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번에 정부수립이후에 청년단을 통합해서 대한건설단 청설국장으로 있었다. 그러는 동안 청년단에 여러동지들이 있어서 은연중에 큰 세력이었다. 그런데 백범살해를 하려는 그룹이 있어서, 그 사람들이 백범을 살해하면 김두한부대가 시끄럽게 굴테니까 사전에 집어 넣었다. 그런얘기를 했어요. 근데 어떻게 됐습니까? 그런쪽에 백범 암살과 관련되어서 지금 김선생이 아는대로 지금 해주실수 있으면 해주시죠.
▲ 그러니까 내가 형무소 나와서 6.25사변을 치르고 그리고 서울 수복했을때 안도희(서북청년회 위원장 했던 사람)가 김성수라고 헌병총에 맞아 죽을 사람하고 서북청년회 몇이서 같이 왔었어요. 명동에서 만났는데 안도희가 나한테 백범선생에 대한 변명을 해요. 그래서 난 그 얘기 듣고 싶지 않다 했죠. 지금 7사람중에 두 사람이 이미 죽었어요. 제작년에 곽병구가 안도희 칼로 찌른거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내가 춘천에서 국회의원 생활할땐데 병원에 갔다와서 돈도 10만원 보내주고 옷도 보내주고 변호사도 대고 서울 고등법원으로해서 내가 집행유예로 끌어내왔지만요. 지금은 백범 기념사업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군대 동기인데 참 똑똑합니다. 내가 혼만 내지, 죽이지 말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죽이면 나중에 곤란하거든요. 서울서는 이박사가 안도희 내놨지, 푸시푸시해져서 민족정기라는 게 어디있냔 말이예요. 적어도 대한 임시정부가 40년동안 조국과 민족을 위해 돌아가신 그 위대한 백범선생을, 일본놈도 감히 죽이지 못한 그 백범선생을, 우리민족 손으로다가 (얘들이 저희들의 감정으로) 죽였을때 천치의 한이란 말이예요. 오늘날 백범선생의 동상이 찬란하게 서 있을 때 한없이 눈물도 흐르고, 감사하단 말이예요. 그만큼 시간이 흘러가면 아는거예요. 내가 봤을땐 그겁니다. `이박사의 노선은 어디까지나 정치 현실노선이고 백범선생의 노선은 애국노선이다.` 반토막만 정부수립한거는 구국노선이고, 이건 애국노선이거든요. 분명히 김구선생은 애국자란 말이예요. 그럼 애국자를 말로 타이를 것이지 총으로 쏘는게 어느나라에 있냔 말이예요. 이래서 사실상 내가 잡아만 넣지 않았으면 (그때는 더 무법천지란 말이예요) 하루저녁에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었죠. 애국자를 죽이는 법이 어디있냔 말이예요. 백범선생 장례식 다 치른후 6개월후에 나를 내보냈단 말이예요. 그때 감정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어요.
- 6개월후에 나와가지고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 그래서 집에서 몸을 수양하고 있는데 이박사가 또 들어오라고 부른단 말이예요. 국가 원수가 부르니 안갈수가 있어요? 들어갔더니 "자네, 국민방위군 사령관 하게"그러는거예요. "각하, 먼저번에 왔을때는 사람 죽이지 말라고 어깨를 두드리고 그러시더니, 사람죽이라고 국민방위군 하라고 합니까? 군대는 사람죽이려고 하는건데, 저는 안합니다." 그랬죠. `아니, 그거랑은 다른거니까 이거는 자네가 가장 적임자니까 해라` 그래요. "전 못합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은 제가 공산당에 테러하는 것은 막 쳐들어가서 죽이고 납치하고 하는거니까 했지만, 이건 군사조직입니다. 군대 상식이 없어서 생사람 죽이면 그거 책임을 어떻게 집니까? 제가 소학교 3학년에 1학년인데, 국문도 못보는데..그러니까 공부를 해서 군사학을 배워서 내 자신이 육군사관학교를 댕겨서 정식으로 해야지 이건 못합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을 불렀어요. 그 사람이 감찰국장으로 있고, 난 건설국장이었죠. 이 사람이 하면 안될텐데 각하가 그 사람을 불러서 "자네 국민방위군 하게." 그러니 그 사람이 "각하 감사합니다." 이래서 국민방위군은 6.25 사변날때 무려 수십만명을 병사 아사시키고 돈을 도둑질하고, 뒷산에서 16명을 총살하는걸 내가 봤거든요.
- 방위군이 6.25 후가 아니고 그 전에 있었나요?
▲방위군이 6.25나기 4개월전에 설치가 되었죠. 방위군이라는데 대한 청년단이 방위군이 되는거예요.
- 그렇죠. 6.25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6.25터졌을 때 어디있었어요? 서울에 있었나요?
▲그럼 내가 서울에 있지 어디에 있어요. 그때 혼났습니다. 피 죽도록 흘려서 대한민국 만들어 놨더니 하루아침에 수도떨어져 눈깔이 뒤집히잖수. 6.25아닙니까? 6월 2일날 자는데 새벽녘 꿈에 아버님이 나오셨어요. 아버님이 툭툭 쳐요. "넌 애비말 들어라. 니가 내말 안그러면 우리집안 손이 끊어져. 너는 니 집사람이랑 의논해서 봇따리 싸서 남산 넘어 한강 주변에 이사를 가되, 헛소리 말고 방하나 얻어서 이부자리랑 돈만 조금 가져가거라. 그래야 너 사느니라. 그리고 사태가 벌어지면 뒤도 돌아보지말고 남쪽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시는거예요. 그래서 딱 깨어보니 집사람도 같은 꿈이예요. 그래서 둘이 약속을 해서 아무소리 안하고 동네 온천에 간다고 저금통장 들고서 국방부 자리 뒤에 방하나 얻어서 살살 숨어있었어요. 숨어있는데 6.25사변이 터지지 않았어요? 명동 그 쪽에 가봤는데 난 서울이 그렇게 빨리 떨어질지 몰랐어요. 빨치산은 벌써 낙원동 우리집에 들어왔어요. 6.25사변날 저녁에 벌써 낙원동 우리집 점령해서 총을 갖다 대니까, 동네 온천에 수영하러 갔습니다 그랬지요. 집만 알려 줬으면 그냥 우리집에 들어왔다구요. 그리고 나서 자다가 또 아버님이 나와서 벌떡 깨보니까 발자국 소리가 막 나요. 그 때 6월 8일날 새벽 4시인데, 뒤도 안돌아보고 뛰어갔죠. 그냥 뛰어갔더니 마포간에 갔더니 사람들이 30~40명 있는데 내가 수영을 할줄 모르거든요. 둔해서 말이예요. 어쩔줄 몰라서 있는데 시꺼먼 옷을 입은 4명이 강가에 나와요. 나오더니 "대장님 왠일이십니까?" 그래요. 내가 한말이 급하니까 "대장이고 소장이고 간에 자네 수영할줄 아나? 저기가서 배 좀 갖고오게." 배가 전부 다 저쪽에 넘어가 있거든요. 그래서 두명이 수영으로 저쪽에 배를 갖고와서 "대장 옷벗으십시요" 그러더니 옷으로 머리에 동여매더니 날 배에다 싣더니 한강 건너에 넘겨주는거예요. 그러고는 네명이 사라져 버리는거예요.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살았습니다.
- 옛날에 같이 일하던 동기인가요?
▲ 그게 아직도 모릅니다. 누가 누군지 몰라요. 시커먼 사람 네명인데 모르죠. 지금도 모릅니다.
- 6.25난 후에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로 끝마치겠습니다.
(입력일 : 200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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