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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29회 부산 정치파동
이철승 편
제29회 부산 정치파동
1965.06.05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이제까지 이의원하고 그 학생운동 청년운동 그런거에 한해서 그 쭉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그 청년운동이 이제 번져가지고 부산시절 그러니까 14년 전 1951년에 국민방위군사건으로 터지기도 했고

-네

-또 거창사건 같은걸 겪으게도 됐고

-네

-이래가지고 이제 그 이듬해 1952년에 부산에서 유명한 이제 정치파동까지 번져나가게 돼는 얘기를 쭉 듣고 있는데

-네

-그래 그 저 요전에 이 정계야화 시간에 장택상씨.

-네

-창랑(滄浪) 장택상씨를 모시고 정치파동에 관해서 상당한 말씀을 들었었어요.

-네

-근데 기왕 이의원 모신 김에 그 부산 시절에 이의원이 또 겪었던 그 정치파동 때 그 재밌는 얘기.

-네

-이런걸 또 전부 들려주셨으면 좋겠는데 그 정치파동하면 에 늘 참 우리가 쓰라린 하나의 역사의 오점으로 까지 이렇게 여겨져 왔었는데 에 2차 개안한 대통령 직선제를 갖다가 제출...정부에서 제출한것이 실패를 한 뒤에 3차 4차 개안안까지 내가지고 발췌개헌안이 통과되기까지 벼라별 참 유례없던 재밌는 일이 많이 일어났었는데 그때 그 이의원은 부산시절에 어디 계셨었뎁니까?

-그 당시 뭐 저는 주로 부산에 있으면서 조병욱 박사가 내무장관을 그만 두고 에 남포동 조그마한 골목 기억나시는가 몰르겄어요?

-네

-거기에 홍문사라는 잡지사를 그 양반이 창설해가지고

-아 자유색인가 뭐 그런걸 내왔었죠?

-예 그때 그렇습니다. 지금 사상기사와 같이 그 당시에 ..한 잡지로서 소위 지식 수준이 높다는 층을 상대해가지고 그 양반이 그걸 소 일거리로 취미를 부쳐가지고 하시던 때입니다.

-네

-거기 중심으로 해서 에 소위민권옹호 하는 투자하는데 동지들을 ...하고 우국하는 청년들과 같이 연락하고 그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 그러니까 조박사가 하시는 잡지사 홍문사에는 뭐 이의원을 비롯해서 여러 그 청년들이 많이 모였겠죠?

-네 그렇습니다.

-네 대게 누구누구가 드나들었었어요? 그때

-그 당시에 그 국제구락부사건(國際俱樂部事件)에 주동이 되던 사람들은 거의 조박사 중심이 돼었습니다.

-아

-직접 조박사는 당시 민국당에 사무총장을 하고 계셨지만은

-네

-주로 그 양반의 정치적 능란한 솜씨로서 야당연합전선을 형성하는데 주동적 역할을 하고 또 민국당에는 관계없는 일반 소위 애국지사들이 그 홍문사를 중심으로 사랑방 같이

-예

-소위 시세를 개탄하는 ..같은 그런 이 위치에서 그리 잘 출입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저 남포동에 홍문사로 말하면 뭐 그다지 규모도 크지 않았겠죠?

-네 그렇습니다. 그 여러친구들이 조박사가 나오니까 그 양반 내무장관도 해야하고 있으니까 십시일반으로 사업가의 조박사 친구들이 돈을 걷어서 일억 몇 천만원인가 그걸 가지고 주식회사 홍문사를만들었는데

-음

-그것도 역시 그 잡지를 잘 하다가 이 민권운동에 전부 그 돈을 다 써버려서 그 홍문사가 오래 지탱을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 정치파동 때 그 겪었던 얘기를 좀...

-글쎄요. 그게 지금 정치파동 정치파동 하니깐

-네

-우리나라에는 으레히 그 꼬리를 물고 따라 댕기는 얘기가 되서 정치파동이 나오면 ..우리가 정치적으로 비상사태를 의미하는거 아니냐. 그래서 5.16정치파동이다. 이렇게 제일 얘기를 합니다.

-예

-그럼 그 뒤에 정치파동이 많이 있는데 이렇게 5.16정치파동이냐 이렇게 구분하기 위해서 어떤사람은 부산정치파동이다.

