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 시간에는 전 대통령 윤보선 씨와 동아일보 정치부 차장 권오규 씨의 대담으로 보내드립니다.
- 지난번까지 5월 16일 날, 바로 그날 아침의 여러 가지 상황을 쭉 들었습니다. 에... 혁명군과 당시의 국방장관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면이라든가, 그 후에 또 미국 사람들이 와서 에... 헌법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로 혁명군 진압을 종용했을 때에 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해위선생의 당시의 고충이라는 걸 충분히
실감하게 됩니다. 근데 조금 더 이야기를 진행을 시켜서 당시에 저... 우리 1군사령부 쪽으로 그러니까 야전군이겠습니다만은
그쪽으로 대통령께서 에... 어떻게 하라 하는 그러한 친서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좀 더 계속해주셨으면 합니다.
- 예, 에... 내가 그때 1군사령관 이한림 중장과 또, 오... 그 군단장, 여섯 군단장한테 친서를 보냈습니다. 저... 비서들 비행기를 타서, 태워서
그 친서의 내용은 말하면 중요한 것이, 에... 지금 정치적 형편이 이렇게 됐으니, 에... 군인은 더욱 언제보담도 38선 수호에 더욱 노력을 해줘야겠다는
어... 이런 서한이었습니다. 근데 여기 중요한 사실 하나는 어... 그때 비서들이 와서 보고를 하는 거 볼 것 같으면 군단장 중에서는
서로 지금 이, 서울 들어온 혁명군을 포위하기 위해서 어, 출병을 동원하라고 한대도 우리는 그걸 안 할 작정이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또 우리는 중립을 지키겠소 하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 네.
- 오직 이한림 장군이 그때 말이 이것은 대통령이 어떻게 해결을 해주시오 하는 말을 하더랍니다.
- 네.
- 근데 이게 중요하다는 것은 뭐냐 하면 매그루더 장군 말에는 여기 지금 일선에서 4만 명을 곧 데려와서 쿠데타군을 제압할 수가
있다고 이렇게 말했는데 실제 군의 사정은 꼭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 그것이 에, 사실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 네.
- 인제 그... 수일 후에 그, 정부를 옹호하려고 하는 이한림 장군이 에... 이, 혁명군에 의해서 포로가 됐습니다.
- 네, 그랬었죠.
- 그래서 수월 동안 영어의 몸이 돼서 고생을 하다가 아... 인제 그것이 풀려서 미국엘 가게 됐는데 그날 날짜는 기억 못하소이다만
어느 날 이한림 장군이 지금 미국을 가는데 나한테 작별을 하러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난 대단히 반갑게 생각을 하고
그를 맞았더니 이한림 장군 말이 에... 그날 오후 3시인가, 2시 비행기로 미국으로 떠나는데 에... 잠깐 와서 인사를 하러
왔소 하는데, 그대로 그 이 장군의 말대로 하고 올 것 같으면은 5.16때 각하의 판단이 옳았소 그런 얘기야. 만일 그때-.
- 네.
- 에, 이 일선에서 어... 군인을 빼다가 아... 서울을 포위하고 거 이 쿠데타 한 사람들하고 전쟁을 했으면은
했으면은 이, 공산군이 반드시 남침을 했을 거요 하는 것을 이한림 장군이 나보고 얘기를 합디다.
- 네.
- 근데 인저 그때 시간상으로 봐서 그때 이한림 장군이 나한테 들어와서 얘기하는 것이 아마 12시가 좀 넘었다고 봐.
왜냐면 2시나 3시에 떠날 사람이 시간도 대단히 촉박한데 와서 날 보고 얘기하는 그 의미는 다른 것이 작별이라는 것
보담도 그동안 에... 자기가 느꼈던 거, 자기는 처음에 혁명이 났을 적에 정부를 지지했던 그런 입장이 있었던 사람으로
어... 그... 형편이 그때 만일 그렇게 됐으면은 결국은 이 나라에 공산군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것은 아마 느껴서 말이지.
- 네.
- 나한테 들어온 요지는 말하고 싶은 점은 그 점이 아니었던가.
- 5.16 당시에는 선생님하고 얘기가 달랐지마는 그 후에 깨달았다, 이런...
- 네, 그래서 나도 참 그럴... 그런... 에, 의견이 나랑 같았던 것으로 그 후에는 확실히 참 같았던 걸로 알고 있고. 그러나 대통령은 반드시
이... 쿠데타를 합법화한다든지 지지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죠.
- 네.
- 그러니까 아... 그것은 아... 그때 형편이 그렇다는 게고. 어... 이... 대통령으로 쿠데타를... 형...편에 있어서는 어...
지지할 수 없을 게고 말이지.
