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스타앨범 / 나의 데뷰
유쾌한 응접실 / 정계야화
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노변야화
김두한 편 - 제10화 해방될 때까지 주먹생활 하던 이야기
김두한 편
제10화 해방될 때까지 주먹생활 하던 이야기
1969.10.24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전국에 조직이 생겼고, 서울에만 부하가 몇 천 명이 생겼지요. 매달 돈이 들어오는데, 사무실에 가면 봉투가 쫙 있어요. 저는 절대 돈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부하들이 열어서 세어 보관했지요. 한번은 돈이 조금 덜 들어왔다고 해요. 3백원을 보내야 할 신협이라고 하는 극단이 안 보낸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손을 좀 봐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잘 됐지요. 그 극단은 그때 조선총독부 주최로 조선사람을 만주로 이민 보내는 내용인 <등불>이라는 연극을 공연 중이었어요. 조선총독부로부터 돈을 받아서 조선 땅은 일본 사람들이 와서 살 테니 조선인들은 만주로 가라고 은연중 부추기기 위한 거였죠. 부하들을 경기도 모처에 보내 땅꾼들에게 구렁이 10마리만 사가지고 오라고 시켰어요. 푸대자루에 구렁이를 넣어서 윗층과 아랫층에 5마리씩 풀었죠. 2천여 명이 박수 치고 구경하는 곳에 구렁이 10마리가 돌아다녔으니 얼마나 난리가 났겠어요. 원래 보름 정도 공연할 계획이었는데, 사흘 째 되던 날 깨져버린 겁니다. 그들도 내가 시킨 것 다 알지만 물적 증거가 없으니 어떡합니까. 이렇게 받은 세금으로 부하들을 먹여 살렸죠.

─ 징용장이 나왔다는데 어떻게 해서 징용에 안 끌려가신 거죠?

▲ 스물다섯이 됐을 때가 태평양 전쟁 말기인데 해남도로 가라는 징용장이 나왔어요. 그때는 이미 미국 잠수함이 바다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남도에 가면 물귀신 되기 십상이었지요. 나 말고도 서울에 있는 주먹 3천명에게도 징용장이 나왔어요. 안 끌려가려고 꾀를 냈지요. 문영철한테 무궁화꽃을 그려 넣고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김좌진’ 이렇게 쓴 명함을 한 열 장 만들라고 했죠. 조선총독부의 경무국장은 ‘단게’라고 나이는 예순 대여섯 정도이고 키가 5척에 불과한 사람이었습니다. 끌려가다 죽나 여기서 죽나 매한가지라 생각하고 단게를 찾아갔습니다. 김좌진이라고 쓴 명함을 턱 갖다 대니 날 위 아래로 훑어보더군요. 내가 ‘나는 가짜다. 김좌진의 아들이다’ 하니 경무국장이 막 웃더란 말입니다.

(입력일 : 2007.03.19)
프로그램 리스트보기

(주)동아닷컴의 모든 콘텐츠를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에서 무단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by donga.com. email : newsro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