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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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명작극장
세계문학주옥편시리즈 - (3)약혼녀 (안톤 체홉 작,구석봉 편극)
세계문학주옥편시리즈
(3)약혼녀 (안톤 체홉 작,구석봉 편극)
1967.07.09 방송
‘명작극장’은 목적극 개척에 의욕을 보였던 동아방송이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극화해서 멜로드라마가 판을 치던 라디오드라마의 풍토를 쇄신해보자는 의도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일요일밤 10시 15분에 방송되는 45분짜리로 국내외의 우수작품들이 소개되었으며, 63년 5월 5일에서 70년 10월 4일까지 모두 340편의 작품이 방송되었다.
(음악)

세계 명작을 방송극으로 엮어보는 세계문학 조편 시리즈. 그 세번째 시간으로 18세기 러시아가 낳은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안톤 체호의 작 약혼녀를 구성복 편극, 이희복 연출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음악)

(풀벌레소리)

보름달이 정원 가득히 빛나고 있네요. 왜 그럴까요? 나는 밤마다 이렇게 정원 뜨락을 산책하는 버릇이 있답니다.

땅 위에는 내 검은 그림자가 버젓이 누워있는데, 어디선가 멀리서 아주 멀리 떨어진 교외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거 같네요. 지금은 밤 10시 지난 시간이에요. 5월이란 느낌이, 그래요. 정다운 5월의 밤바람.

아니, 아니. 5월의 밤 향기를 가슴 깊숙히 들어 마시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요. 연약하고 죄 많은 사람들은 맛 볼수 없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만하고 거룩한 봄의 생활이 수목이 우거진 저 하늘 밑으로 흩어져가겠다는 생각을 제가 왜 그럴까요? 나는 자꾸 울고 싶은 생각이 드는거에요.

- 라자, 흠흠.(기침소리) 라자.

밤마다 내가 이 고궁같은 정원을 산책하고 있노라면 저 모스크바에서 온 손님은 잔 기침을 하면서 나에게 다가오곤 해요. 샤샤라고 하는 청년 미술가.

- 라자! 어디있는거요.

- 우리 할머니 하고는 먼 촌 일가뻘이 된다는 모스크바학생. 잔기침을 하는 사내. 저 분은 몸이 쇠약했기 때문에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할머니한테 와서 요양을 한답니다.

- 오, 라자. 흠흠흠.(기침소리)

- 밤 공기가 찬데, 뭣하러 나오시는 거에요?

- 정원에 있었으면서 대답하지 않았군요.

- 매일 밤 이맘때 쯤이면 늘 정원에 나와있다는 걸 아시면서.

- 그래도 난 라자가 나를 향해서 큰소리로 대답해주기를 바랬습니다.

- 어머? 선생님은 정말 이상한 분이네요.

- 앉읍시다. 라자.

- 네. 선생님도 이 벤치에 앉으세요.

- 감사합니다. 매년 여름마다 오는 집이지만 이곳은 천지가 꽃이군요.

- 저도 무척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제 집 자랑같아서 안됐지만요, 선생님. 이 좋은 곳에서 가을까지 머물러 있는게 선생님의 건강을 위해서 좋지 않을까요?

- 아마, 그렇게 될거 같습니다. 전 사실 이 집에서 9월까지 머물러 있으려고 왔으니까요.

- 후훗, 전 지금 여기 앉아서 이쪽 아래층 유리 너머에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 오, 그러고 보니 지금도 어머닌 창가 가까운 곳에 서 계시는군요.

- 호호호. 재밌죠 선생님? 여기서 바라보니까 어머니가 한결 젊어보이지 뭐에요. 우리 어머니한테는 물론 약점이지만, 역시 훌륭한 분이세요.

- 그럼요, 좋은 분이고 말고요.

- 호호호. 고마워요. 샤샤.

- 라자의 어머니는 선량하고 인자한 분이죠.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전 오늘 아침 일찌기 당신네 부엌엘 들어가봤죠.

- 거긴 뭣하러 가셨나요?

- 마침, 머슴 네 사람이 침대도 없이 그냥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더군요.

- 저런.

- 침대 대신에 깔린 누더기 며, 빈대랑 진딧물이랑 이건 20년 전하곤 달라진게 없더군요.

- 가만히 계세요. 선생님은 작년 여름에 오셨을때도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신거 같은데요?

- 그렇죠. 분명히 작년에도 머슴들은 침대 하나 없이 부엌 마룻바닥에서 자고 있었으니까요.

- 헌데, 선생님은 저한테 지금 뭘 말씀하려고 이러시는거에요?

- 전, 이집에서 하는 모든 일이 어쩐지 이상하게만 여겨진답니다. 도무지 뭐가 뭔지 영문을 모르겠단 말이에요.

