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나팔소리)

- 아...

(나팔소리)

- 취침 나팔소리.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애수가 담긴 취침 나팔소리를 들을 때마다 난 절차탁마를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내가 공군사관 시절에 친근했던 김동호 생도를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으면은 절차탁마와 김동호 생도를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절차탁마는 공군사관학교에만 있는 특수한 명예제도요. 김동호 생도는 이 절차탁마의 표본이 되었다.

김동호 생도는 내 동기생으로 그때 사진반에서 활동을 했는데 선배 생도들의 졸업식이 있은 다음날, 카메라 두 대를 도난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음악)

- 음... 어디 도난사건의 경위를 들어봅시다.

- 네, 사진반장 윤헌 생도와 김동호 생도는 졸업식 광경을 촬영하고 일석점오 직전에 암실 캐비닛 속에 두 대의 카메라를 보관했다고 합니다.

- 음.

- 그런데 오늘 아침 일조점오 후 김동호 생도가 필름을 현상하려고 사진실에 가서 캐비닛을 열어보고 카메라가 없어진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 두 대가 다 없어졌소?

- 네, 그렇습니다.

- 그럼 그 사진반 생도들을 어떻게 했지?

- 각기 따로 대기시켜놓고 조사중입니다.

- 음... 그래. 혐의자의 윤곽은 드러났소?

- 사진실에는 출입자가 없고 다만 두 생도가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 조사중입니다만 두 생도 중에 한 사람의 소행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 알았소. 아무튼 이번 사건은 매우 불쾌한 사건이오.

생도의 명예를 위해서도 이 사건의 전모를 조용히 밝혀주쇼.

-알겠습니다. 교장님.

(음악)

- 쳇, 이게 무슨 꼴이람. 영창에 갇히다니. 이건 불명예도 보통 불명예가 아닌걸.

제기랄, 하늘을 날으는 보라매가 된다고 가슴이 부풀었던 것이 어젠데.

도둑놈 누명을 쓰고 영창에 구금되고 말았단 말이지.

아, 이 꼴을 윤아가 보면 뭐라고 그럴까? 아마 졸도하고 말 거야. 빌어먹을!

작년 이맘 때 윤아가 면회를 왔었지. 그때 오빠가 장교님이 된다고 무던히도 좋아했었는데.

- 오빠, 오빠.

- 응?

- 오빤 언제 졸업해요? 2년만 있으면 장교님이 되나?

- 그럼, 하늘을 날으는 보라매가 된단 말야. 어떠냐?

- 어머, 멋있다! 그러고 보니까 오빠가 정말 멋진 남성인 줄은 미처 몰랐는데? 호호.

- 네 친구들 애인이 나만큼 멋진 녀석도 얼마 없을 걸?

- 정말이야. 애들한테 자랑을 하고 애인 갈아치우라고 할까?

- 그래, 전부 나한테 오라고 해.

- 어머머, 욕심쟁이! 하하하하하.

- 듣기 싫어! 웃긴 뭐가 좋아서 웃어! 난 지금 퇴교당하게 돼있단 말야.

도둑놈 누명을 쓰고 영창에 갇혀 있는 걸 몰라? 응?

- 오빠.

- 왜 그래?

- 오빠가 훔친 건 아니지? 그 카메라 말야.

- 그걸 말이라고 해?

- 혹시 윤헌 씨가 그런 짓을 했을까?

- 미쳤어? 윤헌 선배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 그럼, 그럼 누가 훔쳤냔 말이에요?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아, 오빠. 오빠. 나 오빠가 퇴교당하면 죽고 말 테야. 흑, 정말 뭐야.

난 친구들한테 오빠 자랑을 잔뜩 해놨는데 절도혐의를 받고 쭃겨 나왔다는 소문이 나봐.

난 창피해서 길에 나가지도 못한단 말야!

- 바보 같은 소리 마라! 내가 왜 쫓겨난단 말이냐? 난 안 쫓겨난다.

난 억울해, 난 억울해, 난 정말 억울하단 말야! 흑...

