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 어제는 에... 하야, 바로 전야라고 그럴까요? 그때 얘기를 들었습니다. 정쟁법 관계, 그, 어떻게 서명을 하시고
어떤 절차를 밟으셔서 그만두셨는가? 고 좀더 계속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그... 에... 정쟁법에 서명을 하는 데 있어서는 내가 퍽 주저를 했습니다. 아... 내가 알고 있기에는 대통령은
국무총리제에 있어서, 법안에 있어서 서명하는 것은 요식행위고 더 확실히 얘기하자면은 이것은 거의 강제조건입니다.
- 네.
- 어디 대통령이 거부할 권리가 없어. 인제 국무총리가 서명해서 가져오면 대통령은 기계적으로다가 원수라고
해가지고 그저 결정을 하는 거야. 또 대통령한테 그 책임이 없어. 잘못된 법률이라 한대도.
- 네네.
- 그렇게 되는데. 자, 내 입장이 지금 묘하게 된 것이 이 법률을 내 자신이 반대하고 하야를 한다는 이 자리에 있어서 여기다가
내가 이거를 결재를 안 하느냐 하느냐하는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있어서는 과거 다른 법안보담도
다른 생각이 나서 법을 아는 젊은 교수라든지 그 외의 전문가들을 불러서 의논을 했더니 그들의 말이 이것은 대통령이
결재를 안 할 수가 없는 일이오. 이것은 강제조항이니까 여기 청와대의 대통령으로 있는 것은 그 시간까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위헌이오. 근데 개인으로 볼 적에 이걸 반대하고 나가니까 자, 이보담 더 개인의 입장이 더 명확할 수는 없소.
만일 반대를 하더래도 결제를 하고 여기 그대로 대통령이 앉아 있다면은 혹 문제가 될 런지 모르지만 이거는
완전히 공사를 구분하는 거예요.
- 네.
- 그러니까 법은 법대로 하고 대통령이 하야를 할 테면 대통령은 대통령 의견대로 하야를 하시오. 해서 결재를
하기로 그렇게 에... 정했던 것입니다.
- 네네. 그러니까 대통령,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으레히 법에 따라서 서명을 하고 개인 윤보선으로서는 이건
반대니까 분명히 하고 난 대통령직을 물러난다, 이런 말씀이라고 듣겠습니다.
- 그렇지.
- 그래서 정말 지난 토요일부터 어... 꼬박 일주일을, 5.16, 그날부터 청와대를 물러나시기까지의 말씀을 쭉 들어봤는데요.
그 청와대에서 물러나시면서 좀 어떤... 그때 감회라도 있으시면 조금 더 말씀을 이어주시죠.
- 그 감회라면 그래요. 내가 청와대를 물러나오는 그 시간까지 청와대의 1년 8개월, 9개월 동안에 제일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 네.
- 청와대에 들어가자던 첫날 저녁에 내 고민이 컸습니다.
- 네.
- 내가 지금 오, 다섯 해 임기를 두고 내가 다섯 해의 임기를 마칠 생각은 전혀 없었어. 또 어쩐지 예감이,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들어.
- 네.
- 그래서 나는 청와대를 물려날 명분이 생기면 언제든지 속히 물러나야 되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 여기 있는 동안에는
참 실력 없는 대통령이고 또 정치에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그, 대통령이지마는 그러나 내가 여기 대통령으로,
국가의 원수로 있는 이상에는 이 나라의 탓을 한대도 이익을 가져와야 되겠다는 생각이에요.
- 네.
- 어, 그래서 그동안에 내가 정치에 직접 관여는 안 했어도 관심을 가지고 여기 큰일이 있을 적에나 적은 일이 있을 적에나 내 의견을 당국자한테
징계한 일도 있고 또는 그들을 위해가지고 어... 회의한 일도 있고. 또는 내가 국회에 교서를 보낸 일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사사로 참... 그들을 불러가지고 밤늦게까정 아... 얘기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올시다.
- 네.