- 네.
- 하는 것은, 그것은 원리원칙일 테죠.
- 네, 그렇죠. 헌데 마... 이때까지 저... 청와대에 계시면서 당시 유일한 헌법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에... 혁명군과 이렇게
맞부딪쳐서 여러 가지의 사태를 처리하시는 데 에... 고충이 많으셨고 뭐 이런 점 이해를 하겠습니다마는 일부에는 역시 당시에
윤 대통령이 혁명을 정착시키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 하는 이야기가 있고 이런 건 이렇게, 민주당, 당시의 민주당사, 민주당에
가까웠던 사람 안에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제가 마, 알기론 총리가 그때 어디로 없어져서, 말하자면 정치적인
제1차적인 책임이 있는 총리가 어디 없어졌기 때문에 사태가 이렇게 좀더, 윤 대통령 쪽에 많은 책임이 돌아가 버렸다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장면 씨의 동정이라고 할까요. 그때 장면 씨의 동정과 대통령의 그, 대통령으로 계시던 해위 선생님의 움직임과
그런 걸 관련시켜서 장면 씨에 관해서 좀 말씀을 해주세요. 언제쯤 만나셨나요?
- 에, 장면 씨를 만난 것은 아마 내가 아... 18일인가. 아.. 그렇게 된 줄로 압니다.
- 네.
- 18일인가 그렇게 되는 줄 아는데 에... 뭐 아시다시피 지금 내각책임제에 있어서 대통령이라는 것은, 이것은 완전히
상징적 존재고-.
- 그렇죠.
- 정치의 책임만 없을 뿐 아니라 정치에 간섭을 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아... 내가 호의로 어떤 때는 참... 아.. 무엇을 해도
정치 얘기를 한다든지, 정치에 무슨... 에... 관심을 가졌다고 해서 대통령이 정치에 간섭을 한다고 시비 들은 일도 있습니다.
- 네.
- 근데 인제 혁명이 나니까.. 아.. 장면 씨 소재를 알 수 없게 돼서 내가 제일 그, 곤란한 것은 어떻게든지 장면 씨가 속히
나와서 이 사태를 수습해줘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해가지고 당시에 8군사령부, 또는 미국대사관. 그 외에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데를 모두 알아봤습니다. 장면 씨가 어디 있나. 그러나 도무지 그... 소식을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 장도영 중장이 에... 청와대를 들어왔길래 내 장도영 중장 보고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 장면 씨가 나와야 꼭 되겠는데 장면 씨를 나오라고 내가 방송하고 싶다.
- 네.
- 그러면은 어... 니가 장면 씨의 신변을 어... 보장하겠느냐?
- 네.
- 그러니까 장도영 장군 말이 ‘보장하다뿐이요-.’
- 네.
- ‘절대로 보장합니다.’ 그래서 내 장면 씨를 나오라고 방송을 했습니다.
- 네.
- 그랬더니 에... 비서실로 전화가 오는데 장면 씨한테서는 직접 전화가 아니오고 다른, 인저, 민주당 각료들한테서
전화가 오는데 ‘지금 우리를 청와대로 오라고 그럴 것 같으면 가지마는 다른 데로 오라고 그럴 것 같으면 가기가
어렵소.’-.
- 아...
- 또 인제 어떤 분은 얘기하기를 ‘대통령은 우리 신변을 보장한다고 하지마는 자, 그것이 대통령의 말이지.
쿠데타를 일으킨 저 사람들 말은 아닌 것 아니오? 하니 우리가 암만 해도 그 사람들 말 듣기 전에는 이, 에,
안심아 안 되오.’하는 얘기도 나왔어. 그래서 그 이튿날 내가 장도영을 불러서 그 전화 왔단 얘길 했더니
장도영이가 그러냐고 그럽디다. 그러면 그, 이, ‘내가 역지사지를 해봐도 그럴 수 있으니, 그대가 직접
방송을 하면 어떠냐?’.
- 아, 네.
- 이러니까. ‘아, 하다뿐입니까. 제가 하죠.’. 그러면서 방송을 했습니다.
- 아, 네.
- 그런데 그 방송에 무엇이 아... 중요한 포인트냐 하면은 신변보장이 완전히 된다 하는 것이-.
- 아...
-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런데 에... 그들이 그 약속을 안 지켰어. 그 후에, 그들이 나온 후에 곧 또 민주당
각료들을 잡아놓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건 장도영 씨가 실언을 했는지 다른 이들이, 그렇게, 형편이
그렇게 됐는지. 어쨌든지 당시의 최고 집권자 아... 장도영 씨를 말을 듣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 네, 시간인 것 같습니다. 또 내일 듣기로 하겠습니다.
(입력일 : 201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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