-그렇죠.

-어떤사람은 5.16정치파동이다. 이렇게 얘길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파동이 많은 나라도 없으니깐 뭐...

-그러게요. 그래서 그 특히 이제 그 부산의 정치파동을 여기서 중요시 하는 이유는 저번에도 창랑선생이 자세한 말씀을 하셨다고 했지만은 저는 그 양반들과는 스스로 그 위치가 달르기 때문에 좀 그 문제를 다루는데 각도가 달르지 않겠는가.

-예

-아주 뭐같이 제가 그 권력자리에 있을라고 한 사람도 아니고 있었던 사람도 아니고 담담한 사람들이니깐 오로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그 사태를 걱정을 하던 사람의 입장에서 에.. 말씀을 드린다 할것 같으면은 단적으로 이 5.16 부산의 정치파동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이박사가 4년 정치를 총 결산하는 대목이다.

-음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네

-이박사가 ..속에서 독립구국의 참 애국자고 대원로인것만은 우리가 부인할 수 없지만은 그 어른의 정치행장이 4년만에 어떤 결산을 가져오게 돼느냐. 그런문젠데. 국회에서라던지 모든 문제에 있어서 이박사가 다시 대통령에 선거를 하는데 대단히 지장이 많다.

-상당히 위태로운 위치였죠?

-예

-그때 원내 세력이 거의 야당일색이였지 않았어요?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박사가 당신이 당선이 될라면 적어도 과반수를 차지해야 할건데 뭐 3분의 2정도가 야당세력을 형성을 했기 때문에

-네

-그러면 이박사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권력을 연장하던지 유지할라면 크게 바람을 일으키고 거기에 따라서 투쟁이 생기고 법을 위반하게 되고 그걸 부패하는 일이 꼬리를 물지 않느냐 그 예로서는 그 이박사가 정치적 행정이라는 것은 한강다리에 6.25사변된 책임도 있을 거지만은 거창사건이나 원국민방위군사건이나 이게 직접적 관계가 있다. 이 얘기는 누누히 우리가 한 말...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네

-그래서 그 정치파동이 기한으로 말할거 같으면 5월 26일부터 언제까지냐.

-예

-그 뭐 7월 4일 기립투표하는 발촉..은 통과하던 그때까지라 그러면 그걸 단기로 취급 할수도 있고 그 전에 이시영 선생이 시소창이라 그러고 사표내고

-네

-국민방위군사건이네 이럴때부터 계산 할거 같으면은 이것이 근 1년 가까이 되는거고

-그렇죠.

-이렇게 해서 이 기한은 확실히 말하지 못하지만은 여기에서 5.16정치파동은 클라이막스가 국회의원들을 갖다가 전부 꺼꿀로 자동차에 싣고 끌고 가가지고

-헌병대가 끌고 간 5월 26일날

-어 그래가지고 에 잡아 넣고 국회를 포위하고

-네

-나중에는 국회의원들도 끌어내서 그 의사당이나 집어넣고 ...들을 정해가지고 국회의원들이 변소만 갈라도 출입증이 있어야 하게 해서 3일이나 농성을 시켜서 헌법은 정부의 대통령이 결국엔 이승만박사가 되게코롬 되는 그 헌법이 ..까지 그 파동을 일으키고 비상사태를 일으킨 그것이 정치파동의 기한이다.

-네

-이렇게 우리가 얘기할 수가 있다. 그러면 그 당시 그러면 국회나 정계의 분위기는 어떻한 사태에 있었느냐, 그 예를 제가 경험한 것을 통해서 말씀을 드린다 할것 같으면은

-예

-이시형 선생이 사표를 내고 부통령을 누구를 뽑느냐.

-예

-그러면 ..가 되지 않겠어요? 바로

-그렇죠.

-그러니 거기에서는 마침 그 전에 이박사가 자기모순에 빠진 일이 하나 있습니다. 네 그것은 그 전 해에 1951년에 정치파동 전 해에 8월 15일인가? 이박사께서 우리나라에 노동자 농민을 위한 정당을 하나 만들어야겠다.

-자유당 창설...

-예. 그 구상을 얘길 했어요?

-예

-근데 평소에 이 양반이 미국서 오셔가지고 나는 어느당이던지 심지어 공산당에서 중앙협의회를 만들때도 말이에요?