- 정작 뭐가 뭔지 영문 모를사람은 선생님이 아니라, 저 같은데요?

- 아닙니다. 라자는 알고 있을 겁니다. 이집 사람들 모두가 일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아시죠?

- 몰라요. 저는.

- 거짓말 마시오. 어머니는 어느 공작부인처럼 하루종일 건들건들 소풍만 다니시고, 할머니 역시 하시는 일이 없으시고,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당신의 약혼자 안드레이라는 이는 도무지 일이라곤 해본 사람같이 않고요.

- 아, 선생님. 그것만 해두세요.

- 내 말이 틀립니까, 라자?

- 오늘 밤. 쓸때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시는거 같네요.

- 쓸때없는 말이라니. 라자, 그렇지 않아요. 당신의 약혼자는 잘못 골랐습니다.

- 선생님은 방금 내 약혼자 안드레이에 대해서 말씀하셨지만, 그 분하고는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잖아요.

- 내 약혼자 안드레이라고요?

- 네. 안드레이하고..

- 당신의 약혼자 같은건, 될대로 되라지.

- 아니. 뭐라고요?

- 난.. 난 당신의 젊음이 가엾어서 한 소리였소. 흠흠 (기침소리)

(발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저 이가 오늘 밤은 왜 저러실까.

(음악)

이튿날 내가 눈을 뜬 건 아마 새벽 2시 경이었을거에요. 5월이 되면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새벽녘에 일어나 앉아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아요. 어떻게 해서 내가 이 고장 제사장의 아들 안드레이하고 약혼을 하게 됐을까. 그런걸 생각해 보는 거죠. 어떻게 해서 안드레이는 나를 사랑하게 되고, 또 청혼을 해온 걸까? 어째서 나는 그의 청혼을 승낙했고, 점점 그 친절하고 총명한 남자를 소중히 여기게 됐을까. 어째서 결혼식까지 이제 겨우 달포밖에 남지않은 오늘. 어째서 나는 불안을 느껴야 하고 이렇게 부질없는 생각을 끈기있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일까.

(새소리)

낡은 창문으로 정원이 내려다보이네요. 아, 벌써 아침인가봐요. 정원 저쪽에 추위때문에 맥을 못추고 시든 듯한 라일락 꽃송이들이 보여요. 뽀얗게 짙은 안개가 꽃 속으로 슬며시 스며들어 그 꽃을 아주 덮어버릴 듯이 서두르고 있네요.

어째서 내 마음은 이렇게 괴롭기만 한지 모르겠어요. 결혼 전에는 모든 처녀들이 이런 기분에 사로잡히는 건가요?

정말 모를 일 입니다. 혹시 샤샤의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해보죠. 하지만 샤샤는 몇 해전 부터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해오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샤샤가 이렇게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지 정말 모를일이네요.

난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싶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어머니. 일찍 일어나셨네요.

- 잘 잤니, 라자.

- 아니, 왜 우셨어요. 어머니.

- 아, 어제부터 난 새로 소설을 읽고 있었단다.

- 어머니도 참. 그까짓 소설을 읽으시고 또 우신게로군요.

- 그래, 할아버지하고 딸 얘기를 쓴 중편소설이었지. 할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으로는 그 할아버지 딸을 사랑하게 됐다는 얘기야. 난 마지막까지 읽지는 않았지만 어떤 대목에 가선 도무지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더구나. 헌데, 네 얼굴은 왜 그러니? 눈물자국은 없다만 아무래도 잠을 설친 얼굴 같구나. 무슨일이 있었니?

- 전 요새 마음이 우울해서 못견디겠어요.

- 안드레이 때문이냐?

- 아니에요.

- 그럼.

- 어머니, 어째서 전 잠을 통 잘 수 없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렇죠?

- 글쎄, 나도 모르겠구나. 난 잠이 안오면 눈을 꼭 감고 자꾸 걸어다니든가, 혼자말로 중얼거린다든가 하면서 자기를 안나파레리나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옛날 역사에 나오는 어떤 얘기를 눈 앞에 그려보기도 한단다.

-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잠이 오나요? 뭐.

- 잠이 올 턱이 있니. 그저 그렇게 하다보면 동녁이 훤하게 밝아오고 날이 새기가 바쁘게 또 어디든지 무작정 거리를 몇 바퀴를 돌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새로운 밤이, 잠 못 이루는 그 새로운 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거지.

- 라자, 라자, 뭐하고 있냐. 라자. 라자, 안드레이가 왔다. 안드레이가.

(문 여닫는 소리)

- 오, 라자. 너희들 모녀는 또 아침부터 그 우거지 상이로구나. 에이. 쯧쯧쯧쯧. 라자! 안드레이가 밖에서 기다린다고 이 할미가 떠들어댄거 같은데, 넌 한마디도 듣지 못한게로구나.

