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으로 봐서 어느 게 선후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오늘은 여운형 씨와 관련된 얘기를 들려 주시겠습니까?
▲ 인민공화국 대통령이요?
─ 처음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여운형 씨 밑에 가서 청년단을 만들고 행동대처럼 움직임이지 않았어요?
▲ 치안을 맡았죠. 치안을.
─ 그렇죠. 치안을…… 그러다가 헤어져서 노선을 완전히 달리 하는데, 여운형 씨를 납치도 하고, 잡아서 어떻게 하고, 협박도 했다고 그러는 이야기를 어디서 읽었는데…… 그 이야기 좀 하시죠.
▲ 그것은 저…… 내가 볼 때 여운형 씨는 완전한 좌익이 아니예요.두 번째 건국준비위원회가 대회를 열었을 때 좌익이 쳐 가지고 우익이 3할밖에 안 남았거든요. 그때 미군이 들어오면서 건준위를 해체했지요. 그 가운데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이제 우익 진영 정당 사회 단체를 만들었죠. 그런데 여운형씨는 이제 좌익들한테 둘러싸였어요. 자기 몸도 마음대로 못하게 되는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데, 인민공화국의 대통령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여운형 씨하고 김규식 박사가 좌우 합작을 한단 말예요. 그러니 이 좌우 합작이라는 게 혼란이 일어납니다.루즈벨트 대통령이 죽고 트루먼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 장개석 정부의 고문관으로 있던 웨드마이어 준장이 있는데요.
─ 웨드마이어 준장이요?
▲ 웨드마이어 준장한테 얘기를 해서 국공 합작을 시켰단 말이예요. 내란을 방지하고 연립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그런데 웨드마이어가 약하니까 마셜 대장을 보냈거든요. 나중에 그 양반이 국무장관이 됐지만. 마셜 대장을 보내서 국공 좌우 합작을 시켰다는 거죠. 이러니까 그냥 농민군들이 들고 일어나고 장개석 총통이 총 한 번 못 쏘고서 남쪽으로 밀려버렸죠. 대중국 쪽도 이런데 우리 나라에서도 좌우가 혼란하다 이 말이죠. 그러던 중에 신당동 부자촌에 있는 홍내식 집에서 김규식 박사하고 여운형이 좌우 합작 회의를 한다는 정보가 들어 왔어요. CIC에서 정보를 주었죠. CIC에도 우익 정보원들이 있습니다.
─ CIC라면 미군 CIC?
▲ 미국 CIC지요. 그 우익 정보원들이 공산당한테 재산 다 뺏기고 부모들 죽고 그러고 왔으니 공산당과 천하의 원수 아니요? 그래서 몇 날 몇 시에 본다는 정보를 준 거죠.
─ 당시 미국 측에 하지 중장의 정치 고문이라는 버치라는 젊은 중위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중심이 돼서 김규식 박사와 여운형 씨를 합작을 시키고, 극좌와 극우를 누르는 이런 방식을 상당히 추진 했었죠?
▲ 그 사람들은 계급장만 육군 중위지 실제로는 특별 계급장이에요. 마음대로 붙였다 떼었다 해요. 거기는 특수 부대니까.
─ 그때 당시에 미국 측의 현지 방침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는 건가요?
