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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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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49화 전국 노동조합 평의회
김두한 편
제49화 전국 노동조합 평의회
1969.12.13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지금까지 훑어보면 좌우 합작을 세력별로 깼다는 얘기를 했고 그 다음에 학생 운동과 관련해서 학련 이야기를 했는데, 김두한 활동의 하일라이트는 파업을 했던 노동조합과의 대결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당시의 노동조합이 전평이라고, 전국노동조합평의회인데 그 밑에 여러 가지 산하 계열별로 노조들이 있었지요. 거기에 관련된 얘기들을 좀 해 주시죠.

▲ 세계 혁명사에서 어떤 나라든지 평민운동을 보면 농민이 선동자가 아니고 노동자가 먼저 나오거든요. 어떤 정권을 타도하든지 간에 도회지를 중심으로 삼은 노동자가 먼저 들고 일어나서 파업하는데 그게 제일 골치 아픕니다. 외국의 예를 봐도 그렇습니다.

8월15일 해방이 된 뒤 노동조합 중 가장 센 곳은 노량진에서부터 인천까지입니다. 노량진, 영등포, 소사, 오류동, 부평, 인천 등 공업지대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일본이 폭격을 맞아서 자꾸 깨지니까 전국 군수공장을 뜯어가지고서 부평, 인천 일대에 전부 다 시설한 거예요. 그러니까 대동아전쟁을 완수하는 일본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깨지니까 군수 공장을 부평으로 가져왔단 말이에요. 그 당시에 노동자만 40만 명이 넘었어요. 그때는 노동자가 아니고 징용장으로 끌려온 거예요.

둘째는 전기 회사로서, 조선전업이 있고 남전이 있고 경전이 있었어요. 지금은 통합을 해서 한국전력회사가 됐지만. 그런데 여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단 말입니다. 우선 제 1차로 동대문 바로 옆에 있는 경전을 포위해 버리고 명단을 가지고 조사해서 파업분자들을 집어냈어요. 그들을 전차 차고에 끌고 가서 묶어놓고 쇠파이프로 내리치는 거예요. 처참하죠. 아비규환이지…… 그때 얼마나 다쳤냐 하면 4백 몇 십 명쯤 될 거예요.

그 다음에 발전소 운전대를 기름으로 닦고 전기를 넣어서 전차도 움직이고 전기도 내보낸 겁니다. 그후 우리 진영의 노총과 대한민청과 결성식을 해버렸죠. 저쪽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했죠. 싹 달아나 버렸어요. 공산당이 하나도 없도록 했는데 오전무라고 남로당 출신이 한 명 있었어요. 오전무 집이 그때 낙산 들어가는데 신설동이라고 있죠.

─ 창신동?

▲ 창신동 골목 속에 쑥 들어가면 커다란 기와집이 있는데 거기서 살았어요. 밑에 동생들 시켜서 들어오는 걸 차 버렸어요. 완전히 죽이려고 했는데 빗나가서 왼쪽 팔만 떨어져서 병신이 됐어요. 결국 경전 파업은 일진회에서 깨끗이 청산했습니다. 그러면 어디만 남아 있었느냐 하면 전국의 철도 노동조합과 운수 동맹이에요.

철도 노동조합과 노량진에서부터 영등포까지 있는 군수 공장 40만 명,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서울, 경기도, 강원도와 충청북도만 내가 맡고 충청남도와 전라남북도는 이동지가 맡았어요. 이동지는 5·10 선거를 추진할 때 좌익들이 수류탄을 던져서 겨우 살았지만 몸에 퍼렇게 상처가 남아 있어요.

또 허동지는 대구에다 거점을 뒀는데 5·10 선거 전에 수류탄에 맞아서 왼쪽 팔이 날아가 버렸어요. 비참하죠. 그렇다고 누가 취직 하나 안 시켜주거든요. 그리고 이제 경상남도에서는 부두 노동조합이라는 게 있었어요. 물자가 인천하고 부산밖에는 안 들어왔거든요. 대한노총 최고위원으로 있는 설원도 씨라는 분이 경상남도 전 지역의 공산당을 담당하고 있었고 각 지역의 담당은 달랐어요.’

─ 그때 전국적으로 지휘하는 것은 누구였어요?‘그건 이박사죠. 이승만 대통령이죠.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과 백범 선생을 국가 최고의 영수로서 국부로 모셨으니까. 그때 공산당과 싸울 때는 단일 전선이니까 최고의 영수 두 분의 명령에 의거해서 행동했지요. 거기에 참모되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한민당으로서는 머리 좋은 장덕수 씨, 그리고 이승만 박사 비서실장이었던 공화당 의장 서리 동산 윤치영 선생, 그런 분들이 참가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장덕수 씨, 윤치영 씨, 돌아가신 장택상 씨, 조병옥 박사 등이 있었지만 그 분들은 생각만 하면 되고 실제는 우리가 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제 일선 부대에서 공산당만 전부 처치하고 부수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동아일보에서 방송하면서 좀 대단히 안 됐지만 신문사라는 게 골치 아픈 거거든요. 사실 신문 기자를 정면으로 때렸다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고 나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그때 명령할 때 신문 기자만은 전부 뒷통수를 치라고 그랬어요. 절대 누가 쳤는지 모르게……

▲ 당시 조선인민보, 노력인민, 중앙일보라고 있었습니다. 조선인민보는 4.19 전에 민주당이 있던 자리에 있었죠. 그리고 노력인민은 며칠 전에 청계국민학교가 팔렸다고 그러는데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리고 중앙일보는 종로 5가, 종로 6가의 메디컬센터 건너편의 큰 공장 안에 들어가 있었단 말이에요. 비밀공장이었어요.

(입력일 : 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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