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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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명작극장
신춘문예단선작시리즈 - (3)웨딩드레스 (오대섭 작, 구석봉 각색)
신춘문예단선작시리즈
(3)웨딩드레스 (오대섭 작, 구석봉 각색)
1967.04.02 방송
‘명작극장’은 목적극 개척에 의욕을 보였던 동아방송이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극화해서 멜로드라마가 판을 치던 라디오드라마의 풍토를 쇄신해보자는 의도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일요일밤 10시 15분에 방송되는 45분짜리로 국내외의 우수작품들이 소개되었으며, 63년 5월 5일에서 70년 10월 4일까지 모두 340편의 작품이 방송되었다.
(음악)

신춘문예 당선작을 방송극으로 엮어보는 신춘문예 당선작 시리즈

그 세 번째 시간으로 조선일보 희곡 부문 당선작 오태석 원작 웨딩드레스를

구석봉 각본 이희복 연출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음악)

(발자국 소리)

- 저, 아가씨. 저 좀 봅시다.

- 나 말이에요?

- 시, 실례했습니다. 뒷모습이 닮아서 그만...

- 원, 별 사람 다 보겠네.

- 저 친구 벌써 열흘째 저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애.

- 천만에. 아마 내 기억이 틀림이 없다면 오늘이 열이틀쨀 걸세.

- 열흘이고 열이틀이고 간에 거 어쨌든 우리 같은 박물관 귀신들한텐 좋은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거든.

- 저 친구 거, 아무래도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 아니야?

- 음... 그리고 보니 눈빛이 보통사람하고 영 다른 것 같더라니.

- 암, 돌지 않고서야 저렇게 웨딩드레스까지 척하니 팔에 걸고 나타날 리가 없지 않나. 에이, 그 얼굴이 아깝구만. 쯧쯧쯧.

(발자국 소리)

- 아, 저 여자다.

(발자국 소리)

-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죠?

그렇죠? 깜장 투피스에 흰 힐을 신은 여자. 맞았습니다. 제가 찾고 있던 여자는 당신이었습니다.

이 드레스를, 당신의 웨딩드레스를 어서 입어보세요.

- 어머나, 아니. 저리 비켜요.

- 저, 놀라실 것 없습니다. 당신을 만났으니까 이제 이 웨딩드레스를 갈아입고 다시 사진을 찍어봅시다. 자, 어서요.

- 뭐냐? 넌!

- 아...

- 내 안사람한테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라구?

- 여보, 정신병자 같으니까 건드리지 말고 그냥 가세요.

- 이놈아, 우린 이래봬도 신혼부부란 말이다. 겨우 엊그제서야 결혼식을 치룬 아내한테 또다시 웨딩드레스를 입으라고 덤벼드니.

그래, 오늘부터 내 대신 니가 남편 행세를 하겠다는 얘기냐?

- 헤헤헤헤헤헤헤.

(음악)

- 에휴, 제기랄. 원 덕수궁 안이 이렇게 한산해서야 장사를 해먹고 살겠나. 에이구.

- 모두 바다로 몰려나간 모양이죠?

- 아이구, 어서 오십쇼.

- 어, 라디오가 있었군요. 그거라도 켜놓고 시간을 보내시면 무료한 기분이 약간은 가실 텐데요.

- 아, 예. 아하하, 깨우쳐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디오 켜는 소리)

(음악)

- 박물관에 들려서 나오시는 길입니까?

- 네.

- 아이, 참. 말동무를 만나서 반갑습니다. 진열실은 물론 돌아보셨을 게고.

가만있자, 2층에도 올라가셨겠습니다 그려.

- 네, 2층에도.

- 거기 제8진열실에 청년 하나가 서있는 거 보셨습니까?

- 글쎄요. 전 그저, 아, 뭐랄까. 사람을 구경하려고 박물관에 들어간 건 아니었으니까요.

- 아, 물론 그러실 테지.

- 하지만 제가 그 청년을 봤는지도 모르죠.

- 틀림없이 보셨을 겝니다.

