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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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윤보선 편 - 제14회 혁명군에 정권욕 싹트다
윤보선 편
제14회 혁명군에 정권욕 싹트다
1966.01.25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음악)

- 하야하신 이후에... 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군정의 종식이다 하는 점에서 기자회견을 가지시고 강조하셨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뭐, 그런 선생님의, 에, 그것도 관련이 되겠습니다마는 고 바로 후에 에, 정초엔가부터 정치활동이 재개가 되고-.

- 네, 정월 초하룻날부터 시작을 한다고 했죠.

- 그렇게 됐는데 그 이후에, 제 기억으로는 정초에 에... 이, 민정당이 제일 미리 태동을 한 것으로 그렇게 기억을 합니다.

저... 해위 선생님은 주동이 되셨겠지마는 그때 가인 김병로 선생, 에... 전진한 씨, 그리고...

- 이인 씨.

- 이인 씨. 네, 이런 분들이 모여서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그 저간의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죠.

- 네. 에... 내가 지금 군정 종식이 우리의 제일 목표라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 네.

- 근데 여기서 한 말이 여러분의, 국민의 기억을 새롭게 하고서 그, 지금, 물은 말을 대답하고 싶은 것은, 그러니까... 그것이

1961년 8월 15일 날, 해방... 한 때... 네네. 에, 그때 기념식에서 박정희 씨가 잇해 후에 군정종식을 시킨다-.

- 네.

- 고 며칠 전에 박정희 씨가 밤에 청와대를 들어왔어.

- 네.

- 들어와서 날 보고 얘기가, 아, 군정 종식을 속히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자기는, 박정희 씨는, 1년 군정 동안을

1년으로다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른 최고위원들이 1년 반은 해야 되겠다고 그렇게 주장을 해서 1년 반으로 생각을 하고

있소. 그런 얘기를 합디다. 그런데 거기 한 가지 이유는 자기네가 오가는 기억을 하고 있는데 5개년 계획을 하고 나가고 볼 것 같으면

그 5개년 계획을 시작도 못해보니까 1년 반은 해야 5개년 계획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걸로 말하면 자기네들이 혁명을 한

최다의 과업을 남겨놓고 나간 걸로 자기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이걸 시작은 해놓고 나가야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더라도 계승을

할 것 아니오. 그러니까 1년 반으로 하겠소 그러고서 아... 얘기를 하고 청와대를 나갔습니다.

- 네.

- 그러더니 에, 수일 후에 발표를 하는데 어떤 발표를 했느냐 하면은 에... 군정은 잇해 동안을 한다, 관리인으로서-.

- 네.

- 그런데 그, 왜, 내 이 말을 하느냐 하면은 어, 그들이 애초에 목표를 참,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애국심에 혁명을 했다고 하는데

정부를 딱 잡고 나니까 아, 이 정권을 내놓을 생각이 날이 갈수록에 점점 희박해져서 어떻게든지 정권을 안 내놓으려고 들어.

그래서 나중에 끄트머리 가서는 어떻게 됐느냐 하면은 정권을 내놓게 될, 차차 민정 복구를.... 하지 않으면은 아니 될, 인제는

최고위원들이, 에, 일부에서 얘기가 우리가... 뭣이... 국회의원선거가 된다면은 군복을 입고 국회의원에 출마해야 되겠다 이런 말도 나왔고.

- 네.

- 또는 저, 이... 최고위원들을 상원의원 같은 거로 만들어서 사람들 자동적으로 상원의원이 되게 해서

앞으로도 민정이 된다고 한대도 이 사람들이

정권에 참여를 하고 이렇게 여전히 참 군정이 그대로 내용이 계속이 되도록 하겠다는,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 네.

- 그래서 그 후에 에... 민정을 한다고 하면서도 여러분 아시다시피 에... 군정에 유리한 아... 박정희 씨가 앞으로 정권을 잡는 데 유리한 아... 헌법까지도 고치지 않았나요?

- 네.

- 그래서 그때 지금도 내가 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1962년 12월 18일에 그때 에... 뭣이... 헌법 개정이 됐는데 놀라지 마시오마는

그때 78퍼센트로다가 그 헌법이 개정이 됐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참 도깨비장난인데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리고서 인제 무얼 했느냐 하면은 선거법을 또 고쳤습니다.

- 네.

- 그때 이것은 음... 정당법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주장하기는, 건전한 야당을 육성하고 모두 이렇게 한다,

이런 구실 하에서 자기네들은 전부 이것이, 참 군정을 다시 재집권하는, 그런 데 유리하도록 모두 만든 거죠. 그래서

말하자면은 어... 이... 그 최고위원 중에 에, 연고지가 없는 최고위원들을 위해서 비례대표제 같은 것을 만든다든지

또 무소속출마를 못하게 한다든지 모든 이것이 참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또 상식적으로 긍정할 수 없는

이상한 연구들을 해서 어... 모의를 했던 것입니다. 아... 그렇게 해가지고 결국은 인제 우리는, 일반 국민한테는 1963년 정월 초하룻날부터

어... 정치활동을 허락을 한다, 이래놓고 공화당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은, 그때 공화당이라는 이름을 짓기 전이죠.

