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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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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5화 소년시절 걸어온 이야기
김두한 편
제5화 소년시절 걸어온 이야기
1969.10.18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아버님이 형평사 초대 회장을 한 바람에 덕을 봤다면서요.

▲ 형평사는 이조 5백년 동안 압제를 받아 동소문 밖에서만 살았어요. 그런데 아버님이 안동 김씨들한테 공갈을 쳐서 돈을 마련해 낙원동을 비롯해 인사동, 돈의동에 푸줏간을 차려줬어요. 형평사 부회장을 하던 분 중에 원씨라는 노인이 있었어요. 아버님보다 약 30년 위신데, 그 분이 인사동에서 사동옥이란 설렁탕집을 하고, 아들은 낙원동에서 고깃간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때 장자구다리 밑에서 지내면서 깡통을 양손에 걸고 밥을 구걸하러 다녔죠. 처음엔 밥 달라는 말이 안 나오대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밥을 구걸하고 있는데, 사동옥 식당 주인이 돈을 받다 말고 저를 가만히 쳐다봐요. 그리곤 갑자기 버선발로 뛰어나왔어요. ‘너 두한이 아니냐’ 하더니 저를 붙들고 흐느껴 우는 거예요. 전 설렁탕집이 무슨 음식 파는 집인지도 몰랐고 게다가 아버지가 형평사 회장했던 것도 몰랐으니 그 양반이 왜 우는지 몰랐지요.네 외삼촌이 집을 팔아먹고 도망간 뒤 개성 외삼촌 집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던데 언제 왔느냐고 묻더군요. 외삼촌이 워낙 때리니까 160리를 걸어와 지금은 이렇게 밥 구걸하고 다닌다고 했더니 ‘네가 얼마나 귀한 집 아들인 줄 아느냐’며 날 끌고 이발소에 가서 머리 깎이고, 그 사이 양복을 사오셨어요. 목욕탕에 데리고 가더니 할아버지가 손수 씻겨요. 잠깐 동안에 귀공자가 됐지요. 원씨 노인이 자기집에 데려가 진국 설렁탕과 소혓바닥 등을 먹여 줬어요. 그후 17세까지 원씨 노인 밑에서 매일 고기 먹으며 성장한 거지요.

─ 그분한테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 네, 장롱 밑에서 아버님 사진을 슬그머니 끄집어내더니 ‘너 이 양반이 누군 줄 아느냐’ 그래요. 잘 모른다고 했더니, ‘이게 네 아버지다, 잘 봐라’ 하고는 한 달에 한 번씩 보여줍디다. ‘네 아버님이니까 잊어버리지 마라. 네 아버님은 독립군 대장이다. 훌륭한 분이지만 너는 공부는 하지 마라. 공부하면 나쁜 사람 된다. 공부 안 해도 스스로 깰 때가 있으니까 밥만 먹고 운동 해라’는 말을 틈날 때마다 하셨지요. 그리고는 하루에 50전씩 주셨어요. 설렁탕 한 그릇에 10전 했고, 극장은 5전 할 땐데 제가 설렁탕과 고기 먹고 운동만 하니까 키가 쭉쭉 자라요. 식당 앞에 서울에서 제일 큰 조선극장이 있었어요. 나는 무료로 들어가거든. 극장 옥상에서 샌드백 치고 철봉, 아령하면서 매일 영화를 봤어요. 그때는 무성영화인데 거의 전부 서부활극이나 칼싸움이었어요. 8세 때부터 한 10년 동안 사람 때리는 것만 봤는데, 아마 그 때문에 주먹대장이 된 거 같아요.18살 때부터 주먹대장으로 나갔고, 스무살 때 전국의 주먹대장 오야붕이 됐어요. 먹고 살 도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된 거죠. 원노인은 내가 열아홉살 적에 돌아가셨으니까 자립해야 했죠. 힘은 있는데, 울분을 터트릴 데는 없고, 그러니까 사람을 치기 시작한 거예요.

─ 단순히 힘이 세다는 것만으로 주먹대장이 되는 것은 아닐 텐데요.

▲ 그때는 요즘 깡패들처럼 무기를 쓰는 게 아니라 순전히 주먹으로 했거든요. 아버님의 좋은 체격을 타고 난 데다 담력도 아주 셌어요. 암만 힘이 세도 겁이 많으면 안 되거든. 싸움 잘하는 사람한테는 권투고 레슬링이고 당수고 유도고 간에 안 돼요. 제가 한번 휙 나가 치면 20, 30명은 쓰러뜨렸어요. 요즘 중국영화처럼 붕붕 날아다니거든요. 그때 전 한 길 반 되는 높이에 매달린 샌드백을 점프해서 손으로 치듯이 정확하게 발로 한꺼번에 서너 번 찰 수 있는 실력이었어요. 또 휙 뛰어올라 어깨를 짚으면서 태권도 당수하는 것처럼 여러 명을 치고 나갈 수도 있었죠. 그때 주먹 사회에는 그런 기술을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저는 손보다 발길질이 빨랐죠. 열여덟에 키는 다 컸지, 체중은 25관이지, 내 중량과 비슷한 사람이 얼마 없었어요. 나보다 체격이 더 좋은 사람이라도 발길로 차면 주먹으로 치는 것보다 5배 탄력이 있으니까. 예를 들어 30관짜리가 덤비면 25관짜리인 내가 맞받아치면 55관의 파워가 생기니까 다 나가 떨어져요. 날래고 주먹이나 몽둥이로 맞아도 웬만해선 쓰러지지 않아야 돼요. 그렇지만 첫째 담대해야 주먹 세계에서 통해요.

(입력일 : 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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