- 곧 나간다고 그러세요. 할머니.

- 으이구, 라자. 나올때는 그 우거지 상이나 거둬두고 나와야 해요.

(발소리)

- 할머니.

- 오, 샤샤. 흠. 네 방에 있지 않고 왜 또 나왔니.

- 할머니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 그것봐라. 바깥 바람 쐬이면 네 몸에 해롭대도. 에이구.

- 제 몸 같은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 전 이 거리에서 살 수 없을거 같아요.

- 뭐야?

- 수도도 없고, 배수시설도 없고, 식사할 기분도 나지 않고, 게다가 할머니네 부엌을 들여다보면 그 더럽고 지저분한 분위기는..

- 덜 된 녀석 같으니라고. 좀 더 참고 견뎌봐요. 7월에는 라자가 결혼을 하잖아..

- 그 때까지 있고 싶지 않다는 말씀이에요.

- 무슨 소리냐? 샤샤. 넌 9월까지 있겠다고 내게 분명히 말하지 않았니?

- 왜들 그러세요? 할머니.

- 오, 넌 참견말고, 어서 안드레이한테 가봐라.

- 만나지 않겠다고 전해요.

- 만나지 않겠다고?

- 오늘은 그 이를 만나고 싶지 않아요. 샤샤, 떠나지 마세요. 샤샤.

- 흠.

- 안드레이. 라자가 널 만나지 않겠다는구나. 안드레이.

(발소리)

(음악)

- 제 방으로 가서 얘기해요. 샤샤.

-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대로도 얼마든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9월까지 머물러 있겠다고 해놓고선 왜 갑자기 떠나시려는 거에요.

- 라자.

- 말씀하세요. 어서 말해주세요.

- 당신이 내 말만 들어줄 수 있다면 오죽 좋겠소. 나와같이 모스크바나 베제룩브르크에가서 대학에 다닐 수가 있다면.

- 샤샤, 전 곧 결혼하게 될 몸이잖아요. 모스크바로 갈 수는 없어요.

- 결혼이라니, 그 제사장의 아들하고 말이지.

- 네.

- 결혼 같은걸 해서 뭘하란 말이오.

- 흑흑. (흐느끼는 소리)

- 사랑하는 라자. 당신은 떠나야 합니다.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 이 몰락한 풍경. 저속한 무리들 속에서 도망쳐야 해요. 이렇게 숨막힐 듯한 죄악으로 물들어버린 생활을 당신이 얼마나 싫어하고 있는지 어서 저 사람들에게 보여주시오.

- 흑흑. (흐느끼는 소리)

- 잘 생각해보십시오. 당신들이 아무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이 노가리 생활이 얼마나 불결하고 얼마나 비도덕적인 가를 깨달아야 하는거요. 말하자면 당신이나, 당신의 어머니, 할머니가 아무일도 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은 정녕 누군가 다른사람이 당신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남이 벌어 온 것을 먹고 사는 셈이죠.

- 네. 그건 사실이에요. 그런 생활이 깨끗하지 못하고 불결하다는 것도 사실이고. 흑흑. (흐느끼는 소리)

- 라자. 당신은 떠나셔야 합니다.

- 흑흑. (흐느끼는 소리)

(발소리)

(음악)

(바람소리 및 창 흔들리는 소리)

(둔탁한 소리)

(발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라자. 방금 소리난게 무슨 소리지? 아니, 이렇게 우중충한 밤에 왜 이러고 앉아있니. 넌. 방금 밖에서 난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 어머니. 흑흑.

- 오, 라자.

- 어머니. 어머니. 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세요? 어머니, 부탁이에요. 제발 절 떠나게 해주세요. 네? 부탁이에요.

- 어디로 말이냐.

- 그저, 그저 이 거리를 떠나게만 해주세요. 제발. 흑흑.

- 이 거리를 떠나서 어디로 가게?

- 절대로 결혼식을 해서는 안되겠어요. 어머니.

- 뭣이라고? 안돼! 안된다 그건.

- 어머니. 이해해주세요. 어머니. 전 그분을 벌써 오래전 부터 사랑하고 있지 않아요.

- 마음을 진정해라. 라자. 네가 지금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 하지만 곧 좋아질 날이 오겠지.

- 아니에요. 아니에요. 전.

- 너만한 나이에는 흔히 있는 일이지. 그래, 옛날의 나도 그랬으니까.

- 흑흑흑.

- 라자. 혹시 안드레이라고 말다툼이라도 한 모양이구나. 그렇다고 이 거리를 떠나서야 되겠니? 사랑싸움은 쉬이 나는 법이니까. 진정해라 라자.

- 저리 비켜나주세요. 어머니. 아무말씀 마시고 어머니 방으로 가줘요. 흑흑.