- 어떻게 아세요?

- 아, 좀 전에 여길 다녀간 손님한테 물어보니까 그 사람도 그 청년을 제8진열실에서 보았다고 하시던데요?

- 그래요?

(발자국 소리)

- 담배 하나 얻읍시다.

- 아이구, 어서 오십쇼. 손님. 헤헤.

- 역시 사람 발이 뜸하니까 고궁 맛이 나는 것 같구만.

- 손님께서도 그런 생각이 드셨나요?

- 아하하하하하하, 여자 손님이 한 분 와계셨군요. 얘기상대가 늘어서 영광입니다.

- 아니에요. 전 라디오를 듣고 있을 테니까 두 분이서 말씀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음악)

- 담배 여깄습니다. 손님.

- 네, 고맙소. 주스도 한 병.

- 예예.

(라이터 열고 담배 불붙이는 소리)

- 후, 덕수궁 문은 언제쯤 닫습니까?

- 이제 한 30분만 있으면 이 안에서 일보는 사람이 나와 가지고 종을 울리죠.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는 소리를 그런 식으로 알립니다.

- 종이라니? 어떤 종인데?

- 두부장수가 새벽거리를 울리고 다니는 그런 종입니다.

- 아하, 옛 상감님 침소 곁에서 왜 하필 두부장수 종소리를 울리누?

(발자국 소리)

-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 어서 오십쇼. 시원한 주스 한 병 드릴까요?

- 아, 저 아니, 여기 조금 전에 혹시 여자가 지나가는 거 못 보셨습니까?

- 여자라뇨?

- 여자 말입니다. 분명히 여잡니다.

- 아, 그렇게 서두르지만 말고 여자 인상이 어떻다는 걸 얘기해보슈.

- 인상이라면은... 깜장색 투피스에 흰 힐을 신은 게 특징이겠죠.

- 깜장색 투피스에 흰 힐이라...

- 예.

- 깜장색 투피스에 흰 힐?

(음악)

- 아, 저 여자 말입니까?

- 예?

- 바로 저 라디오 곁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여자가 깜장색 투피스에 흰 힐인데.

(발자국 소리)

- 아, 아닙니다.

- 아니라구?

- 네. 비슷하긴 합니다만 제가 찾고 있는 여자는 아닙니다.

(컵에 주스 따르는 소리 및 주스 마시는 소리)

- 주인장, 이 청년이 찾고 있는 그런 여자가 내가 온 뒤로는 지나가지 않았죠?

-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도 안 지나갔습니다. 지금 라디오 앞에 서있는 저분밖에는 아무도...

- 그럴 리가 없는데.

- 청년하고 같이 왔던 여자였소? 물론 같이 왔었죠.

- 헤헤헤헤헤헤헤헤, 그래. 같이 왔던 여자를 잃어버렸단 말이지?

대체 눈은 뒀다 뭣하고.

- 우린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었죠. 아니, 아래층 진열실을 다 돌아볼 때까지만 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같이 있었습니다만. 근데 2층으로 올라가서 갑자기

그 여자가 없어져버렸어요.

- 그럼 3층으로 올라간 게로군 그래.

- 3층이요? 3층은 애초부터 없는 집입니다.

- 하아, 제8진열실에도 가보셨습니까?

- 제8진열실뿐만 아니라 방이라는 방은 모조리 훑어봤는데도 없습니다.

- 그럼 거기 제8진열실에서 청년을 보셨겠습니다그려.

- 청년이요? 글쎄요. 전 여자만 찾고 있었으니까 청년 같은 건 그저-.

- 아마 틀림없이 당신은 제8진열실에서 청년을 보셨을 겝니다.

- 아, 그 청년하고-

- 제가 찾고 있는 여자하고 무슨 관련이라도 있단 말씀이십니까?

- 아아, 아니. 그그그, 그런 거 아니지만. 저는 단지 그런 청년을 보셨느냐고 여쭌 것뿐입니다.

- 아, 그런 청년이라뇨.

