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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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20회 6·25피난해의 정객
이철승 편
제20회 6·25피난해의 정객
1965.05.26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어저께 까지 얘기한거와 같이 해방 후 혼돈시대를 겪고 처음으로 우리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결국 내각이라고 구성했지만 석달이 안가서 또 개편해야 할 정도로 청년문제, 청년단체 문제 라든지 여러가지가 또 복잡해지고 이런상태에서 그 이듬해 이제 6·25사변을 당하게 됐는데 그때 당시 이제 또 계속해서 이제 혼란이 연달 났는데 어땠어요, 그 6·25사변 당시에 그 막 후 뭐..들려지지 않았던 얘기같은것 좀 오늘 또 들려주시죠.

-글쎄요, 글쎄..그 참 기가막힌 6·25사변도 기념일이 가까워 집니다만은

-네

-우리가 6·25사변이 왜 생길때 허둥지둥 허지않으면 않되겠느냐 하는 문제는 저번 쭉 얘기한 바와 같이 그 정치는 정치고 국가적인 문제에 있어서 초 당파적인 거국적인 태세, 중심태세가 없이 정치혼란 바람에 6·25사변을 탁 맞아노니까 정신을 못차리게 됐어요. 그러면 6·25사변이 에..5·30선거 2대 국회선거 끝나고 불과 20일도 안된 때입니다.

-네

-그래서 5·30선거 때는 이박사가 적극적으로 여당을 강화하고 민국당을 아주 말살할라고 운동을 하고 댕기는 그런 결과로써 여당은 대한국민당이라는게 한 23명 가까이 당선이 되고 민국당도 한 23명무소속이 일백이십 한 팔명 가까이 당선이 됐습니다. 그러면 그 특이한 성격이라는것은 남북협상을 반대하던 분들 혁신파들 또 중립파들이 전부 입후보해서 당선이 됐습니다. 가령 조수항 씨 라던지 에 원세원 씨 라던지 윤기섭 씨 라던지 또 이런분들이 전부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서 확고부동(確固不動)은 국회내 세력을 잡지를 못하는 그런 때가 있었어요. 만일 6·25 사변이 안일어났다면은 국회내 세력 균형이 또 많이 달라지지 않았었겠는가... 이렇게 되어서 당시 나도 또 낙선의 고배를 마신바가 있습니다만은 그러니까 6·25사변 날짜는 ..신부장은 그때 학교 다닐때...

-네

-인가요?

-그렇죠.

-일요일날 이었습니다.

-네

-일요일날 우리 국군은 차병덕씨가 참모총장 할때인데 딴 짓들 하고 댕기고 휴가를 맡고 놀러댕기고 할 판이에요. 별안간 극장마다 거리마다 군인 집차에다 마이크를 달고 군인들은 전부 집결해서 본 부대 귀환하라고 막 호소를 하고 댕겨서 이게 뭔 일인가 그랬습니다.

-그랬죠.

-그 6·25사변이 턱 날때에 방송은 이성근씨가 전 대령으로써 그 계셨었습니다.

-네

-근데 우리는 어디 호소할 길이 없어요. 왜. 민족진영 사람들이 갈래갈래 흩어져가지고 정치적 파장으로 정부와 연결이 딱 끊어져버렸단 말이오.

-네

-한민당에 연락하니 한민당들도 국회의원과 제 1당은 제 1당이지만 야당으로써는 정부하고 관련이 없단 말이에요.

-네

-청년단체도 대한청년단으로 합친다고 했다는것 뿐이지 거기에도 여러가지 말썽이 많이 수습이 안되고 학생운동하던 우리들도 자 공산당의 침범하야..그럼 이게 전면적으로 침공하는 거냐, 그 3.8선에서 그전 같으면 말이야. 조그마한 소충돌로 끝날거냐. 그럼 이게 논의를 했습니다. 근데 이 방송하는걸 여러분 들으니깐 싹수가 이거 안된단 말이에요.

-네

-그래서 나는 여기저기 전화질하고 친구들 연락해 봤지요. 특히 외국에 이박사 특사로 갔다오신 조병옥 박사는 한민당 민국당이지 그때는

-네

-민국당에 정책위원장으로 계셨습니다. 그분이 26일날 저녁에 인촌김성수 선생과 또 신익희 선생과 당신 댁에...돈암정 당신 댁에서 저녁을 자시면서 그 지금은 이제 정세에 평가에 대해서 논의를 하셨어요.

-아 25일 날 밤?

-26일 날.

-아 고 이튿날.

-예 고 이튿 날. 그리고 나는 한쪽에 우리 동지들 전부 간부들 다 뫼였어요.

