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자리에 통역을 맡은 한국인 헌병보좌관 김방희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을 통해 당시의 광경을 다시 말하라고 해서 ‘그때는 그 사람들이 군복을 벗고 셔츠만 입고 있어서 군인인 줄 몰랐다. 화장실에 가다가 시비가 붙었던 것인데 일본도를 먼저 휘두르며 겁을 준 것은 잘못이며, 황병관이란 친구는 곧 학도병으로 나갈 일본 레슬링 대표인데 군인이라고 해서 목을 자르려고 해서야 되겠느냐, 그래서 말려야 하겠다고 생각했고, 말리는 방법으로 때려서 정신을 잃게 하지 않으면 큰 일 나겠다 싶어 그런 것’이라고 했지요. 어차피 죽을지도 모르니까 할말이나 다하자 뭐 그런 심정으로 조목조목 따졌지요.
그랬더니 헌병대장이 눈을 지긋이 감으면서 담배 탁 물고, 한참을 생각해요.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끄떡거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지금 우리는 내선일체 아니요. 그리고 우리가 이 전쟁을 완수해야 하는데 천황이 하사한 칼로 같은 민족의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되는 거고 또 장소가 술집이었고, 제지한다는 것이 좀 가혹했지만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했더니, ‘알았다, 내려가 있어라’ 하더군요.
유치장에 있으니까 그 이튿날 대위가 나를 수사과장실로 데려가 앉히더니 설렁탕 두 그릇을 시켜주더군요. 게눈 감추듯 먹으니까 빙그레 웃으면서 ‘널 내보는 데는 조건이 있다, 우리가 뽑은 유도선수 세 명과 싸워 모두 이겨야 풀어주겠다’는 거예요. ‘좋다, 그 대신 나도 유치장에만 갇혀 있었으니 바깥에서 운동 좀 해야겠다’고 말해서 모레 시합 때까지 목욕하고 면도한 뒤 몸을 좀 풀었지요.
시합날이 돼서 가보니 어디서 뽑았는지 키도 크고 어깨가 전부 딱 벌어진 놈들입디다. 그러나 전 속으로 웃었지요. 내가 마루오카도 이겼는데 이 정도 고기덩어리는 자신이 있었거든. 시합을 하기 전에 내가 그랬지. ‘이거 시합하라고 해서 하지만 혹 잘못돼 다치면 나중에 또 사람 다치게 했다고 잡아넣는 것 아닙니까’. ‘아, 괜찮다’ 하며 대장이 껄껄껄 웃더군요. 아마도 그 대장은 자기 부하들 체격이 김두한이 두 배만 한데 설마 지랴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몸뚱이 큰 놈이 덩치만 믿고 확 들어와요. 그걸 두 발로 면상을 치니까 뒤로 확 넘어지는데 그냥 일어날 수 있나요. 몸이 둔한데…… 겨우 일어나는 걸 보리자루 휘어잡듯이 잡아서 양쪽 이마를 주먹으로 팍 치니까 그대로 쭉 뻗더군요.
─대장 표정이 무척 놀란 모양이 됐겠네요.
▲당연하죠. 나보다 덩치가 두 배는 큰 놈이 한 대 때려보지도 못하고 주무시고 계시니까. 두 번째 놈이 들어오는데, 이 놈은 키는 아까 놈보다 좀 작지만 체격이 절구통 같더라구요. 이놈은 아까 놈처럼 다시 두 발로 치다 잘못해서 발이라도 붙잡히면 그냥 꺾이겠더라구요. 그래서 살짝 뜨는 척하다 쫓아 들어가면서 턱을 차버렸지. 저한테 급소 한 방만 맞으면 끝입니다. 뚝 떨어져 버렸지. 대장에게 ‘마지막 놈은 죽여야겠습니다’ 하고 공갈을 쳤어요. 무사도란 두 번까지는 봐주지만 세번째는 봐주지 않는 것이므로 죽일 수밖에 없다고. ‘사령관님 용서하십시오’ 라고 하니까 헌병이 죽으면 사령관도 골치아프거든…… 그래서 관둬라 해서 제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온 겁니다.
─세 번째는 안 싸운 거군요.
▲그렇죠. 두 놈만 처치하고 풀려난 거지요.
─때리고 치는 얘기를 들으려면 한정이 없겠어요. 내일은 해방 전에 있었던 이야기로, 선생님 연애하던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 얘기 좀 들었으면 좋겠어요.
(입력일 : 2007.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