- 아, 저. 선생님들이 그 친구를 보셨다면 아실 일이지만.그 친구 신부 옷을 한 벌 들고 서있습디다?

- 신부라면은 성직자 말인가요?

- 아니죠. 그런 신부가 아니라.

- 아, 그러니까 그 웨딩드레스란 것 말이구만.

- 아, 예예. 맞았습니다. 바로 그 옷이죠.

- 근데 박물관 안에서 웨딩드레스는 왜 들고 서있었을까.

- 아, 전들 그 사람 속을 알 수 있습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 아마

내 짐작으로는 신부가 될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저도 주스 한 병 주셔야겠습니다.

- 예, 아, 주문하실 것 같아서 이렇게 미리 한 병 가져다 놨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컵에 주스 따르는 소리 및 주스 마시는 소리)

- 다음을 계속하시오. 주인장.

- 음, 예. 틀림없이 제8진열실에 있던 청년은 신부 될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여자...

(컵에 주스 따르는 소리 및 주스 마시는 소리)

(음악)

- 글쎄, 외모도 멀끔하게 생긴 청년이 신부 옷을 들고 서있으니 그거 원.

- 아, 그 말을 듣고 보니 생각이 나는구만. 나두 그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박물관에서 만난 적이 있어.

- 박물관에서요?

- 그렇지. 그러니까 층계가 이렇게 홱 꺾이면서, 어, 바로 거기였어! 왜 2층으로 올라가면은 층계가 한 번 꺾이지 않습니까? 바로 거기서 봤죠.

-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저두 신부를 본 것 같군요.

- 그래요? 내 말이 틀림이 없죠. 바로 그 층계가 꺾이는 곳에 그 신부가 서있었죠?

- 아니, 제가 그 신부를 본 데는 거기가 아니라-.

- 거기가 아니라면, 그럼 어디였소?

(음악)

- 2층이었습니다.

- 2층? 2층 어디였냔 말이오?

- 제가 만난 곳이-.

- 아, 글쎄 그곳이 2층 어디냔 말요?!

- 그게 글쎄 분명치가 않아서-.

- 아하하,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 신부 옷을 입은 여자는 1층과 2층 사이,

층계가 꺾어지는 지점에 서있었소.

- 하지만 제가 그 여자를 만난 곳은 분명히 2층이었단 말입니다. 2층 어느 진열실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게 분명치를 않아요. 그 신부의 배경을 이루었던 물건들이 다 비슷비슷해 노니까 제가 지금 어느 진열실이었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단 말입니다.

- 아, 그건 핑곕니다.

- 핑계가 아니라 난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음악)

- 하지만 내 경우 선생이 말씀한 대로 그 배경이란 말을 쓴다면 내가 신부를 보았을 때 그 배경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아직도 내 눈에는 그 순결한 백색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2층에서 흘러들어오는 빛과 아래층에서 치솟는 빛을 기묘하게 받고 서있던 그때 모습이 섬섬합니다.

백색의 웨딩드레스는 마치 달빛을 받고 서있는 석상처럼 희푸름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일생을 두고 보아온 예술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요염한 신부,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 번 쳐다보고 음욕을 품은 것이 간음이 된다면 저는 부끄럽게도 그 신부를 간음한 셈이 되겠죠. 박물관에서 신부를 간음한 셈이었죠.

이건 아마 내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거리가 될 겁니다.

-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 신부는 선생님의 것입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그리고 제가 만난 신부한테도 어느 진열실이라는 배경이 있는 이상 그 신부는 제 것이기도 하구요.

- 뭐요? 아니, 그럼 신부가 둘이었단 말입니까?

- 하지만 그 청년은 한 벌의 신부 옷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 어쨌든 제가 진열실에서 신부를 본 건 사실입니다.

- 아니, 그럼 내가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란 말이요?!

- 가만가만가만, 두 분 선생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신부를 보았다는 말은 결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두 개의 신부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 두 개의 신부라니?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 시간의 조화죠.

- 시간의 조화?

