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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윤보선 편 - 제3회 안국동 자택에 얽힌 얘기
윤보선 편
제3회 안국동 자택에 얽힌 얘기
1966.01.12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음악)

- 에, 지난번까지 정치이야기로 좀 딱딱한 이야기가 된 것 같은데 오늘 저녁은 에... 좀 해위 선생님 주변의

신변잡화라고 하면 좀 뭐합니다마는, 에, 그런 부드러운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 합니다. 먼저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그것도 그렇습니다마는 뭐, 보료가 깔리고 이, 마당에 아주 잔디가 푸르고 이런 안국동의 집.

그러면은 곧 해위 선생을 연상을 한다든가 이렇게 되는 것이 일반입니다. 에, 이 집이 또 정치와도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압니다. 아, 해방 후에 한국 민주당이 생길 때라든가, 그 후에 민주당이 탄생할 때, 이럴 때 이 집을 상당히 활용했다고

듣고 있는데요. 이 집의, 집의 역사라고 그럴까요? 이런 고옥이 서울에 흔하지 못한 것으로 저는 압니다만.

- 네, 에.. 이 집이 에... 한 백여 년 전에 지었습니다.

- 네.

- 백여 년에 지어서 우리가 여기 지금 4대째 살고 있습니다. 근데 이 집은 처음에 민 씨가 지었어요.

- 네.

- 민 씨가 짓고 오, 먼저 집에 대해서 얘기가 많습니다마는. 음, 그 후에 박영효 씨가, 박영효 씨.

- 네. 박영효 씨가 거기가 부마 아닙니까?

- 네.

- 임금의 사위란 말이죠.

- 네.

- 그 박영효 씨가 이, 일본으로 망명을 했다가 다시 망명이 풀려서 한국엘 오니까 집이 없단 말이지. 그래서 어.. 태황제, 고종황제가

집을 하나 마련해주시는데 에, 이 집이 선택이 됐어. 그래서 이게 인제 박영효 씨가 살던 금릉위군이라고 박영효 씨가

금릉위거든. 그러니까 금릉위가 사는 집이니까 금릉위군으로 있다가 그 후에 우리가 조부 적에 이리로 이사를 왔습니다.

헌데 에, 이전에 우리 참... 젊었을 적에 의국하기 전만 해도 서울에 대가가 많았습니다. 남북촌으로 갈라가지고

북촌하면 인제 문관들이 살고, 남촌에는 무관들이 살아. 지금 어, 여기 세도들이 어디 많이 살았냐 하면은

지금 경운동, 운현궁 있는 거기, 인사동. 또 견지동. 박동. 여기가 거의 세도들이 사는 대가들이

모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걸 북촌대가라고 해가지고 여기만 해도 이 집이 제일 그 대가로는 비교적

나이가 어린 집이야. 거기 인제 있던 집들은 다 수백 년 된 집들인데 지금 거의 다 없어졌지.

- 거의 없어졌죠.

- 거의 없어졌고 인제 남촌에는 지금 얘기했듯이 무관들이 사는데 지금 저동이라든지, 내무부 있는 데라든지

그 근처에 대가, 무변대가들이 살던, 그, 내가 외국서 공부를 하고 나오니까 우리 선인이 날 보고 니가

외국 가서 오래 살고 해서 아마 한국식보담 아, 서양식 집을 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으니 집을 하나

지라고 날 보고 말씀을 합디다. 그런데 한국에 왔으면은 한국에서 한국 집 사는 것도 어... 무방해서 난 그저,

그때는 층층시하에 있어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생존했습니다.

- 네.

- 그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머니, 아버지, 여기서 모시고 살겄소 한 것이 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돌아가시고, 모두 돌아가시고 오늘 내가 여기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에, 에, 지금 얘기다시피 그런 고가가,

대가가 거의 다 없어졌어요. 근데 이 집은 한... 지금 보존된 집에 몇 집 안 되는데 아... 하나라고 그렇게 보는데

에... 거의 이런 집이 없기 때문에, 에... 우리나라 사람한테도 이전에 집이 이렇다는 것을 보이는 의미에서, 그것도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이렇게 봅니다. 한 번은 내가 저, 바깥마당에 서 있으니까 아, 고등학교 학생들이, 고등학교 학생 모자를

쓴 학생들이 한 서넛이나 지나가다가 대문이 열려 있으니까 내다보면서 이거 뭘 하는 게야? 사람 사는 데는 아니고.

- 아하하하하.

- 이렇게 얘길 합디다.

- 네.

