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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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19회 첫 내각의 시련
이철승 편
제19회 첫 내각의 시련
1965.05.25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그저께 저 이박사 집권 후에 가장 큰 트러블로 대두되었던 그 청년단체 분규문제. 여기에 대해서 그 말씀하시는 중에 말이죠, 에 내무부장관이었던 윤치형씨라든가 또 그 당사자인 족청의 그 보스였던 이범석씨 이 두분의 어떠한 그 부작용 같은것이 많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네

-그 부작용 얘기를 좀 듣고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예

-어떤게 있는지...

-퍽 그.. 이것도 또 제도관계되지만 이게 하나의 그 참고가 될 것같이 생각이 되서 말씀드리는데요.

-네

-정부수립 한 뒤에 11월 5일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제 1호로 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내무장관 어..윤치형씨 암살을 음모사건으로 체포를 당했습니다.

-네

-에 내가 또 들어가서 40일간 고생하고 나오는 날 또 유진산씨가 당시 대한청년단에 최고 지도위원인데도 불구하고 전진한씨 댁에서 잡혀들어갔습니다.

-네

-그 왜 내가 이 얘기를 할것 같으면은

-네

-그때 아까 신부장이 말씀한것을 좀 더 부연하기 위해서 이 예를 드는데요.

-네

-하루는 제가 어디 학년 사무실에 마 있었습니다. 있었더니 제 동지들 다 잡아갔어요. 잡아가가지고...

-왜요?

-대통령 국무총리 혹은 내무장관 암살을 음모했다는 거예요.

-예

-그 알아봤더니 결국은 어떤 힘에서 그런 일이 생겼냐. 제가 윤치형 내무장관하고는 퍽 친했습니다. 그 어른이 중구에서 입후보할때 우리 학생운동하는 동지들이 많이 밀어서 당선이 됐던 분인데

-네

-그 어른한테 자주 가면서 나는 뭐 감투나 무슨 정치 실무나 이런건 관계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애국단체 연합회에서 이 얘기 하는것을 나를 통해서 윤치형씨하고 연락하는것이 퍽 좋을것 같고 나의 순진한 생각은 에..이박사를 모시고 이 정부를 중심으로 해서 견고하게 만들어 나갈라면은 이 특히 이 청년 대중운동하던 조직체가 이 내무환경이나 이런데 적극 협조를 해야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으로 내무장관께 내가 가가지고 윤치형씨께 말하기를 치안국장을 유진산 씨나 또 서울시 경찰국장을 서상천 씨나 이런분들을 총망라해서 단결하지 않아가지고는 앞으로 무슨일이 생길라나 모르지 않소.

-네

-이런 호소를 했더니, 나만 경찰국장으로 오라는 거예요?

-네

-그래서 나는 아직 그런 영양이 아니고 아직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서울시 경찰국...

-아니 그 저 전라북도 경찰국장으로 가면 어떻냐

-아...

-그런데 그 배후에는 일부 독립이 되니깐 ..법이 그때 통과가 돼었어요.

-그랬죠.

-일제시대 친일하던 사람에 대해서 그..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그러니 친일하던 악질적인 일부 경찰관들이 윤치형씨를 둘러싸고 또 당시 수도극장 주인이였던 홍모란 분이 그 스폰사가 되고

-네

-그래가지고 그 분들이 소위 그 민족진영의 분열. 청년단체의 갈등을 그 조정하는, 하야만 자기들이 그 경찰권을 준다던지 그 관리할 자리를 유지할 수가 있다. 그런 배경으로 이 일을 꾸며가지고 결국은 내 밑에 있던 우인한이란 사람을 그 꾀어가지고 널 취직을 시켜주마, 또 외국도 보내준다. 그래서 인적 물적 증거를 저희들이 조작해가지고 그런거를 에..잡았는데 많은 참 내 동지들은 고문을 당하고 기소가..에 기소가 된것이 아니라 송치가 됐습니다.

-아 그러니까 경찰 원래 있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경찰 개편을 두려워해서

-암...그렇죠. 또 청년단체하고 연결되면 곤란하다. 그러니 그 당시 제 담당 검사가 이원희 검사라고 4.19직전에 경무대 이승만 박사의 비서실장을 하던 분이에요.

-근데 어떻게 하다가 체포되셨나 고 경위를 좀 얘기해주시면...

