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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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12회 덕수궁앞 데모
이철승 편
제12회 덕수궁앞 데모
1965.04.15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해방후 20년간 흘러간 역사의 물결속에 숨겨진 새 얘기를 다시 찾아보는 정계야화. 오늘도 역시 전 민의원이였던 이철승씨와 신동진동아일보 정치부장의 얘기를 들으시겠습니다.

-아 이제까지 정부수립 전의 찬탁이냐 반탁이냐 가지고 한참 어수선했던 정계얘기를 듣고있습니다만 에 그때 이의원이 학생시절이였는데요. 이박사가 12월달에 미국에 가서 외교운동을 벌리고 돌아오겠다고 해서 한창 그 하치중장하고 그 대립도 있었고 그래가지고 4월달인가 돌아왔죠 아마. 그 이박사가 돌아온 뒤로 여전히 신탁통치 문제는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있고 여전히 사회는 혼란의 끝에있고 이런상태에서 인제 학생들도 거의 반 들떠있고 공부도 제대로 안되고 이런때인데 그때 얘기를 좀 이 이의원 격으신데로 또 좀 얘기해주세요.
-글쎄요. 하루는 이박사께서 나를 불르시더군요.
-네
-그때는 이박사께서 제가 면회신청을 한것은 대한체육회가 지금 영국에서 런던올림픽을 처음할때입니다.
-네
-그 선수단이 결단식을 해가지고 ..을 가게 될때에 적어도 이박사님한테는 인사를 가봐야할것인데도 불구하고 안재용씨가 민정장관이고 김규식박사가 위법의원의장으로 계시기때문에 그 선수단이 그사람들한테만 가서 인사하고 영국을 갔다오는 그런 계기에 제가 몇몇 선수는 옆으로 빼가지고 이박사님을 면회를 했습니다.
-아 그때에 뭐 체육회에 관계가 계셨던가요?
-네 그당시에도 제가 학생이지만 체육회관계를 많이 관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서 이박사께서 돈을 한 20불인가 30불을 내주세요. 그 부인을 불르더니
-아
-그와같이 그 돈을 쓰시는 분인데 돈암장에 계시다가 이화장으로 가셔서 사실 이화장의 상황이라는건 퍽 우리가 보기도 이박사가 퍽 곤란할때였었습니다.
-네
-그와같이 하치중장은 거듭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운동을 아주 좋아하지않고 군정장관이나 혹은 경무부장관 한국사람을 통해서 압력을 넣고 그런판에 이박사가 미국가서 외교에있어서 다소 우리들의 적극적 기원으로써 큰성과를 그어놓았다고 하지만 계속적으로 그 신탁문제를 소련사람들의 반대로써 방해를하고 있기때문에 그 우리가 더욱 이박사를 중심으로 하는 반탁운동을 최종적으로 이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런때였었습니다. 그래서 이박사께서 나중에 저보고 말하기를 아 요새 운동이 활발치 못하네 이문제는 중대한 그 막다른 골목에 우리가 봉착했는데 여기서 더욱 우리 민족의 의사를 충분히 발휘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 정치인들 혹은 청년단체하는 사람들은 뭘 하는건지 그 힘을 내지 못하니 내나 믿는건 학생들밖에 없어.
-아 그 체육회 런던대회 하기위해서 갔을때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네
-그 올림픽 선수들도 같이 있는 자리에서
-네 올림픽 선수 몇사람은 내가 이제 돈을 얻어서
-네
-개인적으로 주고 그 프렌체스카 부인과 이박사가 나를 들어오라고 그러더니 그 양반이 그 걱정, 수심이 많은것이 좀더 활발하게 할것인데도 불구하고 요새 기복이 많아서 이 청년단체 출신이나 정치인들이 지금 이 군정에서 압력을 자꾸 느니깐 그거 눈치보니라고 그 용기가 다 죽었는지 이게 안되니 우리 젊은 학생들 믿는수밖에 없어. 이렇게 말씀을 해요.
-그때만하더라도 이의원을 이박사가 잘 알고 있었습니까?
-그 뭐 잘알고야 뭐 노상 출입을 했죠. 그러면서 퍽 사랑을 받았고
-네
-그때만해도
-에 한달에 몇번이나 드나드셨습니까?
-그 뭐 비서들이 의뢰이 제 담당기사가 있다시피 연락이 있었고 그랬습니다.
