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스타앨범 / 나의 데뷰
유쾌한 응접실 / 정계야화
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11회 학생운동과 유치장
이철승 편
제11회 학생운동과 유치장
1965.04.14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그 이박사라든가 김구 주석이라든가 또 인촌 김성수선생 또는 설산 장덕수 선생 고아 성진우 선생 뭐 이런 여러분들하고 그 학생들 하고는 어떻습니까? 상당히 긴밀한 유대를 맺었던건 아니겠어요?
-글쎄요 저는 언제고 이 얘기를 합니다만은 학생운동은 사회 지도자와 학원에있어서의 숭배를 받는 교육자와 또 학생간에 출중한 또 희생정신이있는 학생 지도층과 완전한 결합이 없이는 학생운동을 전개한 일이 없고 할 수가 없다. 이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예
-그러기때문에 우리가 전국 학생운동이 이렇게 잘 되었고 상당한 효과를 걷었다고 할 수 있는것은 그 당시에 이와장 돈암장을 점령하시면서 이 하나의 큰 민족적인 힘이라고 그 지침 이승만 박사가 거 계셨고 또 김구회장에 임정요인들 중심으로는 김구선생이 계셨고 또 한민당 중심으로 한내, 조금 군정의 여당격 같은 입장에 있었지 않습니까?
-네
-그 해 계동에 인촌선생이 계셨고 그 중심으로 하는 그 사회지도자들과 학생운동은 우리들과의 불가분에 연락을 부단히 했습니다.
-네
-우리가 뭐 국제정서도 모르고 국내정서도 몰르는데다가 지금도 흔히 우리가 얘기합니다만은 어디까지가 정치운동이고 어디까지가 독립운동이고 어디까지가 민족운동이며 학생운동이냐?
-예
-이 문제에 한계라는건 그 시대시대의 민족적인 현실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 규정이지어야지 단적으로 구분할수는 없는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이 접근해 한민당의 노력으로써 잘 단결해 나가고 있었어요.
-네
-그러나 한민당이 점차 그 군정이 여당적 역할을 하고 또 군정에 하치중장이 소련과 국제정세에 관계 되기때문에 좌우 합작을 시키고 에 안재영씨를 민정장관을 시키고 김규식 박사를 입법회원에 의장을 시키는 바람에 점점이 계층의 조건이 달라지는데 우리 전국학년 그 운동회나 학생운동은 그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쫒아 다니면서 선배들 집을 찾아당기기 때문에 그분들의 대립된 의견을 좋게 조화시킬수도 있었고 또 그분들 역시 학생들한테 자극을 받아가지고 그 이상 선을 넘지않았고 그래서 반탁운동이 성공리에 가더라까지는 유레레현장에서 우리가 막부삼선회의 결정을 뒤집고 우리 민족의 단독의 힘으로 뒤집고 그러고 유엔총회의 결의로 해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더라는 그 직전까지는 이 반탁운동이 민족진영의 선배와 학생운동이 단결해서 일어났다.
-아, 그러면 그때만하더라도 그 민족적 지도자라든가 영도자격인 여러분들이 상당히 노선이 이제 미묘하게 달랐던걸 학생들이 이렇게 뺑뺑 돌아다니면서 늘 만나니까
-그렇습니다.
-그 교량적 역활이라 그럴까요? 그 융화 시키는데 큰역활을 했겠군요.
-예 그랬습니다.
-아마 딴 정치인들이나 그 한정된 노선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뺑뺑 돌아다닐순 없을테니까...
-네 우리가 자랑스러운 이유는 학생운동이 어디까지나 자주성을 가졌다.
-네
-또 이 민족적인 문제만 가지고 얘기했다. 반탁운동이나 각계는 자기 정당 자기 정파 자기 정책을 자꾸 권하고 유도 할라그러거든? 요새도 그렇습니다.
-네
-개인 지도자들은 물론 그 선을 딱 확실히 하고 나가기때문에 그래서 반탁운동이 결과적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왔다. 초기에 내가 말씀 드렸던 이박사가 특히 반탁운동에 대해서 강경해서 하치중장한테 제일 타격을 받고있는 판이예요. 그리고 또 김구선생도 역시 그렇고 한민당 중간에서 그 입장이 고약한 그런 입장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정치는 한민당에서 하고 그 독립운동과 혁명운동은 그런 이박사나 김구선생이 하는 그런 입장에 있어서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 얘기를 또 하나 소개 해드리죠.
-네
-그것은 이박사가 자율선거를 해야겠다는 얘기를 선포를 했어요. 자율 선거를 한다는것은 미 군정의 말도 안듣고 군정하에 있으면서 또 미,소 공동위원회에서 신탁통치 운운한것도 우리 거부하고 자율적으로 우리가 정부를 수립하겠다 이거예요.
-네
-그래 미 하치 중장이 그냥 ...골이 나가지고 자기 입장이 곤란한데 그대로 들어 주겠습니까? 그 이박사를 빽업하는 지원해주는 학생운동을 용서할 택이 있습니까? 적극적으로 고등계 형사들 시켜서 군정관리 시켜서 방해를 하는지 우리 지금도 그런일이 있는가 모르겠습니다만 둘러싸고 돌아서 찾아댕기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우리가 이박사의 그 위신과 자율선거를 지지하기 위해서 대모를 무허가 대모를 일으켰어요.