-그러니깐 내 동지 집에 수류탄과 권총을 갖다 넣어놓고

-네

-그것이 그사람들 동지들이 가지고 있던 사람을 내 우인한 이란 사람을 매수해가지고 그걸 고려대학에 댕기는 이덕원이라고 하는 그런 학생집에 갖다 맽겨가지고 이거 좀 감춰달라고 무기 불법소지역이지만 이검 좀 맡아달라고.

-네

-그래 맡아놨더니 그것이 증거가 되가지고 이게 ..적으로 물적 증거 인적 증거가 있다 이렇게 올려서 그래서 이원희 검사가 퍽 양심적으로 그때 내무장관이 호랭이라면 무시무시 하는데 일개 판사가 아닌 검사들도 공정한 판단을 내렸어요.

-네

-그래서 이원희검사가 날 기소를 하는데 그러자마자 국회에서는 어떤일이 있었냐 할 것 같으면은 자, 이승만대통령을 국회에 소환해가지고 김주연씨가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네

-지금 정부수립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 과거의 반탁운동에 선봉적으로 싸우고 이박사를 위해서 누구보단 시장하던 이철승군을 저렇게 아무 근거없이 잡아넣고 음모라며 어마어마한 레테를 붙이니 이거 되겠습니까...당신께서 외교사절단으로써 미국에 갔을때도 한국의 학생운동에 지도자인 이철승이 한테 당신이 처음부터 격려하고 그러지 않았소. 그 이럴수가 있소. 그렇게 발언하고 그 다음에 이제 유진산 씨 하고요,

-네

-전진한 씨는 하루는 이박사 방을 찾아갔어요.

-네

-가서 유진산 씨는 에 속옷을 따숩게 입고 양복속에다가 합바지를 입고 대님을 딱 치고 그러면서 이박사를 뵈면서 보십쇼, 저도 언제 잡혀갈라 모르니까 이렇게 유치한 ... 몸이나 다치지 않을라고 이렇게 합바지를 입고 댕깁니다. 하고 이박사한테 양복을 걷어서 뵈였다는 거에요.

-하하 예

-건국 초에 건국공신을 ..행사는 못할 망정..에..참 애쓴 사람들 표창도 하고 공로를 치안못할 망정 건국동지들 이렇게 박애를 하고 인권을 유린해서 민족진영을 이렇게 분열시켜가지고 어떻게 해서 대중을 끌고 갈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말씀하니깐 이박사께서 또 얼굴을 씰룩씰룩하면서 먼산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시더라는거에요. 그래..그래서 이제 나왔는데

-며칠만에 나오셨어요?

-난 40일 고생을 하고 나왔습니다.

-네

-그 나오는날 그 유진산 씨가 잡혀들어가는 날입니다.

-유진산 씨는 그때 무슨 대목으로...

-유진산 씨는 그 청년단체에 그 대한청년단을 합동하는데 서북청년회 에..청년동명 혹은 국청...국민회 국민회 청년회...

-네

-또 대성청년단...

-네

-이런걸 다 합치는데 유진산 씨가 의장을 보는 판이에요.

-네

-근데 유진산 씨는 무슨 폭행음모 사건이 있다. 이러한 것을 시에서 영장을 떼가지고 유진산 씨를 잡으러 오는걸 이 대통령 본부 회의에서 청년단체 통합으로 내가 사회를 보는데

-네

-사회나 끝나야 이놈들아 잡아가던지 해야할것 아니냐. 호령을 치고 사회를 끌고 나가다가 뒷문으로 끝이나고 뒷문으로 나가서 차를 잡아 타시고 빙빙 빙빙 돌다가 효자동입구에 전진한씨 댁으로 숨어버렸어요.

-네

-그랬더니 몇 시간 후에 전진한 씨 당, 그 당시 사회부장관 입니다.

-네

-그 집을 둘러싸가지고 그래가지고 뭐 신발 신은 채 들어와가지고 유진산 씨를 거기서 체포해 갔어요.

-네

-그래서 전진한 씨가 또 국회에 가가지고 이럴수가 있소. 내가 한 나라의 사회부장관인데, 적어도 장관 집을 이렇게 불법으로 가택 수사를 하고 신발 신은 채 올라오니 일반 약한사람의 가정은 어떻게 이런 인권의 유린당하겄소. 이런 그 호소까지 전진한 씨가 했다는 거에요.

