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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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18회 첫 내각의 시련
이철승 편
제18회 첫 내각의 시련
1965.05.24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이의원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동아방송 개국 2주년 특집프로 때문에 꼭 한달을 쉬었었는데요, 청취자들도 상당히 굼금했을줄 압니다.

-네

-근데 이의원은 그동안 또 봉변까지 당하시고 집안에...

-예 그...하도 참 별 일이 다 있습니다. 살아나가자니깐...아신바와같이 그동안에 방송이 그쳐서 저도 많은 이 동아방송의 청취자의 격려와 위로 편지도 많이 받았습니다. 뭐라고 다 인사말씀 드릴수도 없고 그..연... 방화사건으로 말미암아 개인문제를 떠나서 요새그 가뭄이 계속되고 매말랐는데 그런 불을 일는다든지 하는것은 대단히 그 인접...명륜동 일대가 하마터면 다 탈번 알았어요.

-글쎄요, 아마 정치적인 방화사건 같은게 이제까진 그렇게 흔하지 않았던 얘기군요?

-아마 이것도 또 처음 케이스같이 제 생각이 드는데 뭐 불행중 다행으로 인명의 손해가 없고 이웃집이 타지를 않고 그래서 또 다행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잘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번까지는 그 이의원이 해방 후 쭉 종사해오신 학생운동 이거를 둘러싼 여러가지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에..해방 후에 또 하나 그 청년운동

-네

-지금은 청년단체가 없습니다만은 한때는 그 청년단체 전성시절이라 그럴까요? 거의 장당활동 이상으로 그 청년단체의 움직임이 활발 했던 때가 있는데

-예 그랬죠.

-이의원이 또 직접 종사하신 면이 많고 그러니까 그 청년단체를 둘러싼 여러가지 얘기를 좀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아프로치한게 벅찼고

-네

-그러기 위해서 말씀을 좀 드리자 할것 같으면은 제일 그 정부수립 한 뒤에 초대내각이 구성됐을때 그 말이 많았습니다. 기대도 컸으니만큼 실망도 많은거와 마찬가지로 그 내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 약체다, 병골내각이다 이런말이 있었다는건 저번에도 말씀 드린줄 알고 있습니다. 근데 정부수립한 뒤에 대뜸 하루는 이...족청이라고

-민족청년단?

-네 민족청년단. 그 청년단체가 이범석씨가 국무총리가 되고 국방장관이 됐다고 서울시내에 대모 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주동이 되가지고요?

-그 민족청년단 주최로 그랬죠.

-아 그러니까 시위로군요?

-예

-그 말하자면 자기네들 보스가 됐으니까 축하행진이겠군요?

-네 그걸 우리들이 가만히 볼때... 그러면 우리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기간부대고 또 그 어른을 위해서 반탁운동과 독립건국운동을 참 일사분란하게 했는데 우리들도 이 대통령...대통령이 됐으니까 또 행진하러 가야할것 아니냐.

-네

-이런문제가 있었습니다. 이건 단적으로 뭘 표시하냐면은 이박사가 정부조직을 할때에 자기의 기간부대들을 근본적으로 무시하고 얼토당토않던 족청을 중심으로 하고 자기 그 비서와 다른 계통을 중심으로 해서 내각을 조직한것이 근본적인 기존 발판을 뒤집기때문에 혼란이 생겨서 석달도 못되서 벌서 내각이 일부 깨지기 시작한 줄 아마 알것입니다.

-그..저 기간부대 기간부대 하셨는데

-네

-그건 결국 말하자면 말을 바꾸자면 행동부대라는 뜻 아니겠어요?

-그 그렇지 않죠, 보세요. 우리가 공산당의 조직과 대항할때 우익진영이라그럴까 민족진영이 결성이 될때는 제일 뭘로 결성이 되냐면 남북통일 하자는 주창을 하면서 신탁통치라는 비보가 들어오니깐 반탁으로 뭉치지 않았습니까?

-네

-그때는 김구선생하고 손을 잡았고 그 다음에 남북협상으로써 그 김구선생 ...고 유엔한의가 들어와가지고 가능한 지역의 선거를 한다고 하는 바람에 우리는 그 유엔한의하고 협조를 해서 대한민국의 선거를 집에서 5.10 선거를 했습니다.

