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신춘문예 당선작을 방송극으로 엮어보는 신춘문예 당선작 시리즈.
오늘은 그 아홉 번째 시간으로 서울신문 희곡 부문 당선 김지현 작, 김지현 극본, 이희복 연출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음악)
(바람 소리 및 천둥 번개 치는 소리)
- 뭔 놈의 바람이란가. 혼령이 들어오시는 날인디.
- 아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 아, 이 소리가 뭔 소리여. 밤도 안 깊었는디.
(바람 소리)
- 아유... 이 양반아. 말씀 좀 해보시오잉? 아니, 그래 내 생각도 안 나소?
2년이 다 가도록 기별 하나 없소. 대체 죽었소? 살았소? 예? 이 무정한 양반아,
아, 어서 좀 말씀 좀 해보시오.
(천둥 번개 치는 소리 및 바람 소리)
- 성출이, 성출이. 다 자네 생각혀서 하는 소리여.
- 글씨라우.
- 이런 놈에 답답한 사람 있나.
- 아, 누구는 몰라서 이럴랍벼.
- 그러니 내 말대로 협력을 하란 말여. 우리 아들 덕칠이가 어때서 그려?
어디 한군데라도 틀리게 박힌 데가 있어? 음, 그라고 내가 아까 한 말 명심해야 할 것이여.
- 뭔 말씀이쇼잉?
- 김가란 놈 말여.
- 그렇지만 우리 애기만은 절대로 그럴 리 없어라우.
- 하, 과부 속은 능구렁이도 모르는 법이여. 본 사람이 한둘 아니란 말씨.
하아, 저 그럼, 자네 알아서 할 것이여. 알갔지? 음.
- 알갔습니다.
(음악)
(문 두드리는 소리)
- 아이고.
- 아가.
- 아버님, 언제?
- 시방 왔다.
- 아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 이게 뭔 소리여?
- 아버님, 인제 지발로 어디 가지 말게라우. 예? 저 소리만 나면 금방 피가 식는 것 같이
가슴이 서늘하니 죽겄어라우.
- 칠순이구만.
- 아버님, 지하고 같이 계시지라우. 빌어라우. 요렇게.
- 음, 아가.
- 예.
- 나, 홍 서방네 집에 빌려온 그물 좀 던지고 오겄다.
- 새벽에 갖다주시지라우.
- 아니, 내일 낮에 흑산도에 다녀온다는디.
- 그럼 후딱 다녀오쇼잉.
- 어, 그랴. 걱정 말고 어서 자거라잉.
(바람 소리)
- 아이, 뭔 놈의 바람이여.
- 아이, 여보시오.
- 아니, 누구여?
- 히히히히히으하하하하하!
- 아니, 칠순이 아니여?
- 나 오늘 시집 갔어잉.
- 잉?
- 속고쟁이 확 벗어 붙이고 시집 갔어잉.
- 아유.
- 인자 바다에 가버린 상궁이 아버지가 나한티 달려온다고 혀도 이 칠순이는 말여.
시집 갔으니께 어쩔 것이여? 인잔 말여, 상방은 안 지킨다고. 오호호호호호호!
- 칠순이, 인자 그만 정신 차리라고. 아, 자꾸 그라면 어쩔 것이여?
- 우리 아주 결판을 내드라고잉?
- 아, 지발 그라지 마소잉. 어찌, 어찌 그런가?
- 히히하하하하, 어저께 꿈에 말여, 웬 억샌 놈의 사내가, 것이 내 속옷을...
- 아니, 아유, 그런 말을...
- 그러더니 그냥 뼉다구가 물러나게도 억세게 품어주고 아, 아이... 또 쓰다듬어도 주고
그라고잉, 그라고잉-.
- 그라고?
- 그라더니 웬 몸뚱이가 마디마디 짜릿짜릿하니 꼭 구름 타고 하늘 구경 가는 것 같이
온 삭신이 낙지발처럼 처지는디, 아이고, 정말 죽겄어라우.
- 으이고, 칠순이. 남의 상방 앞에서 뭔 소리래여.
- 뭣이? 상방? 상방이 다 뭣이여!!
(문 여닫는 소리)
- 아니! 저것이! 저 미친 것이!
- 이놈의 상방이 뭣이여!
(그릇 밀치는 소리)
- 아니, 저 미친 것이! 아유, 혼령 드실 말쌈 말고 이게 뭔 지랄이여?!
- 이런 빙충이 년!
