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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57화 좌익과 싸우다 형무소에 글어감
김두한 편
제57화 좌익과 싸우다 형무소에 글어감
1969.12.23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지난번의 얘기가 학생단체를 뿌리를 뽑으려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동조를 안해서 다른 사람들을 동조시키려고 소련의 주동군 사령부에서 지령을 내렸다고 지령문을 가짜로 만들어서 그것을 신문에 발표하고, 학생조직에 김두환 부대가 행동을 해도 타당한것인냥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었다는 것이였습니다.

▲ 그래서 학통에 다니는 서류가 나와있는데, 전국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서울과 경기도권만 나왔어요.

그 때 서울,인천에 대학이 없지만 통학을 하거든. 약 470명정도가 학통에 들어있어요. 그래서 할수없이 동기들을 규합을 해서 한 3000명을 동원시켰어요. 동원시켜서 주소,번지,학교이름, 몇학년 이런걸 알아내서, 당시에 권투하고 유도 역도하는 싸움 잘하는 애들(집을 지으라면 못짓지만, 부시고 갈구고 죽이라면 밥먹듯이 하는 애들)한테 한사람한테 3명씩 각처에(경기도 일대하고 인천 의정부 동두천 수원 인천 부평 수색) 배당을 했어요. 명령을 내릴 때 뭐라했냐면, 아침에 6시쯤 되서 불러내라고 했어요.

지방에서는 통학하러 나오는 사람 기다리고, 서울에서는 집에서 나오는 사람 기다렸다가 골목길 지나갈때 붙들어서 전부 요절내라고.죽이지는 말고 될수있으면 그냥 병신정도로 만들으라고.
그것을 만약에 하지않으면, 대 감찰대로 돌아다니면서 병신되지 않으면,나중에 본인이 병신되니까 자기가 맞아서 병신되지 않을라면 해야하거든.

3명쯤에 하나 감독 책임자가 있으니까..이래서 그냥 경기도하고 서울에 돌았었나봐.
그냥 당하면, 공산주의가 그때는 과도기인만큼 때려서 병신만들어 놓으면 못해요.
그게 왜냐면 학생이란 것이 한사람이 열명 스무명 선동하니까. 학생부대가 인텔이고 지성인이니까 노동자 농민을 선동을 한단 말이예요. 한명이 선동하면 몇백명이 따라다녀요.

왜냐면 지금은 대학생이 무더기로 많지만, 그때 대학생이라는게 한개의 면 군에서 하나 둘 나올때거든.
인텔리니까 지식인이니까 학생이 외치고 떠들면 동네에서 선동을 같이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사람이란게 죽기 싫으면 막 덤벼들거든요. 그래서 약이 오르니까 차 갖고 치고 쇠파이프랑 몽둥이로 치는 바람에 16명이 죽어버렸다고요. 내 부하는 유난히 표가 납니다. 건장하고 한게 벌써 김두한이 부대는 알아요. 그때 서울 시내에 있는 분들은 대개 지금은 나이 45세부터 50살, 60살 하지만 김두한이 백색테러를 타도하라고 전국적으로 벽보가 붙었으니까 매일같이 벽보떼다 붙여요. 김두한 부대 죽이라고.

그렇게 되가지고는 희생자가 났는데, 문제가 된것이 신문에 나니까 CIC 박용만이가 지령문을 뺏겼단 거예요. 박용만이가 한국학생들한테 뺏겼거든.
여기까지는 좋은데, 너 이거 누구한테 받았냐는 말이예요. UN총회에 보고를 해야겠는데 누구한테 받았냐고 박용만 동지한테 물었어요. 그래서 김두한이가 줬다고 그래서 내가 꼼짝 못하게 됬지요. 내가 습격을 할때는 부하를 시키고 할텐데, 거기서 희생을 했단 말이에요. 2층으로 막 집어던지고 그 바로 3층에서 얘기를 했으니 집어던져 죽이고 난리가 나고 확 도망갔는데 습격한게 지령문이 딱 나오니 3층하고 2층이 빵구가 난거야.

그래서 나한테 와가지고는 `당신 지령문이 어디서 났느냐` 말이야. 이러니 큰일 났지요. `목적은 어떻게 되냐?`
이래가지고 CIC본부하고 와보니까 사람이 근 20명이 죽고 눈도 빠져가지고 했단 말이야. CIC본부하고 하지중장한테 편지를 해갖고 김두한 부대가 들어왔다고..
그래서 사람이 죽고, 지령문에 대한거 뒷조사하니까 내가 습격한게 나오니까 "대라(말해라)"
이래서 결국은 CIC본부에 지령문 때문에 꼼짝없이 잡혀 들어간거죠. "니가 시켰다" 이거예요.