-네

-그당시 청년운동들이 총동원해서 국민계몽을하고 또 방위태세를 갖추고 하지 않았을것 같으면은 과연 대한민국이 5.10선거라는 그 96%라는 지지를 받고 선거탄생이 되었을거냐.

-그렇지만 이박사 자신은 아마 그러한 그 청년들의 활동이라는가 이런거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이것을 기간이라고 생각을 안하고 어떠한 전이활동. 무슨 전이행동부대 정도로 생각했던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린 이박사가 죽으라면 죽는 자리까지 갔는데, 청취자여러분도 흔히 그럽디다. 히틀러도 자기가 고생할때 조직한 사람들 결국은 집권한 뒤에는 국방부 짜가지고 히틀러..들 다 없애버리고 이런경우도 있는데 우리는 그땐 철부지하고 참 순진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로 이박사를 지지한 정치문제만 하더라도

-네

-한국민주당이 이박사를 오늘날 대통령을 만들고 대한민국수립하는데 정치면에 있어서는 그 일등 공신으로써 했다고 하는걸 부인 못할것입니다. 그러면 정부조직할때 김성수 인촌선생을 총리를 끝끝내 경원했다 이거예요.

-아마 누구든지 그렇게 생각했던건데

-네

-이박사는 그걸 아주 ..뜻밖으로 ..했거든요? 그 역시 집권을 하면은 실제행동은 아마 엉뚱한데로...

-그러니까 요새 정치가들이 말하는 흔히 영국식민지정책이 인도에 와서 ...걸 컨트롤하고 이게 분열시키고 대립시켜가지고 그걸 조종해보자 해서 제헌국회는 한민당이 수가 많고 또 당신을 밀던 아신바와같이 여러 청년단체 애국단체연합회가 당신 기간부대이니깐 그거와 전혀 관계 없는 족청세력이 딱 국방장관, 국무총리 또 안오상선생이 문개장관이 되었습니다. 근데 그와 대립되는 세력이라고 허까..혹은 이박사가 독립투쟁할때 최후까지 뒷받침 해주던 세력이라는건 한민당에선 김도연박사가 재무장관 한 번 하고

-그렇죠.

-창랑(滄浪) 장택상씨가 외무장관 한 번 하고 그 다음에 전진환씨가 사회부 장관

-네

-...그것밖엔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직한 뒤에 내각이 발족한 뒤에 거기서부터 벌써 내각 내부에 의해서 트러블이 생기더군요.

-네

-근데 그건 내 지금 생각해보니 이대통령은 그때 애국의 참..공로자로써 우리의 대 원로로써 안모실수가 없고 헌법상으로는 그 어른이 에..두 번 대통령을 하게 그런것도 되있습니다.

-그랬죠.

-그럼 두 번 하고나면 누가 대통령하느냐

-네

-그 문제가 오늘날에 쭉 정치파동에 불안을 만들어내는 그 시초가 아니겠는가...그때 족청 이범석씨는 국방장관을 실권을 쥐고 내무장관과는 뭐 결의형제라고 말을 하다시피 해서 윤치형씨가 내무장관을 하고 있고 또 그 양반이 총리를 겸하고 있으니깐 벌써 그런 생각이 있었던가는 몰르겄어요. 그러니깐 이 반발의 내각이 어떤 반발이 생기느냐, 결국 우리는 이 이박사가 공약을 지키고 또 정치도리나 의리를 지켜서 이 앞으로 남북통일 하는거에 있어서의 민심 을 수습하고 천하의 인재를 규합해가지고 국민의 다수 조직에 뒷받침과 인기에 토대한 정부를 만들어 주고 끌고 갈지 알았더니 별안간 180도 돌아버리니깐

-네

-여기에서 문제가 발단이 되는것이라고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이 됐습니다.

-네

-그러니깐 그.. 그러자마자 이제 그 내무장관자리를 하는게 퍽 ..운 자리로 그때는 취급했어요.

-그랬죠. 그때만 하더라도 그 실제로 취안을 유지하고 있는 경찰을 장악한 내무부장관이 실권장관이다 이렇게 봤죠.

