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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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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84화 국회연설후의 이야기
김두한 편
제84화 국회연설후의 이야기
1970.01.29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저번 시간에 국회에서, 김의원으로서도 처음있는 일이겠지만 우리 국회로서도 처음있었던 오물사건, 그 이야기에 아편이 들어왔다면 어떻게 할거냐 하는 연설를 하다가, 연설한 후에 어떤 사태가 벌어지냐 하다가 시간이 다되서 이야기가 끝났는데 계속해주시죠.

▲ 이래서 중국 400주도 참패를 당하고 했다고 했어요. 이것이 사인의 악랄한 방법에 의해서 비극이 생겼을 때 그때는 죽여줘 살려줘 해도 이미 늦는거예요. 그러니 해당 국무의원이 사퇴할 용의가 있는가 없는가. 책임있는 정치를 해야할거 아니예요. 역대의 장관들이 자기네들 잘못했다고 하지 않거든요. 또 입으로 아무리 싸워봤자 구렁이 담넘어 가듯이 하니까 아무 소용없단 말이예요.

그래서 내가 정일봉 국무총리 더러 "정총리는 사카린 보셨쇼?" 하니까 "못봤습니다." "사카린 구경도 못해? 수사기관이 어떻게 생겼나 구경도 해야할거 아니야. 여기 사카린을 내가 가져왔으니까 구경좀 하시오." 하니까 우물쭈물 해요. 국무의원들이 앉아서 빙글빙글 웃어요. 속으로 맛좀 봐라 그랬죠. 냄새가 참 기가 막힌데요.

이건 딴 데서 가져온 것도 아니고 파고다 공원 정문옆에는 54년이라고 하는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공중변소가 있단 말이예요. 3.1독립운동 때 선열들이 대소변을 눈, 이 위대하신 대소변을 좀 먹여야겠단 말이예요.

파고다 공원에서 그거 캐오는데, 직접 사다리 놓고서 망치하고 깡통하고 들고가서 쓱 집어넣어서 긁는데요. 내가 깊이 들어가라 그러니까 "지금 다 들어갔습니다." 그래요. 그게 한 두길정도 되요. 저 밑에꺼를 끄집어 내니까 시커먼게 나오는데 그 냄새가 아주 지독합니다. 51년 묵었으니까요. 그래서 둥그런 통에 넣었는데 다섯관이 넘어요. 그게 냄새가 아주 지독하니까, (금방 눈거랑 달라요) 거기다 소독약을 하얗게 깨뜨리고서 비닐봉투를 싸고 하니까 여섯관이 된단 말이예요. 어깨가 휘청해요.

이래서 국회의사당에 그걸 들고 가서, 위에는 소독약이 있으니까요. 총리더러 사카린 어떤지 구경한번 하라고요. 바깥에 소독약을 톡톡톡 하니까 하하하 웃어요. 조금만 더 있으니까 시커먼게 물컹 나오니까 국무총리가 뒤로 물러나요. "뭐 어떡해? 예의상 넘어가? 잘못한거 사과해 당장!" 하면서 확 씌워버렸죠.

"국회의원으로써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까 잘못한게 있으면 처단할 수 있는 정책교류를 해서 넘어와야지, 잘못한거 알면서도 몇사람만 우물우물해서 여기서 강연하고. 국회의원 출마할때는 별소리 다하고 와서, 국회에서 흑백을 가릴 줄 모르다니 중대한 문제다. 적어도 국민을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불쌍한 노동자 농민을 대변할 수 있는 참다운 진정한 애국자가 몇사람이라도 있어야지, 전부 권력, 돈, 정권에 연연하고 그런게 무슨 국민의 대표냐 말이야. 난 안해먹는다."
하고서는 자동차에 왔는데, 확 뿌릴때 왼손하고 오른손에 묻었단 말이예요. 이게 냄새가 아주 지독하단 말이예요. 그러고 나서 집으로 가서 신문을 봤더니 국무총리 이하의 전 장관이 총 사퇴했다고 났단 말이예요. 당연히 사퇴해야 된단 말이예요. 또 대통령은 이것을 수락해야 된단말이예요. 그러면 나로서는 다 끝난거예요. 한번 혼을 내야 되는거니까요.

