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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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21회 6·25피난해의 정객
이철승 편
제21회 6·25피난해의 정객
1965.05.27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어저께는 우리가 6.25사변을 당해가지고 크게 혼란을 겪은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6.25사변을 당해서 왜 그렇게 풍지박산이 되었나 하는걸 이의원 자신이 말씀하길 우리 자신이 그때 모든 면에서 큰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민족진영이 분열 돼있었고 국회, 정계, 행정부 할거 없이 모두가 각각 분립되서 아무런 연관도 맺지 못하고 있었던 그런 약점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풍지박산이 될수 밖에 없었는데

-네

-이런 얘기를 듣고 도중에 우리 정부가 대전까지 내려왔을 때 그 얘기까지 들었나요?

-네

-오늘 계속해서 좀 그 다음 얘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네 그 대전에 이제 우리가 일단 거기 모였는데 24사단.. 미군..

-네

-이 그때 마카다 사령관의 특명에 의해서 출동이 되어서 선발대가 대전에 오게 되었습니다. 거기 조금 숨을 돌리기 시작하고 각처에서 오는 패잔경찰들, 군인들, 학도들, 피난민들..수용할 수도 없고 보급할 줄도 없고 민심을 수습할 수도 없고 또 묻혀서 오는 오열을 삭혀낼 수도 없고 더군다나 자금이 없는 군인들과 패잔들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또 어데로..정부의 주체가 어데로 가는질 몰라요. 이박사는 방송으로 서울시민 안심해라. 염려말어라 하던 그 녹음 방송이, 벌써 이박사는 25일날 부산으로 가셨단 말이에요.

-녹음 먼저 해 놓으시고 방송했죠?

-그렇습니다.

-음

-그러니깐 이박사 측근자들만 알지. 가령 비서 실장이나 이기봉씨나 몇 알지 다른사람 조박사 조차 몰랐어요. 그래 대전에는 오로지 뭉칠 기회란게 없으니까 각 지도자들 애국단체 대표들이 모여가지고 이래가지고 살 수 있겠느냐, 그래 구국연맹을 만들어서 조병욱 박사를 책임자로 내세우니깐 그 어른의 그 책임감이라는건 자기가 참 동분서주하고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데 우리가 모여서 조직을 했습니다. 가령 이 치안유지문제 또 이 도구문제 유산..문제 정부와 연락문제 또 미군과 연락문제 또 경찰만 해도 그 수많은 경찰이 불과 몇 천명 밖에 없이 다 소모가 되고 흩어져 있으니깐 무기도 거의 없고 그러니 병력보충은 어떻게 하느냐. 이런 문제 그거보단 역시 앞으로 보충할려면 선무공작과 민심수습이 가장 중요한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전쟁에는 가장 국민의 지원없이 현대전쟁은 국민의 지지없는 아무리 이 총칼을 가지고 병력이 있어야 소용없다는 거거든? 조박사는 그런걸 그 어른이 참 선견지명이 있고 앞을 내다보기 때문에 그 어른이 그 마산도 가시고 부산도 가고 대구도 가고 해서 연설을 했어요.

-네

-우리도 또 이제 분담을 해가지고 연설대를 내보내고 마이크를 가지고 그랬는데 하루는 바로 정부가 첫번에 대전에 있었습니다. 정부가 일부.

-그랬죠.

-에 이박사는 대구..인가 부산에 계셨고

-네

-그래 정부가 전주로 이동한다 이렇게 되었어요.

-네

-아침 새벽에 여관인가 숙소에서 우리들이 공동합숙으로 있는데 문을 두들겨요. 비가 오는데. 정부가 전주로 가기로 했으니깐 이 간부들 구국연맹 간부들은 같이 따라요. 연기한다. 그 새벽 잠자리에들 일어나가지고 전주로 향했습니다.

-아, 어째서 연락이 왔어요?

-그..이제 그 경찰에서 연락이 왔어요.

-네

-그래서 이제 그때 김병무 씨는 우리가 업고 잘 걸음을 못 걷는 분이라

-대법원장...네

-업고 차를 임시 차를 타고 전주로들 다 갔습니다.

-네

-가서 전주경찰국장 지사실에서 물으니깐 거기 창랑(滄浪)장택상 씨도 계시고 다 이제 거기 계셨습니다. 누가 과연 전주로 가라는 명령이 있었느냐.

