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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신춘문예 당선작을 방송극으로 엮어보는 신춘문예 당선작 시리즈.
그 열두 번째 마지막 시간으로 대한일보 소설 부문 당선 백경영 작, 뚝 주변을
오학영 극본, 이희복 연출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음악)
(비 오는 소리)
- 아이, 젠장. 뭐야. 씨이. 다 틀렸잖아. 오늘밤 뻥쇠하고 참외서리 하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씨이.
(문 여닫는 소리)
- 인석아, 일어나.
- 네?
- 넌 무엇 때문에 방구석에만 엎드려 있는 게야?
- 그럼 어떡해요? 비가 쏟아지는 걸.
- 아휴, 빌어먹을.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원. 근데 이년은 뭘 하느라고 여태 안 오는 게야?
- 엄마 말이에요? 아버지.
- 그래!
- 뻥쇠네 할아버지 제사에 갔어요.
- 그건 나도 알아요, 인석아. 비가 오는데 왜 아직도 안 오느냔 말야.
- 그건 나도 몰라요.
- 인석아!! 주둥아리 닥치고 있어!
- 아유, 괜히.
- 쳇, 빌어먹을. 농사 다 망쳤군. 다 망쳤어!
(천둥번개 치는 소리 및 비 오는 소리)
- 뚝이 무너졌다!! 뚝이 무너졌다!!
- 명근아, 지금 무슨 소리가 났지?
- 네.
- 뭐라고 했지?
- 뚝이 무너졌다!! 뚝이 무너졌다!!
- 뭐야?!! 뚝이 무너졌어??
(문 여닫는 소리)
- 뚝이!! 뚝이 무너졌어!!
얘, 명근아!!
- 네?
- 빨리 나와.
- 왜 그래요? 아버지.
- 인석아, 냉큼 나오지 못해?! 산으로 올라가자.
- 엄마는 어떡해요?
- 뒈지든 말든 내버려둬! 어서 가자!!
- 아버지!! 엄마 불러서 같이 가!
- 인석아, 인석아, 냉큼 못 쫓아오겠니? 너두 물속에 내버려두고 간다?!
- 아버지!
- 가자, 가자!!
(발자국 소리)
- 얘!!
- 엄마!!
- 야, 명근아!!
- 엄마, 엄마!!
- 인석아!!
- 엄마!!
- 야!!
(천둥번개 치는 소리)
- 엄마!!
(천둥번개 치는 소리)
(음악)
- 으흐흑... 으흐흑... 엄마... 엄마! 엄마 어디 갔어...
- 명근아!!
- 엄마...!! 엄마, 정말 죽은 거야?
- 뭐하니? 명근아.
- 아무것도 안 해.
- 너 울고 있구나. 아... 우리 누나도 없어졌어. 죽었나 봐.
- 너... 슬프지도 않니?
- 아니, 난 아무렇지도 않아.
- 나쁜 새끼,
- 난 말야. 누나하고 매일 싸움만 했거든. 그게 말야. 순 고자질쟁이야.
고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엄마한테 얻어 터졌는지 알아?
- 임마, 그래도 니네 누나 아냐!
- 그래.
- 근데도 슬프지 않어?
- 나, 난 눈물이 안 나. 헤에.
- 정말 우리 엄만 강물에 떠내려갔을까.
- 니 엄마는 마음도 참 좋았는데.
- 명근아. 아, 인석들 앉아만 있지 말고 여기 와서 일을 거들어! 천막기둥 가져오란 말야!
(망치 두드리는 소리)
- 흥, 그까짓 천막, 엄마가 없는데 천막이 제일인가? 어른들은 사람 목숨보다 집이 더 소중한가봐.
-임마, 까불지 마. 사람 목숨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생겨나지 않는단 말야.
- 자식, 알긴 알구서.
- 빵쇠 어머니!!
- 응, 두칠이구만.
- 하아하아하아...
- 아, 왜 그래?
- 저...
- 아, 무슨 일이야?
- 나...왔어요!
- 뭐가 나와?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리야?
- 뻥쇠 누나... 시체가 나왔단 말씀이에요.
- 으이?!
- 뭐?!!
- 아... 으이...
- 순이가... 아이구... 아이구...
- 어디야? 어디서 나왔어? 응?
- 저 뚝 밑이요. 미르나무 뿌리에 걸려 있어요.
- 오.
