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 에, 지난번엔 에, 5.16날 아침. 에, 이렇게 혁명군과 당시의 국방장관 등이 한꺼번에 와서 만나셨다는 이야기, 고 직전까지를
들었는데 오늘 그 계속으로 좀 더 들을까...
- 그, 예... 그들이 왔단 말을 듣고 내 접견실을 나갔더니 그들이 대기를 하고 있습디다. 그래서 어, 어, 얘기가 시작이 되는데
에... 박정희 씨가 먼저 날 보고 얘기하기를, ‘아, 저희도 젊은 처자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나랏일을 이렇게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오직 애국심에서 목숨을 내놓고 혁명을 했습니다.’
- 네.
- ‘대통령께나 국민에게 너무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렇게 말을 꺼냅디다. 그러나 자리를 권하면서
나도 앉으면서 부지중 한 말이, 무슨 말을 했느냐면 ‘올 것이 왔구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 음.
- 이 말은 여러 군데서 참 그... 코테이션을 해서 아... 내가 마치 혁명을 환영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렇게 얘기가 되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고 그때 형편이 데모는 매일 아침에서부터 저녁까지 극도로 경제라든지 사회가 불안하지 않았든가요. 그런데
지금 유언비어는 각 군데에서 돌아다니면서 인저, 2월에는 3월에 우리가 있다, 3월에는 4월에 꼭 우리가 있다, 4월에는 5월에는
뭣이 난다 하는 참, 꼭 기대하는 것처럼, 예언자가 얘기하는 것처럼 현실에 의해서 그런 얘기가 되던 거죠. 아, 인제 내가 혁명이
났다니까 내가 그것을, 그 불안한 것을 연상하고 그저 낫구나 하는 그 얘기야.
- 네.
- 아... 그래서 내가 박정희 씨 보고 말을 하기를, ‘그대가 나라를 위해서 애국심에서 혁명을 했다니 첫째, 그대가 명심해야 될 것은
피를 봐선, 흘려서는 안 되겠다. 나라 사람을 위해서 했다고 하고 볼 것 같으면은 이 나라 국민의 생명을 존중해야 될 것 아니냐.‘
어... 나는... 어... 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 민주당 각료들한테 보복을 한다든지 무슨 그... 어... 그들한테 생명에 무슨, 위협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 각료의 한 사람인 현석호 씨는...
- 현석호 씨는 같이 동석을 하고-.
- 동석을 하고 있죠.
- 인제 어... 그런데 얘기 좀 바뀝니다마는 내가 인저 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어떤 정보를 청와대에서 들었느냐 하면은
각료들이 다 피신을 했고.
- 네.
- 현석호 씨하고 한통숙 씨하고 둘이 이... 혁명군한테 포로가 돼서 어... 여기 시장실에 감금이 돼있다 이렇게 들었어.
- 네, 시청에 말이죠.
- 에?
- 시청에.
- 네, 시청에. 그런데 거기에 현석호 씨가 들어왔으니까 나는 그때 생각이 저 혁명한 사람들이 현석호 씨를 지금 포로로 잡아가지고
끌고 댕기는 줄로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 아... 네.
- 해서 현석호 씨를 못 봤더래도 그것이 내가 그들한테 부탁할 일이었고 그때 또 계엄령을 하고 그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 네.
- 그래서 내가 박정희 씨 보고 말이 에... ‘지금 계엄령을 폈다니 계엄령을 폈으면은 그대들 말이 곧 법이고
그대들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으니 절대로 피를 흘리는 일이 있어서는 그대들은 애국정신에 위반되는 거다.
그러니 이걸 명심을 해달라,‘ 그렇게 내가 말을 했습니다. 아... 그러고 오... 나로는 노파심에서 그대들이 또 명심해야 될 것은
치안을, 지금 이런 때를 이용해가지고 어... 이 치안이 문란해선 안 될 테니까 아... 치안을 유지를 해야 될 테고
물가를 상승하는 것을 막을 도리를 해야 되겠다 얘기를 하고 그 다음에는 나는 청와대에서 물러갈 테니 그대들 마음에
맞는 사람하고 같이 일을 해라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 네.
- 그랬더니 인제 어, 박정희 씨 말이 에, 절대로 대통령에서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이제, 권유를 합디다. 그러나 그때 내가 무슨
그 얘기를 가지고 그 사람들하고 장황하게 하고, 할 심리가 없었어. 심경이 아니야.
- 네.
- 내가 청와대를 물러나는 것은 내 자유지 말이지. 박정희 씨가 나보고 물러나지 말아달라고 권고를 한다고 내가 안 물러날
것도 없고 하니까 그 얘기는 내가 앞에 대의를 위해 일어서기로 작정했으니까 아... 얘기를,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릴려고 내가
했더니 그들이 일어나서 간다고 그럽디다.
- 네.
- 그래서 일행이 다 같이 일어나더니, 에... 다른 이들은 접견실 바깥으로 나가고 뒤따라 나가던 어... 박정희, 유원식 씨 두 분은
도로 돌아서서 나한테로 온단 말이지.
- 네.
- 와서 얘기가 ‘아... 저희는 혁명 전에도 대통령한테 충성을 다했고 또 지금 혁명한 오늘 이 자리에서도 각하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마치 인조반정과 같이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얘기를 합디다.
- 아, 네.
- 그러더니 이어서 말이 무슨 소린고 하니 ‘대통령께서 이 혁명을 지지하는 성명을 하나 내주시오.’
