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터는데, 어디 가서 제일 애를 먹었는고 하니 전에 일정 때부터 고리 대금을 해서 부자인 사람이 있었어요. 한 번은 그 집을 털려고 담을 뛰어넘어 들어갔단 말이예요. 그 집은 크질 않아요. 조그만 해요.
─ 고리대금하는 사람 집 말이지요?
▲ 네. 근처 구멍가게에서 사다리 하나 바깥에 둔 걸 가져다 대고 넘어 들어갔단 말예요. 그때 넷이 들어갔어요. 안방에 들어가 보니까 식모하고 심부름하는 계집애하고 같이 자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건너방에 갖다 두고서 이부자리 끄집어다 푹 덮어 놓고선 위협을 했지요. 노인은 그때 한 70세 됐고 안노인네가 60세 약간 넘고 그랬단 말예요. 그래서 내가 권총을 들이대고 ‘우리 나라를 위해서 돈을 써야 되겠다. 강도는 아니다. 이 다음에 밝히마. 당신네 집에 돈이 있는 줄 알고 왔다. 돈 내 놔라.’하고 말했지요. 그런데 아, 이 놈의 늙은이가 아주 지독한 늙은이란 말야. ‘당신이 찾아봐라. 돈이 어디 있나. 있다고 해도 몇 만원 있을지언정 그런 고액은 없다.’ 분명히 같은 개성 사람이 돈이 있다고 가르쳐 줬는데 없다고 한단 말이에요. 가만히 보니까 아주 이 노인네가 배짱도 있고 칼칼한 게 안 되겠어요.‘고동지, 빼라!’ 그랬거든. 그랬더니 옆에 있는 안노인네가 말하길 ‘여보, 영감. 죽은 후에 돈이 무슨 소용 있소. 돈이 무슨 소용 있소……’ 그래요. 그래서 ‘야! 이래도 안 줄래! 잘라.’ 그랬더니 ‘아이구, 저기 있어요.’ 하고 벽을 가르킨단 말이죠. 글쎄, 거기에 늙은이가 해방되고 혼란하니까 돈을 벽에다 넣고서 마분지로 싹 발라버렸단 말이에요. 돈이 얼마인 줄 알아요? 이만한 전대로 가득 가져왔으니까. 거기다 다 넣었더니 나중에 또 말하길, ‘야, 이 놈아! 도둑놈도 인정이 있지, 좀 주고 가라.’ 해요. ‘에이, 이 도둑놈의 영감 같으니라고…… 그런데 도둑놈이 나보고 도둑놈이래.’ 십만 원짜리 한 뭉치를 던져주고서는 돌아와서 세어 보니까 670만원이야. 그래서, 마지막으로 털었어요.
─ 그런데 말이죠. 미리 ‘좀 돈 내시오.’ 이렇게 말을 해 보지, 말도 해 보지 않고 우선 협박부터 하고 뺏어 왔어요?
▲ 왜 그랬냐면, 그때가 바로 8월 15일 해방 후예요. 그 사람들은 어제까지도 대일본 제국에 충성을 하고, 일본 천황이 저희 왕인 줄 알았던 장사꾼들이란 말예요. 장사꾼이라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예요. 만약에 ‘지금 괴뢰군이 여기에 침범을 해서 우리 공동으로 다 죽게 됐다. 그러니 사업하는 사람들 당신들 재산으로 전부 무기를 사들여서 우리 나라를 지킵시다.’ 이렇게 광고하고 라디오 방송해도 단돈 백만 원 가지고 올 사람은 하나도 없다구요. 차라리 제주도에서 물에 다 빠져 죽을지언정. 지금 수재, 여기저기 물난리 났잖아요? 신문에다가 광고 이만큼 내주어야 3만 원, 4만 원 체면상 내 놓지, 안 내 놔요. 물론 정당, 여당 같은 데다가는 정치 자금 1억 갖다 주고 10억 벌려고 얼른 내놓지만, 나라를 위하여 자선 사업을 하거나 민주화를 위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돈 내 놓으라 하면 안 내 놔요. 시간도 없고, 또 내 놓는다고 해 봤자 1, 2만원 아니면 10, 20만 원밖에 없어요. 그것 가지고 안 되니까, 돈보다 생명이 급하니까 팍팍 내놓거든요. 빨리 해야 되거든요. 이래서 전부 갖다 쌓아놓는 거예요.
─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하셨나요?
