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스타앨범 / 나의 데뷰
유쾌한 응접실 / 정계야화
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노변야화
김두한 편 - 제66화 서대문 형무소 석방
김두한 편
제66화 서대문 형무소 석방
1970.01.09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오키나와에서 돌아와서 서대문에서 나올라고 하는데, 아직 나오기 전에 얘기가 끝났습니다. 당시 법무장관과 전화로 통화를 했다. 거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후에 나와서 이 박사도 만나고 그런줄고 아는데 얘기를 해주시죠.

▲ 그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에 의한 특사가 아니면 못나오거든요. 법무장관도 못해주죠. 임 법무장관이 대통령한테 상심을 했어요. 난 형무소에 있는데, 석방이 된다 이러니까 굉장했을거 아녜요. 공산당이 살인,방화,납치 등을 한 서류도 그대로 넘어왔을 거 아닙니까. 그건 오키나와 형무소에 있는게 아니라 서대문 형무소에 그대로 있는데, 법무부에 있는 사람이 잘못해서 사형선고하는 데다가 내 서류를 같이 끼어놨어요. "이거는 김두한씨 껍니다. 우익진영이고 이거는 좌익입니다." 하면서 책상에다 덜컥 갔다놨단 말이예요. 지금 같으면 직접 전해줬겠지만 그때는 대통령이 어려우니까요. 비서실장 시켜서 책상위에 놓아놨기 때문에 나도 사형에 껴서 같이 넘어갔어요.
마침 운이 좋아서 장택상 외무장관하고 이범석 국무총리께서 이렇게 보니까 내꺼가 사형장에 있단 말이예요. "아니, 각하. 이거 백야(김좌진 호) 아들인데 각하가 명령을 해서 공산당이랑 싸운건데 이거 왜 여기다 껴 놓으셨습니까?" 그러니까 각하가 아래사람한테 "어? 이거 왜 여기다 껴놨어?" 물으니까 "검사 맡았는데..어떻게 해서 잘못 껴 들어갔나 봅니다." 그러죠. "이 사람 정신이 있나. 소환장 다시 작성해라." 그래서 거기서 다시 작성해서 이박사께서 `대사령이다`해서 대통령 사면에 했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사람 여기 와 있나? 나오거든 나한테 들여보내라" 그래요.
그래서 나오다보니까 우익진영에 대한 청년단체 사회단체 부녀단체 동지들이 형무소에 만여명이 와서 플랑카드들고 꽃다발하고 음악 틀어놓고 그래요. 정치는 또 그 맛에 하거든요. 형무소에서 나오면 또 잊어버리고요. 시내에서 북치고 길거리에서 박수치고 그랬단 말이예요. 이래가지고 긴장이 풀리니까 병이 나는거예요. 치질이 터져서 피가 쏟아지고 그러니까 치질수술하고 며칠 입원해 있으니까 이박사가 오라고 불러요. 그래서 지팡이 짚고 들어갔어요.
영어반하고 한국말 반으로 "미스터 김, 그동안 수고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사람 죽이지 말아라." 그래요. 그래서 내가 하도 기가막혀서 "아니 각하는 언제는 나보고 사람죽이라고 시키더니 이제는 죽이지 말라고 합니까?"하니까 "이제는 군대가 하고 경찰이 합니다. 그러니까 동지는 하지 말아요." 그러더니, 공로가 많으니 건국중장에 되어있는 것을 써라. 이시형씨가 쓴게 하나예요. 무궁대훈장이라는 건 없었고 대통령 자체도 없고요. 며칠날 어디로 와라 했는데 그 자리가 바로 내가 오키나와 형무소 갔을때 사형선고를 받은 그자리예요. 대통령이 낭독하더니 그걸 줬어요. 6.25때 없어졌지만요. 6.25때 훈장가지고 도망가나, 그냥 뛰는거지요. 뒤도 안돌아보고 뛰는거죠. 이래서 다시 병원에 와서 치료를 완전히 했습니다.

- 그때 이박사가 돈도 좀 주고 그랬다면서요.