-또 저희들이 뭐 압니까. 그때는 국제정세 국내문제 민족적인 운명에 대해서 그런지도자들의 정세판단에 따라서 우리가 일을 아뢰할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때 제가 느낀바가있어서 이박사께 말씀하기를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최후의 일인까지 싸울테니깐 각하 염려마십시쇼. 선생님 염려마십쇼. 뭐든지 분부만 해주십쇼. 그리고 이제 우리가 나와서 간부회의를 열었습니다. 자 다른사람들 술잔 먹으면서 요리집에서 장구 꽤나 치면서 청년운동이나 정치운동을 하는진 몰라도 우리야 이럴수가 있느냐 이럴수록 더욱 사서 고생하자 해서 전부들 그때 학생운동 한 사람들 생활고라는건 참 좌익학생이나 우익학생이나 여간 고생스러운거 아니였습니다. 하루는 우리가 ..기를 서인복군이 마침 이 보스톤가가지고 보스톤마라톤대회에 우리 한국선수가 처음 출전해가지고 거기서 우승을 했습니다.
-예 그랬죠.
-그때에 참 큰 센세이션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네
-그 친구가 귀국하는데 대대적인 환영회를 우리가 준비를 하고 환영하게 되었는데
-그니까 반탁학생연맹인가요?
-네 일반적으로 다 체육회에서도 하고 일반적으로 하는 파이죠. 그런데 그날이 5월..6월 23일이니깐 1947년.
-네
-그런데 군정에서 어떻게 그 압력을 넣던지 대모를 도저히 할수가 없어요. 활발하게 투쟁할수가 없어요. 그래 우리가 종로 화신속에 전부 집결해라. 화신백화점속에
-아
-그래가지고 화신에 뭘 사러가는것같이 해가지고 5층 4층 층층마다 학생들이 전부 거기 집결했습니다.
-아 그러면 그 역시 학년산하학생들이죠?
-예
-그래가지고 신호는 12시 사이렌 신호다.
-네
-그 12시 사이렌만 내려오면 그냥 그 5층에서부터 내려오니라.
-몇명이나 모이기로 했어요?
-그때 모인 사람이 한 700명가까이 모였습니다. 주력을 형성하면 되니깐
-그 화신에 5층에 걸쳐서 700명쯤이 다 들어갈수있었나요?
-그러니까 그 화신주위를 싸고 들어가면 충분히 들어갑니다. 그 골목도 있고 2층도 가고 3층도 가고
-네
-그래가지고 5층 중심으로 화신이 앞뒤 있지않습니까? 동부 서부.
-네
-그래가지고 거기있다가 사이렌만 불르면 집단적으로 어디 모일 장소가 없어요.
-그렇죠.
-그래가지고 거기서 내려오면서 뛰면서 동아일보 앞에까지 달음질해라.
-네
-그러면서 스크럼을 짜라.
-네
-그러면 벌써 대모는 성공되는거다. 그런 이제 지령을 했습니다.
-그때 그럼 경찰같은데서는 그런 대모를 미리 알지 못했었나요?
-그거 미리 알았죠. 왜 모를 턱이 있습니까? 그건 새..니깐 그래가지고 탱크를 갔다놓고 주제소마다 그 뭐야 장갑차인가요?
-네
-그리고 기관총도 갖다 달고.
-그때 경찰이 탱크 같은게 있었던가요?
-그래 미군에서 보조해준 탱크같은거 있습니다.
-장갑차겠죠.
-장갑차같은거 그래서 그 사람들이 대비를 하고 있지만 이것이 어디서 나오는진 모르니깐 헛점을 찔러가지고 나와서 집단적으로 동아일보 앞에까지 가서 모이니깐 주위에 골목에 서있던 각지부 학생들이 수천명이 합류되지 않겠습니까? 주력이 형성이 되니깐.
-그래서 이 부대가 동아일보를 거쳐가지고 덕수궁앞에까지 갔습니다.
-네
-거기에 우리 주저앉았단 말예요. 여기서 우리는 뭐 최후의 일인까지 확실히 원조를 주지 아니하고는 우리는 가지 않겠다. 요새말로 연좌대모라는걸 거기서 시작했어요.
-그땐 몇명이나 모였습니까?
-거긴 근 덕수궁 시청앞이니까 한 3000여명이 완전히 그 모였다고 봅니다. 그 주저 앉았습니다. 주저앉아 놓니깐 그 주위에는 경찰관과 장갑차들이 둘러싸고있어요.
-미군도 출동했었나요?
-미군 출동했죠.
-네 현역...그건 아니고 mp겠죠?
-그렇습니다.
