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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64화 사형언도 이후의 이야기
김두한 편
제64화 사형언도 이후의 이야기
1970.01.07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법정에서 배를 가르려 했다 하는 삽화를 넣어서 저번시간에 얘기를 했는데,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어떻게 했는지 얘기를 해주시죠.

▲닷샌가 뒤에 우리를 중앙청에 불렀어요. "어째서 피고는 할복했으며 난동을 부렸는가?" 내가 하는 말이 "내가 판사에게 몇마디 얘기하겠다.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이 있었던 대서양 현장에 코리아는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신탁통치를 한다 그랬다. 그러면 루즈벨트 대통령이 세계 2차 대전 때 선언할때 1차와 2차가 똑같애. 제 1차에 윌슨대통령이 민족자결원칙으로 약소민족을 해방한다고 해서 실패를 했고, 제2차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했을때도 약소민족의 진정한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다고 해서 우리는 이번 전쟁으로 외국의 제국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약소민족은 단결하라고 했다. 그말과 루즈벨트 대통령과 처칠과 스탈린이 카이로, 포츠담 선언에 있어서 코리아는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준다고 했으면 독립이라는 것은 어떤게 적당한 시기란 말인가. 북한이 남한을 장악해서 공산당 선포를 하는 것이 적당한 시기인가. 우리는 3.1독립운동의 민족자결원칙에 의한 자주독립국민으로써 전세계에 되어있는 대한민국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적당한 시기인가. 귀관은 얘기해 보라."
"조시창(상하이라는 사람), 김영태, 신형균, 김관철..." 16명 쭉 부르더니 "사형" 딱 떨어지니까 기관총 들이대고 끌고가더니 수찹채우고 붙들고 내려갔어요. 참 눈물겹고 처참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내가 할복하고 사형을 받았던 그 자리에서 대한민국 수립한 이후에 이박사가 나한테 건국훈장을 수여해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때 훈장이 이시형씨랑 나랑 둘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꺼랑 내꺼랑 건국훈장이 두개죠. 참 역사적으로 과거의 한 토막을 지금 얘기한겁니다.
그래서 이제 보안장비실까지 끌고 갔어요. 밖이랑 완전히 차단하는 거예요. 바깥에는 쇠파이프가 빙빙 돌고 기관총을 갖다놨으니 도망도 못가거든요. 도망가면 벌집되는거니까요. 김관철이라는 친구가 "대장, 전기기술자가 이거 끊어놨는데, 경비철조망만 있는게 아니라, 저기 바깥에 철조망까지 다 만들어 놨어요. 그냥 뜁시다." 그러는거예요. "여보게, 뛰다가는 한명도 못남고 다 죽는다. 하느님이 우리가 태어날때, 지금 이 시점에서 국가를 수립하고 큰 일을 하라는 사명이 아직 남아있어. 참지를 못하고 넘어가다가 벌집되면 아주 가는거 아니냐. 이 사람 참아라."
그 서류가 맥아더 사령부(그때는 유엔사령관이 아니라 연합군 사령관입니다)한테 넘어갔어요. 그때는 48일동안 하는게 아니고 그냥 낭독만 하는거예요. 여기있는 변호사도 비행기타고 갔죠. 16명이 같이 비행기타고 일본 동경으로 갔죠. 거기서는 한달안에 끝났죠. 여기서는 재판하고 뭐하는데 5개월 걸렸지만, 거기는 한달안에 그 사람이 검토해서 하는 말이 이러이러 하니까 연합군 사령관의 명예를 구해서 이런 죄목으로 사형한다. 단, 김두한이 한 사람만 사형하고 나머지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그리고 이제 이심에서는 "내가 책임자인데, 이 사람들은 내가 하라고해서 한 죄밖에 없다. 책임없다." 그러니까 또 여러 동지들은 "아니 왜그러십니까. 죽으면 같이 죽지 왜 우리를 빼놓으려 합니까. 같이 죽읍시다." 그 때 사회는 요새 사회같은 깡패나 불량배 같은 그런 사회가 아니예요. 동지가 서로 생명을 아끼고 살면서 참 의리가 있었습니다.