벌써 반년 전부터 사전조직을 시작했던 거란 말이지.

- 음.

- 그래서 그때쯤은 완전히 내부조직이 전부 다 됐어. 관건과 금권을 가지고 말이지. 관리로 있는 사람도 자기가 필요한 사람을

막 봐오다가 공화당에 앉히고 또 학교 교수라든지, 음, 공직자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그저 자기네들이 후한 대우를 해가면서

강제로다가, 거기다가 공화당에, 이러고 해서 아주, 그, 완전하고도 전망한, 어, 대한민국에서 유래를 볼 수 없는 그런 정당을 만들어 놓고.

자, 오늘부터 인제, 초하룻날, 정월 초하룻날부터 저, 뭣이 정치활동을 시작하니, 이, 우리 모두 정당을 만들 사람은 만들어라. 이렇게 됐던

것입니다.

- 네.

-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점을 다 알고, 국민들도 다 알지마는 아, 이게 참 관약의 부동으로 말이지 이런 불법하는 것을 시정을

하는 것은 역시 민정복구를 하는 것밖에는 없으니까 아... 그것을 속으로는 인정을 안 하지마는 우리는 그때부터 시간을

잃지 않고 어... 민정 복구에 나섰던 것입니다.

- 네.

- 그래서 첫 회합을 우리가 한 번 갖기를, 아마 어... 정월 초로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 네, 정월 초에-.

- 정초에 4자회담이라는 걸 가졌습니다.

- 네.

- 에, 4자회담이라는 것은 아까도 말씀해 놨습니다마는 어... 이, 작고한 김병로 씨라든지

또 전진한 씨, 이인 씨, 이 네 사람들이 모여서 범 야당을 하나 만들자. 그런 얘기야. 그때 박순천 씨까지는 거기에 오시라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박순천 씨는 결국에 참여를 아니 하고 민주당들은 민주당끼리 그 후에 얘기를 들으니까 다시 자기네들이 모여서 어... 이... 민주당을

재건하는, 이런 방향으로다가 얘기가 됐다는 것을 듣고 있습니다.

- 네.

- 그런데 그때 에... 에... 박순천 씨가 아... 거기 참여를, 4자회담에 참여를 아니 하면서 어... 서로 통합도 통합이지마는 아... 우리가 아...

정책에 대해서 서로 조절을 해야 된다, 음, 이런 말을 하고 그분은 그때 참여를 안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민주당 일부도 그, 우리가

조직하는 민정당에 들어왔습니다.

- 그렇죠.

- 어... 손영규 씨가 민정당을, 아, 민주당을 대표해서 어.. 민정당 최고위원도 됐고 또 자유당도 일시 주재를 했지마는 김범진 씨가

들어와서 어... 민정당의 최고위원이 되고 그래서 어, 말하자면은 일부 탈락을 됐지마는 공식적으로는 민주, 자유까지 다 합해서

말하자면 범 야당세력이 됐다고 이렇게 에... 보게 됐습니다.

- 근데 주로 김병로 선생 댁에서 회합이 잦고 이랬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만 지금 저, 해위 선생님 댁도 그때 회의장소로

쓰이곤 하지 않았더랬습니까?

- 썼죠. 인제 그 아시다시피 이... 고 김병로 씨는 행동의 자유가 없는 이거든.

- 네. 그랬죠.

- 그래서 인제 그가 다른 데로, 다른 장소로, 내 집이 아닌 다른 장소로 댕기기 불편하다고 그래서 될 수 있으면은 김병로 씨 댁에서

어... 그런 걸 가졌던 것입니다.

-네.

- 네, 그때 인저 어, 어... 어... 민주당은 그때 일부가 참여했지마는 독자적으로 당을 해갈 그런 기세를 보였구요.

또 인제 그 후에 조금 이따 허정 씨가 풀렸습니다. 그래서 인저 허정 씨를 중심으로 하고 신정당이라는 것이 됐습니다.

- 그렇죠.

- 저... 그래서 그때 일반 국민들은 어... 오늘과 지금 거의 마찬가지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야당 국회의원들이 저, 뭣이... 에... 정객들은

이합집산이 심하다 해서 그걸 걱정했고 또 앞으로 지금 새로 정당이 생기고 볼 것 같으면 자, 대통령후보에 있어서 단일 후보를

정당이 이렇게 많이 생기면은 야당이 단일후보를 낼 수 있겠느냐 하는.

- 네.

- 인제 그런 걱정이 많았습니다.

- 그때 정말 복잡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음에 또.

(입력일 : 201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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