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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33화 좌익의 단체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분쇄
김두한 편
제33화 좌익의 단체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분쇄
1969.11.21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해방 이후 김 선생님 활동이 항상 경찰과 관련되는데, 경찰과 함께 서로 의논하면서 일을 같이 해나간 건가요, 아니면 경찰의 일을 반쯤 청부 맡아서 하는 그런 관계였나요?

▲ 공식적으로는 경찰과는 관련이 없는 거죠. 왜냐하면 미군정 하에서 경찰은 중립을 지켜야 하니까요. 하지만 조병옥 박사와 장택상 수도청장은 공산당을 아주 싫어하고 그들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개인적으로 내게 부탁한 거죠.

─ 또 경찰이 공산당을 잡아 넣을 만한 힘도 없었던 거죠?

▲ 그렇죠.

─ 예술가 동맹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중앙극장 폭파 사건도 얘기를 하셨는데, 신불출이라는 사람, 지난번에 김선생님을 포섭하려던 그 사람 얘기도 나왔는데, 그 사람을 이북으로 쫓아보내신 적도 있지요?

▲ 신불출이는 만담가예요. 일정 때 연극을 할 때도 사회주의에 심취해 있었지만 해방 후에는 본격적으로 좌익 운동을 했지요.

그 친구가 일정 때 만담을 잘못해서 종로경찰서에 붙잡혀 간 적이 있는데 창씨 개명을 강요 받자 ‘애하라, 노하라’로 바꾼 적도 있지요. 아주 일본을 빈정거리는 이름이죠.

종로경찰서 유치장에도 같이 있었고 일정 때 술도 같이 마시고 얘기도 자주 해서 아주 친했지요. 그래서 신불출이를 시켜 나를 육군소장으로 임명하려고 포섭을 시도했던 거죠.

신불출이 해방 후 시공관에서 태극기를 가지고 만담을 했어요. ‘팔괘 이것은 4개국 연합군이다. 미국, 영국, 불란서, 소련. 태극의 빨강은 북한이고 파랑은 남한이다. 이러니 우리는 4개국 신탁 통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집어 치우라 소란을 피우고 무대 위로 올라가 따귀를 때리기까지 했지요. 이런 정보가 내 사무실로 들어왔어요.

이거 그냥 놔두었다간 안 되겠거든. 그래서 고동지를 불렀어요. 이 키가 조그만 독종은 사람을 죽이라고 해야 좋아해요. 그래서 내가 독일제 브라우닝을 주고 신불출의 집으로 데리고 갔어요.
‘저기가 신불출의 집이다. 저녁에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니까 나하고 한 잔 먹으면서 지키고 있자’ 이렇게 하고 기다렸죠. 낙원동에 있는 지금의 여관 자리가 바로 신불출의 집이에요.

11시 40분쯤 되니까 신불출이 들어와요. 우리 둘이 마스크 쓰고 쓱 지나가면서 고동지가 옆에서 총을 두 방 쐈어요. 총알이 신불출의 왼쪽 팔을 뚫고, 하나는 옆구리 스치고 나갔단 말이에요. 다시 갈기려는데 사람들이 뛰어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죽이질 못했지요.

나중에 신불출이 월북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기 있으면 죽을 테니까 도망간 거죠. 그 후로 예술하던 공산당은 거의 없어져 버렸죠.

(입력일 : 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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