- 그러마, 넌 얼마전만 해도 어린애였는데, 벌써 어른이 되서 약혼을 하다니. 하긴 세상일이란 쉬지않고 변해가는 거니까. 너도 이제 머지않아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서 나처럼 다루기 힘든 딸을 거느리게 되겠구나. 그때가 되면 이 어미 속을 짐작하겠지.

- 어머니는 정말 불행한 분이세요. 왜 그렇게 따분한 얘기만 하세요. 네? 왜 그러시죠? 옛날엔 어머니도 좋은 분이셨는데, 왜 그래요? 어머니.

- 글쎄, 나도 모를일이구나.

- 어머니는 우리가 얼마나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는 줄 아세요? 전, 전 눈을 뜬거에요. 이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제 약혼자 안드레이가 어떤 사람인 줄 아세요?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제사장의 아들이지만, 아무것도 몰라요. 바보에요. 그 사람.

- 라자. 너랑 너의 할머니는 모두 나를 괴롭히기만 하는구나.

- 어머니.

- 나도 안단다. 라자. 흑흑. 보람있게 살고 싶은건 나도 마찬가지다. 난 살고 싶은거야. 하지만 여자들끼리 어쩔 도리가 없었던거지. 일년 내내 기다려본들 편지 한장 날아들지 않는 이 집에서 생각해보렴, 여자들만 수두룩하게 살고 있는 이 크나큰 집에서 무슨 변화를 어떻게 바라겠다는 거냐. 내 나이가 이렇게 드니 내가 아직 살겠다고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어쩌자고 넌 날 슬프게 만드냔 말이다. 어쩌자고. 흑흑.

- 어머니.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 흑흑, 내버려 둬. 흑흑. 더이상 날 괴롭히지 말고, 이 거리를 벗어나거라. 라자야.

- 어.. 어머니.

- 흑흑.

- 허락해주셔서 고마워요.

(바람소리)

(기침소리)

난 저 잔 기침소리가 아무래도 네 젊음을 이 세상 저쪽으로 몰고갈꺼만 같구나. 이 세상 저 쪽으로.

(천둥소리)

- 아하하. 샤샤, 샤샤. 기뻐해주세요. 어머니가 기어코 베제르부르크로 떠나는 걸 허락해주셨지 뭐에요.

- 콜록콜록. (기침소리)

- 하하하. 샤샤. 내일이라도 곧 우리 이 거리를 떠나도록 하세요. 네? 샤샤.

- 콜록콜록. (기침소리)

(음악)

(피아노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및 문에 달린 방울 소리)

- 안녕하시오. 할머니. 에, 날씨 참 상쾌하다.

- 오, 무슨 일로 오셨는지.

- 아, 예, 하하. 할머니네 집엔 1년만에 한 통 날아드는 전보라서 이렇게 한달음으로 달려왔습니다.

- 전보요?

- 아, 예.

- 아이고, 얘. 리나야. 리나!

- 우리 라자한테 온 거에요?

- 예. 근데, 따님 지금 댁에 계십니까? 모스크바에선 온 청년하고 이 거리를 떠났다는 소문이 들리던데요.

- 지난 겨울을 베제르부르크에서 지내고 오더니 저렇게 늘 2층방에 눌어붙어서 피아노만 치고 있다오.

- 가엾은 라자. 그때 제사장 아들하고 결혼했더라면 좋았을텐데.

(피아노 소리)

- 누가 보낸 전보인가요?

- 예, 어젯밤에 샤샤가 폐결핵으로 죽었다는 전보인데요?

- 뭐라고? 샤샤가.

- 샤샤가. 오오! 샤샤. 흑흑.

(피아노 소리가 끊김)

- 흑흑.

- 그리운 샤샤.

- 안녕히 계십시오. 마님.

(문 여닫는 소리 및 방울소리)

- 부디, 안녕히. 안녕히 가세요. 샤샤.

(음악)

샤샤를 영원한 곳으로 떠나보내고 나는 다시 짐을 꾸리기 시작했어요. 내 눈앞에는 새롭고, 넓고, 자유로운 생활이 펼쳐지는 것 같았어요. 이제는 가족들하고도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나는 이 거리를 벗어나고 있었죠.

(기차 기적소리)

(음악)

나온 사람들 라자에 김수희, 샤샤 이완호, 리나에 장미자, 할머니 이정선, 배달부 조명남.

그리고 음악에 오순정, 효과에 심재훈, 이형종, 김주하. 기술에 손 철. 이상 여러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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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진약품이 보내드리는 명작극장. 세계문학 조편 시리즈. 그 세번째 시간으로 18세기 러시아가 낳은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안톤 체호의 작 약혼녀를 구성복 편극, 이희복 연출로 보내드렸습니다.

(입력일 : 200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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