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태평양전쟁이 끝날 무렵 징용대상이던 한국사람을 김선생밑에 두고 반도의용정신대를 꾸렸다는 얘 기를 계속해주시겠습니까?
▲ 만명정도가 모였는데 한달에 천명씩 훈련을 받으니까 다 받으려면 열달이 걸려요. 5천여명정도를 모아 단게 경무국장등앞에서 등발좋은 이를 모아 군대훈련처럼 음악 틀고 나가니까 황제의 국민으로서 이 전장을 완수하려고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하니까 너무들 좋아하더라구요. 밑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거든 훈련을 잘하는지 어쩐지.그러다 해방이 됐지요. 김두한이가 머리를 잘써서 만여명을 징용에 보내지 않았다. 시대적 영웅인데다 앞을 내다보는 오야붕이다 했었죠.
- 소년시절 겪은 일중 잊을수 없는 일을 얘기해주시죠.
▲ 13살 대 원노인이 50전을 주는데 호떡집엘 가서 애들 호떡을 다 사줬어요. 조선극장 구경은 들어가야겠는데 돈이 있어야지. 조선극장 뒤로 들어가면 쌍과부집이라고 있는데 사닥다리를 빌려서 여자변소로 들어갔는데 고장난 칸이 하나 있었어요.그리로 구멍이 나 있어서 극장으로 들어간거예요. 고장난 그 칸은 `고장`이라고 써붙여놨는데 한 녀석이 문을 안닫고 열고 나가는 바람에 내가 나갈때는 문이 열려있었지요. 때 마침 쉬는 시간이라 여자들이 우루루 하고 화장실로 밀려들어오는데 문이 열려있으니 나는 개구멍을 통해 나오다 말고 봉변을 당한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