- 아이구...! 순이가 죽었구나! 으이익... 내 딸년이 죽었어!!
- 저... 이럴 게 아니야! 가봅시다!!
- 아이구...!! 순이야!!
(흐느껴 우는 소리)
- 엄마... 엄마, 울지 마.
- 아, 어서 가보자구요!! 자자자, 이이, 일어서요. 자요.
- 가요. 가서 내 딸 얼굴이나 한 번 더 봐요. 흐윽... 으이구...!
- 아이구... 빌어먹을!!
(음악)
(매미 우는 소리)
- 흑... 개새끼. 개새끼.
- 명근아, 찾았니?!
- 아... 니.
(발자국 소리)
- 없니?
- 그래. 벌씨 일주일째구나.
- 흑... 개새끼.
- 뭐?!
- 너보고 욕한 거 아니야.
- 그럼?
- 하늘 보고 욕했어.
- 왜?
- 새끼, 왜 우리 마을에 장마 들게 했냔 말야. 그 땜에 우리 엄마 죽었잖어.
- 이번 장만 정말 너무했어.
- 뻥쇠야. 또 찾아보자.
- 없는 걸 자꾸 찾으면 뭐해. 호수에 떠내려갔나 봐.
- 새끼... 난 엄마가 나올 때까지 찾을 테야. 이 강둑을 수십 번, 수백 번 뒤져서
엄마 시체를 찾고 말 테야!
- 짜식! 고집도 순 쇠고집이야.
- 얌마! 너 갈래면 가. 넌 너희 누나 시체 찾아서 장사 지내줬다 그러지만
난 엄마가 흙 속에 파묻혀 있다는 걸 생각하면 못 견디겠단 말야! 임마!
난 엄마를 꼭 찾아내고 말 테야!
- 얌마, 갈 테면 가란 말야!!
- 미안하다.
- 짜식.
- 넌... 너희 엄마가 있다고 으스대지만 난...
- 미안해, 명근아.
- 관둬, 임마. 우리 엄마 좋았단 말야. 아버지보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보다 엄만 좋았는데...
어딜 갔어! 씨이... 어딜 갔냔 말야!!! 이...으윽... 엄마!! 엄마!! 흐으으으윽...!
(음악)
- 아... 하하하. 아...
- 뻥쇠 엄마. 잔...
(잔에 술 따르는 소리)
- 아유... 취해요. 너무 마셨어, 정말.
- 자, 어서 사양 말고 들어요.
- 난 집도 여편네도 흙탕물에 떠내려 보내고 뻥쇠 엄마는 귀한 딸을 진흙 속에 묻어놓고
이 구호천막 속에 같이 살게 됐으니 통사정이나 합니다.
- 아휴... 가슴이 미어지는 생각을 하면 한시도 살고 싶지가 않아요. 아, 하지만... 모진 목숨이...
- 그럼, 그럼그럼. 우리네야 뭐 있어서 살았나.
- 아...
- 빈주먹으로 살았지. 그래도 목숨부지하고 살면 또 시름 잊고 살 때가 온다우.
(술 마시는 소리)
- 자, 명근 아버지. 잔 받아요.
- 아하하, 그럼.
(술 따르는 소리)
- 아아아아... 고만고만고만.
- 아하하... 많이 드세요.
- 아하하하하.
- 아...
- 뻥쇠 엄마.
- 아, 예.
- 이제 어떡하면 좋소?
- 뭘요?
- 논이고 밭이고 모조리 개흙바닥이 되고 말았으니.
- 으이그, 난 몰라요. 명근 아버지만 믿어야지.
- 하하하하하하하.
- 하하하하하하.
- 좋아요, 좋아요... 이왕 한 천막 속에서 사는 바에야 아주 마음 탁 터놓고 합심해서 삽시다.
- 하하하...
- 안 그래요? 뻥쇠 엄마?
- 아하하하하.
- 하하하하하.
- 뻥쇠 엄마.
- 아이, 예...?
- 엄마!! 흐윽흐윽... 엄마!! 흐흑... 엄마야!! 으으응...
- 저놈의 자식!
- 으히히힉... 엄마...
- 아이, 참. 깍쟁이 같은 자식 때문에!
- 으이이이익...
- 나가 놀지 못하겠니?
- 으이익...
- 얘, 뻥쇠야!! 뻥쇠야! 아유 참... 요놈의 새끼는 어딜 또 방개 새끼 모냥 쏘다니누?