- 생도님, 조용히 하세요.

- 어...

- 조용히 하세요. 떠들다가 주번사관한테 발각되면 큰일납니다.

생도님, 주무세요.

- 알겠소.

- 부탁합니다.

- 아, 저... 윤헌 선배는 어디 있는지 아시오?

- 옆 방에 있어요.

- 옆 방?!

- 이제 고만 주무세요. 이러다가 주번사관한테 들키면 불침번만 죽어납니다.

- 아... 알았소. 인제는 떠들지 않을 테니까 가보시오.

- 네.

(문 여닫는 소리)

(음악)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김동호 생도.

- 네.

- 일어서.

- 네...

- 나와.

- 네...

- 빨리 나와.

- 아... 네, 네.

- 거기 서있어.

(문 여닫는 소리)

- 따라와.

(발자국 소리)

- 교육 생도님, 어디로 가는 겁니까?

- 알고 싶은가?

- 예, 궁금해서.

- 중대본부로 가는 거야.

- 아, 네. 저, 교육관 생도님. 범인이 잡혔습니까?

- 잠자코 걸어!

- 네.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들어와.

- 네.

- 중대장님. 김동호 생도를 데리고 왔습니다.

- 응, 김동호 생도.

- 네.

- 그래, 어떤가.

- 무슨 말씀이신죠?

- 영창생활이 어떤가 말야.

- 네, 괴롭습니다.

- 그동안 만 하루가 지나, 그만한 시간이라면 충분히 반성을 했을 텐데.

더구나 김동호 생도는 평소 우리 중대의 모범생도였으니 이번 카메라 도난사건에 대해서 생각하는 점이 많았을 거야.

- 네, 저도 분개하고 있습니다. 도난당한 카메라는 반드시 찾아야만 합니다.

- 물론 찾아야지. 우리 생도의 명예에 관한 문제니까.

- 그렇습니다.

- 아... 사진반에 있는 캐비닛의 넘버를 알고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누구지?

- 담당교관님이 하나 가지고 계시고 윤헌 선배님과 제가 각각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 김 생도는 범인에 대해서 뭐 짐작이 가는 데가 있나?

- 글쎄요. 그 점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

- 좋아. 우리 중대는 이번 사건으로 최대의 명예손상을 입었다. 우린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바른 말을 들어야겠다.

김 생도도 역시 잘 알 거야. 우린 장교교육을 받고 있는 생도다.

나는 반성할 기회를 줬어. 그러나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 김 생도나 윤헌 생도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고 있단 말야.

- 지금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해.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사실 저는 카메라가 없어진 것을 처음 발견했을 뿐입니다.

- 사진실의 열쇠나 캐비닛 열쇠를 보관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지?

- 윤헌 선배님하고 접니다.

- 니가 아니라면 윤헌 생도의 행위라고 생각하나?

- 아닙니다. 전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윤헌 선배님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 그럼 김 생도의 짓인가?

-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 그럼 누구의 짓이야!

- 모르겠어요! 전... 모르겠어요!

- 비겁한 놈.

- 정말, 정말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흐...윽.

- 음... 안 되겠군. 아직 반성하는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 나쁜 놈!

(음악)

(흐느끼며 우는 소리)

- 선배님, 윤 선배님.

(문 두드리는 소리)

(흐느끼며 우는 소리)

- 윤 선배님.

(문 두드리는 소리)

- 생도님.

- 김 일병.

- 조용히 해주세요. 이거 곤란합니다.

- 알았어.

(발자국 소리)

- 윤 선배님.

- 으흐흐흐흐흑... 아... 죽고 싶다. 난 죽고 싶다! 흐흐흑...

- 윤 선배님. 기운을 내세요.

- 우린 결백했으니까 언제든지 사실이 밝혀질 거예요.

- 흑... 김 생도. 난... 난 괴...로워. 지금 난 죽고만 싶어.

- 선배님의 심경, 이해하겠어요. 사실 나도 괴로워서 미칠 지경이에요.