- 아이고, 아이고! 어쩔고! 이년이 상방 앞에서 죄받을 소리만,
어찌 요렇게도 뭉탱이로 씨부려대고 제상을 엎어댄다냐?!
-제상이 다 뭣이여! 이따위 상방이 다 뭣이냔 말여!!
(그릇 엎는 소리)
- 칠순이!!
(음악)
-이이이이이, 미친년이지, 이런! 그래, 동네를 망하게 할 작정이여! 아이, 이 년아!!
- 윽!!
- 이 잡것이 뒈지지 않고 지랄이란가! 아이.
- 빌어라우... 빌어라우... 요로콤 빈당께.
- 일어나, 응? 뱃놈 여편네가 다 그런 것인디. 어찌, 어찌 너만 못 참아서 집안 망신이야! 잉?
그걸 못 참을 것이 무엇이여? 어찌 귀한 상방을 뛰쳐나와선 이 지랄이여? 지랄이, 잉?
(우는 소리)
- 아잉, 어서 상방으로 안 갈 것이냐? 상방 안 지킬 것이여?!!
- 아유, 안 가라우! 안 가라우! 상방엔 안 가! 안 간다니께!
- 아이고, 일어나! 여, 뱃놈 여편네야 감기 앓듯 하는 일, 그래. 상방 못 지킬 것이 무엇이냐?! 이 년아. 가자, 가!
(우는 소리)
- 아이고.
- 아, 어서 가!
- 안 가라우! 안 가라우! 날 살려 달랑께요!
(천둥 번개 치는 소리 및 바람 소리)
- 아니, 저 칠순이가 왜 저러냐잉? 아니, 저 상방에!
(흐느껴 우는 소리)
(음악)
- 아니, 어째 아버님이 안 오시지? 해가 다들 저물었는디.
- 헤헤헤헤헤헤헤, 헤헤헤헤.
- 아니, 덕칠이 아니여? 웬일이여?
- 웬일은, 뭔 놈의 웬일이래? 히히.
- 우리 아버님 못 봤어라우?
- 김방 올 것이여, 곧 배가 올 것인게. 응?
- 그렇지만...
- 봉심이. 잉?
- 예?
- 난 봉심이가 좋아 죽겄네. 어뗘? 나한테 시집 올 생각 없어? 아, 상방에만 있지 말고.
- 아니, 그게 뭔 소리여, 상방 앞에서?
- 하하하, 봉심이. 그러지 말고.
- 아이구, 저리 비키쇼!
- 하하하. 아이구메, 포동포동한 저 놈의 팔살 좀 보쇼. 으이구, 내 간장이 지글지글 볶고,
타고 지랄이지. 봉심이!
- 어머!! 오면 찌를텨!
- 얼레?! 얼레레?!
- 오면 이 낫으로 찌를텡께. 상방 앞에서 싹 없어져버려!!
- 아따메.
- 아가.
- 아이고, 워메, 워메, 아가. 이것이 무슨 짓이여, 엉? 아니, 니가 환장을 했냐.
- 흐흐흐흑... 아버님!
- 성출 양반, 줄라면 당장 주쇼! 갸 좀 그만 태우고. 우리 아버지, 만나 봤지? 잉?
- 음...
- 알아서 할 것이여, 잉? 우리 아버지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잉게. 알아서 할 것이여. 알아서 혀.
(파도 소리)
- 어허허... 저 씹어 죽일 놈의 바단가 지랄인가 어째 요로콤 퍼 울어, 뭣이 모잘라서 퍼 울어.
- 아가.
- 네...
- 안 됐쟈, 안 됐쟈, 그럴 순 없어. 저 지랄 칠매 바다는 덕칠이라고 안 잡아먹을랸다?
아, 그놈이라고 안 잡아먹을 것이여?
- 아 버님, 뭔 말씀이지라우?
- 어, 아니다. 아니야, 그럼 저, 나는 들어가 쉬겄다.
- 예... 그럼 저녁 드시고 주무시지라우.
- 아, 아니여. 황 영감 집에서 술 한 잔 했으니께. 그냥 들어가 자지. 니나 먹어라.
- 아이, 그렇지만 전 미역국이라도 한 모금 드시고-.
- 아이, 괜찮여.
(문 여닫는 소리 및 파도 소리)
(음악)
(성냥불 붙이는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으음?
- 누구란가?
- 봉심이, 나야. 봉심이.
- 아니, 이 밤중에 당신이 어쩐 일로...
- 봉심이.
- 아이...
- 음...