-전진한 씨가 요전에 ..로 정계야화 시간에

-네

-한번 잠깐 나오셔서 그런 대목 말씀을 하신 일이 있어요.

-아 그렇습니까, 그래서 그것때문에 이제 전진한씨가 사표를 내고

-네

-또 장택상 씨가 외무장관 사표를 내고

-네

-그러니깐 이박사는 으레히 싸움하면 두 싸움하는 사람 둘을 다 바꿔내는게 이박사의 본래의 수법이 있었거든요?

-네

-또 이 예를 들면 이범석씨 하고 신성모씨 하고 싸운다던지 하면 둘을 갈라낸다던지.

-네

-그래서 윤치형 씨는 국회에서 처음 장관파면결의 동의안이 가결이 돼었습니다.

-네

-그 거의 만장일치로 돼서 이박사께 그걸 정부에 호소, 송치를 했단 말씀이에요.

-네

-그러니깐 그런뒤에 내가 이제 나오고 나서 3일 만에 유진산 씨는 형무소에 가서 3일만에 나왔어요.

-네

-3일만에 나왔는데 내가 나와서 에 3일만에 국회에서 결의가 나가고 이박사가 나를 들어오라 그래서 내가 만나뵈었어요.

-네 경무대로?

-네 경무대가 아니라 그때 중앙청에 이박사

-사무실...

-사무실에 내가 찾아갔습니다.

-갔었더니 나를 어깨를 치면서 얼마나 고생 했냐고, 내가 자네 문제로 치행해보고 내가 직접 조사할테니까 서류를 가져오라고 그랬는데 아마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다고 끝끝내 말을 안듣더니 자네 이렇게 고생을 했다고

-네

-이렇게 말씀을 해요.

-아직 그 양반이 그런덴 또 눈....

-아 뭐 난 그 양반만 보면 그때는 눈물만 흘릴 수 있을 정도의 감격하던 때니깐요.

-하하하

-그러니 그 당시 내가 이제 최후로 결심을 했죠. 흥부타령 같은 신세가 되었어요. 선생님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네

-이북에도 못가겠고 이남에도 갈수가 없, 살수가 없으니 갈데가 없습니다.

-네

-그러니 선생님 아신바와 같이 제가 반탁운동과 학생운동의 죽으라면 죽는 자리까지 가지않았습니까?

-네

-지금 저희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서면은 깨끗한 정부로써 거국이 일치의 정부가 되어가지고 이것이 토대되어서 남북통일하는 원동력이 될 줄 알고 이렇게 밀고 나갔더니, 진영을 분열하고 혼란을 일으키고 심지어 우리같이 아무 정치에 관계없는 사람까지도 제 1 호로 잡아넣고 40일간 아무 죄없이 나오고 또 유진산씨 들어가고 그러니 이 민족진영을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뭐라 그랬어요?

-그랬더니 이 양반이 정말로 눈물을 흘립디다. 그 산이 이렇게 남산이 바라다 보이지 않습니까? 거기서 바라다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자 내가 잘 알았어. 그러니 내가 잘 알아 할테니 자네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고 나온 뒤에 윤치형 씨가 그 사표를 내서 파면하게 됐단 말이요. 이게 영원히 정치적으로 눈물겨운 이박사와 고별사가 될지는 몰랐습니다.

-아 그런 과거하에 말씀드렸던건 아니였군요?

-아니였지만 여기서부터 이박사하고 우리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박사 기간부대들이 멀게코롬 된것으로 생각이 되는겁니다.

-이의원 자신의 길다란 야당생활도 시작이 되고

-하하 예

-그래가지고 그 청년단체가 결국 통합이 됐죠? 나중에

-됐습니다. 그런데 그당시 누구를 청년단 대표를 시키느냐 하는데 대단히 또 머리가 아픈 일이 생겨서 신성모씨를 그 모시기로 하는데 신성면 씨가 늦게서 영국에서 왔습니다.

-네

-그래서 신성... 씨를 아 단장으로 이박사의 ..부에 의해가지고 단장으로 시키게 된것입니다. 어쨌든 그 저 청년단체 문제가 그 다음에 이제 6.25사변 나고 나서 정치파동까지 번지게된 원인이 됐는데 그 얘기를 내일 또 들려주세요.

(입력일 : 200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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