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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48화 우익학생단체 통합 이철승 전국학영만탁운동
김두한 편
제48화 우익학생단체 통합 이철승 전국학영만탁운동
1969.12.12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어제 민주주의민족전선 서울 경기지부 결성 대회 현장을 습격해서 여러 간부들을 잡았다가 장택상 씨가 와서 다시 놓아줬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 장택상 씨가 인솔해 갔죠. 못 죽이게.

─ 그 이후에 괜찮았습니까? 그런 습격을 했으니 잡혀간다든가 하진 않았나요?

▲ 그때는 옆으로 지나가는데 저 사람들이 먼저 돌멩이를 던졌기 때문에 싸움이 붙었다고 우리가 생떼를 썼죠. 왜냐하면 대한독립청년단이 안국동에 있었거든요. 우리가 먼저 한 게 아니다 했기 때문에 무사히 넘어간 거예요. 미국 사람들도 할 수 없죠. 우리가 막 들어가려 하니까 걔네가 먼저 돌멩이를 던지는 것을 미국 사람들도 봤거든요. 어쨌든 그 문제로 한참 시끄러웠습니다.

─ 그러면 좌익 학생들 쪽은 공산당이 지하로 들어갔으니까 수그러들었지만 우익 학생들의 학련이라는 게 있었잖아요. 그 학련이라는 게 여러 갈래라서 통합이 잘 안 됐는데 어떻게 통합시키셨나요?

▲ 그때 대학이라고는 연희대학과 서울대학밖에 없었어요. 고대도 창설이 안 됐을 때니까. 그러니까 좌익들이 서울대학을 접수했어요. 국대안 반대라고 하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대단히 좋은 얘기인데 이게 좌익이 주동한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교문을 딱 막아 놓고 학생들을 혼냈어요. 한 번 맞으면 다시 공산당 안 한다는 거예요. 서울대학 병원의 병실이 맞은 학생들로 꽉꽉 들어차는 겁니다.

그런데 이때 제일 골치 아픈 게 뭐냐 하면, 통일 학생 청년, 한국 학생 청년과 서북 청년 학생 등 여러 가지 우익 진영의 학생 단체가 한 대여섯 개가 됐는데 이게 말썽이에요. 왜냐하면 이게 한 데로 뭉쳐서 단일 전선의 체제로 나가야 힘이 있는 건데, 반탁 운동을 해 나가는데 중구난방이고 서로 안 믿어요.

그때 서울대학에는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을 했고 신문사 사장까지 한 손도심이라는 사람이, 연희대학에는 이동원이라는 똑똑한 사람이, 그리고 이철승씨가 있었어요. 그 중에 제일 열렬하고 투지 있고 나와 성격이 맞는 사람이 바로 이철승 동지였어요.

─ 고려대학의 이철승, 서울대학의 손도심, 연희대학의 이동원 이런 분들이……

▲ 그러니까 말로 해선 안 돼요. 지금이나 예전이나 한국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고 자기 세력이 있으면 안 뭉쳐진단 말이죠. 그래서 이철승한테 우익 진영에 있는 학생 단체들 말 안 들으면 막 패라고 했어요. 그때 김두한 부대가 들어온다고 하면 죽는 줄 알았거든요. 모두가 달달달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경찰서에서 공산당을 잡아 가지고 고문하다가 안 되고 골치 아프면 김두한 부대로 넘겨요. 나한테 넘어오면 죽으니까.

그래서 마음이 약한 공산당은 김두한한테 인계한다 그러면 거기서 다 부는 거예요. 우리 대한민청 반공청년들이 ‘어? 이 새끼가 안 불어?’ 그러면 벌벌 떨거든요.

그런데 조동지라고 육군 대령으로 제대한 사람이 있어요. 주먹이 세고 용맹이 있어요. 조동지한테 이철승 위원의 감찰위원이 되어 보호해주기 바란다고 했어요. 그때 주먹이 무척 센 조동지, 김동지, 이동지들에게도 말했어요. 특히 이동지가 주먹이 세요. 맞으면 즉사해요. 그 세 사람에게 파이프를 한 자루씩 주고 이철승 동지를 보호해 주기 바란다고 했어요.

경제적 지원도 하라고요.원래 학생은 학생을 테러하지 못 하는 법입니다. 노동자가 노동자 테러하지 못 하고 농민이 농민을 테러하지 못 해요. 그건 제 3자가 하는 거거든요. 한 동네에서 보고 한 직장에서 본 사람은 못 하는 법이거든요.

한 번은 이철승 동지가 와서 ‘사무실 하나 얻어주셔야겠습니다’ 라고 해요. 어디가 제일 좋은가 했더니 지금 신민당 자리인데 그때는 근로인민당이라고 좌경이 있었어요. 공산당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하단 말입니다. 이철승 동지는 저것도 우익 진영이 아닐까 했지만 내가 봤을 때 여운형 씨 집안의 누가 그것을 한 것 같아요.

지금은 그 분이 공화당에도 계시고 해서 얘기 안 하겠는데 그분이 거기를 지휘하고 있었어요. 그때 나는 직접 안 하고 경기도 지부에 있는 내 동지를 시켜서 했어요. 이들이 낮 11시에 그냥 들어가서 2층 아래로 집어던진 거예요. 아래층은 아스팔트니까 그냥 피바다가 되는 거예요. 쑥밭이 됐어요. 간판 떼고 다 가지고 달아났으니까.

그렇게 해서 이철승 동지의 사무실로 만들어 줬어요. 지금은 신민당 자리지만. 그래서 이철승 동지가 이제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전체를 통 틀어서 전학년위원장을 맡고 반탁위원회의 최고 학생대표를 맡아 일을 많이 했죠.

─ 이철승 씨를 그 전부터 알았어요?

▲ 해방 후에 알았죠.

─ 해방 후에 알아서 그 사람과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까 말한 것처럼 이론보다 행동이…… .

▲ 자기 성격과 이론적으로 맞는 사람이 있으니까. 연희대학교 출신들은 주먹 쓰는 사람이 아니거든. 똑똑하고 책임감은 있지만 이런 사람과 더불어 어떻게 공산당과 싸우느냐 말이에요. 그러니 차라리 씩씩한 이철승 동지가 낫다고, 그래서 둘이 붙어서 밀고 나갔지. 이론 가지고 언제 싸워요? 다 도망가면 어떻게 하냐 말이야. 그것도 하나의 대 조직인데. 학생조직인데. 그래서 결국 이철승 동지가 꽉 쥐고 반탁투쟁하면서 그 조직으로 공산당 학생 조직을 부순 겁니다.
의용을 원하면 우리측 동지들이 학생복으로 갈아입습니다. 빵떡모자 쓰고 학생같이 하면서 들어가요. 싸움은 하는 사람이 하니까. 유도, 권투, 박치기를 하는 내 동생 몇 백 명이 학생복을 입는데 단추가 안 맞아요. 체격이 커서 겉에만 걸치고 들어가는 겁니다.

─ 아까 얘기한 부위원장, 또는 감찰부장, 감찰위원장 이런 사람들을 학교에 보낸 건가요.

▲ 나하고 있던 동지를 그쪽으로 보냈죠.

─ 당시에 학생은 아니군요, 그 사람들이.

▲ 그렇죠, 학생은 아니죠. 조동지는 나중에 고려대를 졸업했죠.

(입력일 : 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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