- 이보시오잉? 참으쇼... 여기가 어디라고... 어디라고 이런 짓을-.
이래서쓸 것이오? 이러다 아버님 깨면 어쩔라고?
- 아아, 참긴. 어떻게 더 참어.
- 이러지 마시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러쇼. 잉? 날 무엇을 만들라고.
여기는 그 양반 상방이란 말여. 상방!
- 조용히 하고 내 말 들어. 어?
- 이러지 마, 그냥 이대로 알고 지내면 얼마나 좋아잉? 아, 제발 이러지 마시게라우.
- 봉심이, 난 뱃놈이 아냐. 서울 가서 장사밑천 할려고 잠시 오천을 떠돌아다녔을 뿐이야.
이제 장사 밑천 준비 됐어. 서울 가서 나와 살자구! 난 안 죽어, 육지에선 안 죽는단 말야!
저런 상방도 없고. 봉심이, 서울 가서 나하고 살자구, 응?
(파도 소리)
- 으흐흥, 상궁이 아버지. 상궁이 아버지. 어서 마중 나오시오잉. 상궁이 아버지.
- 봉심이, 고마워. 아마... 칠순이는 저러다가 죽을 거야.
- 무서워라우, 그런 말씀 하지 말아라우.
- 봉심이.
- 예.
- 자, 자.
- 안 되라우. 이러면 안 된당게요.
- 봉심이.
- 물어봤사지. 물어봤사지.
- 뭘 물어본다는 거지?
- 그 양반한테라도 괜찮은가 물어봤사지.
- 아아아아, 또 헛소리.
- 그렇지만, 그렇지만 상방 앞에서 이래도 될 것인지...
- 자, 자.
- 정말 서울은 상방도 없지라우. 사람도 안 죽지라우... 예? 그 양반한테.
-봉, 봉심이.
- 어... 내가 지금, 내가 지금 어색하고 있지라우. 그렇지만, 그렇지만...
(천둥 번개 소리)
- 음... 아니여, 내가, 내가 잘못이지. 누굴, 누굴 탓할 것이여.
(파도 소리)
(음악)
- 아, 봉심이. 잊지 마. 조금 있다 올 테니 짐 싸놓고 기다려. 이 배 놓치면
천상 일주일을 기다려야 해. 그럼 곧 다녀올게.
(문 여닫는 소리 및 흐느껴 우는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 아가.
- 아니, 아버님. 언제-.
- 어째 또 우냐.
- 아아... 아니어라우.
- 세상에. 너무 원통해서 어디 살겄냐.
- 아니, 대통이 뭔 일이여?
- 이거 어디 살겄냐. 이놈아, 성출이, 이놈아! 원통해서 살겄냐, 잉?
- 아니, 어째 이러냐?
- 죽었어... 또 갔어! 갔어!
- 어? 아니, 누가?
- 칠순이가 물에 빠져 죽었다네.
- 뭣이여?!
- 칠순이가 죽어라우?!
(흐느껴 우는 소리)
- 이렇게... 이렇게 원통해서 어떻게 살겄냐.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니, 상방이 죄냐, 잉?!
뱃놈이 죄야?!! 뱃놈이 죄야?!
-성출이, 남의 일이 아니여. 일 당하기 전에 어서 내 말대로 하게.
- 아가.
(흐느껴 우는 소리)
- 예에...
- 상방 지키기 무척 고생스럽쟈?
- 아니어라우...
- 아니야, 힘들거야잉.
- 아니어라우. 아버님, 뭔 말씀을 그렇게 하지라우...
- 니 보기가 너무 민망스러워서 그런다.
- 그럼 지가 그 양반 상방을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겄는가요?
- 아아아... 아가, 공연히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나 보구나. 자, 어서 들어가거라.
- 예...
(문 여닫는 소리)
- 음... 아니여. 어떻게 내가 그 아를...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랴, 보내야지. 그래야만쓰지.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음... 아가.
- 예?
- 이리 좀 나오니라잉.
- 예...
- 음, 어디 가나 살기는 다 어렵다만, 그렇지만 여기 같지 않겄지.
- 어메, 아버님. 뭔 말씀이지라우?
- 니가 이긴 것도 아니여, 그러구 내가 이긴 것도 아니여. 진 사람도 없고,
다 팔자소관이지. 어서 이 수레에 타거라.
- 예에??! 어째...
- 글쎄, 타라면 타거라!
- 아이, 아버님, 아주 날 죽이실 작정이신게라우?! 예?
