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부랑자 출신들인데 무기를 주면 위험할 텐데요. ▲ 네. 그래서 처음에는 만일 무기를 가지고 사고를 저지르면 총살을 시킨다고 했지요. 너희는 부랑자가 아니라 일본군을 최초로 항복시킨 용감한 전사니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지요. 그리고 건국준비위원회에 연락을 해서 치안을 담당한다고 하고 인원을 배치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정신교육을 시켰다고는 해도 그래도 전과자들이 어디 가겠어요. 그래서 일단 책임자급 20여 명에게만 총과 일본도를 주고는 나머지 무기는 싹 압수해서 도로 창고에 넣어 버렸지요. 대신 몽둥이를 지급했어요.한데 조선군사령부의 일꾼들은 아직도 무기를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만일 문제가 발생되면 몽둥이로 그들을 어떻게 상대합니까. 그들도 무장해제를 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여운형씨에게 제가 직접 찾아가 조선군사령부를 무장해제시켜야 한다고 얘기했죠. 여운형씨에게 ‘우리 치안대장을 보내니 무장을 해제하라’ 이렇게 써달라고 해서 서류를 하나 받았죠. 그리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10여 명을 데리고 권총과 일본도로 무장하고 들어갔어요. 맨앞에 기관총을 들이대고서는 조선군사령부를 쑥 들어갔어요. 사령관에게 면회 신청을 하니 사령관은 부재중이어서 참모장이 나왔어요. 소장인데 머리가 하얀 사람이 건국준비위원회에서 써준 서류를 내미니까 눈만 깜빡깜빡하고 아무 소리 안 해요. 그래 내가 일본말을 모르니까 옆에 있는 친구를 시켜 ‘당신네들이 만약 조선군사령부에 있는 무기를 우리한테 돌려주면 우리는 일본인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주겠다. 만일 돌려주지 않는다면 전국치안대에 명령해서 일본 사람은 이 한반도에서 살아서는 한 발짝도 못 나갈 것이다’ 하고 위협했지요.한참 생각하던 소장은 그걸 당신이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느냐고 물어요. ‘건준의 여운형씨가 책임을 질 거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그는 신변안전용으로 자기네들이 가진 무기 중 3분의 1만 남기고 다 가지고 가라고 했어요. 그런 말을 할 때 그 군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이더군요. 전 동정심이 솟구쳤지만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고는 무기와 군수품 창고의 열쇠 일체를 다 받았지요.
─ 건준으로부터 대단한 칭찬을 받으셨겠네요.
▲ 무기를 압수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칭찬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일본 사람들의 재산과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 아버님이 일본놈과 전쟁하다 죽었는데 어째서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느냐는 거죠.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비록 우리의 적이고 원수지만 패망을 한 마당에 손발을 묶어 놓고 칼질한다면 비겁한 일이 아니냐고요. 우리는 일본과 같은 섬나라 사람이 아니고 대륙의 피를 받은 국민인 만큼 패망한 사람들을 그냥 놔두는 아량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그래서 건준의 지도자들에게 ‘전국의 치안대는 일본인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기차와 배를 비롯한 모든 운송 수단에 대해 일본인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내용을 라디오로 방송하고 벽보로 붙여야 한다고 말했죠.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눈치였지만 내가 서슬이 퍼래서 얘기하니까 어쩌겠어요? 총을 앞으로 쑥 빼면서 칼자루를 붙들고 있으니까. 그때는 머리도 빡빡 깎았죠. 얼굴은 곰보딱지지, 여드름에 아주 험상궂게 생겼으니까. 기세에 눌린 거지. 말 안 들어주면 바로 쏠 기세인데…… 이렇게 해서 라디오에 방송하고 신문에도 나고 전국에 벽보를 붙여서 일본인들이 상당수 무사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사정이 달랐죠. 소련 사람들과 이북 사람들이 일본인들을 참 많이 때려죽였죠. 남자는 다 죽고 어린 애들만은 안 죽였습니다. 그때 이북 사람들의 만행을 피해 도망쳐 온 일본인들이 지내던 절이 있었어요. 거기에 제가 엿이며 된장, 사탕, 쌀, 심지어 숯까지 갖다 주었어요. 그렇게 보호한 뒤 일본으로 보내준 경우도 많지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한일 국교정상화가 된 것이 그때 일본인들을 살상하지 않고 깨끗이 보내준 우리 국민들의 온정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조선군사령부에 들어가서 압수한 무기는 얼마나 됐나요. 일본군들은 철수할 때까지 그 사령부에 계속 있었을 텐데……
▲ 일본군들은 한동안 주둔했었죠. 저희들은 총만 갖고 왔고, 창고는 저희 대원들이 지켰었죠. 총만 필요했으니까요. 저희 동지들로 하여금 창고만 지키게 했죠. 그 안에 있는 것을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서울 수도를 방위하는 사령부니까 상당한 무기가 있었어요. 근데 미군이 상륙해 전부 무장 해제시키면서 싹 다 빼앗겼죠.’
─ 그러니까 김 선생이 만든 조직은 처음엔 여운형씨가 이끌던 건준의 별동대 같은 역할이었군요.
▲ 그렇죠. 그땐 건국준비위원회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건준이 공산당이 들어와서 제1차 전국대의원대회를 연 후 2차 건준이 됐을 때는 허헌이 부위원장이 되고 공산당 일색이 됐기 때문에 제가 인연을 끊고 대한 민주청년으로 거듭난 거죠. 아버님을 죽인 원수들과 함께 할 수는 없으니까.
- 좌익쪽 사람들과의 접촉은 없었지요?
▲ 2차 건준이 됐을때 보니까 이때는 공산당인지 아닌지 분간을 안됐었어요. 이박사와 백범선생이 와서 한국독립단이 되고 이게 우익이고, 조선공산당이 남로당이 되고 여운형과 김규식이 중간노선을 만드니까 이 중간노선제외하곤 좌우익이 갈라졌죠.
(입력일 : 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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