▲ 돈은 자꾸만 들어올 거 아니예요? 계속 털었는데. 이걸 검찰청하고 장택상 씨가 뒷구멍으로 전부 조사한 거예요. 그랬더니 술 먹냐, 계집질 하냐, 도박 하냐, 돈을 어디다 쓰냐, 그래요. 그런데 나는 그것을 전부 이화장에 있는 창고로 날랐어요. 그래 가지고 그것을 내 줄 때는 전부 이박사의 사인을 받아 가지고 내 주는 걸로 한 거예요. 지방 간부들은 모르거든요. 강도짓한 돈으로 갖다 줬다고 하면 권위가 없으니까, 돈은 내가 도둑질했지만 명령을 지휘하는 데는 이승만 박사의 권위를 세워준단 말이에요. 애국자의 권위를. 그러면 이박사가 내 입회 하에서 돈 내 주면서 도장 딱딱 받아 가지고 내 줬죠. 그러니까 윤치영 씨도 ‘참, 두한 동지, 자네 훌륭하네’ 이래요. 지금 공화당 의장 서리 말이요. 그 공화당 의장 서리가 지금도 나를 좋아하는 게 그거예요. 역시 저 사람이 안동 김씨 가문이고 혁명가의 아들로서 피해 끼치는 나쁜 일은 안 하는구나 이런 거죠. (훔친 돈) 한 뭉치 떼어먹으면 팔자 고치는 거 아니요? 이렇게 해서 그 돈을 가지고 한날 한시에 반탁 운동이 일시에 3·1운동 같이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반탁 운동이 8개월 갔죠. 나중에는 각 극장 주인한테, 포목점 이런 사람들한테 막 명령을 내렸죠. 5만원, 10만원 걷어 가지고 1천만 원 되면 미리 밀고. 전부 돈 싸움이니까. 그때는 공산당하고 싸울 때니까요. 이렇게 8개월 동안 반탁을 하니 반탁은 성공했죠.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4개국 통치에 대한 것은 그때 완전히 철폐된 겁니다.
─ 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얘기지만, 밤에는 가서 협박을 하고 낮에는 받으러 가고 말이죠. 그 사이에 경찰이 움직인다든가 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어요?
▲ 그러니까 나중에 입장이 대단히 곤란하니까 장택상 씨가 수사과장하고 수사청으로 들어오라고 해요. 내가 예감이 있을 것 아닙니까? 장택상 씨도 영리하고 조병옥 씨도 영리한데. 해방 후 일본놈한테 돈 꾸운 놈들이 돈 안 내놓고 구두쇠 하니까 김두한이한테 혼 좀 나 봐라 그래서 눈 딱 감은 건데요. 나중에 그 사람들이 경찰이 가만히 있으니까 군정 장관 하지 중장한테 항의를 했단 말예요. 부자들이. 그래서 입장이 곤란하니까 나를 경찰청으로 불렀어요. 그래 가지고 그때 아까 얘기한 것처럼 민주화를 위해 도장 찍은 거다 해서 정부에서 큰 도장까지 집어넣은 거예요. 가방 딱 펼쳐놓고 난 제시했어요. 우리는 이렇게 해서 이렇게 쓴 거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내가 옛날에 장박사한테 뭐라고 했습니까? 이건 독립 운동이다 이 말이요. 이건 하나의 혁명 운동이나 애국 운동이 아니라 독립 운동이야. 나라를 만드는 독립운동인데 군자금을 걷은 거라 이 말이지요.내가 처음에는 협박을 했지만 나중에는 그 사람이 동의를 했고, 그 증거로 사무실에 가서 받았지, 칼 갖다가 거기서 받았냐 이 말이요. 사무실에서 거기다 수표로 받았단 말이죠. 조흥은행 수표로 받아 가지고 정당하게 도장 찍어서. ‘우리가 지금 거창하게 반탁 운동이 일어났는데 어느 놈의 자식이 그러느냐’ 하면서 좌우를 쓱 둘러보니까 저쪽 응접실에서 한 대여섯 명이 모여서 벌벌 떨어요. 와이셔츠 확 제치고 수갑 찬 손 양 쪽에 두 개의 권총이 반짝 반짝 하니까, 장택상 씨가 ‘아니 이 사람아, 내가 지금 자네가 돈을 잘 썼나 물어보는 거지. 자네 참, 나가 있게.’ 하더군요. ‘저 자식 성질도 급하다’며 빙그레 웃어요. 난 시침 떼고 화장실 가서 껄껄 웃었지. 그랬었죠.
(입력일 : 2007.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