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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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17회 김구와 남북협상
이철승 편
제17회 김구와 남북협상
1965.04.17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해방 후 20년간 흘러간 역사의 물결속에 숨겨진 새 얘기를 다시 찾아보는 정계야화. 오늘도 역시 전 민의원이였던 이철승씨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의 얘기를 들으시겠습니다.

-네 어저께 제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국 우리나라에 거적적인 반탁운동에 부딪혀서 끝내 아무런 결말도 못 맺은 채 7월 10일인가 소련대표가 보따리를 거둬가지고 평양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이후 9월달에 한국독립문제가 유엔총회에 선정되가지고 그래서 11월달엔가 우리 한국측 독립안이 또 가결되고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는 우선 남한만이라도 정부가 수립될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요. 이러한 가운데 이제 일부에선 또 남북협상론이 대두되가지고 그때 김구선생이라든가 김규식박사 뭐 이런분들의 또 복잡한 문제가 우리나라 정계를 외워싸고 그랬는데 그런 시절 고때 얘기에서 또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시죠.

-예 그런데 그 흔히 제가 느낀것은 먼 중대한 홍역마마를 민족적으로 치를때는 단결하면서 또 그 치르고 나면 분열하고 단결하고 분열하고 이걸 되풀이하는게 우리나라 역사같애요.

-네

-우리나라의 제일 그 반탁운동 끝을 이렇게 잘 못맺은건가 하는것을 지금도 제가 두고두고 걱정합니다만은 민족적인 유감사는 이제 신부장이 말씀한바와같이 김구선생과 김규식박사가 남북협상을 재창했다.

-예

-그래서 민족진영이 거기서 다시 분열을 했다. 그 뒤에 김구선생이 갔다오신 뒤에 돌아가셨다. 이런문제를 우리가 얘기 안할 수 없습니다. 그런 남북협상문제가 생기기전에 이박사 중심으로 각 한민당하고 이박사하고 퍽 가까워졌고 또 한민당하고 김구선생 한독당하고 조금 멀어지고

-네

-또 이 사회단체 애국단체 연합회사람들이 이박사중심으로 해가지고 결국은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니깐 미국의 국제정치의 방침도 달라져가지고 유엔총회에서 한국위원단을 보낸다.

-네

-그 사람들이 남북통일선거를 해서 자주정부를 세워라. 이렇게 됐지 않습니까?

-네

-이 문제에 대해서 아까 말씀한 바와 같이 조병욱박사나 에..장덕수선생의 능률적인 그 노력으로써 남조선만이라도 정부를 세우자. 이런 얘기가 나올때 김수선생 김규식박사 조수항씨 홍명희씨 이런 분들이 반대를 하고 특히 유엔한국위원단 매넌씨하고 유명한 분이 있지않습니까? 인도대표

-네

-그분이 의장으로 계실때 그 김구선생의 자기 정견백서를 발표를 했습니다. 우리는 남한만을 정무를 세우는 정부를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말씀을 했는데 그 전에 우리들이 그 미묘한 분열.

-네

-그 안맞는 대목에 대해서 특히 학생단체나 우리들은 순진했기때문에 눈물로써 이걸 호소하기위해서 김구선생 경교장(京橋莊)을 찾아갔습니다.

-아 이의원이 직접 찾아...

-네 그렇습니다. 제가 저녁때 됩니다만은 가서 김구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어요.

-몇 분이나 같이 갔어요?

-저하고 제 친구들 한 서너사람이 같이 갔는데

-네

-그 김구선생께 우리가 가서 눈물로써 호소를 했습니다.

-아 몇 월 달쯤입니까?

-그것이 김구선생이...

-3월달인가 그 남북협상을 재론하셨죠?

-그랬습니다. 그러니깐 한 2월쯤 말경에 우리가 됐을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네

-그래서 그 김구선생님께 가서 지금 김구선생하고 이박사가 행적을 우리는 결사적으로 밀고 나왔소. 그 결과에 우리가 국제적인 저 압력을 굴레를 벗어내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이 마당에 선생님께서 이 이박사하고 손을 잡아서 독립노선을 같이 해주셔야지 이게 웬 말입니까?