-그랬습니다.

-오늘날은 경제장관 같은게 상당히 중요한 포스트인데 그땐 뭐 그런건...

-그렇습니다. 또 국방부도 사실은 그때는 군인들이 뭐 정치에...

-얼마 없었고

-정치에는 관계 안는 것으로 알아버렸거든요?

-그렇죠.

-그 내무장관은 왜 그러냐, 선거관리장관이거든?

-그렇죠.

-또 치안담당이거든...

-예

-또 치안을 할라면 내무부만 합니까? 어디 청년단체나 조직이 없어가지고는 치안확보가 안되니깐 이 내무장관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실무에 있어서 말씀이에요?

-네

-내무장관 실무에서 치안국장이 누가 나오느냐, 경찰 국장이 누가 나오느냐 이런문제도 관심을 안가질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내무부장관은 인저...그 수도청장을 지낸 장택상씨라든가

-네

-또 이 조병옥박사

-네

-경무부장을 지낸 그분 두 분 중에서 한 분이 되리라

-네

-대게는 조병옥박사가 되리라고 자동케이스로 되리라고 봤던거 아니겠어요?

-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바꼈는데, 하루는 우리가 또 모여서 외국단체 연합회대표들이 뭔 얘기를 했냐면 재밌는 얘기가 있어요. 자 이렇게 되니 이박사가 말을 타신것이 아니라 호랭이를 탔다. 그러니 이 이박사를 다시 모셔오자.

-호랭이라는건 누굴두고...

-그래 족청을 탔다.

-하하하

-예 그러니깐 다시 모셔오는데

-네

-그 당시 어떻게 되냐면 에...아신바와같이 제주폭동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랬죠.

-여수반란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군 내부가 미 군정하에 있던 군인이란게 사상적으로 불투명한 사람이 많이 있었단 말이에요?

-네

-그러니까 그러한 문제가 우익단체나 민족진영청년단체에서 하도 해롭게 하고 그러니깐 갈때가 없고 불안하니깐 이박사를 교대로 대표들이 가서 아주 호소를 하고 진정을 했어요. 그분들이 근 한..2주일 가가지고 이박사를 도로 모시게 해서 족청을 해산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네

-이런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게 이제 나중에 그 부산에서의 정치파동으로...

-다 관계가 있죠.

-연관이 되겠습니다.

-서로 꼬리를 물고 되잡..되풀이 되고 그랬습니다.

-어쨋든 그 우리나라가 건국하고 처음으로 그 내각이 구성된 이래로 우선 분파작용부터 시작한 셈이죠.

-네 그게 정국불안이 심한...시작했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네 거기에 이제 선도적 역할을 한게 역시 청년단체의 움직임.

-네

-이것이 중요한 계기가 된거... 그런데서 결국 이박사는 자기 첫 정권 유지하는데 있어서 그 청년단체 문제가 가장 시급한 해결문제로 대두된거 아니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깐 결국 이박사께서는 청년단체를 그러면 합쳐라 통합해라 그랬는데 그것을 끝끝내 반대하고 정부의 실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내무장관의 작용.

-네

-국방장관의 작용이 굉장히 커서 그 싸움이 싸움에 또 원인이 되고 근원이 되가지고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내무부장관 윤치형씨로 말하자면 청년단체하고 직접적인 관련이 그때 없었죠?

-네 별로 없었는데 그분이 왜 관심이 없겠습니까? 내무장관이고 이범석씨하고 다 그때 한 이명신씨하고 중심이 되가지고 그 내각의 ..서야 말로 끌고 갈라 그러기때문에 거기 대해서 상단한 관심을 지불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러니까 족청계 비족청계에 참...

-그 문제

-청년단체들과의 대립.

-거기에 이제 한민당의 관계, 정치적으로 관계하는거죠.

-네 그래가지고 결국 그것이 문제가 발단이 되가지고 6.25사변이 난 뒤에 부산에서 이제 정치파동으로 확대되는 수밖에 없었죠.

-그렇죠, 그 관계가 있죠.

-예 내일은 그..그 다음 계속으로 6.25사변때 얘기를 좀 들려주시겠어요?

-예

(입력일 : 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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