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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62화 민주주의 민족전선세력 해산에 대한 회의
김두한 편
제62화 민주주의 민족전선세력 해산에 대한 회의
1970.01.05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마지막에 군정에 잡혀 들어가는 계기가 되는 게 뭐냐는 얘기를 시작으로해서 영등포 쪽에 주로 집결이 된 민주주의 민족전선 산하의 세력을 어떡하면 분산시키느냐 이런 것을 가지고 회의를 했었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 그때 역시 무기창고가 있는데 사건이 크게나면 세번은 미국의 CIC등 경찰전문학교의 창고에서 무기가 나온다고 해서 내가 그때 얘기를 했어요. "이 무기를 오늘 저녁에 빼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빼돌리지 않으면 큰일난다. 그러니 이 무기를 먼저 빼돌려 주시오."

- 그게 47년 아마..

▲ 아니예요. 48년 3.1운동 그날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서울운동장에서 하고, 남노당은 남산꼭대기에서 하는데 모든 기관이나 경찰이 그리만 집중했지, 영등포에 집중하는 걸 깜박 잊어버렸단 말이예요. 그게 정보가 내일하는 게 오늘 들어온거예요. 그러니 내일 아침에 눈뜨면 되는거예요. 이건 지금 회의를 4시에 하는겁니다. 한 댓시간 있으면 깜깜하고, 이게 3월1일 전날이란 말이예요."지금 즉각 대낮이라도 이거를 돌리시오. 우리가 어디로 집결하느난 말이지. 이거 먼데로 가져가도 안되고 말이야. 사법경찰에 대한 것을 딱해서 일단 사직공원 안에다 앉혀놓고, 오늘밤에 11시 안으로 한강 뱃사장으로 옮겨놔야 된다."
지금은 인구가 팽창해서 그렇지만, 그 때는 뚝섬 그쪽은 보이지 않거든요. 현미경으로 봐도 안 보인단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대동차 준비할 돈을 줘야겠습니다"
남산 올라가는 남대문 옆에는 수백대 짐 옮기는 차가 있으니까 거기가 갖다주면 미리 계약금이랑 싸인하고 도장 받아야지 짐 날라주거든요. 그런데 제일 중요한게 공산당이 대동차 운전자하고 조수한테 미리 손을 써놔서 자동차를 한꺼번에 몇대씩 빌려간다고 하면 빵구가 놔요. 여러번 그랬기 때문에. 그래서 2대 3대 짐 실러 간다고 해서 부하들을 트럭에 부친거예요. 트럭에서 자게. 저녁에 갖다놔야 되니까요.
그리고 권총 대고서 조수하고 운전수는 일단 아침까지는 묶어놔야되요. 그리고는 동서남북으로 대동차를 분산해서 전부 한강철교에 집결하는거예요. 영등포에 있는 윤재옥씨를 중심삼은 그쪽 동지들이 그때 한 3000여명. 우리가 그땐 공산당이 다 전멸한줄 알았는데 소집해보니까 1700여명. 둘이 합치면 4700여명. 총을 모자라니까 "우리가 들어가서 일단 시작을 할테니 형은 (어쨋든 영등포 지구 책임자니까) 나중에 들어와서 수습을 하시오." 왜냐면 윤형이 직접들어와서 살생을 하면 나중에 영등포에 살지를 못한단 말이예요.
이래서 거기에는 3000명을 두고서 1700명의 동지들이 들어가서 40명씩 자동차에 타서 4개 줄로 들어갔어요. 그때가 11시 약간 넘고 12시 채 못 되었어요. 시작은 10시부터 했는데 11시 반쯤 됐어요. 언덕을 올라가서 보니까 이쪽끝에서 저쪽끝이 꽉 찼어요. 뻥뻥뻥 쏘면서 들어갔다가는 안 되겠어요. 대구같은 건 밤에 사람 없을때 쏘고 들어가면서 쉽게 점령했지만, 이건 대낮에 10만 이상이 집결한다는 건 10개 사단병력이란 말이예요.
내가 스피커를 대고 "밟혀 죽든지 깔려 죽든지 일단 인천방향으로 뚫고 가운데로 돌진하고 나가서 영등포 4거리에서는 갈라져라. 그리고 맨 뒤에는 영등포 쪽으로 와라." 그러면 사거리로 네군데로 퍼진단 말이예요. "그런 다음에 내려서 난도질 해라. 도리가 없다." 잘못했다가 우리가 포위당하면 떼죽음 당한단 말이예요. 그래서 뿡뿡 거리면서 들어가는거예요. 자동차에 소기관총이 있어요. 그것이 그때 7대가 있었어요. 그것을 드문 드문 놯어요. 그 다음에 들어가는게 제일 중요하니까 기관총하고 넉대해서 가운데 두줄만 끌고, 수류탄은 일제니까 수류탄 던지고 밀고 들어갔단 말이예요. 수류탄 터지고 기관총 쏘고 장총 쏘고 소리지르고.. 그러니까 번쩍번쩍 하니까 몇명이 들어오는지 모르거든요. 군중심리라는 것이 적어도 자기의 생명을 갖다가 내댈라고 하지는 않거든요. 그러니 쏵 갈라지는데.. 그걸 위에서 보니까 참 처참했어요. 군중들이 10만 이상이 흩어지니까 집이 기둥이 무너지고 이러니 구경나온 어린애 늙은이 할거 없이 밝혀죽고 깔려죽고 해서 수백명이 희생당했단 말이예요. 병원에 버스로 실어 나르고요.
이래서 영등포를 헤쳐놓고선 인천으로 들이 밀고서 점령을 한거예요. 윤재옥씨한테 가서 우리가 부숴놨으니까 뒷정리는 여기 지도자시니까 윤형님이 하시라고 했죠. 이게 외국사람들도 들어와서 사진찍고 해서 뉴욕타임스에도 나고 공산당도 와서 찍고 라디오 방송도 나오고 하니까, UN총회에서 사진을 제시하고 해서, 그래서 이게 결론적으로 우리가 군사위원회에 살인죄로 잡혀 들어가게 되는 원인이 된겁니다. 그러니 조병욱 박사와 장택상씨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이건 뉴욕에 있는 UN총회에서부터 국제문제가 일어나니까 미국에서 군령이 내려와서 안잡아 갈수 없으니까 잡혀 들어갔죠. 우리동지가 80여명이 잡혀 들어갔는데 거기서 전부다 빼 버리고, 그 동안에 제일 많이 투쟁한 동지들이 있어요. 얘네한테 내가 도망가라고 했는데 왜 도망가냐면서 버티고 있어요.
우리가 남산공원에 서울 방송국 있잖아요. 저녁에 동지들하고 회의를 거기가서 했는데, 미국장갑차가 둘러싸더니 헤드라이트를 키면서 권총으로 포위를 했어요. 이래서 내가 흩어지라고 해도 안 흩어진 동지가 16명인데, 나 이외에 조시창(상하이라고 하는 사람) 김영태 신영준 김관철 동지 대구에 지금 가 있는 홍만길 동지 또 문병태 등 16명이 미군에 잡혀 들어갔어요.
-미군장하에서 무기를 들고 영등포에 대수라장을 일으켰다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얘기지만은, 그 이후에 그 사건으로 인해서 사형을 받게 되었다는 얘긴데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입력일 : 200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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