-네

-에 초연한 입장에서 초당파적인 입장에서 나는 일을 하겄다. 정당이나 조직이나 파를 나는 절대 반대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그걸 견지하던 분이에요. 몇 번.

-예

-그 분이 그때와서사 이 노동자 농민을 들고 나오셨다 이거예요?

-네

-그것이 계기가 되가지고 에.. 한청중심으로 국민회 중심인 오..조직의 중심이 되고 그래서 동명이인이라고 그럴까, 동명이체인 ..당이 그 다음에 정치파동 전 우 해가지고 원......이던.....

-그렇죠.

-그 두개가 갈라지지 않습니까?

-네

-그러디만은 그렇게 이박사가 당황해서 국회 내에 다수 조직을 원..까지도 가져가고 국회도 가져야 겠다는 초...이 양반이 자기 ...을 겪어가면서 나타났다 이거에요? 그런데 인촌선생이 그 당시 어떻게 해서 부통령에 당선이 되느냐.

-네

-그때만 하더라도 이박사는 그 제헌국회때부터 그 전부터 인촌선생이 개국공신의 제 1인자 인데 끝끝내 그 분을 경..하고 총리에 배제 하고 묵살할라고 하는 태세를 취하던 그 양반이 국회에서 선거하게 되니깐 아무리 이박사가 반대하더라도 그 양반이 당선이 됐는데 이갑성씨 하고 경쟁을 했다 이거에요.

-네

-수표 차이로 인촌선생이 당선이 됐어요.

-네

-그런데 인촌선생은 끝끝내 그런 그 자리를 싫어하고 사양하는 분이에요.

-예

-그 당시 인촌선생이 진해에서 그 사모님이랑 조용하게 거기서 휴양하고 계시던 때입니다.

-예

-그래 저희들도 가고 여러사람들이 가가지고 인촌선생보고 승인을 해라. 부통령을

-네

-그런데 그 양반이 끝끝내 반대해요.

-예

-저같은 사람은 순진하니깐 인촌선생이 가면은 이 파도가 올거인데

-네

-그걸 중간에서 수습하고 이박사 독주를 막을라면 인촌선생이 승인을 하고 들어야 한다. 결국은 우리들의 간곡한 말씀에 승락을 했지만 대통령 이박사가 이 인촌선생한테 자동차를 안보내요. 정부 차가.

-네

-3일이나 되도

-예

-그래서 동아일보 차를 결국 빌려가지고 동아일보 차가 진해까지 와서 그 차를 모시고 나와서 국회에 가가지고 국회에서 뽑은 거니깐 대통령 정부가 에 차를 안보내도 관계 없지 않소.

-예

-그래 인촌선생이 국회에 가가지고 인사를 해...취임인사를 했다 이거에요.

-그와같이 국회가 벌써 이박사와는 인촌의 인자만 와도 그냥 소름이 끼칠정도로 반대하고 싫어하던 양반이 .....으로 ...이 양반이 부통령이 되노니깐

-네

-국회공기가 이만큼 대통령은 내일모레 선거하게 되는데 당황하게 될수밖에 없지 않았느냐. 이게 파동을 일으키는데 중요한 또 자극이 됐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박사가 그때 참 국회로 친다면 뭐 자기 기반이라는건 거의 없다고 이제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렇습니다.

-또 이 부통령 같은 ...하이튼 부통령 자리에 이제 자기가 가장 경험했던 인촌 김성수선생이 부임하게 돼고

-네

-이랬으니까 이박사로서는 이제 마지막 판을 치지 않으면 어떤 수를 쓰지 않으면 도저히 이제 정권연장이라는게 불가능 했다는데서 이제 이 시작인거죠.

-그렇죠. 제가 앞으로도 계속 그런데서 파동이 생기는것 같습디다.

-그런데 거기에서 이제 이의원이 늘 말씀하시는 그 청년운동. 이 이박사가 그 청년운동하던 사람들을 이 정치파동에서도 결국 앞세워서 정예부대로 쓰지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박사하고 청년운동은 이제 초창기에도 그렇고 정치파동당시에도 그렇고 아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데 그 어떻게 이제 청년운동을 거기에 그 썼나, 요 얘기를 요 다음에 좀 들려주십쇼.

-예 그렇게 하죠.

-네

(입력일 : 200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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