▲ 그럼요. 트루먼 대통령이 극동 정책에 의거해서 중국에서 국공합작을 한 뒤에 한국에서도 극우 극좌를 제외하고 중간 노선에다 정권을 주라고 했고, 그 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을 받아서 주둔군 사령관과 군정 장관이 정책을 수행하는 거예요. 그러나 중간 노선한테 정권을 주면 우리는 적화된다 이거예요. 하루 아침에 조선은 적화된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것을 먼저 부셔야겠다. 그리고 뚜렷한 선을 그려야겠다. 이것은 여운형 씨를 죽이느냐 그렇지 않으면 납치를 해서 한 번 협박해 보느냐 하는 문제였죠. 그러다가 죽이는 건 나중에 죽이고 한 번 협박을 해 보자. 이러고 있는데 정보가 딱 들어온 거죠.그래서 상하이라고 하는 동지하고 나하고 김동지, 고동지, 전동지하고 같이 갔어요. 신당동 들어가는 입구에서 11시쯤 되었을 때, 조선 총독부 정무 총감이 타던 미국 포드차가 쓱 오더라구요. 멀리서 보니까 운전대 옆에 학생복 입은 체격 좋은 놈이 세 명이고 운전수까지 넷이서 여운형을 보호하고 있더군요. 커브를 돌려고 하길래 둘러싸면서 권총을 들이댔죠, 그냥. 문 열고 확 덤벼들면 안 되거든요. 총을 겨누고 너희들이 움직이거나 총에 손만 대면 여선생은 그냥 쏴버린다 그랬죠. ‘우리가 여선생을 죽이려고 했다면 그냥 쏘았을 거다. 몇 마디 얘기만 물어보려고 하는 거다. 너희들 생각해서 암살하지 않을 테니까 열어라.’자동차를 옆으로 돌려서 산비탈 위 솔밭 있는 데에 갖다 대고 ‘여선생, 나오시오.’ 한 뒤에 여 선생을 끌고 산으로 올라갔어요. 솔밭 위에 올라가서 ‘여선생, 내가 조선의 청년으로 선생을 무척 존경하는 사람이고 지금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좌우 합작을 하면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이 좌우 합작을 그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만일 좌우 합작을 다시 하신다 그러면 아까 내가 문 열었을 때처럼 그냥 쏴 버릴 겁니다. 사실은 선생을 오늘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소. 그러나 내가 선생을 존경하는 만큼 선생을 아끼는 마음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선생은 좌우 합작을 이제부터 탈퇴해 보시오.’ 이랬지요.그때 여운형 씨가 하는 말이 ‘젊은 청년, 기백이 좋군. 나하고 5분간만 얘기하세. 나도 애국하자고, 나라를 위해서 하자는 건데 왜 내가 나라를 망치겠나. 5분만 시간을 주게.’ 그래서 내가 안 됩니다 하면서 총을 딱 댔지요.‘됩니까? 안 됩니까?’ ‘내 안 하겠소.’ ‘가십시오. 남자로 약속하지 않으면 이 다음에는 내 정식으로 쏩니다.’ ‘알았소.’ ‘내가 선생을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존경하는 겁니다.’
─ 여운형 씨는 그 전에부터 알고 있었죠?
▲ 알죠. 서울에서 그 양반 왔다 갔다 하고 한척 빌딩 앞에서 봤죠.
─ 건준위 때도 알아 가지고 ‘어디 가서 무장 해제 하라’ 뭐 이랬다던데……
▲ 일제 때도 알고, 또 해방 초 건국준비위원회 때도 알고. 일제 때 형무소 예비 검색할 때 여운형 씨하고 한 칸 건너 떨어져서 있었고 하니까 잘 알죠. 서로 알고, 또 내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고요. 마스크를 하고 갔었어요.
─ 왜 마스크를 해요?
▲ 내 얼굴을 안단 말이에요.
─ 아는 사람이니까 얘기를 할 수 있지요.
▲ 아니 안 되지요. 하지 중장한테 들키면 체포령이 내린단 말이에요. 나는 곰보딱지라 한 번 보면 안 잊어버려요. 그런데 여운형 씨가 헤어지면서 내 왼쪽 손을 봤어요. 왼쪽 손에 파란 점 있죠? 여기 점 있죠?
─ 네.
▲ 이걸 봤단 말이에요. 무심결에 그걸 본 거예요. 이렇게 무심결에 바짝 대니까 왼쪽 손바닥에 파란 점 있는 것을 봤단 말이죠. 점이 크잖아요. 콩알만하고…… 근데 이 양반이 쓱 뒷걸음질 하다가 축대에서 떨어져 버렸어요, 그냥. 그래서 다리하고 허리를 다친 거예요. 그때 괴한한테 피해를 당했다고 호외가 나고 벽보가 하얗게 붙고 난리가 났었죠. 라디오 방송에 막 나오고……
─ 아까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왔다고 그랬는데 지령은 진짜로 받은 겁니까?
▲ 아니죠. 그때 우리가 여러 사람이 전체 회의를 할 때 죽이지는 말자고 결의했죠. 좌우 합작에서 탈당을 하라고 위협만 하고 죽이지는 말자고 그랬지요.
(입력일 : 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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