-네

-김구선생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중경에서나 풍창에서 주욱 36년 이 동포들이 고생할때 밖에 댕길때에 한사코 남북이 통일되는 독립하는 나라를 원하고 해방됐다고 광복됐다고 좋아서 왔지, 남한만을 내가 그 선거를 하기 위해서 내가 온 사람이 아니다.

-네

-그러면서 그 제가 느끼는것은 그 양반이 그 상당히 그 강하게 보이면서도 눈물이 그 나이가 드셔서 눈물겨운 그 눈물을 흘리셔요.

-네

-허시면서 그 순정에 같이 그냥 울었습니다. 울으면서. 그러니 이북사람들도 우리 동포아니냐, 이북땅은 우리땅 아니냐, 우리끼리 먼저 이 얘기 해가지고 통일..뭘 가야지 이거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딱 해가지고 남쪽만 해버리면 영원히 이게 갈라지는거 아니냐.

-네

-그럼 우리는 강토도 모르고 민족도 갈라져서 이 우리가 나눠지는것 밖에 더 되느냐. 조건없는 독립한다고 해서는 조건없이 남북을 통일을 하는거이 문제지 분열하는것이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이 어른이 말씀을 하시기때문에 백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제가 조수항씨 댁에 앞에 제가 하숙을 했습니다.

-네

-그 어른이 어디에 사셨냐면 삼선교에 가면 조수항씨가 계셨는데 그 어른의 비서가 김흥곤이라고 그 비서를 제가 데리고 같이있었어요. 그 전라남도 친구인데

-네

-그 사람이 조금 나중에 보니깐 자경해가지고 6.25때 김규식박사하고 조수항씨를 그 김흥곤이란 사람이 데리고 갔다그래요. 모시고 갔다고 6.25때.

-네

-그 조수항씨가 가까워서 그 집에 가면 조수항씨는 품체도 좋고 동시에 임정에서는 김구선생 다음에 가는 분이고

-네

-그 어른이 박씨 건져다가 사람끄는 힘이란게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다만 그 양반이 지조와 명분론을 많이 주창하기 때문에 신익희 선생하고 잘 언발란스가 되는 그런 위치에 있어서 대부분 그 지조론자들, 명분론자는 김구선생 다음에는 조수항씨를 그 지지하게 되고 그 외에 정치 탄력있는 분들은 국내세력들은 에 장덕수씨나 신익희선생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고 이렇게 나눠지더군요?

-네

-그 조수항선생같은 어른은 퍽 그 종교만으로도 팔신교를 그 양반이 다 연구해가지고

-팔신교라뇨?

-예 뭐 기독교 불교 뭐 유교 이런걸 전부 연구해요.

-네

-그래가지고 그 양반 댁에 가면 제사 지내는 방도 있고 다 다릅니다.

-네

-그 양반이 그걸 완전히 마스타해서 당신 독특한 제사를 지내요.

-하하

-그와같이 뭔 그 아이디어하고 이상적으로 뭘 나갈라고 하는 그 어떻게 보면 이상적이예요.

-예

-그러면서도 그 잔재주라던지 이런 그 정치적 수법을 그 어른은 몰르는 분인데 아 우리가 가서 조수항 선생보고도 이걸 접었으니까 지금 이박사를 외교후원회 보낼때도 후원회회장은 조박사고 아니 조수항씨고

-네

-또 조수항씨가 그 반탁투지의 위원장을 하고 이박사를 고문으로 하고

-네

-그와 같이 끝끝내 애국단체 특이 이 학생단체에서는 이분들을 중심으로 모셔나왔는데 여기서 두쪽으로 딱 갈라지는 대목입니다.

-예

-그래서 한번은 남북협상을 뭐 그 어른도 우리가 갔다와야 한다고. 그 이북사람들 이 기회에 안가면 되냐고, 또 마침 3월 25일인가 이북방송이 김구선생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방송을 했습니다.

-네

-그래서 그 대표가 몇 사람이 특히 권태석라는 사람은 중간파 좌익으로 있다가 건준때부터 중간파로 있던 사람을 먼저 그 보내고 그 어른이 갈때 나중은 우리 학생들이 조수항씨 댁에도 몇 일 가서 못가시게 하고 심지어 김구선생이 떠날때는 그 경교장을 둘러쌌었습니다.

-아 학년에서...

