각색)
세계문학주옥편시리즈
(13)사나이 (푸쉬킨 작, 하지동 각색)
1967.09.24 방송
‘명작극장’은 목적극 개척에 의욕을 보였던 동아방송이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극화해서 멜로드라마가 판을 치던 라디오드라마의 풍토를 쇄신해보자는 의도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일요일밤 10시 15분에 방송되는 45분짜리로 국내외의 우수작품들이 소개되었으며, 63년 5월 5일에서 70년 10월 4일까지 모두 340편의 작품이 방송되었다.
(음악)

세계명작 주옥편 시리즈 열세 번째로 푸쉬킨 원작 하지동 각색, 사나이 이병주 연출로 막을 올립니다.

(음악)

-난 결코 결투라는 이름을 빌어 그를 쏘아죽이지 않을 것을 스스로 맹세한다. 왜냐구요? 흐흐흐. 그에 대해서 난 언제나 한 발의 총알을 남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나 그를 조준할 수 있는 마지막 한 발이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음악)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및 구두 발자국 소리)

- 자, 여러분들. 오늘도 일과가 끝났으니 또 우리집에서 한잔들 하십시다.

- 오, 시루이요 씨. 오늘은 한잔 하는 것에다 하나 더 곁들어서 트럼프를 한번 벌려보는 게 어떻겠소?

- 흐흐흐. 그거 참 좋은 착상입니다. 한판 벌리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서두 밑천들이나 두둑하게 마련해오슈.

-그럽시다. 어떻소. 오늘 시루이요 씨 집에서 한잔 하면서 한판 벌리는 게?

- 아하하, 좋지.

(사람들의 환호성 및 박수 소리)

- 아하하, 그럼 뒤따라들 오슈. 난 먼저 가서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을 테니까.

- 그럽시다. 두둑하게들 밑천들이나 마련해가지고들 와요.

(구두 발자국 소리)

- 흠, 알 수가 없는 사람이야. 대체 뭔데 저 사람은 군대만 득실거리는 이 거리에서 살고 있을까. 더욱이나 이런 삭막한 거리에 혼자 남아서 군복 입은 우리들한테 시중들면서 만족하고 있을까.

(구두 발자국 소리)

하긴. 이곳에 온 지 몇 해가 된 나한테도 시루이요의 정체를 알 수가 없는데 하물며 부임해온 지 불과 며칠 밖에 안 된 풋내기 장교가 시루이요 씨의 생활에 관해서 의문을 갖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들은 시루이요를 걸걸하고 멋있는 사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부대의 장교들을 위해서 시루이요는 언제나 그의 식탁을 개방하고 있다.

나이는 이제 서른다섯, 아니면 서른여섯밖에 안 된 시루이요. 걸걸한 성미면서도 그의 얼굴 한구석에는 침울한 그림자가 가시질 않는다.

그리고 그는 집에만 돌아가면 벽에 걸어놓은 나체상을 향해 권총을 쏘아댄다. 신묘하리만치 권총을 잘 다루는 시루이요.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신비로운 사나이로 통하기도 한다.

(음악)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 자, 이제 식사도 대강 끝이 났겠다 아까 새로 부임하신 장교님의 말씀처럼 우리 트럼프 놀이를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 아, 그렇게 합시다.(모두)

- 자, 그럼 식탁을 걷어치우고 이제부터 트럼프 판을 만듭시다.

(식탁 치우는 소리)

예정했던 대로 판은 벌어졌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차츰 트럼프 판을 둘러싼 호흡소리는 높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루이요는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어 버린 채 침착한 자세로 침묵을 계속한다.

(트럼프 섞는 소리)

이렇게 트럼프가 한창 열띠어갈 무렵, 새로 부임한 풋내기 장교와 시루이요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식탁을 치며)

- 잠깐! 속임수다! 속임수야!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시루이요의 손을 봐!

- 자, 보시오.

- 틀림없이 시루이요는 우릴 속였다!

- 잘못 보셨을 겁니다.

- 아니야, 난 분명히 봤어!

- 천만에 말씀이죠. 내가 여러분을 속이다니 그건 무슨 착오일 겁니다.

- 이 두 눈이 똑똑히 당신이 슬쩍 바꿔치는 걸 봤는데 그래도 아니라고 부인할 셈이오?

- 아하하하, 잘못 보셨을 겁니다.

- 그럴 린 없어! 천하를 다 속이는 재간일지라도 내 눈은 못 속일 거야! 속였어!

- 난 속이지 않았소.

- 뭣이 어쨌다구?!

- 난 속이질 않았소.

- 으잇!

(식탁 뒤엎는 소리)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더러운 자식.

- 뭐라고? 나더러 더러운 자식이라구?

- 그래! 더러운 자식이라구 했다! 어쩔 테냐! 날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테냔 말야!