- 네.
- 그런 얘길 해. 그래서 나는 일언에 거절을 했습니다. 혁명을 지지하는 성명은 내가 못 낸다.
- 네.
- 요전에도 내가 저, 뭣이...
- 한 가지 이유를 얘기하셨죠.
- 이유를 한 가지는 얘기했습니다만 다시 중복을 해서 얘기하면은 ‘이다음에 역사가가 그대들의 행동에 대해서
잘한 일이라고 할런지 못한 일이라고 할런지 그건 내 모르겠다. 하지만은 내 오늘 입장으로는 군인이 쿠데타 했다는
이 사실을 나는 좋아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그대들을 위해서 성명을 보낸다. 둘째 이유는, 내가 그들을 지금 처음 보는
사람이야.
- 네.
- 눈도 코도 모르는 사람이야. 아, 지금 혁명을 해서 서울을 점령했으니 나를 지지해줘 한다고 그대들이 이 나라에 얼마나
큰 업적을 남기고 복리민복을 한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믿느냐, 그러니까 그대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낼 수가 없지 않느냐? 그렇게 한다면 국민의 오해가 생길 게다. 그것은 청와대에서 어... 혁명이 나자마자
혁명이 잘 났다든지, 가령 박정희를 지지한다든지, 이렇게 지금 나온다고 할 것 같으면 국민이 생각할 적에 아, 대통령이 뒤로
저 혁명군하고 손을 잡고 있었구먼. 이렇게 오해를 할 것이다. 내가 봐도 혁명을, 참 이 국가를 위하는 충성에서
혁명을 꼭 해야 될 것 같다고 한다면 내가 이 자리를 버리고 나가서 혁명을 한다면 모르지마는 이 자리에
앉아서 혁명과 손을 잡는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냐, 그러니까 아... 내, 그런 의미에서
그런 일을 할 수가 없고, 만일 국민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아니 한다면은 아, 저, 군인이 들어가서
대통령을 위협을 해서 그 위협을 못 이겨서 지지성명을 냈다. 이렇게 생각할 것 아니오?!
- 음.
- 그러니까 이것이, 이 성명이 그대들한테 유익한 것이 못될 것이야. 그러니까 난 이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성명을
내달라는 것을 못하겠다고 거부를 한다고 그랬더니 사실은 혁명... 그 세력하고 나하고 어... 말하자면은
거의 참.. 구수지간이라도 어... 뭐... 과연이 아니었어.
- 네.
- 그것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면은 이 시간부터 시작이야.
- 네.
- 성명 내달라는데 안 내준다면서부터 이 사람들이 윤 대통령은 자기네하고 절대로 협조 않는다,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 저... 헌데 박정희 장군과 그때 같이 들어갔다는 유원식 씨는 그 전부터 선생님을 알고 있었다는 이런 얘기를
제가 들었는데요.
- 헤, 아... 그런 얘기를 자꾸 한다는 걸 들었소이다. 그... 어... 그거를 두 번 만났다는 얘기까정 하는 얘기를 들었소이다.
- 네.
- 그런데 사실 알고 보니까 두 번 만난 건 틀림없어. 아, 한 번은 정월초하루날. 일반 하객들... 초 하루날 인사를 받는데
거기 유원식 씨가 왔더라는 얘기고.
- 청와대에서요?
- 청와대에서. 그러니까 천여 명 사람에 거기 유원식 씨가 낀 걸 내가 기억할 수 없었고 그 다음에는 유원식 씨가 상제가 됐어.
그래서 유림 씨가 내가 잘 아는 분인데 에... 나... 작년에도 참여를 못했다가 아... 그 후에 장지를 한 번 간 일이 있습니다.
어... 가는데 일요일날이면 내가 가족을 데리고 교회를 나가는데 그날도 교회 나갈 겸 인저... 이, 우이동을 가면은
해공, 유석을 내가 보고 갑니다. 그런데 듣기에는 그 유림 씨 산소도 그 유석 묘소 올라가는 데 거기 있다고 그래.
- 아.
- 그래서 참... 그... 장례에도 참여를 못했고 해서 조그만 꽃다발을 해가지고 그 유석 묘소로 올라가는데 참
내려다보니까 거기 구관제복한 사람도 있고 사람이 여럿이 와있어. 버스도 와있고. 그 보니까 그날이 삼우야.
- 음.
- 그래서 내려가서 구관제복한 상주한테 인사를 하고 그리고 거기 온 여러 조객들도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날 보고 인사를 하고 고맙게들 생각하고 잠깐 거기서 인사를 나누고서 그 위 유석 묘소로 올라갔던 일이 있어.
그러니까 두 번 만났다는 얘기는 틀림없는 얘기지. 하지만 두 번 만나가지고 혁명 얘기 할 새는 나는 없었던 겁니다.
- 네.
- 아하하하.
- 저희들 신문에도 한 번 난 일이 있습니다.
- 글쎄, 동아일보에서도 한 번 났는데. 동아일보에서 난 것은 두 번 만났다고 한 것까진 좋은데 두 번 만났는데
무슨 내용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그건 좀 나 보기에는...
- 그건 잘못된 것 같습니다.
- 네, 나중엔 잘못된 거라고 그랬습니다.
- 근거 없는 얘기를 한 모냥 같습디다.
- 그러면 요 다음-.
(입력일 : 201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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