- 이제 그 사람들은 요새 신식 집에 이렇게 살아서 이 집은 가령 산정사랑이 저기 있고 큰사랑이 여기 있고

또 뭐 이렇게 안채가 따로 떨어져 있고 또 별당채가 떨어져 있고 뒤채가 떨어져 있고 여러 가지로 구별이 되니까

요새 한 집에 있는, 새로 지은 집에 살던 사람은 어... 이것이 보통, 어... 사람 사는 집은 안 같았던 모양이야.

- 아하하하.

- 무슨, 그런 의미에서도 그렇고. 인제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오면은 외국의 국민들은 이 나라를 오면은

대개 그저 이틀, 아니면 사흘 그런 정도로 길어야 사흘 정도로 묵고 가잖아요. 그러면 그들이 인제 어디 드느냐 하면은

조선호텔, 혹은 반도호텔에 들어서 거기서 식사를 하고 1, 2일 있다가 가고 볼 것 같으면은 사실 한국 가정이라든지

한국의 모습은 모릅니다. 또 혹 가령 여기 아는 친구가 있어서 한국 집을 방문한대도, 한국 집은 최신식, 요새 이런 구식 집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이전 집이 어떻다는 그 인상을 얻지 못합니다. 그 여기는, 외국의 귀빈들이 간단히 식사라도 같이 하고 이렇게 초대를 하면은

와서 대단히 좋아해요. 다 한국식이 이러냐고. 정말 한국을 왔다 간다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읍디다.

그게 나는 이 집이, 이런 집이 많을 것 같으면은 뭐 그런 생각이 안 나지만은 이런 집이 드물고 하니까 일종의

문화재로 생각을 하고 이 집을 보존하는 것이 내 의무다 이렇게도 생각을 해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전 고옥에 이게 신문에 사진이 나더래도 보료강석을 떡 깔고 뒤에 병풍을 치고 있으니까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나를 아주 완고한 사람으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내, 이, 내 비서들도 아, 저, 조를 좀 놓고 앉으시라고 얘기를 합니다.

신문에 사진을 박아 놓으면은-.

- 네.

- 그러나 난 그것은 개의를 않습니다. 한국 집에는 한국식도 무방하니까 여기 이, 사는 환경에도 무슨 참, 관계가 있을 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아, 뭐, 이 집에 산다고 반드시 내가 수구를 하는 사람이고 또 신사조를 배척하는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

일신은 나를, 신문이나 또 아는 사람들이 영국신사라고 그렇게 나의 별명을 짓더니 근래에는 나를 백년은 고사하고 한 천년은

묵은 사람같이 이, 이렇게 이... 인정하는 그런 것도 당하고 있습니다마는. 음, 내가 아직... 참 내가 천년도 안 됐고

백년도 안 됐습니다. 아, 그런데 지금 이, 한국식의 이전 집을 그대로 하나 보존하는 것은 어... 의미가 없지 않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그, 저, 한 백년 됐다면은 마 문화재라고 과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 결국 시간은 모르겠습니다마는 여기가 조용하고 또 이 한국식 분위기가 내가 외국도 십여 년을

가 있어서 외국 집에서도 참 상당히 생활을 해봤습니다마는 안정된 그런 기분을 갖고 있어요.

- 네, 지금도 아주 녹음을 해도 아주 알맞을 정도로 고요하게 아늑합니다.

- 네. 그것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도 그런 얘길 합디다. 그러고 여기 인제 한국식의 재밌는 것은

가령 이사랑 하면은 이사를 해, 사면이 다 담이 됐다거나 담이 돼서 이제 안으로 통하는 문이

세 군데가 있거든. 이 뒤에 있고 옆 당에 있고 앞에는 정문이, 에... 중문이 있고. 이 문만 닫으면은

여기서 내가 종일이라도 혼자 있을 수 있다고.

- 네.

- 그러니까 식구하고 완전히 차단을 하고 나 혼자 얼마든지 구상을 할 수가 있고 손을 종일 안 볼 수가 있고

이런 제도가 예전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마는 아마, 나 알기에는 그 내외간, 여자들은

내외를 몹시 하지 않았나요? 또 부자간에 예의 지키는 것이 엄격해서 그래서 집을 여기저기를 떼고

또 각각 문을 하고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런 참 사고하는데도 이렇게 한 채 한 채가

독립해 있기 때문에 퍽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 네.

- 옛날엔 뭐, 한옥은 이렇게 개방적이어서 이 프라이버시가 유지가 잘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디다마는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집을 보니까.

- 그렇죠. 네.

- 다음에 또 그러면 새 이야기 듣기로 하겠습니다.

(입력일 : 201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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