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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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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편 - 제3화 1929년 김좌진 장군 암살되는 때 얘기
김두한 편
제3화 1929년 김좌진 장군 암살되는 때 얘기
1969.10.16 방송
1969년 10월 14일부터 1970년 1월 26일까지 방송된 ‘노변야화’ 김두한편에는 김두한의 출생부터 종로 주먹,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있다.
─ 상해 임시정부와 아버님 김좌진 장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 해방 후 백범 선생이 국내에 들어오셔서 제게 말씀해 주셔서 알았어요. 명동 시민회관에서 아버님 추도식이 열렸는데 임시정부 요원들이 다 오셨잖아요. 그때 백범 선생이 막 흐느껴 우시는 거예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백야가 살고 내가 죽었으면 이 나라가 오늘날 이런 비참한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바꿔 죽어야 했는데 내가 살고 당신이 죽었으니 우리 민족이 이렇게 비참하게 됐다. 백야가 달 밝은 날, 철창을 휘어 나를 탈출시켜준 지 어언 40년 세월이 흘렀구려’ 하고 말하셨어요. 추도식 끝나고 중국요리를 좋아하셔서 아서원으로 갔을 때 제가 물어봤죠. 아버님께서 철창을 휘고 백범 선생을 바깥으로 내서 무동을 태워 ‘형님 올라갑니다. 잘 붙드시오’ 하고는 휙 넘겼대요. 아버님은 철창을 감쪽같이 해놓았다고 해요. 그렇게 탈출을 시켰답니다. 아버님이 만주에서 독립군 사령관으로 계실 때는 백범 선생이 대한임시정부의 국장이셨죠. 대한임시정부의 이동휘 대통령께서 아버님께 국무총리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노백린 장군이 일본 육군사관학교 장교로 있다가 아버님과 함께 망명을 하셨는데 그분이 연세가 위셨답니다. 그분이 군사 장관으로 있었을 때인데 아버님께서는 그분이 먼저 하셔야지 어떻게 아우가 하느냐고 했답니다. 만주는 남의 땅이 아니예요. 우리 민족은 남쪽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요동반도 대만주에서 태어났지. 고구려시대 때 밀려서 압록강을 그어버려서 그렇지, 우리 원영토는 요동반도 만주가 근거지니 우리는 여기서 투쟁해서 실지 회복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무력으로 빼앗겼으니 무력으로 해야지 대한임시정부로 해서 쫓겨 다니는 것은 뭐냐, 그래서 거절했다고 해요. 그 뒤로 아버님은 전쟁만 주로 하셨지요.

─ 임시정부 쪽과는 별도로 움직였다는 건가요?

▲ 계통은 하나였죠. 대한임시정부의 명령을 받았지만 군사행동은 직접 했다는 것이죠. 한독당이 상해에서 온 게 아닙니다. 만주에서 할 때 한독당 집행위원장이 저희 아버님이셨어요. 한독당 역사를 보면 한국독립당의 집행위원장이 아버님이셨죠. 만주에서 나서 상해로 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죠.

─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중국과 공동전선으로 항일 전선을 만들어서 하자고 했다는데 장작림의 탄압으로 여의치 못했던 모양이죠?

▲ 이미 만주에는 관동부 사령부가 설치돼 비밀리에 3개 사단이 주둔하고 있었어요. 무기를 궤짝에 담아, 기차로 실어 날랐어요. 장작림도 알 것 아니예요? 그래서 아버님이 장작림과 면회를 한 거죠. ‘머지 않아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는데 당신은 힘이 약하고 나는 힘이 있다. 만주에 사는 한국인이 2백만이니, 청년 20만은 추릴 수 있다. 20개 사단 병력은 만들 수 있으니 당신이 돈만 대라’고 말했답니다. 장작림이 어떻게 댔으면 좋겠냐고 했더니 세계 1차대전으로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헝가리가 쑥대밭이 됐고 식량난이 심각하니, 시베리아 철도로 연결해서 콩하고 밀만 수십만 톤 보내면 그 대가로 세계 1차대전에서 사용한 무기를 들여와서, 20개 사단이 일본과 전쟁을 해서 우리가 실지회복을 하고 이로 인해 한국이 안정됨으로써 만주가 안정될 수 있다고 협상을 한 거죠. 그런데 그 협상의 비밀이 샜어요.흑룡회라고 한국 침략 때 민비를 죽인 일본 낭인들 조직이 있습니다. 흑룡회가 장작림 밀정으로 들어가 있었던 거죠. 중국사람처럼 해서. 장작림과 김좌진의 밀약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나가니까 일본이 쳐들어가겠다고 협박을 했죠. 장개석씨가 손문선생하고 혁명을 해서 중화민국이 되었잖습니까. 중국의 대부자 송자문이 돈과 무기를 줘서 일본하고 전쟁을 시키려고 했었습니다. 준비단계로 들어간거예요. 국제 공산당이 가만히 보니까 20만이 무장되면 만주나 조선을 적화운동을 못하게 되니 암살을 해야겠다 하고 아버님 밑에서 심부름하던 좌익 공산당으로 전향한 아이가 있어요. 박상진이란 하는 아이를 서슴지 않고 반가워서 대줬죠. 전쟁준비를 하려고 방앗간에서 벼를 찧고 있었는데 기계가 고장나서 휘대가 안돌아간다고 하면 아버님이 손수 고치시거든. 그래서 들여다보고 있는데 뒤를 쐈어요. 거기를 맞으셔서 절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장개석씨와 손문선생이 북벌전쟁 대북침략전쟁을 막으려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독립군이 풍비박산이 됐죠.

-이것이 1929년 12월 24일이라고 하던데요. 한국의 무력항쟁이 30년대가 되면서 일본군이 만주로 들어가면서 내리막이 되는거 같아요. 아버님을 김선생이 6살때 묵호에서 아라사을 통해서 들어가서 만나셨는데 돌아오게된 것은 어떻게 된거죠?

▲ 그 이듬해 7살 되던 2월달에 때 돌아올수밖에 없었어요. 마적떼와 일본 독립군 토벌대가 들어와서…

(입력일 : 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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