- 그래서 세간에서는 대통령이 정치에 간섭을 한다 . 어, 시비도 받았습니다만. 아암... 이... 예... 물러나오는 그 시간에
나는 참... 어떻게... 그야말로 해방된 기분을 가졌습니다.
- 네.
- 남 보기에는 한 나라에서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어... 참... 에... 에... 이것이 개인으로 봐서 호강이나 하는 것 같고
하지마는. 자, 장면 씨가 집권을 했을 동안에는 나랏일이 이... 우리 뜻대로 되지가 안 하고. 또, 그, 날로 문란해지고
날로 행정력이, 그, 감소돼서 어... 거의 그때 참, 정부가 완전히 정부 행세를 할 수 없는 이런 정도까정 나오는데
그때 나는 말고 다른 분에 내 자리에 앉았더래도 어... 그, 시국을 내다볼 적에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 다들 추측할 수 있을 줄 압니다.
- 네.
- 그러다가 또 쿠데타 정권을 가지고 앉아서 이들의 그때 참, 경험 없는 사람들이 에... 그, 실제적... 정치를 모르고 어... 행정도 모르고
어... 그저 참 주먹구구, 또는 그저 문의한다는 것이 에... 어떤 지각 있고 정치할 줄 아는 사람한테 문의하는 것도 아니고
다시 참 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고 부정부패가 날로 심해가고 또 최고위원들의 발언 말이지, 최고위원들의 그 실수가
아, 점점 커지고 오... 이러는 것을 볼 적에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그 이상 고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얘기가 길어집니다마는
청와대를 나오는 날처럼 내가 1년 9개월 동안에 에... 유쾌한 날이 없었습니다.
- 정말 우리가 생각해도 고난의 대통령이었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 어려운 시기, 초반에는 실권 없는 대통령으로 또
후반에는 쿠데타군에게 휘둘리는 마, 대통령으로. 그 내심으로는 쿠데타에 부정적이면서 그걸 또 나라라 부르는 것을 가누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렇게 얼버무려 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고충. 여러 가지를 생각할 때 정말 고충의 청와대 생활이었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다시는 정말 우리 대통령이 이러한 고충을 당하지 않고 그렇게 그 고충을 당하는 마지막 대통령이
이... 해위 선생이기를 바랍니다. 마, 그런 그것도 생각이 됩니다만 청와대의 1년 9개월 동안에 혹, 참, 가장 그 감회가 깊었다고
할까. 그, 청와대 생활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다고 할까. 흐뭇하셨다고 할까. 그런 이야기를 한 말씀 더 들려주십쇼.
- 예. 그것을 얘기를 하자면은 내가 청와대에 있는 동안에 외국의 고관을 많이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간 후에 얼마 안 돼서 어... 일본 외무부 대신 고사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왔을 적에, 그 사람을 청와대에서 접견을 할 적에
내 생각은 감개무량했습니다. 우리가 근 40년 동안에 일본사람의 식민지 백성 노릇을 하고 언제나 이 멍에를 벗어볼까,
우리도 국가가 언제나 돼볼까 할 적에 그것이 이뤘다는 생각을 할 적에, 내가 뜻하지 않게 이 나라의 원수의 자리에 앉아서 일본의 외무대신을 친선사절로
맞을 적이 그 사람이 나쁘다는 것보담도 그야말로 섞음의, 우리 사정을 비교할 적에 감개무량했고. 참, 특히 우리는 완전히
일본사람의 그... 반열에서 해방이 됐고 대한민국은 독립한 나라요 오... 나라라는 것을 더욱더 느꼈습니다. 아마 외국사신을
만난 것은 고사카뿐만 아니지마는 일본 외무부장관을 내 개인이 대통령으로 앉아서 맞은 내 소감이라는 것은 어... 참...
대단히 감회가 깊었고. 어, 또 아마 누가 그 자리에 앉아도 그랬을 줄로 생각이 됩니다.
- 네, 그동안 참 일주일이 넘게 5.16의 비화를 중심으로 청와대 생활을 쭉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제 하야를 하시게 되고 이제 야인, 야당의 영수 해위 선생의 그 후의 이야기는 다음 월요일에 계속해서 듣기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입력일 : 201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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