- 음...
- 나같이 죄 많은 거 백번 죽어도 한이 없어라우...! 그렇지만 아버님 혼자 놔두고 내가 어떻게 눈을 감을 거라우...
- 아니여, 니 갈 길을 니가 가는 것뿐이여.
- 예? 그럼...
- 살 곳으로 가거라. 살 곳으로...
- 아이, 안 되라우, 아버님! 그저 아버님 곁에서 상방을 지킴시로 살라우...!
(흐느껴 우는 소리)
- 뚝 울음이나 그치거라.
- 아, 그렇지만... 상방은 누가 지킬 거라우?
- 다... 다 내가 한다. 내 아들놈 내가 못 지킬 것이 뭣이여.
- 자, 어서 울음 그치고 명심하거라잉? 만약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루터에 닿기 전까지는
이 속에서 찍소리 하나 안 한다잉? 약속허지?
(흐느껴 우는 소리)
- 아버님... !
- 이거 다 약속하지?
(흐느껴 우는 소리)
- 찍소리 하면 내가 밥이 걸려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잉. 알겄지?
(흐느껴 우는 소리)
- 아... 예...
- 가, 어서 타거라.
- 아... 예.
- 머리를 숙이거라. 내 가마니를 덮을 것잉께.
(흐느껴 우는 소리)
- 아버님...
- 또... 약속한 거 벌써 잊었냐?
(흐느껴 우는 소리)
- 저... 아저씨.
- 응? 어유, 김 서방 아니더라고. 그런디?
- 아, 아니에요. 저, 이쪽에서 누가 만나자고 해서. 그럼 전 고만...
- 자, 이보소. 김 서방.
- 예?
- 누굴 만날려고?
- 아... 예, 저 덕칠이를 좀...
- 어허, 저, 그런디. 자, 이쪽으로 오고잉. 내가 긴요한 부탁 하나 있는디.
- 저... 전 시간이 없어서.
- 아니, 요 보따리를 싸들고 어디 가는가?
- 사실은 오늘 칠성호로 이곳을 뜰까 해서...
- 오메, 그려...? 어이그, 참 너무 섭섭하네잉. 저, 그런디 행선지가 어디여? 바단가? 뭍인가잉?
- 뭍이라뇨?
- 분명 뭍이지잉?
- 예에... 그런데-.
- 다시는 바다에 안 오지?
- 아, 네. 왜 그러시죠?
- 너 같은 놈은 뱃놈이 못 되야! 꼭 육지에 나가 살았샀지. 자, 마침 잘됐네잉.
이 수레, 잉? 나루까지만 끌어다주소잉.
- 아, 이거... 시간이 없어서...
- 아하, 보소잉. 이 수레도 마찬가지여. 자네처럼 시간이 없어.
- 도대체 뭔데요?
- 생선일세. 팔팔 뛴-.
- 생선이요? 아니, 아저씨 댁에도 그런 생선이 있었나요?
- 응, 아주 소중하게 간직해뒀던 생선이여. 부디 몸조심해서 간수하고.
자자 잉? 어서 끌고 가소.
- 이거 참, 시간도 없고.
- 자, 나루터에 대기만 허면 우리집 며느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잉께. 자, 갸한테 건너주소.
- 예? 그그... 그럼 가보겠습니다. 참, 이거 섭섭한대요.
- 어잉, 운이 좋으면 다시들 만나보겄지. 그, 그라고 여 보소.
- 네네? 이거 저 시간이...
- 저, 이 생선은 아직 살았네. 살았어. 바쁘다고 함부로 굴지 말고 조심혀.
- 아, 아니. 저...
- 어허허, 아무것도 아니여. 편히 그럼 잘 가소잉.
- 그럼 안녕히 계십쇼.
(문 여닫는 소리)
(뱃고동 소리 및 파도 소리)
(음악)
- 아가, 부디 잘 가거라잉.
(음악)
나온 사람들. 성출에 김영식. 봉심에 천선녀. 칠순에 김수희. 대통에 이완호. 덕칠에 조명남.
황 영감에 홍계일. 김가에 박웅. 그리고 음악에 오순정. 효과에 심재훈, 이형종, 김평주.
기술에 정영철. 이상 여러분이었습니다.
(광고)
영진약품이 보내드리는 명작극장. 신춘문예 당선작 시리즈.
그 아홉 번째 시간으로 서울신문 희곡 부문 당선 김지현 작, 김지현 극본, 이희복 연출로 보내 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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