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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53화 파업현장에서의 활약
김두한 편
제53화 파업현장에서의 활약
1969.12.18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철도 노조파업을 부수던 얘기, 서울 용산의 기관고를 습격해서 간부를 잡아내서 모두 죽여버렸다는 얘기죠. 그 다음에 어떻게 됐습니까.

▲ 그들은 공산당 간부입니다. 남로당 간부와 전평 간부, 조선민청 간부 등 8명…… 그때 죽은 사람의 기록은 책에 있으니까. 아무튼 그 후에 나는 쌀을 구하려고 기차를 타고 지방엘 내려갔어요. 그래서 석탄을 때는 화부, 기차 운전수, 침목을 깔아본 사람은 전부 손들어라 해서 이들과 침목을 싣고 가는데 대전 채 못 가서 무슨 고개가 하나 있었어요. 거기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총으로 막 갈기는 거야. 나는 담요 하나 덮어쓰고 부들부들 떨다가 밤에 산으로 기어올라가는데 계속 총을 쏴요. 그래서 숨으려고 굴속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경찰도 사실상 나를 막 죽이려고 들지는 않거든요. 해방 이후에 뭐 때문에 죽여요? 저희들도 반공정신이 철저할 때가 아니예요?한편 경찰은 내가 인계해준 2천 몇 백 명을 아무리 두들겨 패도 책임자가 안 나온단 말이죠. 그래서 ‘그 책임자가 어디 갔느냐’ 하니까 ‘김두한 씨가 휘발유로 불 놓는다 해서 8명을 건네줬습니다’라고 대답한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나는 쌀을 구해 싣고 오니까 CIC와 MP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관총을 딱 들고 와서.

내 동지들은 벌써 들어가서 있는데, 비밀녹음장치라는 게 있는지 몰랐지요. 동지들이 ‘철도노조 간부 8명 죽인 것 아무리 고문해도 불지 마라’고 말한 게 녹음이 다 되어 있는 거예요.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나를 넘겨달라는 거예요. 그러나 미국 놈들한테는 내가 강하거든요. 미국 사람들은 분명히 나를 고문 못 하니까. 한국 사람 성격 중 나쁜 게 하나 있어요. 자기 민족은 막 잡아먹고 막 누르려고 하면서도 외국인한테는 예쓰, 예쓰! 하는 거야. 내가 미국놈한테… ‘뭐야! 폭동이 일어나서 우리 동지들이 총 맞아가면서 싸우느라 38명이 죽고 6백30여 명이 팔다리 끊어져서 지금 병원에 있는데, 죽은 사람의 장례식도 제대로 못 지내고 있는데, 내가 장례식을 지내야 할 것 아닌가’라고 했더니 ‘그런 게 아니다. 그 사람들만 인수해줄 것 같으면……’라며 빙그레 웃어요.

CIC 사람들이 ‘잠깐 오시오’ 그래요. 나는 ‘그러지 마라.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저쪽은 18명밖에 희생 당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수백 명이 희생 당했다. 문제를 일으키면 나도 일으킨다. 우리 희생자가 많이 났으니까. 그때 6백40 몇 명 가운데서 총 맞고 삼지창으로 찔리고 삽으로 맞고 골 터졌는데, 총에 맞아 죽은 사람만 해도 40여 명이란 말이야’ 하고.

이렇게 해서 남조선에 대한 공산주의 최후의 혁명인 남조선 철도 파업을 복구시킨 겁니다. 그때부터 미군도 전평이 나쁜 줄 알고 공산당을 견제하자면서 불법화시킨 겁니다. 내가 이 다음에 책으로 낼 거지만, 지금은 내가 습격하는 것 많이 들으셨지만, 전국의 경찰서가 다 습격당했고, 지서와 각 관공서 등 우익 진영이 학살 당한 것이 수천 건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 이상으로 공산당한테 당했다 이 말이에요. 그거 여기서 다 말할 수 없거든요. 이 다음에 우리가 공산당에게 당한 것만 쭉 얘기해도 석 달은 걸릴 거요.

─ 우익 진영이 당했다는 이야기보다 이때까지는 김선생이 남을 두들겨 패는 이야기였는데 김선생이 맞았던 얘기는 없나요?

▲ 맞았죠. 전쟁을 하는데 안 맞을 사람 어디 있어요.?

─ 맞았던 얘기 한번 해보세요.‘아까도 보여 줬지만 머리에 탄환 자국이 있잖아요. 무릎에도 세 방을 맞았어요. 5번 피습에 총 3방을 맞은 겁니다. 공산당을 쳐부수고 승리한 다음에는 대개 우익 정당 사회단체들의 거물급들이 축하한다고 술을 한 잔 먹여 줘요.

그때는 밤 12시면 통행금지 시간인데 밤 2시쯤 끝나서 내가 여자하고 팔짱을 끼고 나가는데, 공산당 2명이 총을 가지고 쓰레기 줍는 사람으로 변장을 한 뒤 잠복하고 있다가 담에 딱 붙어서 슬슬 따라왔어요. 화신백화점으로 해서 한일관 음식점 그쪽으로 나와서 청진동 입구를 지나서 들어가는데 거기 장의사라고 있죠.

네거리가 있잖아요. 하나는 시청으로 빠지고 하나는 세종로로 빠지고 하나는 동대문으로 빠지고 하나는 경제기획원으로 빠지는 네거리가 있어요. 무교동 네거리 전차길. 거기서 양쪽에서 쏘는 거예요. 가까이에서는 못 쏘고. 탕탕탕탕……총알이 머리에 맞으면 딱 멎는 게 아니고 맞아서 떨어진다구요. 피가 철철철 나는 걸 보니까 기생이 붙들고 벌벌 떨고 울어요.

그렇게 한 번 맞은 일이 있고, 또 다른 얘기는 중앙방송국에 갔다가 명동에서 술 한 잔하고 남산으로 올라가는데 걔들이 무장을 하고 있다가 약 30m 바깥에서 장총 38구경식으로 뒤에서 갈겼어요. 언덕 위로 올라가다가 무릎에 탁 맞았는데 나가 떨어졌죠. 그래서 지금도 왼쪽 다리는 완전히 성하질 않아요. 그것 때문에 내가 걸음을 제대로 못 걸어서 4백m 이상은 자동차를 타고 다녀요. 모두 다섯 번 피습에서 3번 총 맞고 2번 빗나갔습니다.’

(입력일 : 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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