이래서 내가 그 이튿날 국회의원 사임한다고 내가 의장 직접찾아가서 "여보슈. 당신끼리 다 해먹어. 난 안한다. 거기에 오물뿌려서 냄새가 나는데 월급 20만원 받을라고 그걸 또 해먹어? 안해먹어." 그렇게 하고 나왔더니 벌써 영장이 떨어졌어요. 건설부 갔더니 벌써 형사가 삥 둘러쌌어요. 난 벌써 잡혀가는거 알고 한복으로 갈아입었죠. 우리 마누라 더러 담요도 싸고 칫솔도 싸고 다 해 놓라 했어요. 형무소 48번 들어가서, 그때 들어가면 49번 들어가는건데, 저번에 또 들어가서 50번 채웠는데요. 그렇게 해서 들어갔죠. 부인한테 밤낮 고생만 시키니까 미안하죠.

국회의원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같이 대중의 심부름꾼으로 아픈데 가려주고 통치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싸워야지 주는건데요. 우리 마누라한테 이별의 키스를 해줬더니 신문기자들이 신문에 내고 그랬어요. 사랑하는 아내한테 키스로 떼워야지 뭐 줄게 있어요? 다른거는 돈도 없고 줄게 없는걸요.

- 거기는 얼마나 있었어요?

▲ 거기 한 8개월 있었죠. 나와서 수원출마를 했다가 개표도중에 11시 40분에 잡아넣더군요. 서대문형무소에 있는데 3000표가 떨어졌답니다. 내 선거참관위들 다 내 쫓아버리고 자기네들끼리 뒤집어내서 하니까요.

- 이런정도로, 그야말로 특이한 일생 50년을 석달을 놓고도 자세하게는 다 못들었지만, 석달동안 꾸준히 들었습니다.

▲ 그래서 내가 반공과 반독재와 부정부패와 싸우다가 보니까 수십번 형무소를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난 후회하지 않고, 이제는 정치에 염증이 나서 정치는 안합니다. 조용히 장사만 해먹고 살라고 지금 장사꾼 노릇하는데, 장사도 힘들어 죽겠어요. 젊은아이들한테 가서 아침저녁으로 "봐주십쇼. 봐주십쇼" 하는데 울화통이 터지는데요. 정치를 안하고 장사 해먹을라 해도 이게 아주 힘듭니다.

- 지나온 자취가 특이했기 때문에 그동안 대담이라는 것도 대단히 특이한 반응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아주 재미있다고 얘기해 주시는 분, 또 사실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 분, 과장이 되었다고 얘기하는 분 등 여러분이 있었지만 꼭 사실을 꼬집어서 몇월 몇일 몇시 몇분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라, 김두한이라는 특이한 생을 살아온 사람이 자기의 생을 어떻게 돌아보느냐 어떤 모티브를 갖고 일을 해왔느냐 하는 것을 거침없이 듣고자 하는게 이번 취재였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 고의원께서도 알지만 사실 이거 녹음기를 틀어놓고 원고를 갖고 한다고 하면, 나도 먹고 살자고 아침서부터 쫓아다니다 별안간에 전화가 오면 땀을 뻘뻘 흘리고요. 오늘도 지금 사업때문에 급하다고 전화가 왔는데요. 여기서 내가 싸웠던 반공투쟁이 수천번이 되는데, 하루에도 몇백건을 지휘했는데요. 내가 지금 여기 했다고 하는것은 몇천분의 일밖에 안되거든요. 공산당이 160만이란 말이예요. 6.25때 불 다 질러버리고 문서 남은게 별로 없고, 현재 동아일보 조선일보 수사기관에서 문서를 갖고 있죠. 그러니까 거기에 준해서 한거죠. 그리고 책도 나온게 있고요. 동지들도 한 두사람 있는게 아니고 수만명이 싸웠으니까 그걸 일일이 맞았다 안맞았다 할수 없죠. 왜냐면 그때 내가 직접 지휘한 것도 있고 나도 모르고 싸운 게 있거든요.

- 아무튼 아주 귀한 얘기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입력일 : 200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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