- 당신. 어서 돌아가 주시죠. 그리고 우리집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걸 천번만번 하나님께 감사하는 게 좋을 거요.

- 어디 두고 보자. 네놈이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되나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되나!

(문 열고 나가는 소리)

- 아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모두)

- 시루이요 씨. 참으십쇼. 저 사람은 아직 어린애 같은 데가 있어서.

- 자자, 그만 진정하시고 계속해서 우린 놉시다.

- 아무렴. 계속 해야지. 이거 미안합니다. 여러분을 오십사 해놓고 이런 꼴을 보여서.

- 아하하하, 원 별 말씀을. 자, 계속 합시다. 애송이들도 돌아갔으니까.

(음악)

애송이 장교와 다투고 난 시루이요는 틀림없이 그의 권총 솜씨를 발휘할 것이라고 우리들은 수군거렸다.

그러나 시루이요는 우리들의 예상을 뒤엎고 곧 애송이 장교의 손을 잡고 화해하고 말았다.

시루이요의 놀라운 권총 솜씨를 한번 봤으면 하고 기대했던 우리들을 적잖게 실망시켰다. 심지어는 시루이요를 멸시하는 사람까지도 있었다. 나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루이요는 한 장의 편지를 받아들자, 이상하게 눈동자가 빛났고 다 읽기가 지루한 듯 시루이요는 이 고장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으면서 떠나기 전에 꼭 할 말이 있으니 조용히 둘이서만 만나자고 했다. 시루이요와 나는 무릎을 맞대고 마주앉았다.

- 내가 떠나기 전에 만나자고 청한 건 꼭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어서였습니다. 알다시피 나란 위인은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 성미죠. 그러나 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그릇된 인상을 남기고 싶지가 않습니다. 아마 날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날 밤, 트럼프 판에서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그 애송이 장교를 그냥 놔뒀다는 것이.

- 결투를 사양할 내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한텐 이런 과거가 있었죠.

(음악)

- 6년 전의 일입니다. 난 어떤 사내놈한테 보기 좋게 귀싸대기를 얻어맞았답니다.

- 그런데두 결투를 하지 않은 채 물러났나요?

- 난 그 사람과 결투를 했었죠.

(구두 발자국 소리)

- 이것이 그 결투의 진용(?)입니다.

- 아니, 그건 군대모가 아닙니까?

- 맞습니다. 나도 기병대 출신이죠. 내 성격을 알다시피 남에게 지기를 싫어합니다. 내가 군대생활을 할 무렵엔 굉장히 난폭스런 사람들이 많았죠. 그와 난 그 중에서도 난폭하기로 손꼽히는 편이었습니다. 우리 부대에서 일어나는 결투는 전부가 내 주관 하에 진행이 됐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우리 부대에 핸섬하고 대담한 녀석이 부임해오질 않았겠습니까.

- 놈은 화려했었죠. 돈을 물쓰듯 하고 행운아적인 그 거동. 부대 안에서의 내 명성은 차츰 흔들리기 시작하더군요.

부대 주변의 여인들 마음도 나한테서 떠나갔고 그놈은 보란 듯이 내 앞에서 까불어대고 아마 이런 경우에 사내들이 겪는 내심의 고통은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 갈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폴란드의 지주 집에서 무도회가 열리지 않겠습니까.

그놈이 나와 좋아지내고 있는 여인을 눈독 들이고 있는 걸 눈치 챘었죠. 그래서 난 그놈의 귀에다 대고 암시를 했습니다.

그러는 찰나, 그놈은 나의 귀싸대기를 철썩 후려치질 않겠어요. 눈에서 번개 같은 불꽃이 튀는 것을 의식했었죠.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 치고받고 무도회는 아수라장이 됐겠군요.

- 서로 결투를 약속하고 우린 무도회를 벗어났습니다.

- 결투를요?

- 그렇죠. 그 무렵엔 결투가 사나이다운 유희였으니까.

-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 내가 먼저 쏴야 할 차례였습니다만 마음의 동요가 심해 나는 상대방에게 먼저 기회를 양보했습니다.

- 아니, 그런 위험한 짓을.

- 한걸음 물러설 수 있는 여유란 사내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으니까요.

- 그리고선요?

- 놈은 나를 겨누었죠. 난 그놈의 총구를 의식하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그러자 한방의 총소리가 적막한 들판을 흔들어 놓더군요.

- 오, 총알이 빗나갔었군요.

- 흐흐흐, 이렇게 내 군모에 구멍을 뚫어놓고.

- 네.

- 그 다음은 내 차례였죠. 그놈의 목숨은 내 손아귀에 잡혀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 그랬을 테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 사람은 황천행이 되는 거니까요.

- 그런데 놈은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는 대담성을 보였습니다.

- 어떻게요?