- 그러니까 동경에 가서 김두한씨만 사형, 그 나머지는 무기. 이래서 어떻게 됬습니까.

▲그 동지들은 국내로 들어와서 각 형무소로 배치됐고, 나만 한국에 왔다가 다시 오키나와 형무소로 갔죠. 오키나와에서 독방에 들어왔는데 깜둥이 부대로 들어갔는데, (백인하고 싸우다 백인 죽인)깜둥이 부대랑하고 (미군 죽인)일본 사람들 사형소예요. 담이 없으니까 경비철조망이고, 바닷가 옆이라 도망도 못가거든요. 막사가 다르죠. 운동하고 놀때는 깜둥이하고. 백인하고는 같이 안논단 말이예요.
거기서 이제 운동을 하고 잘 먹잖아요. 그랬더니 인천에 있는 캬바레 2층에서 깜둥이가 백인 댓명을 아래로 집어 던졌는데 세명이 즉사했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저걸 때려 줄수가 없으니까 백인이 나한테 와서 살살 꼬셔요. "당신 담배가 부족할거 같은데 미리미리 주고 할테니까, 저거 어떻게 할수 없냐." 그래요. "주먹으로 때리면 안되지 않냐. 그러지 말고 합법적으로 하자. 권투를 하자. 복싱을 내가 할줄 아니까 저거 나하고 붙여라."
그런데 깜둥이가 나보다 무지커요. 내가 어깨에 와요. 그래서 시합날이 되었는데, 그날 싸인하고 저놈도 싸인하고. 이쪽편엔 백인 이쪽편엔 흑인 그리고 저쪽편엔 일본아이들 있고 다 있단 말이예요. 내가 통역들한테 "너, 저기가서 저 한국인이 주먹 한대치면 한방에 다 죽는다고 말해라"고 했어요. 통역관이 "저 사람이 김두한인데 무지무지 하단 말이야. 맞으면 죽는다."라고 전하니까 껌둥이가 쳐다보더니, 눈을 껌뻑껌벅거려요. 겁을 좀 줘야되거든요. 얕보면 안되니까요. 그리고 나서 담배랑 먹을것 많이 나오니까 좀 먹어야 된단 말이예요. 죽을 때 죽더라도.
그래서 시합을 딱 했어요. 슬쩍 주저앉으면서 딱 붙어버렸단 말이예요. 그래서 뽀대를 치니까 헉헉 대요. 그 깜둥이가 약이 올랐어요. 그러다가 내가 갈비뼈를 맞았어요. 이쪽 갈비뼈랑 저쪽 갈비뼈가 맞붙었어요. 숨이 안나와요. 갈비뼈가 맞붙은거 같애요. 그놈은 33관이고 나는 24관인데, 10관차인데요. 그래서 뒤로 물러서서 숨을 쉬려고 피했어요.
그러다가 2라운드가 끝났어요. 가만히 보니까 내가 주먹으로 치는게 틀렸어요. 내가 백인한테 "3라운드에서 다운시킬텐데 너 나한테 약속지켜야 된다. 시크리트. 오케이?" 영어 할줄 모르니까요. 그래서 3라운드 시작하자마자 때리는 척하면서 허리를 끌어안고 무릎으로 찼단 말이예요. 이거 몰라요. 막 공격하니까 군중들이 박수치고 흥분되니까 무릎이 굽혀 들어온지 모른단 말이예요. 그래서 그 사람이 쭉 뻗는데 입에서 피를 질질 흘려요. 그랬떠니 백인들이 막 `나이스`라고 만년필주고 달러주고...하하하

-얘기를 들어보면 늘 그렇지만, 심각함 속에서 사형수 생활하면서 또 웃는 일이 있습니다.

(입력일 : 200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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