하지만 우린 죄가 없어요. 우린 조금만 참으면은 명예를 회복하게 될 거예요.

용기를 내세요. 선배님.

- 어어억... 김 생도. 크으흑흑흑...

- 윤 선배님. 어떤 놈이 우리를 이 꼴로 만들었을까요.

빌어먹을! 어떤 놈이!

(음악)

김동호 생도가 영창에 구금된 지 나흘이 지났다. 난 그를 면회하고 싶었지만 구금자는 면회를 금지하고 있어서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던 중 그가 중대본부에서 조사를 받고 나갈 때 복도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며칠 동안 깊은 번민으로 얼굴이 온통 검은 반점으로 물들어 있었다.

- 어?

- 재연이.

- 동호.

- 고생이 많았지.

- 뭐... 괜찮아.

- 생도님, 어서 가시죠.

- 아, 저, 잠깐만.

- 아, 재연이. 저, 생도들이 나 때문에 무슨 기합은 안 받았나?

- 아... 그런 일은 없어.

- 저... 저 혹시 우리 집에서 누이동생이 면회 오든지 편지 오면은 이런 얘기 하지 말아줘.

- 자네 동생이 면회 온다고 했나?

- 아니, 그냥 기분에 누가 올 것만 같아서.

- 아... 자네가 어쩌다가.

- 뭐, 별 거 아니야. 아마 곧 범인이 잡히게 되겠지 뭐.

- 자넬 위해서 그랬으면 좋겠네.

- 저... 나, 담배 하나 주겠어?

- 담배?

- 어.

- 안 됩니다. 이러다 들키면 곤란합니다. 생도님, 어서 가시죠.

- 아... 할 수 없군.

- 재연이, 아까 말한 거. 누이동생이 오면은 내 얘기 하지 마라.

- 어, 그렇게 하지.

(음악)

사병을 따라 영창으로 가는 그는 괴로움 속에서도 결백성이 밝혀진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날 밤 그가 절차탁마의 표본이 될 줄은 몰랐으리라.

절차탁마. 그것은 생도의 명예를 더럽힌 자를 동기생들이 공동명의로 구타하는 것이다.

나도 거기 있었다. 괴로운 일이지만 나도 그를 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동기생들이 모인 강당으로 들어왔을 때 그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김동호는 맨 앞줄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

- 재연아, 재연아. 또 만났구나. 오늘은 모두 강당에 모여 있구나. 그렇지, 재연아?

- 어.

- 재연이, 왜 그래?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어?

- 생도들은 지금 널 환영하고 있는 게 아니야.

- 오, 그래? 그럼 절차탁마? 그렇구나, 나를... 나를...! 절차탁마하는구나!

- 김동호 생도.

- 중대장 생도님!

- 흑... 하는 수 없다.

- 이 이상 우리 생도회에서는 침묵을 지킬 수 없는 입장이다. 김 생도, 오늘밤 동기생들이

주는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여서 반성의 기회를 만들기 바란다.

- 중대장 생도님! 난 정말, 정말 죄가 없습니다!

- 김동호 생도, 장교가 될 사람이 이게 무슨 추탠가?!

- 정말입니다! 난 모릅니다! 재연이! 말 좀 해줘. 내가 도둑질 하는 놈이야?! 어? 말 좀 해줘! 재연이!

- 김 생도, 엎드려!

- 크아... 악.

- 이 반성봉으로 한 대씩 때린다. 김 생도는 한 대씩 맞을 때마다 그것이 생도들이 너에게

주는 충고인 줄 알고 감사해야 한다. 아... 내가 먼저 때린다.

(때리는 소리)

-으윽! 아! 윤아야! 난 잘못이 없어! 난 억울해요! 억울해.

(때리는 소리)

- 윽! 아아아...! 윤아야, 윤아야... 윤아야...

(음악)

- 윤아야, 윤아야, 윤아야...

- 오빠, 말을 해요. 오빠는 뭣 때문에 희생을 당하는 거예요?

- 모르겠어.

