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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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윤보선 편 - 제16회 3자 회담을 갖게 된 동기/야당이모여구국운동
윤보선 편
제16회 3자 회담을 갖게 된 동기/야당이모여구국운동
1966.01.27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음악)

- 참, 선생님이 바로 거리에 나오시고 이제 마, 산책이라는 데모도 하시게 되고 그때 아마 허정 씨도 그러한

유사한 데모를 하게 되고 여러 갈래로 아주 시끄러웠고 저, 참 들떴고 군정을 연장하겠다는 그 태도는 아직

에... 바꾸어지지 않고 이를 무렵에 이 얘기를 지난번까지 들었습니다. 에, 그 뒤를 계속해서, 그 후에 또, 저,

선생님과 에... 허정 씨와 그리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삼자회담이라는 거가 열린 일도 있고 이런 순서로 이렇게

사태가 진전돼나가는 것 같은데요. 그 무렵의 얘기를 좀...

- 예.

- 더 들려주십쇼.

- 에... 그... 에, 그때 인제 산책 데모를 한 바로 그 이튿날 말이지.

- 네.

- 그 이튿날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 네.

- 그것은 재야정치세력이 모여서 민주구호, 민주구국선언대회라는 것을 가졌습니다.

- 네네네네.

- 그런데 에, 그때 그 참 특기할 만한 사실은 어... 그 야당들이 모여서 그 구국선언을 하는데 완전히 경찰에서 몰랐다는 거.

- 네.

- 그것이 한두 사람이 모이지 않고 여러 몇 명이 모여서 한 일인데.

- 네.

에... 보통 여러 날 하는데-.

- 종로에 백조그릴에서-.

- 백조그릴에서 인제 그게 뭐, 약혼식을 한다고 그래가지고서-.

- 네.

- 또 우리가 모여가지고서 시작을 해가지고 어, 데모하러 나오니까 비로소 경찰에서 알았단 말이죠.

- 네.

- 그래서 경찰은 참, 아, 불의의 무엇을 당했고 우리는 아... 어, 아주 에... 말하자면은 참 멋진 데모를 그때 했죠.

- 네.

- 해서 더욱 그 참, 야당의, 그, 박정희 씨 번의에 대한 기세를 우리가 올렸던 것입니다.

- 네.

- 그 후에 역시 그때 인저, 최고회의실에서 박정희 씨와 최고위원과 우리, 아까 내가 말씀했습니다만 여섯 사람이 모여서

얘기를 하고 결말을 얻지 못했습니다.

- 네.

- 그러고 갈수록에 에, 세상은 어수선해지고 박정희 씨 입장은 점점 더 곤란해졌단 말이지. 이제 참, 번의에 번의를 하고

인저, 또 그런 참, 장엄한 참, 선서를 하고 그렇게 되고 이것이 국내의 여론뿐만 아니라 인제 우방에서까정 시비를 하게 되니까

아... 박정희 씨 입장이 참 대단히 곤란해져서 날로 어렵게 되니까 아... 그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돼버렸어.

- 네.

- 그래서 어... 거기 장성들, 퇴역장성들도 나서서 무슨 중계를 한다, 어쩐다. 또 공화당 수뇌부에서도 나서서 인제 우릴 찾아온다,

어쩐다. 인제 이러다가 결국은 삼자회담이라는 것이 제기됐습니다.

- 네.

- 청와대에서 여기 허정 씨하고 나하고 박정희 씨를 상대하고 삼자회담을 했는데, 이거 역시 사흘 회담을 했는데

결국은 이것도 아무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씨 보고 번의를, 뭣이... 도로 번의를 하라는 그것인데

하니까, 그때 박정희 씨가 그런 결심이 없을 적이니 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 네.

- 아... 그렇게 하고서 어... 박정희 씨는 인저 삼자회담 할 적에 보면은 어... 나보기에는 그렇게 인상을 얻었어요.

아... 자기 말할 듯, 번의에 번의를 자꾸 해놓고 이유를 댈 만한 뭣이가 없었어.

- 네.

- 그저 흠 뜯는 것은 구정지인을 흠 뜯는 것뿐이었어.

- 네.

- 그러고 결국은 우리가 장시간 말을 하게 되고 박정희 씨는 그저... 에...

- 듣는 편이요.

- 듣는 편으로, 대답을 해도 그저 한두 마디 정도.

- 네.

- 이렇게 뭣을 해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은 그것도 그런 정도로 그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 네, 근데 이... 박정희 씨와의 그 면담이라고 그럴까요? 그것이 그때가 마지막이 아니었겠습니까? 그 이후에 만나신 일이 있습니까?

- 그 후에는 만난 일이 없어요.

- 네.

- 그 후에는 인저, 저, 뭣이 한일, 우리가 굴욕 한일외교에, 굴욕 외교투쟁으로 해서 어... 박정희 씨를 만나자고

내가 프로포즈도 하고-.

- 네.

- 그랬지마는, 박정희 씨가 나를 안 만나줍디다.

- 네.

-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붙여서 내가 아마 그런 제안을 하기를, 내가 기억하건데 한 서너 번, 어떤 중대한

시기에 했는데 이 핑계, 저 핑계 하고 안 만나줘서. 그래, 그 후로는 그를 한 번도 내가 만난 일이 없습니다.

- 네. 그럼 에... 그 무렵에 야당의 이야기, 이런 거를 더 들었으면 합니다마는. 에, 그것보다가도 그 후에

곧 선거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 네.

- 대통령 선거.

