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루오카 유도 사범을 때려눕힌 후 그 뒤로 당하지 않았어요?
▲ 그 소문이 전국의 일본 경찰들에게 퍼졌죠. 김두한이 마루오카 선생을 때려눕혔는데 믿어지지 않는다는 거였죠. 종로2가에 쿠세라고 하는 유도 3단이 있었어요. 괜히 저를 보면 불러서 툭툭 치고 다녔었는데, 다음날 일부러 그 앞을 지나갔더니 ‘긴또깡상’ 하고 부르더라고요. 그전에는 ‘두한이’라고 불렀는데. 그때부터 경찰관들 태도가 달라진 겁니다. 자기 오야붕이 졌으니까. 그 뒤로 마루오카와는 형제지간처럼 잘 지냈어요.
─ 일본 헌병대위와도 싸움을 했다면서요.
▲ 싸우는 이야기만 계속 하면 영락없이 주먹대장만 되는데…… 황병관이라고 평안도 사람인데 그때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어요. 마루오카만큼 센 친구인데 해방 6년 전쯤인 것 같은데, 여름방학을 맞아 평양으로 가기 전에 서울 친구들과 한 잔 하러 종각 뒤에 자리한 ‘한양 바’라는 데를 왔지요. 거긴 불과 열 평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인데, 그곳에 셔츠만 입고 모자와 칼을 옆에 놓고 권총도 끌러 놓은 채 술을 마시던 일본 헌병들이 있었어요.
황병관과 친구들은 사각모자를 쓴 채였지요. 황병관은 일본 내지에서도 대인기였어요. 동양 아마추어 레슬링 챔피언이었으니까요.황병관이 변소로 가다 실수로 한 헌병의 발등을 밟았어요. 그냥 미안하다 했으면 되는데 황병관이 ‘아, 군인인가’ 그랬단 말이에요. ‘뭐 어째?’ 하며 헌병 셋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중위가 문 앞에 가서 탁 기대서서 깔깔 웃고 있고 대위가 칼을 쓱 빼들어요, 도망갈 구멍도 없는데. 가만히 있으면 한국 학생 죽겠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그쪽으로 뛰어가면서 두 발로 차버렸지. 두 명이 뚝 떨어졌어요.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당시엔 군인 때리면 즉결재판입니다. 황병관과 함께 도망쳤죠.
뚝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봉은사의 암자로 들어가 석 달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을철 단풍이 으스스 붉게 물든 때 나와 보니 부하들을 모두 데려다가 고문했더군요. 싸웠던 일본 헌병들은 중국 전선에 차출됐고, 부하들은 팔다리가 부러져 그때까지도 병원에 다니고 있어 미안했습니다. 바에서 부하들 데리고 한 잔 먹고 있으니까 경찰이 새카맣게 몰려와 싸울 수도 없고 해서 마차에 묶여서 유치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김두한 ‘회고록’에도 이 장면이 나오는데 묘사가 조금 다르다. 일헌병대 중위가 화장실로 가다 황병관의 발등을 밟으면서 싸움이 벌어졌다고 나온다. 김두한이 구술한 것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착각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본다.-편집자)
(입력일 : 2007.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