▲ 돈 30만원 줬죠. 내 보호자 역할하는 동지들한테 와보니까 (병원에 와보니까) 10만원짜리 세뭉탱이가 있어요.
병이 나을만 하니까 대통령 각하께서 들어오시라고 하는데 가슴이 덜컥하거든요. 또 뭐라고 할까봐서, 나도 쉬어야 될거 아니예요. 아 그랬더니 혁명단체가 그때 6단체예요. 우익진영. 이게 전부 해방이 되니까 제각각이 홍길동이 되니까 대통령 말도 안듣거든요. "자네가 통합을 시키길 바란다." 그러는거예요. 그래서 권총 사고 장갑끼고서 한사람씩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했죠. 그 사람들도 다 부하가 있는데 안되거든요.
"당신, 사형을 당하지도 않았고 나같이 총을 맞지도 않았소. 이제는 대한민국 국가가 수립된 만큼 청년단체도 하나야. 이제는 청년단체를 하나로 통합해서 군대를 양성해야 돼. 군국을 만들어서 남북을 통일할 수 있는 역사적 과업을 해야하니까 개인의 고집을 부리지 말고, 여기 통합문서에다 도장을 찍으시오."
그러니까 대동청년단체 그 사람은 최고기록을 갖고 있는 역도선수예요. 번쩍 들라고 한단 말이예요. 그래서 "너!"하면서 문을 탁 닫았거든요. 문이 찰칵 닫히니까 겁나거든요. "새끼. 하라면 하지!" 이렇게 해서 대한청년단이라는 것을 발족하게 되었어요. 지금 남대문옆 국산장려회관 4층건물에 `대한청년단`이라는 간판 붙이고요. 그리고 나서 나는 이제 사람 죽이는게 지긋지긋하니까 나는 건설을 해야겠다. 그래서 대한청년단 건설국장을 했죠.

- 주먹으로 하는 정치에서부터 조금 정상화된 정치로 올라가는데 그 무렵이 백범선생이 암살당한 무렵인데, 그것에 관련된 에피소드 없나요?

▲ 그때 박용직이라고 하는 내 동지가 조직국장이예요. 그리고 유재원 동지라고 국회의원 3번하고 한 사람이 내 동지인데 우리서클에서 내가 건설을 맡았지만 조직을 맡았고 조직국장이랑 훈련국장을 했는데, 그 훈련국장 밑에는 전부 군사훈련하는데요. 그때 대한청년단체에서 장교를 1500명 늘어놨어요. 그게 3개월 훈련하면 육군소위가 되거든요. 지금처럼 4년이 아니고요. 그러니까 특전수 3개월해서 1500명의 육군소위가 나왔거든요. 육군 중위가 진급을 했어요.
그때 대한청년단 단장이 신성모씨거든요. 국방부 장관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얘기했어요. "반공훈련을 해서 지금 3년동안 싸워서 내가 군사훈련 다 준 사람들이요. 이래서 대학청년단이 각 직장단위로 있어요. 경전이면 경전, 남전이면 남전, 회사면 회사, 철도청이면 철도청 해서 1500명이 군사훈련을 시키는데 그게 다 내 동지란 말이예요.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내가 건설하지만은 조직을 거머쥐고 훈련을 거머쥐고 있는데 전부 내 동지니까, (그때 6단체를 합치니까 800만이란 말이예요) 만일 삐긋하면 그대로 피바다가 나니까요.
그러니까 `김두한이가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니까, 또 과격한 사람이니까 백범선생을 암살하면 김두한이가 반기를 들거란 말이다. 이렇게 한다면 반란이 일어난다. 그러니 김두한이는 임시 투옥을 해라.`
이래서 백범선생의 암살계획이 익어 들어갈 무렵에 저를 트집을 잡아서 서대문 형무소로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 백범 암살을 어딘가서 꾸민 사람들이 김두한을 그냥 두고 하면 김두한이 소란을 일으킨다고 해서, 백범선생이 당하시기전에 김선생을 집어넣었군요. 얘기가 참 재미있는 대목으로 오다가 시간이 되어서 다음시간에 듣겠습니다.

(입력일 : 2007.03.20)
프로그램 리스트보기

(주)동아닷컴의 모든 콘텐츠를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에서 무단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by donga.com. email : newsro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