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형일을 저격하셨다가 병원에서 살려주셨다고 했는데, 중앙극장에서 폭발 사건을 일으킨 적도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심형일 사건은 중앙극장인가요, 아니면 국립극장인가요?
▲ 국립극장이죠.
─ 심형일은 국립극장이고, 폭파 사건은 중앙극장인가요? 그 얘기 좀 곁들여서 해주시죠.
▲ 그 당시에 거물급의 경우는 이북으로 다 가버렸어요.
─ 그 심형일 저격 사건 이후에?
▲ 네, 심형일도 그냥 병원에서 도망갔죠. 퇴원하면 죽인다고 그러는 바람에…… 그때 박창훈, 황철, 문예봉 등 공산당을 위해 일하는 예술가 중 높은 사람은 다 도망갔어요. 문제는 좌익과 우익 어느 것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는 알쏭달쏭파들이었죠.
─ 그것은 언제쯤입니까? 저격 사건 이후에……
▲ 1946년 정초예요.
─ 그럼 중앙극장 얘기를 해주시죠.
▲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결정돼 남북을 4개국이 신탁 통치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처음에는 공산당이나 남한이나 모두 반대를 했는데 소련의 사주를 받은 공산당은 찬탁으로 돌아섰단 말입니다. 우리는 서울운동장에서 모여 반탁 운동을 하는데 공산당은 남산에서 찬탁 지지대회를 열었어요.
이 지지대회에 박헌영, 허헌, 이강국, 이주하, 김삼룡 등 공산당 거물들이 다 나오고 수만 명이 박수 치면서…… 농토는 농민에게, 주권은 인민에게 외치면서 삼상회의 결정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선동하는 거예요. 이걸 영화동맹에서 찍은 거예요.
─ 그러니까 찬탁 대회 실황을 찍은 사진을 돌렸다 이거죠?
▲ 그렇죠. 서울만 찍은 게 아니고 대전, 대구, 부산, 전주, 광주, 이리, 인천, 춘천 전국에서 공산당 대회하고 시가 행렬하는 것을 전부 필름으로 찍은 거예요. 이것을 중앙극장에서 상영했지요. 이층은 공산당 간부들 초청해 구경시키고, 아래층에는 입장료 낸 시민들을 들어오게 해서요.
부하들이 뛰어와서 하는 말이 ‘중앙극장에서 영화를 올리는데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냐?’ ‘암만 해도 빨갱이 같습니다.’ ‘그래?’ 내가 가봤더니 아무나 못들어가는 거예요. 조선민주청년동맹 애들이 전부 무장하고 쫙 깔려 있는데 서슬이 퍼런 거예요.그래서 저번에 들어갈 때처럼 권총 차고서 들어갔단 말이에요. 조동지를 비롯해서 모두 7명을 데리고 갔어요. 이 친구들 독한 사람들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조동지 같은 사람은 아주 더 독하죠.
그리고 영화를 보는데 만약 이 영화를 배급해서 전국적으로 상영하는 날이면 군중들이 공산당한테 쏠려 대한민국이 적화되겠다 싶더군요. 큰일 났지요. 그래서 이걸 부숴야 되겠다 생각했지요. 그래서 육군본부 뒤 동작동으로 갔습니다.
그 동작동 동회장 집에 연막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동회장 아들이 일본군이 물러가면서 연병장에 놔두고 간 연막탄을 주워왔는데 별로 쓸 일이 없어 집 마당에 보관해 두고 있었어요. 집에 가니 동회장은 없고 아주머니만 있어요. 그래도 대장님으로 통하던 시절이니까 거절을 못하지요. 서너 궤짝을 포대에 꽉꽉 담아 싣고 왔어요.
사무실에 갖다 놓으라고 하고, 지금의 태평로, 중앙일보사 자리에 중국상회가 있어요. 거기서 5전 짜리 딱총약을 팔아요. 엄지손가락보다는 굵고 한 뼘쯤 더 긴 것이 있어요. 정초에 터뜨리는 것, 그것을 한 상자 사고, 또 그것보다는 반 적은 것, 새끼손가락 만한 딱총약이 있어요. 그것은 일정때 10전에 백개 주는데, 그것도 한 궤짝 사고. 그리고 백지를 한 권 사 오라고 그랬어요. 백지 종이를 가늘게 손가락같이 오려서 그것을 꼬아서 딱총약의 심지로 하고는 철사로 동여맸지요. 그리고 휘발유를 쫙 뿌린 뒤 햇볕에 말렸어요.이걸 남산 약수터에서 터트려보니까 빨간 불꽃, 파란 불꽃이 튀면서 가관입디다.
한 10m씩 연기가 퍼지니까…… 눈이 하나도 안 보여요. 그리고 결사 부대를 조직한 거예요. 조동지, 이동지, 김동지 세 명에게 꽃다발 속에 감추고 들어가서, 무대 앞에 내가 동지를 따로 10명 배치할 테니 ‘수류탄 터진다’ 소리가 나면 무대로 던져라 이렇게 지시했지요.
(입력일 : 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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