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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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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18화 연애 이야기
김두한 편
제18화 연애 이야기
1969.11.02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제가 비록 못배우고 곰보딱지이긴 해도 조선 최고의 협객으로 용맹을 떨치다 보니 여자한테 인기가 아주 없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주먹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술 마시고 여자한테 한눈 팔면 안 되죠.

항상 몸을 추스려야 하기 때문에 여자를 좀 멀리 하려고 했었지요.서대문 로터리 부근에 있는 백범 선생 경교장 맞은편에 동양극장이라고 있었지요. 연극 공연장은 서울에 그것 하나밖에 없었어요. 거기서 공연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정말 인기 최고였지요.

거기서 연극을 보고 종로쪽으로 오는데 정동에 언덕이 하나 있어요. 거길 올라오는데 서너 명의 체격 좋은 놈들이 얌전한 청년을 발길로 차고 때리는 거예요. 그 옆에는 처녀 둘이 비명을 지르고 있고……제가 ‘주먹으로 한번 쳐서 떨어졌으면 그만이지 왜 발로 짓밟느냐’고 끼어들었더니 ‘넌 뭐야’하면서 나까지 칠 기세길래 탁탁 몇 번 치니 세 놈이 쭉 뻗어버렸어요. 그리고는 쓰러진 젊은 친구를 ‘괜찮소’ 하고 일으켜세우니까 주위 사람들이 ‘저 양반이 종로통의 그 오야붕 김두한이야!’ 그런단 말이에요. 저는 모르는 척하고 언덕을 다시 올라갔지요. 두 처녀가 쫓아와서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고 나직이 인사를 해요.

그때는 여자들에게 최고의 유행이 비로도 치마에 옥양목 저고리 입고 머릿기름 발라 제비꽁지처럼 머리를 묶는 거였어요. 슬쩍 보니 꽤 유행에 민감한 신식처녀 같았지만 ‘뭐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하고 슬슬 언덕을 내려왔지요. 한참 가는데 아까 맞던 그 남자가 나를 불러 ‘선생님 죄송하지만 아까 제가 맞는 걸 말려 주셔서 고마운데, 저희 누이동생이 집에 가서 잠깐 수박이라도 잡수시고 가시라는데 어떨는지요’ 하고 공손히 물어요. 못이기는 체하고 다시 보니까 얼굴도 곱상하고 순박한 표정이 괜찮단 말이야. 바나 술집에 다니는 화류계 여성과는 질적으로 다르지요. 문영철이가 옆에 있었는데 그 친구를 데리고 사직동 집으로 갔지요.

─ 그 남자는 왜 맞았다고 합니까?

▲ 누이동생 둘을 데리고 걸어가는데 아까 그 놈들이 ‘야, 이놈아. 나는 여자가 하나도 없는데 둘씩이나 데리고 다녀’ 그러면서 때렸대요. 옛날에는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누이동생이라고 해도 여자를 데리고 다니면 시비를 거는 놈들이 많았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와서 인사를 하니 저도 무척 부끄럽습디다. 머리 빡빡 깎고 여드름투성이에 곰보딱지에 남자끼리 봐도 정내미 떨어지는 얼굴인데…… 인사를 나누는데 맥주 몇 병과 수박을 가지고 왔어요. 편히 앉아 먹으라고 하지만 좀 어렵더라구요, 왠지 여자가 있으니까. 그런데 박양이……

─ 박씨입니까?

▲ 네. 계속 고개를 수그리고 있어요. 그래서 수박만 먹고 나왔지요. 바깥으로 나오니 박양이 마중을 나와서 인사를 하기에 얼떨결에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라고 했지요. 그걸로 헤어졌는데, 가만히 집에 와서 자는데 생각하니까 옥양목 저고리에 비로도 치마를 입은 순박한 모습이 떠오르는데, 공연히 가슴이 타닥타닥 하고……그런데 언제 만날 틈이 있어야지. 그래서 문영철을 보내 가지고 오빠를 나오라고 그랬죠. 남자니까 괜찮잖아요. 오빠가 보성전문학교 1학년인데, 저녁에 만나 바에 데리고 갔어요. 한잔 마시면서 돈을 50원이나 줬지요. 처남될지도 모르니……

─ 처남이요?

▲ 아직 처남은 아니었지만 우리 자주 만나자고 선심을 베푼 거죠. 그때 순사 월급이 27원이니까 50원이면 큰돈이죠. 제 밑에 꼬붕들한테 이 친구한테 내가 주먹 쓴다는 얘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주먹대장이라는 걸 알면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뒷골목 암흑가의 오야붕이라고 하면 부르르 떤단 말이예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는 아주 순진하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여급들에게도 단속을 해 놨죠.처남될 사람한테 동생 데리고 한강 보트놀이 가자고 얘기했지요.

자매 중 동생은 문영철이 맡고, 나는 언니를 파트너로 삼아 한강으로 갔지요. 백색 양복에 까만 넥타이 매고, 더운 여름철이라 땀이 많이 났지만 잘 보이고 싶었던 거지요. 자동차를 타고 강변으로 가서 배를 타고 건너편 노량진쪽으로 갔어요. 그때는 강변에 버드나무가 참 많았어요. 보트를 타려는데 노량진 장사패들이 2백kg짜리 역기를 번쩍 번쩍 들고 있어요. 모른 척하고 그냥 보트나 타야 하는데, 처남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 ‘선생님 주먹을 쓰는 걸 보니 근사하던데 저걸 한 번 들어 보시죠’ 한단 말이야.

사람 치는 것하고 역기 드는 것은 전혀 다르지만 어쩝니까, 못 든다고 할 수는 없어서 웃옷을 턱 벗어서 박양한테 줬지요. 180kg짜리를 번쩍 들어올리기는 했는데 눈앞에서 별이 반짝반짝하며 이게 영 마음처럼 잘 안 된단 말이에요. 그래도 여자한테 창피당하지 않으려고 바짝 힘을 썼는데, 아, 엉덩이가 삐꺽하는 바람에 역기를 놓치면서 두 동강이 나 버렸어요. 그때 역기는 쇠가 아니고 시멘트에 자갈로 만들었거든요.

─ 역기가 부서졌단 말이죠.

(입력일 : 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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