- 예, 말하자면 시간의 찰나라고도 할 수 있겠죠. 두 분 중에서 어느 분이 그 신부를 일찍 만났거나 또 늦게 만난 겝니다. 아, 그 신부가 아래층에서 2층으로 올라갔느냐 아니면 2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왔느냐 하는 순서에 따라서 어느 분이 그 신부를 먼저 만났는지가 밝혀질 것이고 그러니까-.

- 그야 빤하지 않습니까? 2층으로 올라가자면 아래층에서부터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늘에서 떨어질 리는 만무하니깐 말이죠.

- 하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가자면 이층으로부터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땅에서 솟아나지 않았다면 말이죠.

- 하아, 이것 참 딱하게 됐습니다.

- 딱할 것까진 없습니다. 선생이 아까 말씀하시기를 신부 옷을 가진 청년이 2층 제8진열실이라고 했으니까 그 여자가 2층에서 신부 옷을 받아 입었을 것 아니에요?

- 그그그, 그렇죠.

-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가 그 청년이 가지고 있던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이요?

- 박물관 안에 신부 옷을 가지고 서있는 청년이 또 한 사람 있었다는 얘기시로군요.

- 아니죠. 신부 옷을 가지고 있는 청년은 제8진열실의 그 청년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 그걸 보쇼.

- 내 얘기를 들어보시오. 선생.

- 아아,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게 아니라 두 분이 지금 박물관으로 가셔서 그 청년을 직접 만나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 자연 그 여자가 어느 방에서 신부 옷을 입고 있었는지 밝혀질 테고 따라서-.

- 좋소. 그러면 같이 박물관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 가십시다.

(발자국 소리)

- 저, 여기 아무 거나 마실 것 하나 주시겠어요?

- 네, 콜라로 하실까요? 소다수로 하실까요?

- 먼저 걸로.

- 예예.

(컵에 콜라 따르는 소리 및 콜라 마시는 소리)

-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들 하고 계셨어요?

- 예, 하하하하, 박물관에서 여자를 잃었답니다.

- 네?

- 방금 나간 청년이 자기 여자하고 박물관에를 들어갔던 모양인데 아래층 진열실을 다 돌구 2층으로 올라가봤더니 여자가 없더라는 거예요.

- 어머, 무서워.

- 헌데 알고 보니 그 여자가 신부로 변한 모양입니다.

- 여자라면 수녀가 되죠.

- 그런 신부가 아니라.

- 어머, 그래요?

- 그러니까 여자가 박물관 2층에 올라가자마자 신부로 변해버렸단 말이죠?

- 네, 아,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 남자는 여자를 잃어버리고 그 여자는 어느 사이에 신부가 돼버렸고,

대체 지금 저한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 그러니까, 박물관 2층 제8진열실에 어느 청년이 신부 옷을 들고 서있었는데-.

- 네, 저도 그 청년은 봤어요.

- 아, 그러세요? 이건 제 혼자 생각입니다만. 그러니까 그 청년이 그 여자한테

신부 옷을 입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아, 그래요. 틀림없을 거예요.

- 예예? 뭐, 뭐라구요?

- 아, 다음 말을 계속하세요.

- 예, 그래서 그 여자는 신부가 되고, 따라서 그 청년은 자기 여자를 잃은 게 아닌가.

- 아, 틀림없어요. 저도 똑같은 꼴을 당했거든요.

- 똑같은 꼴이라뇨? 아니, 그럼...

- 네, 저도 그 신부 옷을 입어본 기억이 나요.

- 예??

(음악)

- 제가 2층 어느 방엔가 구경을 하려고 들어가니까 그 청년이 신부 옷을 들고

제 곁으로 오더군요.

-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음악)

- 부인, 저는 사는 통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절 무척 사랑해주셨는데 그만.

- 안됐군요.

- 어머니 사진이 한 장 남아 있어서 위안이 되어주곤 했었는데 그 사진마저 얼마 전에 잃어버렸습니다.

- 아.

- 전 어머니를 잃은 것보다 더 슬퍼졌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어머니 사진을 다시 찍기로 했죠.