- 오빠가 훔쳐낸 게 아니면 윤헌 씨의 행동이지 뭐예요. 오빠, 말을 해요!

윤헌 씨가 훔쳐낸 거죠?

- 그럴지도 몰라.

- 그럼 윤헌 씨가 훔쳤다고 왜 말을 안 해요.

- 아... 아... 난 못해. 난 그런 말 할 수 없어.

- 오빠가 희생이 돼도 말 안 해요?

- 안 해... 안 해...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먼저 말하기 전에 난...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 아... 오빠!

- 싫어... 난 말 안 해... 난 말할 수 없어... 난! 난 말할 수 없어! 아... 아...

(문 여닫는 소리)

- 김 생도.

- 아... 아, 난 말 안 합니다. 난 말 안 해...

- 김 생도, 김 생도! 정신차려!

- 난... 난...! 아...

- 꿈을 꿨나?

- 아... 아니요... 아...

- 날 따라와.

- 아... 네.

(문 여닫는 소리)

- 들어가.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음, 왔나?

- 중대장 생도님.

- 저걸 보게. 저 침대에 누운 사람.

- 누굽니까? 저건.

- 음... 윤헌 생도다.

- 윤헌 선배님이요?

- 죽었다.

- 네?? 아...

- 2시간 전에 자살을 했어. 자기 손의 동맥을 물어뜯었어.

- 동맥을... 동맥을 끊었어요?!! 으...윽, 윤 선배님! 윤 선배님!!

아... 이럴 줄 알았으면은 내가 먼저 말을 할 걸. 내가 먼저 말을 했어야 됐는데!

하아! 빌어먹을! 빌어... 누가 이따위 장난을 했어! 누가! 누가 이따위 장난을 했어!! 누가!!

(음악)

(비오는 소리)

생도들은 아무도 이 사건에 대해서 말하려 들지 않는다. 어쩌면 바쁜 일과 속에

망각으로 씻어버릴 심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잊을 수 없다. 절차탁마가

있던 날, 공포에 찬 그 얼굴. 결백함을 부르짖는 절규. 내 어깨를 감싸며

반가워 할 때 나는 무표정했다. 그가 매를 맞으며 호소할 때 나는 귀를 막고 외면해버렸다.

난 김동호보다 얼마나 비겁한 인간인가. 며칠 뒤, 비가 오던 날. 그날은 윤헌 생도의

장례날이기도 했고 그가 공군병원으로 떠나는 날이다.

(구급차 소리)

그가 병원차에 실려 떠났다. 나는 그가 차에 오르기 전에-

- 동호, 떠나는군. 지난번엔 미안했다. 잘 가게. 몸이 완쾌되면 다시 만나세.

(비오는 소리)

(나팔소리)

- 김동호.

- 윤헌... 윤헌 선배... 윤헌 선배를...

- 자, 그만 차에 올라가세요.

- 차를 타지. 자.

- 윽.

- 동호.

- 윤헌 선배님!

(차 떠나는 소리 및 나팔소리)

취침 나팔소리를 들을 때마다 비오는 날 빗속으로 앰뷸런스에 실려 사라져버린

김동호 생도를 회상하게 된다. 오늘까지 난 그에게 무한한 죄책감을 느끼며

그의 얼굴을 눈앞에 그려 보곤 한다.

(음악)

나온 사람들. 김 생도에 장민호. 중대장 생도에 김영식. 교육관 생도에 조명남. 교장에 이치우.

참모장에 이완호. 사병에 양진웅. 의무관에 안종국. 윤헌에 박웅. 윤아에 김수희. 나를 겸한 해설에 홍계일.

그리고 음악에 오순정. 효과에 심재훈, 이형종, 김평주. 기술에 이인제. 이상 여러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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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진약품이 보내드리는 명작극장. 신춘문예 당선작을 방송극으로 엮어보는 신춘문예 당선작 시리즈.

그 네 번째 시간으로 서울신문 소설부문 당선 정광섭 원작 절차탁마를 오학영 극본, 이희복 연출로 보내 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