- 그놈 태연한 기색으로 군모에 앵두를 가볍게 담아들고 우물우물 먹으면서 앵두씨를 뱉어내질 않겠습니까.

- 대담하긴 꽤나 대담한 사람이군요.

- 그렇죠. 죽음을 앞에다 놓고 앵두를 우물우물 먹어댈 수가 있는 배짱. 배짱 치고는 대단한 배짱이었죠.

난 그 순간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문뜩 깨달았습니다. 놈은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데 구태여 저놈의 목숨을 조져본 들 무슨 신통한 일이 있겠는가 이런 생각이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난 권총 들었던 손을 내리면서 이렇게 말했죠.

(과거 회상)

- 넌 지금 죽을 때가 아닌가 보다. 어서 돌아가 아침식사를 해라. 구태여 네놈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다.

- 아니, 조금도 방해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어서 사양치 마시고 방아쇠를 당기시지. 흠, 하긴 언제나 총알 하나는 당신 권총 속에 남아있을 테니까. 언제라도 원하는 때와 장소에 난 나갈 용의가 있어. 생각대로 하시지.

- 좋아. 어떻든 오늘은 너를 겨누어 방아쇠를 당기고 싶지 않으니까 다음으로 미루자.

- 그렇다면 언제라도 마음 내키는 대로.

(구두 발자국 소리)

(잔잔한 음악 소리)

- 그 후 나는 군대에서 물러나와 이 고장에 들어앉았죠. 그러나 하루하루가 그놈에 대한 복수심으로 들끓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오늘 모스코바에 있는 내 친구한테서 온 편지. 그놈이 며칠 후에 아리따운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됐다는 겁니다. 난 이제야 그놈에 대한 복수를 결심할 좋은 기회라고 단정 내렸습니다. 결혼을 앞둔 그놈이 옛날에 앵두알을 씹으면서 죽음을 기다리던 것처럼 이번에도 태연하게 죽음을 기다리는가를 보고 싶어진 것입니다. 이만하면 내 심정을 어느 정도 짐작하실 수가 있겠죠.

- 예... 부디 건투를 빕니다.

- 고맙습니다. 그럼.

(구두 발자국 소리)

(음악)

시루이요가 떠나간 지 몇 년이 지나갔다. 난 그동안 그의 소식을 알 길이 없은 채 군복을 벗었다. 그리고 집안 사정에 의해 어느 시골 한적한 곳에서 농사일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온 마을이 떠들썩해졌다. 까닭을 물은 즉, 데 백작 부부가 5년 만에 그의 농장과 별장을 찾아온다는 것이다. 난 문뜩 그들과 만나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그리하여 마을 노파를 통해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게 됐다. 데 백작의 농장은 넓은 광야를 연상시킬 정도로 규모가 컸었고 그들의 별장을 화려하기 이를 때 없었다.

(구두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아이고, 어서 오십쇼.

- 실례하겠습니다. 아, 예까지 올라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 아하하하, 원 별 말씀을. 바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도 이곳에 오면 말벗이 그리워집니다. 근데 마침 선생 같은 분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 어떻든 데 백작님을 이렇게 만나 뵐 수 있게 돼서 영광입니다.

- 오호, 아하하, 원 겸손의 말씀을. 참, 우리집 사람을 소개해야 되겠군요. 이봐요. 마샬.

- 네.

- 마을의 손님이 오셨는데 나와서 인사를 해야지.

- 어머, 그래요? 지금 곧 나가겠어요.

- 자, 앉으시죠.

- 아니요. 좋습니다. 잠깐 벽에 걸린 그림들을 감상하고 싶습니다.

- 아, 낡은 것들이라서.

(문 여닫는 소리)

- 아, 왔구만. 선생. 제 아냅니다.

- 네, 그러세요.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 아, 이렇게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 선생께서는 그림에 대해서 퍽 관심이 많으신 모양이야.

- 네. 아유, 별반 좋지 않은 그림들이라서요.

- 훌륭한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 네?

- 저 아름다운 스위스 풍경화에--

- 네.

- 아깝게도 상처가 나있군요.

- 아, 네. 어느 친구의 권총솜씨랍니다.

- 네? 아니, 그럼 탄환이 뚫고 지나간 자국입니까?

- 그렇죠.

- 오우, 놀라운 권총 솜씬데요.

- 뛰어난 권총 솜씨죠. 선생의 솜씨는 어느 정도입니까?

- 저요? 아하하, 서른 걸음쯤 떨어져서 트럼프를 맞히는 정도랄까요?

- 어머,

- 아.

- 그럼 당신은 어때요?

- 아하하, 글쎄. 어떨지. 옛날은 나도 좀 자신이 있는 편이었는데.

- 아하하하. 권총이란 습관처럼 손끝에서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가 보더군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얘긴데요.

- 네.