얘, 뻥쇠야!!
- 예?
- 냉큼 들어오지 못하겠니?
- 엄마, 왜 그래?
- 넌 밖에서 뭘 하니? 동생들 데리고 뚝에 가서 나물이라도 뜯어오지 않구! 쟤 좀 데리고 나가서 놀아.
- 네.
- 참, 자식이 아니라 애물이야. 애물!
(음악)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야. 노래가 나오니?
- 넌 뭐가 못마땅해서 찌푸리고 앉았니?
- 얌마, 기분 나쁘단 말야.
- 뭐가?
- 우리 엄만 틀렸어.
- 왜?
- 아무튼 기분에 안 맞아.
- 얌마, 너 어른 같은 소리 하는구나!
- 마, 너희 아버지도 나쁘단 말야.
- 왜, 왜 나뻐?
- 순 구렁이같이 능글맞게 말야.
- 야, 너희 엄만-.
- 어떻단 말야?
- 순 여우새끼 같은 얌체, 동네 남자 보면 호호하면서 아양만 떨고-.
- 야! 이 새끼야!! 니가 봤니? 니가 봤어?! 아양 떠는 거 봤냔 말야!!
- 봤다!!
- 말해봐!! 언제 봤니? 언제 봤어?!
- 야, 너희 엄마가 영자 오빠하고-. 아이, 순 더러워서 정말-.
- 야!! 너희 아버지는 왜 능글맞게 우리 엄마한테 뻥쇠 엄마, 뻥쇠 엄마하면서 싱글싱글 웃니?
- 너희 엄마가 먼저 분 바르고 손거울 보고 살살 웃었단 말야, 야!!
- 야!! 이 새끼야!! 댐벼!!
- 좋아!! 너 우리 아버지 욕하면 가만 안 나둬!!
- 좋아!! 댐벼!!
- 그래, 덤벼!!
- 야잇!!
- 야!!
- 이게 정말!!
(때리는 소리)
-우이쒸!!
- 우잇!!
- 놔!!
(소 울음 소리)
- 얌마, 쉬었다가 다시 해.
- 좋아, 2차전은 미역 감으면서 다시 해.
- 물싸움 하자?
- 그래.
- 강으로 내려가.
- 그래, 가.
(발자국 소리)
-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소 울음 소리)
-파랄 거예요~
(음악)
- 으윽!!
- 윽!!
- 윽... 이거... 이거 놓으라구요!!
- 이 자식아! 넌 아래 위도 모르는 무식뱅이냐?! 이 자식아! 어른한테 대거리 짓이야!! 응?!
- 이거 왜 이러는 거예요?! 내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
- 너, 잘못이 없어?!
- 아아! 뭐가 잘못이에요?! 제가!!
- 아니, 몰라?!
- 말을 해보세요! 내가 뭘 잘못했냔 말이에요!
- 이 자식아, 너 뻥쇠 엄마 뒤를 왜 쫓아다니느냐? 응? 무슨 냄새 맡은 강아지처럼
뭣 때문에 졸졸 따라다니느냔 말야!
- 으윽... 누가, 누가 따라다녀요?
- 아니라고 잡아떼기냐?! 응? 너 그럼 그저께 윗마을 감자밭에서 뻥쇠 엄마가 감자 캘 때
왜 치렁거리고 서 있었지? 그날 그뿐이냐? 어젯밤엔 왜 우리 천막 주변을 서성거렸느냔 말야?! 응?
- 아... 웬 별걸 다 트집 잡네. 어젯밤엔 뻥쇠하고 명근이가 분수 가리켜 달래서 아저씨 천막에 갔었단 말이에요.
- 누가 널더러 명근이 공부 가르켜 주랬어?! 인석아!!
- 내 참, 댁의 아드님 공부 가르켜줘도 걱정해요?!
- 뭐, 어째?! 응?
- 서울 같은 데선 말씀이에요. 돈 주고 가정교사를 두기도 합니다.
- 인석아,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 아이, 저 이 멱살이나 놓, 놓으세요! 이거...! 아아!
- 다신 우리 천막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 테냐!! 응?!
- 오라고 초청을 해도 안 가요!
- 좋아, 그렇다면 놔주마.
- 괜히 재수 사납게.
- 인석아, 젊은 놈이 괜히 속 차리고 다녀!
(발자국 소리)
- 아! 누가 할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음악)
- 야! 명근아!!
