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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61화 민주주의 민족전선세력 해산에 대한 회의
김두한 편
제61화 민주주의 민족전선세력 해산에 대한 회의
1969.12.30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이제까지 공산당과 대결해서 싸우던 이야기가 계속 돼왔는데 순서는 반드시 연대순으로 안짰지만 대충 이야기가 거의 다 된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로서, 47년입니까? 선생님이 미 군장재판을 받고 잡혀 들어갔다 하는게 다음 순서가 될거 같은데 어떤 직접적인 계기로 잡혀가게 되는지 이런얘기를 해주시지요.

북한에는 소령군 주둔군 사령부가 점령을 해서 스코프가 이북 주둔군 사령관이고 남한은 하치중장인데요.
북한에 있는 북노당의 김일성에 대한 것은 그떄 90만 밖에 안돼요. 남노당은 인구비례에 보면 이북동포들이 재산 등 모든 것을 뺏기고 죽고 자유대한으로 수백만이 넘어오기 때문에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게 되는데요. 북한은 몇백만이 줄었거든요. 더군다나, 북쪽이 남쪽보다 적은데다가 북한은 인구비로 1/3밖에 안되요. 우리가 2/3이고요.
그때 미소공동회에다 제안하는 것이 공산당에 대한 남노당 산하의 수십개 조직이 전부 다해서 미소공동회에 제출한것이 160만이였어요. 왜냐하면 남노당 밑에 당일 전쟁에 대한 민주주의 민족전선을 놓고, 민주주의 민족전선에다는 인민위원회 노동조합으로 전평, 농민으로 전농, 학생으로 삭통, 성년으로 조선민청, 부녀동맹, 예술가동맹, 국군준비대 이렇게 공산당이 남한의 행정조직을 완전히 해놨단 말이예요.
그런데 군사조직, 학생조직, 노동조직, 농민조직이 테러속에 파괴되니까 도저히 남한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니까 국제조직을 일으키자, 이래서 중공하고 소련이 중심이 되가지고 소련이 UN총회에서 막 떠들고 하는거예요.
남한에 있는 주동군 사령부 점령 제 24군에 대한 하치중장 수동부 사령관은 백색테러를 시켜가지고 대내외적 인민을 학살한다고요. 국제적으로 여론이 들고 일어나니까 신문에 보도되고 하니까 미국 트루만 대통령 입장이 곤란하고 미국의 입장이 세계적으로 고립돼있거든요. 지금 월남전때처럼 미국이 강력한 하나의 반공체제가 되어있지 않고 미국정책이 애매했단 말이예요.
왜냐면 아시아 전체 약소국가를 다 합친다 해도 중국 400주보다
땅덩이도 적고 인구도 적은데, 중국 400주를 미국이 완전히 포기했단 말이예요. 이런데다가 대한민국은 적화시키려 전체의 애국동기로 정당사회단체가 되서 싸우니까 테러 많이 하는사람이 곤란할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지적을 해서 백색테러에 대한걸 금지한다. 제가 잡혀들어가게 된 동긴데, 그 동기가 공산당이 학생조직, 청년조직등 조직들이 없어지니까 이젠 안되겠다 싶죠.
그래서 노동자가 많은 영등포를 거점으로 3월 1일날 전공산당들이 지령을 내린거예요. 이래서 영등포에다 20만을 집결한거죠.
역전광장에 3.1기념 행사일듯 해서 우익진영에 있는 사람 얼굴을 만들어서 거기다 집결한거예요. 그러니까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남북도에 있는 전 공산당에 대한 극렬분자가 자꾸 집결하는 거예요. 이래가지고 서울에서 인민폭동을 일으키려고 하는거예요. 이게 정보가 딱 들어왔어요. 그때 영등포 지역에는 윤재옥이라는 분이 인천부터 영등포까지 총 지휘를 하는데(지금은 치과의사를 하고 있지만) 그분이 산하에 수천명의 청년을 지도하고 열렬적으로 애국운동을 했죠.
이 양반이 나한테 사랑을 받는 거예요. 이게 숫자로는 불과 만명밖에 안되는데 그냥 물밀듯이 들어오는데 이상하단 말이예요.
그래서 윤재옥씨가 경찰보고를 했단 말이예요. 십만에서 이십만 가까이 들어오면 (영등포는 지금은 고층건물도 있지만 그때는 기껏해야 일반사람에게 2층 목조건물밖에 없었다구요. 영등포 구청도 2층밖에 없었는데) 중대한 문제죠.
인천서부터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모든 노동자들이 고챙이, 삽, 쇠창살, 낫 등 있는대로 들고 오는거예요. 그러니 거기다가 경찰이 함부로 총질 할수도 없고 청년단체가 거기서 난동할수도 없고 그냥 포위해버린거죠.
영등포에 있는 동지들이 다시 전선을 편성하기 위해서 바깥으로 일단 다 모인거죠. 이쯤 되니까 한강다리만 건너가면 서울에 20만이 집결해서 덤벼드는 날이면 중대한 문제거든요. 서울에도 장개식의 애들이 막대한 세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이래서 뉴스를 듣고 야단이 났는데,조병욱 박사랑 장택상씨랑 여기 한민당의 주요 간부들이 회의를 해서 날더러 들어오라고.
그래서 내가 한민당(동아일보 2층) 거기로 올라갔죠. 장택상씨도 거기로 가고.. 딴데는 모르니까요. 시간이 급하니까요.
"큰일났다. 마지막 세력의 집결 싸움이 일어나려한다. 공산당도 지금 최후의 마지막 발악을 하려고 집결을 하는거니 이거 우리가 몰랐다." 이거예요.
걔네들이 우익진영의 청년단체에 있는 그런 애들이 3.1기념 행사를 하려고 역전에서 모여놓고(그 기회를 알고) 뒤에서 정책적으로 고등정책을 하도록 동조를 해서 만들어 놓고, 자기네들이 집결했단 말이예요. 한두명도 아니고 이십만 가까이 된다 말이예요.
그래서 내가 "이십만이 가깝건 이백만이 가깝건 간에 결론적으로 빨리 해결을 선생들이 하세요." 싸움은 우리가 할거고 선생들은 결론만 내리라고 했죠. 그러니까 나한테 하는 말이 "김동지 같으면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하면 하겠소?"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여기선 내가 연령적으로 아들벌 되고 나이가 연소한 사람이 이런말 하기 죄송하지만, 무력은 무력으로 대응하는 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십만이 집결했는데 어떻게 무력으로 하느냔 말이야.
"이건 정신적 얘깁니다. 여러분들이 숫자가 많다 적다 하는것 보다도, 어떻게해야 해체시키느냐 그것만 생각하면 방법은 나중에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미군이 이 문제를 아는가 모르는가. 미군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한다면 나중에 나를 또 살인죄로 구속하느냐 이거를 유석선생이나 장택상 선생이 경찰간부로써 얘기하시오."
그러니 유석선생이 "이건 내가 책임을 진다. 니군에 내가 책임을 질테니, 미군이 떨어져선 안된다고 하면 나중에 김선생은 어떻게 할거냐?"
"간단하다. 우리가 얼마전에 남조선 철도파업도 들어갔고 대구 10.1 폭동도 들어갔고..걔네는 무력으로 했다. 그러니까 무기를 대주시오" 그래서 이제 "대준다" 이런거죠.

(입력일 : 200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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