- 귀신같게 권총을 쏘아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 사람은 식사만 끝나면 쏘아대는 거예요.

- 그 사람의 명중률은 어느 정도였는데요?

- 아마, 한마디로 표현해서 벽에 붙어있는 파리라도 맞히는 정도랄까요?

- 어허허허.

- 예? 어머나, 설마 그렇게까지야.

- 아닙니다. 이건 거짓 한 푼어치 끼지 않은 정말입니다. 그 사람은 파리를 보면 권총을 가져오라고 소리칩니다. 그래, 권총을 갖다 주는 순간 방아쇠를 당기죠.

- 그래도 파리를 백발백중 맞힌다 이거겠군요.

- 아하하, 그렇습니다. 파리란 놈이 벽으로 파묻혀버립니다.

- 아이쿠, 하하하! 그거 참 놀라운 솜씨군요.

- 그래, 그 사람의 이름은 뭐라고 불렀습니까?

- 네, 시루이요라고 불렀습니다.

- 네? 시루이요...

- 백작께서도 아시는 사람입니까?

- 아... 알아도 아주 잘 아는 사이였죠.

- 네... 나와 시루이요는 같은 연대에서 생활을 했으니까요.

- 그러시다면 시루이요의 귀싸대기를 누가 갈긴 얘기도 아시겠군요.

- 선생께서도 그 얘기를 알고 계셨군요. 바로 내가 시루이요의 귀싸대기를 갈긴 장본인입니다.

- 아... 그랬었군요.

- 아, 여보. 또 그 얘기는 왜 끄집어내세요?

- 아하, 이렇게 시루이요를 아는 선생을 만났으니 지나간 얘기나 나눠보는 거지 뭐. 그리고 5년 전 우리들이 결혼해서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왔을 때의 일이었어요. 어느 날.

(음악)

(구두 발자국 소리)

- 서방님, 웬 낯선 손님이 아까부터 이름도 안 밝히고 서방님을 만나뵙겠다고 기다리고 있어요.

- 어, 그래? 누굴까.

- 어떡할까요? 그냥 돌려보내야죠?

- 아니, 예까지 날 찾아온 손님에게 그냥이야 돌아가랄 수가 있나. 응접실로 안내해요.

- 네.

(구두 발자국 소리)

- 저, 손님. 이리 오세요.

(구두 발자국 소리)

- 여깁니다. 들어가세요.

(문 여닫는 소리 및 구두 발자국 소리)

- 어때, 백작. 날 기억하겠소?

- 아니, 시루이요.

- 그렇소. 나는 시루이요요. 이번에는 내가 쏠 차롄데 괜찮을까?

- 좋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부탁이 있다.

- 무슨 부탁인지 얘기해봐.

- 우리집 사람이 돌아오기 전에 방아쇠를 당겨다오.

- 네 부인이 돌아오기 전에?

- 난, 난 이렇게 죽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다. 제발 부탁이다!

- 좋아, 그게 소원이라면.

- 자, 어서 쏴라.

- 그러고 보니까 이제 네놈이 죽음 앞에서 앵두알을 씹을 만큼 자신이 없는가 보구나.

- 이봐, 시루이요. 그렇게 날 놀리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줘.

(구두 발자국 소리)

- 아니, 아니! 이게 웬일이에요!

- 마, 마샬.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 부인. 지금 우린 농담으로 이렇게 권총 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과히 놀라지는 마십쇼.

-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이렇게 권총을 겨누고... 아유, 무서워.

- 이봐, 데 백작. 그만두지. 이제 우리 장난은 그만 끝이 난 걸세.

- 그게 정말인가?

- 아암, 정말이구 말고. 난 무기를 안 가진 사람한테 이 마지막 한 발을 사양하겠어. 그 대신---

(총성 소리 )

- 아--악!

- 부인. 놀라지는 마시죠. 내 마지막 한 발은 저렇게, 저렇게 그림폭을 꿰뚫고 빗나갔으니까.

- 시루이요!

- 아.

- 잘 있게. 데 백작. 그리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부인.

(구두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음악)

- 이렇게 시루이요는 어디론가 사라져 갔습니다.

- 네...

- 그는 정말 사나이다운 데가 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한 발을 저렇게 영원히 기념할 수 있게 내 머릿속에다

남겨놓은 사나이기도 했었답니다.

(음악)

출연. 사나이 오정한, 젋은 장교 양진웅, 데 백작 조명남, 그뤼부인 김수희, 하인 장건일. 나 이완호, 음악 오순정, 효과 심재훈, 이형종, 김벌래 기술 손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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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진약품이 보내드리는 명작극장 세계명작 주옥편 시리즈 열세 번째로 푸쉬킨 원작, 하지동 각색, 사나이 이병주 연출로 막을 내립니다.

(입력일 : 201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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