(음악)

- 이 바보 같은. 아, 잃어버린 사진을 어떻게 다시 찍느냔 말야.

- 저도 처음엔 그렇게 물었어요.

- 어떻게요?

- 잃어버린 사진을 다시 찍을 수 있나요?

- 네, 찍을 수 있구 말구요. 이 드레스를 입어 보십쇼.

- 어머, 제가 왜 이렇게 값진 드레스를.

- 전 여기서 이 웨딩드레스를 들고 열이틀 동안을 기다렸습니다.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 아, 절, 왜요?

- 당신, 우리 어머니를 너무도 닮았으니까요.

- 아, 네?

- 잃어버린 어머니의 사진이 이런 웨딩드레스를 걸치고 파리 박물관 입구

돌층계에 서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부인, 어려운 청입니다만 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잠깐만 층계 위에 서주십쇼.

- 음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신부가 되셨습니까?

- 사실은 저도 그 옷을 입어보고 싶었는걸요?

- 그참 우아한 웨딩드레스를 들려주는데 어느 여자가 마다하고 뿌리치겠어요?

더구나 그런 측은한 사연도 있고 해서.

- 어쨌든 그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 청년한테 선을 보인 게로군요?

- 아, 네. 그런데, 그런데!

- 아, 아.

- 왜 고개를 떨어뜨리고 한숨을 쉬세요?

- 웨딩드레스를 입은 당신의 모습이 어머니 사진하곤 영영 달라서.

- 아, 다르다니. 별 도리 없군요. 저도 사실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제 사진이 갖고 싶었는데.

벗어드릴게요.

-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 가만! 옷을 벗으니까 영락없이, 영락없이, 영락없이 어머니를 닮았군요.

- 어머, 그럴 리가.

- 어떻게 된 거야.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발자국 소리)

(음악)

- 헤헤헤헤헤헤헤, 결국 잃어버렸군요.

- 한데 그 웨딩드레스 때문에 정작 잃어버린 사람은 저였어요.

- 예? 남자하고 동행하셨나 보군요.

- 아, 네. 아래층에선 같이 있었는데 제가 웨딩드레스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사이에

그 남자를 잃어버렸거든요.

- 하하하하하하하하, 박물관에서 여자를 잃은 남자가 있더니. 이번엔

남자를 잃은 여자가 나왔습니다 그려. 하하하하하하하.

- 여자를 잃었다는 남자, 대체 어떻게 생겼던가요?

- 아까 왜 보시지 않았습니까? 저하고 여기서 말씀하셨던 분들.

젊은 분이었는데.

(발자국 소리)

- 아이구? 마침 저기 오십니다.

- 닫아버렸어. 문을 닫아버렸어.

- 폐관시간이 넘은 게로군요?

- 저분이 박물관에서 여자를 잃었다는 분인가요?

- 예.

- 뭐라구요? 저한테 하는 소립니까?

- 아, 아니에요. 혼잣소리였어요.

- 손님, 이 여자 분이 박물관에서 함께 온 남자 분을 잃으셨답니다.

- 뭐라구요? 아니, 그럼 두 분이서.

(웃음소리)

(종소리)

- 어서 돌아가 주십쇼. 돌아가 주십쇼. 문 닫을 시간입니다. 어서 돌아가 주십쇼. 문 닫을 시간입니다.

돌아가 주십쇼. 문 닫을 시간입니다.

(음악)

나온 사람들. 청년에 장민호. 사내에 김영식. 손님에 박웅. 여자에 정명희.

신사에 홍계일. 부인에 박정자. 아가씨에 이민숙. 박물관 직원에 안종국, 조중환.

그리고 음악에 오순정. 효과에 심재훈, 이형종, 김평주. 기술에 정영철.

이상 여러분이었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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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약품 제공 명작극장. 신춘문예 당선작을 방송극으로 엮어보는 신춘문예 당선작 시리즈

그 세 번째 시간으로 조선일보 희곡 부문 당선작 오태석 원작 웨딩드레스를

구석봉 극본, 이희복 연출로 보내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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