-하하

-이게 문제에요. 그래가지고 간부들도 다 오고 일부 전무도 오는데 나는 내 고향이고 내.. 가서 전무님도 뵙고 아버님도 뵈니깐 참 다행한 일이다. 또 전라도는 이게 전략적으로 안들어올 모양이다. 그러고 난 조가 갔는데 결국은 또 컴백해라. 다시 대전으로 올라오니라는 전보가 왔다는 거에요.

-네

-거기에서들 그냥 싸움들을 하고 이게 누구 명령이냐. 거기서 비빔밥 한 그릇 씩만 먹고 말이에요. 그러고 다시 나는 내 조모도 있고 아버님이 계시는데 가 뵙지도 못하고 그 부대들하고 같이 대전으로 갔습니다.

-네

-그 대전에 와서 그 기병이 미군 이제 24사단장이 이제 삐움장군이 이제 임명을 받았어요.

-네

-대전 격투에서 납치된 그 삐움장군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번에 뭐 또 온다고. 참 나도 한 번 뵌일이 있지만 군정시대에?

-네

-그 어른 한 번 보면 내 보고싶은 생각이 있어요. 간절하게. 그랬는데 그래서 조병욱 박사가 그런 노력을 하게 되니까 하루는 신성모 씨를 통해서 조박사가 만나자고 그래서 조박사가 신성모 씨를 만나고 와서 우리에게 얘기해요. 내무장관 하라고. 그러자고. 그래 이박사를 만나서 조박사가 난시에 저를 불러주시니 최선을 다해서 국민을 위해서 발벗..참 그 국민을 위해서 헌신적 노력을 해보겠느라고 ..세신 해보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또 한가닥의 희망을 가졌죠.

-네

-그 흩어져 가지고 있다가 정부를 찾는 일 없고 연결이 안되다가 조박사가 들어가 노니깐

-네

-나 참..이제 희망이 보이는 구나. 그래서 그 어른이 내무장관 됐는데 우리는 신성모 씨를 잘 몰랐습니다.

-네

-그 어른이 그 영국에서 선장노릇을 하고 독립운동을 했다고 맨날 들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깐 참 그 어른이 낙루대신(落淚大臣)이고 뭐 지당대신(至當大臣)이고 한참 신성모 씨가 6.25사변 전에는 아 대통령 만나뵈면 아이고 각하께서 이렇게 경로의 노인이 그 일하시니 경무에 아이고.. 참 송구해 못보겠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고 꼭 그러고 경무..가 살았다는거 아닙니까? 그 각하가 명령만 하시면은 폐허에 가서 우리는 벤또를 먹고 그 압록강에 가서 저녁때는 밥을 씻겄다고 이런얘기를 했다는 그런말까지 있지않습니까? 그런데 그 양반은 이제 국방장관이라 좋은..대조적 그 포지션에, 위치에 있었단 말씀이에요.

-네

-그 정부가 대전서 대구로 갔습니다.

-네

-대구가 이제 전세에 피차간에 아군과 결여군과의 그 외간 창령작전 또 이 저쪽에는 영천작전 그게 아주 고비고개라고 하는데

-낙동강...

-그렇습니다. 낙동강 작전.

-네

-거기에 우리 동지들 많이 학도위원군으로 수없는 희생자를 냈습니다. 조박사는 그 무기원조를 받고 그러자고 직접해서 학도경찰대도 만들고 경찰 오만여로 불리고 참 영웅적인 활동을 그 양반이 애를쓰고 댕기시는데 마침내 대구까지도 ...대장이 철수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거에요. 이 신성모 국방장관이 국방부가 우선적이니까 우월하니까 그때는 정쟁지에 있어서는.

-그랬죠.

-내무장관보고 후퇴하라고. 그러고 국방부는 다 후퇴했어요.

-네

-참모..총장까지 다 부산으로 대통령도 물론 부산으로 후퇴하고 그러니깐 조박사가 워커대장을 찾아가가지고 만일 대구까지도 철수하고 가면 부산에 가면 갈데가 어딨느냐 해..산 밖에 더 있느냐. 다시는 우리는 당신네들은 가면 그만이지만은 이 백성을 두고 우리 간부들이 가면 다시 회복할라면 외롭다. 죽어도 여기 대구시민과 같이 싸워야 할것이고 대구는 이 전략적으로 요지이고 우리 경찰이 있고 그러니깐 난 철수를 못하겄다.