- 네네.

- 그래서 인제 민정으로 이양이 되고. 이렇게 되는데. 대통령 선거 초에 사상논쟁이라고 신문에서 떠들었던 일이

있는데요. 그 무렵의 얘기를 좀 해주시겠어요?

- 예, 그 말을 해도 좋은데 고 전에, 그, 선거전에 들어가기 전에.

- 네.

- 인제 야당이 여럿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후보를 단일후보로 해야 되겠다는 것이

세상의 공론이 됐어.

- 네.

- 그래서 인저, 그러는 데는 합당을 해야 되겠다 그래가지고, 합당 얘기가 나와 가지고.

- 네.

- 그것이 결과를 이루지 못하고. 결국 야당에 대한 신망이 떨어졌습니다. 지금 앞의 선거를 놓고 왜 야당이 합하지

못하느냐 그래서 어, 그 합당문제. 국민의 합당이라는 합당문제를 끌고 가다가 결국은 선거가 임박하게 됐단 말이지.

- 네.

- 그래...서, 그래서 야당은 어... 당세 확장. 조직도 못하고, 선거에 대한 대비를 아무것도 못하고 선거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 네.

- 그래서 내 지금도 참, 그때 에... 비애를 절실히 느끼는데 에...대구는 이 나라에서 알려지기를, 야당의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 네.

- 자유당 때부텀 대구를 아주 야당의 본산으로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대통령 후보 지명을 맡아 입후보 한 다음에

첫째 유세를 대구에서 해서 야당의 붐을 올리자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지.

- 예.

- 그래서 대구를 가기로 이렇게 정해서 통지를 했더니, 대구에서 말이 ‘대구는 오지 마시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

왜 그러냐 그러니까 ‘아, 야당 합당도 못하고서 여기에 와 무슨 소용이 있고. 우리는 환영을 안 한다.’ 이렇게 얘기가 돼버렸어.

자, 올해도 가서 얼마나 붐을 일으켰느냐 문젠데. 에... 오지 말라고 할 적에 별안간 참 우리는 방향을 고쳐가지고 목포로 떠나.

목포인들 거기서 오라고 하는 건 아니야. 그러나 대구로 갈라다가 대구에서 야당 합당을 못했으니까 환영을 않는다고 하기 때문에

목포로 가는데 지금도 내가 그때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인저 호남선을 타고 밤차로 내려가는데 에... 참, 침대에 누웠으니

잠이 올 리가 있느냐 그 말이야. 그래서 그저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목포에 아침에 딱 도착을 하니까 당원 한 20명이 나왔어.

나왔는데 그 초췌한 모습이라든지 아침 공기에, 싸늘한 공기에 뭣이가 화기는 하나도 없어 보여. ‘이거 어떡할 작정이오?’ 하는 생각 같아 보여.

- 아.

- 그런데 마침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된 것이, 궁여지책으로다가 해가지고 왔느냐 하면은 그 대통령 선거 때는 어... 이, 대통령 입후보 아무개라는

플랜카드를 길에다가 이렇게 걸게 되지 않았어요? 그거를 인저, 대막대기 두 군데다가 이렇게 에... 구해가지고 어... 떡 나왔단 말이지. 그래가지고 두 사람이

그걸 붙잡고 나가면서 날 보고 그 뒤를 따라오라는 거야. 에, 꼭, 뭐, 서커스, 서커스 하는 것 같아. 인제 우리가 그걸 따라가서-.

- 아주 이른 아침이죠?

- 이른 아침이죠. 아마 그때 8시쯤 됐을 거야. 그, 인제 시가를 떡 나서니까 아직 일러서 일찍 가는 학생, 더러 시민이

몇 여기저기 보이는데 그 플랜카드를 쳐다보고 또는 인제, 날 보고, 이상한 눈으로다가 보기 시작을 하고 있더니 모퉁이

돌아서니까 어디서 박수도 나오고 인제 가던 사람이 발을 멈추고서 구경도 하고 좀 더 돌아가니까 당원들은 거기에 조금 기운을 얻어가지고

나를 자꾸 참, 그야말로 목포 시내를 그렇게 해서, 뭣이... 여기저기 돌리는 걸로 광고를 할 작정이었어요.

- 네.

- 그래서 선창 근처로 갔더니 거기서는 배에 있던 선원들이 내다보고서 만세들을 불러줘.

- 아, 네.

- 그래서 여관을 가서 아침을 먹는데 당원 말이 어저께 여기서 공화당에서 마침 유세가 있었소. 대통령에 대한. 그런데 공화당 당원은

약 팔천 명인데 어저께 모인 사람이 오백... 사백 명이 됐소. 우리 당원은 10분의 1, 팔백 명밖에 안 되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만일

어저께 모였던 사람보다 한 백 명만 모여, 오백 명만 오면은 우리는 대성공이오.’ 그렇게 얘기를 나를 보고 합디다. 그래서 그저

난 그렇게 믿고 있다가 아, 저, 유세는 2시부터 시작인데 정거장 광장에서 하는데 사람이 참 오백 명만 모여줬으면은 내가 창피는

면하겠다 하고 광장을 내다보니까 무려 수만 명이-.

- 네.

- ...뭣이 모여서 있었어요. 나부텀도 놀랐습니다.. 또 거기 참 목포당원들도 다 놀래고.

- 말하자면 붐이 일게 됐다는-.

- 그래서 첫 번째 붐이 거기서 일어났었죠.

- 또 시간이 됐습니다. 다음 날 듣겠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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