- 네?
- 뭐하는 게냐?
- 숙제하고 있어요.
- 집어치워.
- 네?!
- 내일부터 학교도 그만둬.
- 아부지.
- 빌어먹을. 학교가 다 뭐래. 논밭 다 망치고 무슨 돈으로다 학교를 다녀.
- 아부지, 그치만 지금 학교를 그만두면 어떡해요? 눈뜬장님이 되란 말이에요?!
- 짜식이 웬 말대꾸야?!
- 명근 아버지.
- 나가!!
- 그냥 내버려두세요.
- 아, 걷어치우고 나가지 못하겠니?!
- 숙제해야 한단 말이에요.
- 저 새끼!!
- 아부지...! 이이잉!!
- 아이고, 아이를 때리면 어떡해요?!
- 얘, 얘, 명근아, 아버지가 화가 나셔서 그러신다. 뻥쇠하고 나가 놀다 들어오렴.
- 놔요!! 씨이!!
- 응? 얘가!!
- 저 자식이 얼마를 두들겨 맞아야 정신을 차리나. 원, 참!!
- 얘, 명근아. 아버지가 너무했지. 화내지 말고 놀다 들어와. 저녁 때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응?
- 그만둬요!! 순- . 그만두란 말이에요!!
- 쟤가...
- 뻥쇠 엄마가 만든 음식을 누가 먹는댔어요? 관두란 말이에요!!
- 저 자식이!!
- 명근아, 뛰어라, 뛰어!!
- 그만두란 말이에요!!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
(음악)
- 뜸북뜸북 뜸부기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 야, 명근아.
- 응?
- 하늘에 별이 참 많지?
- 응.
- 야, 너 배고프지 않니?
- 우리 들어가자.
- 싫어.
- 지금 들어가면 괜찮을 거야. 니 아버지도 화가 풀렸을 거야.
- 안 들어간단 말야.
- 너 이다음에, 이다음에까지 안 들어갈래?
- 그래.
- 자식, 고집도 순 쇠고집이다.
- 얌마, 너나 들어가.
- 누가 나만 들어간댔어?
- 너 까짓 거 없어도 난 좋아. 난 풀을 베개 삼고 하늘의 별을 보며 살 테야.
- 하아, 니가 정말 안 들어가면 나도 안 들어간다.
- 정말?
- 그래, 정말이야.
- 짜식, 이히히히히히히...
- 아유, 배고프다.
- 야, 우리 들어가서 몰래 밥만 먹고 다시 나오자. 그러면 되잖어?
- 그래, 그럼 배도 안 고프고 좋겠다.
- 자, 가자!
- 좋아!
(음악)
- 들어가.
- 니가 먼저 들어가.
- 니가 먼저 들어가.
- 암만, 니가 먼저 들어가.
- 음... 그럼 같이 들어가.
- 그래, 좋아.
- 어, 근데 왜 천막 안에 불이 꺼져 있니? 소주가 다 떨어졌나?
- 들어갈까?
- 그래, 똑같이 들어가.
- 응.
- 아...
- 아우... 캄캄해. 아무것도 없나 보다.
- 쉬이...
(웃음소리)
- 뻥쇠 엄마...
- 흐흐흐흐흐...
- 아이고, 호들갑 하곤.
- 어어?
- 어?
- 우리 아버지 하고 너희 엄마가-.
- 으윽! 더럽다! 씨이...
- 나가자!
- 그래, 나가자!!
- 야이, 더럽다!!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
- 이제 어디로 가지?
- 하아... 강뚝으로 가자. 거긴 풀밭도 있고 강물도 있고 하늘도 있어서 제일 좋을 거야.
- 그래! 강뚝이 제일 좋겠다! 가자!!
- 가자!!
- 야아아아!! 강뚝으로 가자!! 우리들 집으로 가자!!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
(음악)
나온 사람들. 아버지에 홍계일. 이 씨에 박정자. 명근이에 이영민. 뻥쇠에 김영옥. 두칠에 박웅.
그리고 안종국, 임희숙. 음악에 오순정. 효과에 심재훈, 김평주, 이형종. 기술에 이회근.
이상 여러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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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진약품이 보내드리는 명작극장. 신춘문예 당선작 시리즈 열두 번째 마지막 시간으로
대한일보 소설 부문 당선 백경영 작, 뚝 주변을 오하경 극본, 이희복 연출로 보내 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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