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익의 연합 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대회가 열리길 기다렸다가 이 대회를 마치고 나오는 박헌영을 저격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하려다가 어제 그쳤습니다.
▲ 박헌영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입니다. 소위 말하면 제 1 서기예요. 그때는 공산당이라고 하는 것이 완전히 조직되어 있지 않았고 북한에 있는 김일성은 가짜니까 박헌영이 국제공산당에서 인정하는 한국책임자예요. 그런데 우리가 염동진 씨와 회담을 하는데 거기서 미스가 나는 거예요.
염동진 씨가 ‘두한 동지, 두한 동지가 잡든지 우리가 잡든지 간에 죽이는 사태는 보류해 놓으슈.’ 라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 사람이 하나 둘도 아니고 종로통이 번잡한데 어떻게 보류해 놓습니까?’ 라고 물으니 염동진 씨가 ‘이걸 보류해야 공산당 세포 조직이 나온다. 세포 조직이 나와야 전부 일망타진하지. 박헌영이든지 여러 공산당 사람들이 종로경찰서나 각 경찰서 유치장에서 당해 봤지만 화작으로 배까지 쑤시고는 지지고 매달고 들어치고 전기찜질하고 고춧가루 타서 먹여도 불지 않는다. 들것에 실려나가도 말 안 해.
그러나 나는 독특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천하장사라도 불 테니 죽이지 말고 산 채로 잡아와야 효과가 있다’는 거예요. 큰일났어요. 난 갈기는 거지,거기서 인정을 보여서 뭐하냐 이거야.아무튼 서울예식장 맞은 편 자유당 자리에다가 박헌영이가 새 차를 갖다 놓은 거예요. 그런데 CIC에 김 철이라는 동지가 있어요. 나하고 반공 임무를 같이 하는데, 그 동지가 나한테 박헌영이가 반드시 여기에 나온다 그래요. 옥류장이 있는 골목 쪽에 쏙 들어가 보면 대포집이 하나 있어요. 왕대포집이라고 하나 써 붙인 게 있어요. 거기 들어가서 ‘나는 김두한이라는 사람인데 누구를 미행하려고 여기서 지켜야 되겠어. 우리는 순전히 문간에만 있으니까 애국적으로 당신이 나를 협조해 주면 되거니와, 안 되면 알지?’ 라고 하니까 ‘선생님, 쓰십시오’ 하고 순순히 응해요. 그래서 당분간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주의를 줬어요. 왕대포집은 조그만 집이에요. 방이 3개밖에 없어요. 길이로 약 40m 되나. 옥류장에서 나오면 좌측은 없고 우측으로는 대포집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그 집에는 8명이 들어가면 딱 맞아요.
대문을 열어놓으면 누가 오는 지 보일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보니까 4명이 박헌영을 가운데 놓고 보호해요.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니까. 박헌영 일행이 쓱 지나가는 것을 뒤에서 둘러 쌌어요. 꼼짝 못 하는 거야. ‘꿈쩍하면 박헌영이 죽어……’ 라며 위협한 뒤 박헌영의 허리를 붙들고 뒤축을 잡아 가지고 끌고 나갔죠.그때 백의사 사령부는 낙원동에 있었어요.
그런데 재수가 없어서 종로경찰서 앞을 지나게 됐어요. 거기가 미국 사람들이 군정 재판을 하는 곳이에요. 그 앞을 지나가지 않으려면 안국동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거기 지나가면 인사동 네거리가 되잖아요. 내가 그때 머리를 잘못 써서 그런 거야.
우리도 자동차 하나 가지고 갔어야 하는데. 그때는 자동차 하나 산다고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기껏해야 오토바이였죠. 내가 잘못했어요, 나이가 어린 탓으로.아무튼 박헌영의 옆구리에 칼을 들이대고 종로경찰서 앞으로 걸어가라고 하니까 박헌영이 대담하게 걸어가요. 그 앞에 가니까 박헌영이 무엇을 확 던져요.
보초 서던 놈이 영어로 뭐라고 소리지르고 내가 막 휘두르니까 박헌영이 군정재판 대위실에 뛰어들어가서 ‘저놈들이 나를 암살한다’고 소리를 친 겁니다. 우리는 인사동 거리를 그냥 뛰었단 말입니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냥 갈기면 되는 걸 놓쳤다 이겁니다. 결국 박헌영이는 변장해서 개성에서 송악산을 넘어 도망가 버렸어요.
(입력일 : 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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