-네

-그리고 청년운동하던 분들은 예를 들면 유진산 씨 같은 분들도 갈바를 몰랐어요. 다들

-네

-지금 내 한 예를 들면 그 양반은 여기저기 몰코댕기고 연락하다가 에 시간이 ..가지고 한강다리 끊어지기 직전에 에 내 삼촌되는 분하고 지금 민정당에 있던 신태학 씨 집에까지 가서 그 뭐 아군은 말이야 의정부를 탈환하고 말이오. 또 혹은 동두천 ..에서 이겼으니깐 뭐 조금도 염려할거 없고 서울시는 안심하라고 이박사도 방송하고 다들 그러니깐 나갈필요 없다고 잠자는 신태학 씨를 끌고 기여코 나갔다는 거에요.

-네

-그런 그 마.. 일이 있어가지고 전혀 연락과 어떤 그 중심이 잡히지 않은 때입니다. 그 조박사는 그래도 그 양반이 미국대사관에 출입을 하고 뭐 정보를 알라고 쫒아댕기고 마 그랬어서 나중에는 내가 현상현 청장한테 전화를 했어요.

-고려대학.

-고려대학. 현상현 총장한테 전화했더니 현상현 총장은 학도의원군으로 이제 이런 중대시기니깐 학생들은 내일 등교해서 학교를 지켜야 한다.

-네

-이런 그 고시를 내고 염려없다고.

-네

-그 순진한 양반이 그렇게 얘기를 하십디다.

-네

-그래 나중 알아보니깐 그 양반은 거물 총장으로 백락준 씨 하고 또 현상주 씨 다 알려있지 않습니까.

-네

-백락준 씨가 안회상 씨 다음에 문계부장관이 되셨었거든요.

-네 그 백락준 씨 한테 전화를 하니깐 어 염려말라고 우리 갈때 기양 가겠냐고 응? 우리는 뭐 안심하고 적군을 물리칠거라고 현상현 선생이 그것만 믿고 있다가 아침에 28일날 아침에 학교 나올라고 그러다가 잡혀서 그 어른이 영영 납치되고 말은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이와같이 참 사태가 어지럽고 혼란했다는 것은 퍽 그 우리가 그 안에 이북에서는 그 틈을 타고 미국 사람들은 중국을 통하고 영국을 통해서 미국에 대한 정책에 대해서 비밀문서 까지도 전부 상하양..에서 하는 문서까지 전부 뺏어서 스파이를 통해가지고 다 알고. 이 놈의 정세가 선거와 정치문제 땜에 혼란한 것을 알고 몇 달 전부터 전년도 부터 준비한 거거든? 그런데 우리는 그당시 정부책임자로 있었던게 그 장도영 군 입니다.

-네

-그 전혀 뭐 그 사람은 놀러나 댕기고 군대 일이나 하고 그러고 댕겼지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저는 이 동지들 보고 야 이러면 안되겠다. 좌우간 이것은 우리 호소할 길이 없어. 정부 상대할 길도 없고 자기들끼리만 연락하고 그러니 우리는 한강을 넘겨놓고 보자.

-네

-그래 동지 간부들과 27일날 한강을 넘겼습니다.

-네

-한강을 넘어서 28일날 새벽에 떠날라 그러니까 뒤에서 한강다리가 끊어지는 소리가 나요.

-네

-28일날 아마 3시나 4시 될것 입니다.

-그랬죠.

-그때 비가들 오고 그냥 억수같이 오는 판이고 서울시민은 뭣도 몰르고 하루만 더 자고가자고 한 사람들은 뭐 완전히 납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네

-그래서 가는 도중에 몇 리를 처자 다 버리고 이제 수원으로 이제 가는 도중에 도락구를 하나 얻어 탔어요.

-네

-가서 올라타니깐 거기에 유진산 씨가 타고 제가 타고

-네

-마침 그 윤치형 내무장관 그 스폰서 노릇하던 홍찬 씨가

-네

-그..탔어요.

-네

-홍찬 씨는 몸도 뚱뚱하고 퍽 마음이 약한 사람인데 우리를 보더니 어쩔줄을 몰라해요. 유진산 씨 보고는 형님 잘못했습니다. 다들 잊어주십쇼 하고 엉엉 울고 나보고는 동생 참 미안하게 됐네. 그래서 전 나하고 유진산 씨가 과거에 잡혀갔다는 그 일에 대해서 자기한테 감정이 있는가 해서 우리 유진산 씨가 이런 얘기를 하던군요? 여보게 이거 우리가 이 쯤 됐으니 과거 얘기만 하면 뭣 하겠는가. 지금 공산당한테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 이게 달려있는데 과거보단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결속해야 할 것인데 이런 여지를 냄겨놓지 않는 정치를 했기때문에 우리가 이런일을 당하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유진산 씨가 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홍찬 씨는 그냥 엉엉 울고 있어요. ...그 도락구를 타고 말이에요.

