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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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윤보선 편 - 제10회 계엄령 인준장정권 총사퇴/대통령직하야결심
윤보선 편
제10회 계엄령 인준장정권 총사퇴/대통령직하야결심
1966.01.20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네, 어제 장면 당시의 총리가 에... 없어져서 에... 나오시라고 이제... 신분을 보장한다는 윤 대통령의

방송. 그 후에 당시의 최고회의의 의장이죠? 장도영 씨의 방송. 이러한 것이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끝났었는데 그 후에 계속해서 좀 이야기해주십쇼.

- 네, 에... 그 후에 장면 씨가 나타났습니다. 근데 내가 생각하기는 18일날 오후... 내가 생각하고 있어요.

- 그쯤 되는 것 같습니다.

- 18일인가, 19일 날. 아마 18일 날 같습니다.

- 네, 그게 총 사직을 하고 계엄령을 추인을 하고... 뭐 이런 절차를 밟은 때였죠.

- 에, 그들이 중앙청으로 모여 들었어.

- 네, 그랬었죠.

- 각료들과 장면 씨가 모여 들었는데 에... 거기서 먼저 한 것이 에... 계엄령을 선포를 하는 것을 하는데

계엄령 선포하는 데는 대통령의 권한 중에 중요한 권한이 계엄령을 그것을 인정할 수도 있고 부인할 수도 있고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반드시 대통령의 결재를 맡아야 한다 이 말이야. 근데 얘기가 선후가 바뀝니다마는 처음 혁명 나던 날, 박정희 소장과

다른 분들이 들어왔을 적에 그때 날 보고 계엄령을 추인을 해달라고 그런 말을 했어. 근데 나한테 들어오기 전에 벌써 계엄령을 선포했거든.

- 네.

- 그러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대들이 계엄령을 선포를 떡 하고 다 계엄령을 편 다음에 날 보고

추인해달라는 건 뜻이 어디 있느냐? 필요 없는 짓 아니냐? 난 그런 건 못하겠다.’. 그날 박정희 소장이 기분이 그렇게 좋지 못했을 겁니다.

못했을 것이, 자, 자기 지지하는 성명안을 내달라는데 그걸 내가 거부를 해, 인저 계엄령안이 급하니까 계엄령을 에... 폈는데

그것을 인제 추후라도 대통령이 추인을 했으면은 자기네 다 스무스하게 돌아갈 텐데 그걸 또 거부를 해, 그러니까 하나도 뜻이 나하고 맞지 않았죠.

- 네.

- 어... 그래서 인제 자기네들은 합법적으로 한다고 해서 다시 인제 거기서 각인을 열고 어... 계엄령을 인제 펴기로 하고

그걸 나한테 인준을 받기로 했어.

- 네.

- 그리고 동시에 총 사직은... 참 정권이 총 사직을... 거기서 다 내려갔습니다. 한 후에 아마 그때도 오후가 될 거예요.

오후, 장 총리가 당시 총무처장으로 있는 어... 정응주 씨를 대동하고 청와대로 들어왔습니다.

- 네.

- 들어와서 그 얘기를 해서 내가 그때서 비로소 계엄령을 어... 결제를 했습니다. 저, 당시에 참... 장면 총리를 그렇게 내가

다시 대할 적에 내 심경은... 어... 그런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고 또 그때 장면 씨도 날 보고 ‘자, 인제는 대통령 한 분밖에 남은

이가 없으니까 잘해주쇼.’하는 부탁을 해요. 나는 그때 에... 장면 씨 보고도 거듭 얘기를 했습니다. ‘군인이 쿠데타 했다는

이 사실이, 이것이 대한민국에 나는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본다.’. 아... 흔히 후진군에서 군인들이, 참, 총 가진 사람이

쿠데타 하는 것이 가장 용의한 일이고 많이 있는 일이지마는 만일 우리나라에 이것이 자꾸 악순환이 되고 오... 이런다고

볼 것 같으면 우리나라는 더욱 곤경에 빠질 거다.’하는 얘기를 장면 씨 보고 하고 대단히 피차에 비통한 표정으로 작별을 했습니다.

- 면담이 길지는 않았습니까?

- 네?

- 면담이 길지는 않았습니까?

- 아... 별로 그렇게 오래 얘기는 못했고, 그런 정도로 얘기를 하고 또 장면 씨도 길게 얘기할 심경이 아니었었고 말이에요.

에... 해서 뭐, 지금 혁명이 나가지고 자기 총 사직하는 사람이 지금, 에, 뒷일에 대해서 무슨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하니까.

그런 정도로 끝이 났고. 어... 인제, 인제 다음에는 내 일을 결정하는 겁니다. 내 사정을-.

- 네, 그때 하야 성명을 내셨죠.

- 그것은 왜 그랬냐 하면은 내가 첫날, 혁명난 그 순간에 나는 그만둘라고 결심을 했고 오... 박정희 소장보고도 그런 뜻을 얘기했더니

만류를 했어요. 만류를 해서 얘기가 오래 됩니다. 그런 것을 내가 얘기를 더 길게 할려고 끊어버린 것은 그 얘기를 가지고 오래할

신경도 아니고 말이지. 내가 또 하야를 하는데 또 박정희 씨의 동의를 얻을 필요도 없는 게고. 내가 형편에 따라서 하야를 하면은

고만이지. 음, 하겠소, 못하겠소 하는 얘기를 장황하게 할 필요가 없어서 끊고. 인저 내가 생각은 자, 지금은 인제 내가 하야할 때다.