-헌병들
-그런데 조병욱박사는 경무부장때니깐 이 양반이 어쩔줄을 몰라요. 당황을해요.
-네
-그래서 우리도 저녁때가 되니깐 이걸 빨리 끝내야겠다 허면서 거기서 내가 긴급 동의안을 제안을 시켰어요.
-네
-여기서 우리 대표가 미,소 공동위원회 대표를 만나야겠다.
-그때 덕수궁에서 한창 진행중이였죠?
-네 진행중이죠.
-회의도 그때 하고있었나요?
-하고 있었습니다.
-아 예
-그러니깐 가야겠다. 그런도중에 이제 장택성씨가 수도청장때요. 나오셔가지고 우리를 덕수궁에 밀고 갈라니 대표를 늘라니 못올라니 그러니까는 덕수궁앞에는 미국사람들이 자꾸 모르고 미국군대들이 지키고 있었어요. 그 한발 일촉직발로 한발만 더 다치면 큰 사고가 날 단계예요. 그런때 이제 ..장택성씨가 재치가 있는분이라는건 우리가 느꼈습니다만 상당선생이 발체같은걸 가지고 슥 나오시더니
-네
-아 눈치를 보니깐 도저히 뭐 수습할 감행이 없는지 이 양반이 알고는 그 들어가있었어요. 미,소공동위원회 안으로 그 양반이. 그래가지고 미,소 공동위원회 미국대표가 그분들 만나가지고 얘기를 한 모양이예요.
-네
-해서 이 학생대표들 이대로 만나주지 않으면 이 대모를 나로선 수습할 도리가 없소. 민주적으로 지금 만나줘야 수습이 되겠소. 그렇게 얘기하니깐 도저히 조금있으니까 어떤 차가 와요. 소련차 ..차가 그냥 도망다니는거예요. 그환경을 보고. 그러니까 일부 학생들은 그 법원앞에 소련형사관가는데 그 차를 쫒아 따라 가더군요. 거기서 이제 김홍일...홍일이라는 사람과 에 김홍일이라고 경무자경찰에 있던 김홍일 그친구와 저와 이 군중대표의 결의로써 뽑혔습니다.
-네
-그래가지고 이제 장택성씨가 조금 있다 나와요. 나오더니 철승이 자네 그만해. 애좀 그만 맥이소. 그러면서 이 양반이 저를 안내해서 브라운 미국대표가 만나자고 그래서 그 거기까지 갔습니다.
-그 석조전
-석조전에
-거기서 이제 브라운 장군을 만나고 우리가 요구조건을 냈어요. 우리는 최후의 일인까지 그 반탁을 하고 우리 김구선생과 이승만박사를 지지한다. 우리는 당신네들 괴롭힌 적국이 아니였었다.
-네
-우리는 일본사람들한테 박해를 받은 오히려 우..나라를 해방시켜줬으면 독립도 시켜줘야지. 38선을 막아놓고 신탁통치라는건 왠 말이요. 그러니 우리는 이걸 최후로써 민의로써 이걸 반대하는거다. 이런 이 요구조건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 양반 답이 일문일답으로 답변을 하니깐 이박사와 김구선생 지지하는건 민주주의 원칙으로 그건 당신네들 자유다.
-네
-또 신탁통치를 반대하는것도 당신네들의 자유의 의사표시다. 그래 나도 이박사랑 김구선생을 존경한다. 그얘기를 듣고 이제 우리가 나와서 덕수궁앞에 나와서 그 성명을 발표했죠. 회담담을.
-그 대대적으로 신문에 나왔어요.
-네
-그래가지고 우리가 인솔해서 그 대모자가 남대문앞에까지 가가지고 우리 질서정연하게 그것이 해산을 시켰습니다.
-네
-그랬더니 그 이튿날 브라운소장이 신문에 보도가 잘못됐다고 그래가지고 오해가 있었다고 성명서를 내서 또 전국학년에서는 반박성명서를 냈습니다.
-네
-우리의 대모라는건 그와같은 지도자가 있고 민족적인 그 단결력과또 신념이 있었기때문에 그 대모를 할수가 있고 국제적인 중요한 그 한국에 대한 굴레를 벗을수가 있는 힘을 발휘할수가 있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네 그 학생들이 이제 대한문앞에 그 덕수궁앞에서의 대모 그 얘기를 듣자니까 미,소 공동위원회 그 배경얘기를 좀 들었으면 좋겠어요.
-네
-그 내일좀 미,소 공동위원회 그 추이 그걸 좀 얘기 합시다.
-예

(입력일 : 200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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