-네

-그래서 두 번을 장시간 얘기하닌깐 워커대장도 그러면 나도 벨트를 이 사령부에다 놓고 같이 고생 하겠다고. 조박사도 헬멧 쓰고 내무부에서 침대놓고 거기서 침식을 하면서 총 지휘하던 때에요. 국방부는 후퇴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날 대구시민을 조박사가 일부를 소개를 시키는데

-네

-임시 열차를 내고 그래서 우리 내가 있던 하숙집에 사람들도 이제 어린애들만 실리고 우리는 조박사가 있는데는 그 천하에 무너지지 않을테니깐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해서 우리청년애국단체연합회 사람들은 대구에 다 집결했어요. 그러나 그 선량한 안여자들 노인들만은 그 소개를 해야겠다.

-네

-그럴때 대구역에 그 박격포가 떨어지고 하는 때입니다.

-네

-그 당시. 그 피육하고 꽝 떨어지면 그냥 정신 못차릴때 우리 조박사만이 최후까지 그걸 사수하기로 결정을 했다. 예 그런것이 그게 요새말로 터닝포인트 그 단계 고비를 넘기는 뭐가 됐단 말이에요. ..만 하더라도 대구만 가면 그 먹을것이 있다, 뭐가 있다, 저 산만 넘어가라 하는식으로 최후의 전력을 다 소모하고 ...이제 거기서 완강한 저항선을 구축했기 때문에 우리가 부산까지 가지를 않고 저 사람들한테 유리한 보급물자를 뺏겨가면서 이 대한민국이 빨리 그 ..할 수고를 하게 그러면 됐다. 그러는 도중에 이제 인천상륙문제가 준비하는것이 아닌가. 이래서 나중에 그 조박사가 왜 대구에 입후보를 했느냐.

-그 연유가 거기서부터 시작됐군요.

-그렇습니다. 대구에서 그 양반이 서울에도 성북구에 당신 지..를 내고 그랬는데 조박사가 대구에서 압도적으로 시민들의 간청에 못이겨서 고 다음 선거에 당선이 된거. 그것은 에..조박사는 결국은 이 과거의 그..이 부장도 아신바와같이 이 군정시대에 경무부장관을 하고 많은 그 오해도 있고 말썽도 있었습니다만은 그 초기에 말썽이나 오해는

-네

-6.25사변 때에 그 어른의 헌신적인 투쟁으로써 노력으로써 헌신적 그 공헌으로써의 그 어른의 개인이 있을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른의 딸린 사람들이 말이에요. 사람들이 그 희망을 걸고 뛰고 국민총력전 현대전쟁의 총 궐기하는 그 뒷받침을 해주게 된 계기가 조박사가 됐기때문에 사람이라는건 참 영웅이라는건 끝이 좋아야 다 좋은거구나 해서 우리가 조박사가 ..에 모시게 된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이리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조박사 같은 그분들은 분열전..그 진영 민족진영과 정부와 이것이 국난이 있을때 국보가 갈망할 때에 총 결속하는 데에 노력을 하는 그런 그 시야가 있는 거물적인 정치가가 있었다 하는것을 여실히 거기서 보여주더라.

-네 고때만 하더라도 일단 우리나라가 한 번 단결한 잠깐 시절이라고 볼 수있죠?

-그래요, 반탁문제 때하고 대전 대구 시대에 단결하던 때를 우리가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산 내려가가지고 다시...

-또 정치에 끼어들어 가니깐 거기에 또 분열하게 되고 또 거기에 복잡한 것이 생기고 부패가 생기고 이렇게 되서 자 우리가 이렇게 역사가 참 좋지못한 방향을 자꾸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네 결국 부산에 내려가가지고 이제 유명한 부산정치파동 이게 이제 시발이 되는데...

-...사건, 중석불 사건, 국민..특히 국민방위군사건(國民防衛軍事件). 그건 청년단체와 아까 신성모 씨 하고도 관계가 있는겁니다.

-음..그 국민방위군사건 같은거에 대해서 이의원이 직접 무슨...

-예 그 뭐 제가 그걸 분개해서 국회에 터트린데 장본인으로 되있습니다.

-예 고 얘기를 ..좀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국민방위군사건하면 우리가 흔히 알긴 합니다만은 그 이면 얘기라든가 시초얘기 이런걸 자세히 모르고 넘어갔던게 사실이니까

-네

-이의원 한 번 내일 고 얘기서부터 들려주십시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입력일 : 200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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