-예 학년도 그러고 다른 동지들도 모여가지고 못가시게

-뭐 그것이 혹시 그 이박사나 이런분들의 지시에 의한건 아니였나요?

-그러나 그때는 이박사 지시보단 하치중장이나 그 ..군정장관은

-예

-이북의 술책에 넘어간다. 그러나 가는분은 우리가 막을 수가 없다.

-네

-그 미국의 군정이란게 그게 참 ..되더군요. 그 사람들이란게 한번 그 자기나라 국시가 그러니깐 또 원칙이 그러니깐 에 뭐 가는건 좋다. 그러나 공산수법에 넘어갈 것이다. 이렇게 되니깐 우리들이 그때 막고 애원하는 이유는 민족진영의 분열뿐만 아니라 김일성이란 사람이 그 한국인이 되기를 그 양반이 순진하게 믿고 있거든요.

-네

-그 소련의 그 기계같이 움직이는 사람. 반탁때도 우리가 얘기한 바와같이 반탁하기로 그때 박헌영씨가 먼저 그렇게 하더니 바로 밤새 위의 지령이 오니깐 좌익으로 그 지령때문에 그 남로당에 와가지고 찬탁한다고 돌아가는거와 마찬가지로 이북에 있는 공산당 훈련받은 김일성중심이 그사람들이 다 한국사람이고 김구선생이나 조수항씨나 똑같은 마음으로 있는것으로 간주하고 말예요. 가서 우리가 호소하면 안될것 뭐 있느냐. 그래서 이 양반들이 떠났어요. 38선까지

-네

-그 뒤에 이제 소식은 신문에도 보도도 되고 조수항씨를 제가 오시게 되면 만났습니다.

-네

-만나 물어봤지요. 그래 조수항씨는 벌써 38선을 다시 돌아오면서부터 그 어른이 실천력과 처리는 잘 못하시면서도 조직력은 해공선생에 비하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원칙을 내세우는거라던지 그 이상적인 동향은 청년들을 많이 끌기때문에 조수항씨 문전에 상당히 사람이 출입을 했는데 넘으면서부터 아 우리가 완전히 돌렸다는걸 조수항씨는 판단을 했어요.

-네

-완전히 그거가지고 꼭두각시 기계노릇했지 이게 한 프로파간다 공산당의 프로파간다에 불과했지, 민족적 양심으로 자율 우리가 통일 을 논의해보는 그런 기회는 전혀 없었다.

-아 그런말씀을 직접 하셨군요.

-예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됐냐니까 그 어른이 이 1대때는 그 체면때문에 입후보를 안했어요. 그러나 2대국회는 ..에서 입후보를 조수항선생은 했습니다.

-예

-그러고 이제 김구선생은 이제 갔다오셔가지고도 선거를 반대했지만은 아신바와같이 그 이북서 이북대로 인민공화국을 만들고 인민 조선인민회를 만들고 인민공화국을 만들고 그건 미리 완전하게 이걸 만들어가지고 있는데 우리 남한만을 끌고 나가다간 군정밑에서 좌익들이 사보타주도 하고 그 파업도 하고 전기도 끊고 불도 내고 이런 그 선동에서 혼란을 가져오면 이북은 완전무결한 고지를 가지고 탄탄한 준비를 갖춰놓으면 시간문제가 아니겠느냐. 뭐 이러한 작전으로 이북에 나가는걸 그 어른들이 결국은 민족적 양심에 호소하면 쇠도 녹을것 아니겠느냐, 눈물이 없을 수가 있냐 한민족이 팔이 안으로 굽지, 같은 핏줄위에. 이런 얘기로 갔다 온것이 완전히 돌린것을 조수항씨 한테는 분명히 내가 말씀을 듣고 김구선생도 그 뒤에 그 어른들이 갔다 와가지고 참 우리 민족진영이 분열되고 그 어른들이 그늘이 참 희소해지는걸 볼때 지금도 통탄하게 생각이 되는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민족이 겪는 파란속에서 5월달에 처음으로 이제 국회를 선거하고 그래서 이제 우리나라 정부가 그해 8월 서게 됐는데 그때 그 우리나라만의 단독 정부수립 고때에 그 딸린 얘기를 내일 저녁에 해주시죠.

-네

(입력일 : 200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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