인저 이렇게 되고 볼 것 같으면은 지금 수심이, 시국이 일단 초보적 일단락은 난 셈 아니냐? 그러니까 나는 하야할 것이다. 해서

그 이튿날 내가 하야하기로 결심을 하고, 아...

- 장도영 씨.

- 장도영 씨. 장도영 씨라든지 이 사람들한테, 박정희 씨라든지 이 사람들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좀 청와대를 들어오라고.

그것은 내가 하야 성명을 내기 전에 이렇게 한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 네.

- 근데 그들이 에... 저, 혁명 조조고 뭐. 여러 가지 자기네들도 참 부산하고. 어... 이래서 그때 안 들어왔어.

- 아...

- 그래, 무슨 호의가 있고. 아직 끝이 안 나고. 그렇다고 연락을 하면은 늘 그렇게 되고. 아직 안 들어왔기에

내가 생각을 해보니까 들어오면은 내가 예고를 하고서 할라고 한 거지 더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 어... 그때

인제 하야 성명을 냈습니다.

- 네.

- 물론 말로 말하면은 어... 정치적 책임도 없고. 또는 대통령은 정치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돼있고.

오... 하지만은 어... 여기에 혁명이 이 나라에 난 이상에는 나 역시 거기 있고 싶은 심정도 아니고.

또 적어도 점진적 책임을 나라도 안 느낄 수가 없는 것이고.

- 네.

- 그래서 하야 성명을 낸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야 성명이 나가니까 이 사람들이 깜짝 놀란 모양이거든?

- 아, 네.

- 그래서 우선 장도영 씨가 몇몇 2~3명이 와서 하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극구 만류를 합니다.

그날 저녁은 그렇게 지나고. 본격적으로 날 조르는 거야. 하야해서는 안 된다는. 또 인제 여기에 참 묘한

국제법 해석이 하나 드러났는데 그거는 나도 몰고거.

- 네.

- 또 혁명한 그 사람들도 생각을 못했던 거야. 그거는 뭣하는 거냐 하면은 내가 그때 오직 한 사람, 유일한

헌법기관이다-.

- 네, 그렇죠.

- 내가 인제 사표를 내고 볼 것 같으면은 저... 이... 이... 처음 건국해서 이승만 박사 적부터 시작해온 대한민국을,

이제 그 시간, 내가 사표내온 그 시간까정, 하야하는 그 시간까정으로 종지부를 찍어버리는 거라구.

- 네.

- 인제 앞으로는 새, 완전히, 새 나라, 새 정부가 서는 거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다시 인저 모든 우방과

아... 이... 관계를, 국제관계를 다시 맺어야 합니다.

- 네.

- 그때 근 50개국의 국제조직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에... 그들 말이 이... 만일 이걸 다시 하자면은 1년이 걸릴지, 반년이

걸릴지 모르겠소. 또 그때 가령 우리 정부를 승인한 나라가 반드시 다시 승인하란 법도 없소.

- 네.

- 인제 그것뿐만 아니라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게야. 유엔군이 지금 이 나라 38선 근처에 와 있어도 내가 아... 참... 하야를 하고

볼 것 같으면은 그들이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울 법적근거가 없다는 거야.

- 네.

- 아... 그러니까 공산군이 집결해 있는 이 자리에 있어서 공산군이 들이민대도 유엔군은 수수방관할 수밖엔 없다는 거라.

- 네.

- 그러니 이걸 어떡하겠소? 당시 나도 참 그런 점에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고 한데 나도 참 고민을 했습니다.

나는 벌써 하야한다는 성명을 냈고 오... 이것이 전파를 타서 나도 참... 다른 나라까지 다 알려져 있는 일이고.

또 국내에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자, 그런데 이거를 지금 내가 건의를 해서 그만 그대로 주지 않겄다 하는 것도

이것이 나 개인으로 봐선 이상권 침해가 있고 여기에 많은 오해가 있을 줄 알아요. 국민도 그 하야 성명 낸 것은

일종의 또한 결정 아니냐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아, 이거 정신병자 아닌 다음에는 어젯저녁에 하야 성명을 내고

오늘 또 발의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그날, 외무부 사람들 모두 여러 사람들이 오고, 혁명군

수뇌들이 와가지고서 건의를 날 조르고 나도 비상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걸 등원해서 결정하기는

자, 이, 공사를 내가 구별해야 되겠다. 내가 이이상 더 나한테 곤란을 받더래도 어... 혐의를, 오해를 받더래도

이것은 나라의 손실이 된다든지 만약에 괴뢰군이 여기에 남침했을 적에 그런...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적에

이번 기회는 내가 이걸 남기고 다른 기회에 그만 두는 기회를 만들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사실

그때 고별 기자회견을 하게 돼있어서 4시에 하게 돼있던 거예요.

- 네.

- 근데 기자는 와서 수백 명의 내 외빈 기자들이 와서, 청와대에 와서 법석을 하고 있는 마당으로... 접견실로 온통 끌고

야단이 났는데 여기선 끝이 안 나가지고서 결국엔 6시가 넘어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고별기자 회견이 아니라 번외 기자회견이

되고 말았습니다.

- 네. 그때 그랬었죠. 고맙습니다. 또 시간인 것 같습니다.

(입력일 : 201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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