-어디쯤에서 만났는데요?

-그 우리가 오..어디냐면 평택 전인가요?

-네

-거기서 그 만났죠.

-홍찬 씨가 그때 수도극장 주인이였...

-그렇습니다. 그 돈이 많고 윤치형 씨 아주 스폰서로 유명했습니다.

-자기 추력이었겠군요?

-누구 추력인지 몰르겠어요.

-네

-그런...하고 보니깐 자동차 가졌던 사람들은 관리..제일 편한게 관리들 입디다. 또 돈많은 사람들. 자동차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하고 즈그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새끼까지 태우고 왔습디다. 심지어는 어디서는 패잔되던 사람들한테, 군인들한테 봉변을 당한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근게 그러다가 이제 수원을 떡 가니깐 조병옥 박사가 그 어디 군대복을 하나 입고 헬멧을 쓰고 나타나지 않았어요?



-어떻게 반가운지 말이에요. 우리가 내 달렸습니다.

-헬멧은 어떻게 뭐 군대 관계...

-아 아니죠. 그러니까 저는 조박사가 지금 생각하나 그 6·25사변이라는 것은 임진왜란이나 마찬가지로 큰 그 국란이 아닙니까?

-그렇죠.

-그 양반이 참 충무공같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저렇게 어려운 형편에 앞장서서 수습을 할라고 저렇게 애를 쓰시는구나 해서 참 세상에 그런 구제를 해주는 주의...지도자를 만난것 같은 그런 감격에 참 사로잡혔습니다.

-아 그럼 평민으로써 군복을 입고 이 헬멧도 쓰고 나왔던가요?

-그렇죠. 그리고 이제 그 민심수습을 하고 ...을 해야합니다. 그 어른이 서울까지 집차를 타고 와가지고 이현균 씨가 그 돈암정에..돈암문 미아리 고개에 그 CP를 두고 전투하는데 까지 와서 격려를 하고 나온 양반이에요. 조박사가. 그러고 그 ...무쵸대사를 만나고그래서 그 당신은 이박사한테 부탁 받은것도 아니고 무슨 뭐 정부 연락받은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그런 것이다.

-그 양반은 말하자면 어떻게 보면 정부에서 버림받은 분인데

-그렇습니다.

-그 이순신 장군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이순신 장군도 벌을 받고 죄받고 그런 뒤에도 백의종군(白衣從軍)해가지고 평민으로 언제든지 또 다시나가서 싸우고 싸우고 했지만

-네

-조박사도 그 군복까지 설때도 상당한 각오였겠군요.

-그래서 그 어른이 나중에 저 부산에 피난해가지고도 ..독립선...아 잘못 말씀했습니다만은 그 임진왜란에 그 충무공기념사월협회 회장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네 그래서 조박사 거기서 무슨 활동을 주로 하셨나요?

-그래서 이제 그 선무운동과 계몽운동과 민심수습운동을 하자 해서 수원서 만나가지고 우리 애국단체 대표들이 이 조박사를 중심으로 따라서 대전까지 갔습니다.

-네

-대전서 구국연맹을 만들었습니다.

-아

-그 어른은 위원장이 됐습니다.

-그 난리통에

-난리통에. 그리고 부위원장에 배금희 씨 하고 김도연 씨 인가? 아마 그분이 되어서 그때 처음 또 민족진영이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튼 그런 때 그 조직을 하고 그런다는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죠.

-그때 난리통에 에.. 사람의 인심을 알 수 있고 또 그럴때에 애국자와 영웅과 비겁한 사람을 우리가 알 수 있다.

-역량을 알 수 있죠.

-네

-정부 자체가 뭐 흩어져 있고 국회 뭐 이런거 다 종적을 알 수 없었던 때 아니에요.

-그렇습니다.

-예 그래가지고 결국 그 구국연맹은 어떤 활동을 시작했나요?

-거기서 그 우리가 부서를 짜가지고 지방에 유세반을 보내고 프린트를 만들고 책을 만들고 그리고 의용병을 말이에요, 경찰을 수습하고 그런 운동을 전개하는 겁니다.

-그 얘기 계속을 내일 좀 들려주십시오.

-네

(입력일 :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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