CIC본부 지하실에 물이 무릎까지 젖는데 집어 넣어요. 그러더니 한 이틀 되니까 나오라고 종로경찰서 태화여자관 그리 가자는 거예요. 거기서 군법재판을 하더니 3년을 선고내렸어요.
"내가 죽인건 아니니까, 난 부하가 해서 모른다. 내가 동지가 하나 두명도 아니고 수만명인데 내가 어떻게 아느냐.
난 웃사람이니 갖다 준거지." 라고 하니까 그럼 갖다준 사람을 대란 말이예요. 그럼 윗사람이(지도자가) 밑에 사람을 댈수가 없단 말이예요.

난 갖다줬지만 살인은 내가 직접한거 아닌데, 북한에서 남쪽을 폭동나게 하라고 폭동지령을 내렸는데 내가 정당하게 한건데 너 왜 날 자꾸만 귀찮게 굴고, 자꾸만 집어넣느냐 이거죠. 우리가 정당하게 국가소집을 하는데 너 왜 원조는 못할망정 날 지하실에 넣고 하느냐.
그래서 막 싸우는거죠. 거기 통역관들이 그러지 말라면서 날 동경한거야. 왜냐면 거기 통역관들이 같은 반공진영이니까요.
그리고 완전히 미국사회에 대한 주부가 있어요. 달러나 얻고 껌이나 얻어씹고, 국가와 민족이 뭔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그걸 건드리면 우린 큰일 못하니까. 이래서 서대문 형무소에 넘어갔어요. 나만 넘어간게 아니라, 하나씩 하나씩 조사해서 그 이튿날 내 동지들이 12명이 잡혀 들어갔어요. 홍만길이라는 동지도 들어왔는데 큰일났단 말이야. 이 사람들이 제3, 제5, 제6 별동대장들이였는데 3개 별동대가 백한명씩 끌고 나가서는 습격하는데이 사람들이 전부 들어오는거거든. 방송에서는 기록할 수 없지만 대한민국내 지역이 서울, 경기도, 강원도, 충정도니까 지역범위가 넓으니까 지방에서 오는대로 기차타고 부시고 그러니까 매일 수백차례 싸우는걸 기록할 수 없어요.
내가 앞으로 말씀 드리겠지만, 우리도 공산당한테 습격을 천여번은 당했습니다. 여기서 저쪽만 하는게 아니라 저쪽도 이쪽 하는거니까, 저쪽이 더 많이 합니다. 불지르고, 서로 약이 오르니까 막죽이는거나 마찬가지니까 잔인합니다.

이래가지고 서대문 형무소에 12동지가 잡혀들어왔습니다. 우익진영의 동지가 그것만 들어간것이 아니라 먼저에 대한 것이 있어요. 경기도 일대에서 사고난 것은 전부 서대문 형무소로 들어가니까, 딴 형무소가 없어요.
미리 잡혀 들어가있는 동지가 수백명이 있지만은, 자기의 지도자를 부르면 총살을 하니까 못부르거든요.
자기만 한것에서 끝내야지 나를 만약 부르면, 자기가 형무소에서 징역살고 나온 것처럼 죽이니까(자기 지도자를 부니까) 서대문 형무소가 아래층이 6동이 있고 위층이 6동이 있는데, 내가 4하 상방에 있었단 말이예요.
그때 내가 저녁에 들어갔는데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까 (감옥 안에서) 공산당끼리 4방 통문을 돌린거예요."김두한이 들어왔다!!"하고.
그래서 아침에 자고나서 눈을 떠보니까 형무소안이 적기가를 부르는 거예요. 그리고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고 김일성 만세하고 스탈린하고 레닌 만세를 부르는 거예요. 우익진영이 완전히 좌익에 되어있는 단결, 우익이 분산이고 좌익에 들어오는데, 그때 서대문 형무소는 만명이 찼단 말이예요.
만명이 잡히니까 공산당도 한 6000여명 들어왔지만 우리도 한 3000여명은 잡혔거든요. 나만 싸운게 아니라 우익진영에 대하여 정당사회단체에도 공산당하고 잡혀서 꽉 들어찼거든요.
"김두한이 너 이자식 봐라. 우리 동무들만 저 단두대에 쓰러진게 아니고, 너도 살인을 했으니까 단두대에 쓰러져야 된다"

-밖에서 좌익들과 싸우다가 형무소에 들어갔더니 형무소 안이 또 좌익의 판이더라, 여기까지가 오늘의 이야기였습니다.

(입력일 : 200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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