-네
-종로에서 또 무허가 대모를 학생들을 각 지구별로 동원해서 할당을 해서 그 시민까지 동원해가지고 마침 지방 대..패들이 국내외 본부에 독립촉성 국민회에 왔기때문에 그 대회를 이용해서 학생이 앞장서서 대모를 했는데 그 국민회의 독립촉성의 본부가 지금 운영공자리 거기서부터 대모를 해가지고 종로로 와서 반도틀에 앞에 하치중장 있는데 와서 우리가 또 선언하자. 우리 민족의 의사로써 자율선거를 해야겠다.
-네
-우리 정부를 가져야겠다. 이걸 하기로 결의하고 나오는 도중에 하루...그 오는 도중에 미군 그 CIC인지 정부 기간인지 지금 이순용씨가 거기 미군 기관에 있었습니다.
-네
-그 전 이박사때 내무 장관하던 이순용씨
-네
-그분이 저걸 타고 오더니 어딜 가느냐 이를테면 못간다 이거예요?
-네
-왜 못가냐 우린 민주주의 원칙에서 대 CA자유, 집회의 자윤데 못할게 뭐있냐 미국사람들이 ..이 아니냐, 민주주의의 자유 원칙에 의해서 못할게 뭐있느냐. 이렇게 얘기를 하니깐 그 사람 얼굴이 새파래지더니 돌아가요. 그 OK 가라고 그리고 그 사람이 꺼져...어디로 없어져버렸어요. 이순용선생이. 그러더니 조금있어서 그 대모가 반도틀을 골목을 꺽어들어올라고 하는 쯤 되니깐 에 너덕술씨가 수도청장 ...하실때 권반장을 했습니다. 그러고 중부 서장이 이구범씨라고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기마대를 동원하고 자동차를 총 동원해가지고 강제로 기마대가 총 짓밟는단 말이예요. 이 대모대와 학생들을.
-네
-그 내가 거기서 불평을 하기를 지휘를 하면서 총 지휘하면서 이 못이긴 경우 가만히 있지 외전때도 우리가 그런 전직 경찰이나 친경찰들한테 당했는데 모처럼 독립을 맞이해서 이박사와 김구선생이 신탁을 반대하는지 지금에와서 또 마찬가지냐. 일본때메 일본놈이 붙고 미국사람사람때는 군정이 붙고 세세..권리 좋을때만 붙어서 하는게 너희들이냐. 일본제독의 얘기를 하고 ...했더니 그것이 비유에 안맞았던 모양인지 떡 저를 잡아다가 수도청에 끌고가지 않았어요? 그래 너덕술씨가 권반장때 앉아가지고 내 뺨을 때리잖아요?
-예
-그래서 나도 바로 때려버렸죠. 너덕술씨 말은 너만 애국자냔 말이야. 왜 우리가 하지말라고 하는걸 말이야 기여코 하느냐. 그래서 가슴에 손을 데보란 말이야. 지금 어느때인지. 미국사람 밑에서 월급받는다고 네가 이런 그 자연발생적인 반탁운동을 억압할수가 있는거냔 말이야. 음? 그래 때려버렸더니 ...가 장택성씨 다음에가는 사람을 갖다가 그렇게 해 놔버렸으니 마침 그 우리 동지로써 전병두라고 몇몇 경찰관이 전직경찰과 신인경찰이 두 교류가 있습니다.
-네
-조병욱 박사가 경무장관을 하실때 이 나라를 바로잡을라면 경찰을 바로 잡아야하는데 공명한 경찰을 써야겄다. 그러면 전직경찰은 기술을 좀 배워야겠는디 빨리 후진들이 있어야만 전직경찰들이 로테이션 하지 안겄느냐 이래서 조병욱 박사의 정책으로써 그 대학출신들 경찰관들 많이 집어넜어요. 그러고 있는데 그 친구가 강력계에 있는데 그 사람을 시켜서 나를 잡아 넣으라고 해서 수갑을 차라그러니까 그사람이 도망 가버렸어요.
-네
-그 우리가 친구인데 그러니까 이제 박경림이라고 하는 유도...그 선도 잘하는 경찰관이 나를 딱 들고 중부서에 잡아 넣지 않겠어요?
-네
-그 중부서에 떡 가서 일주일이 되도 아무 소식이없어요? 관식을 넣어주는데 이제 내가 동료들이 많으니깐 다시 또 넣어주고 그래서 일주일 넘고 아흘해를 가는데 장택성씨는 하치 중장과 그때 그 러치인가 군정장관.
-네
-그 압력때문에 또 풀어줄수가 없고 때로는 장택성씨는 재치가 있는 분이라 뭔 일이 있으면 살짝 사람을 불러와서 철승이 어디 피하라고 그러면 내가 피할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때는 원체그 하치중장이 이박사를 아주 끝까지 몰아낼라고 하는 그런 때였었습니다. 그럴땐 그냥 장택성씨가 하치하고 병명하는 시간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 도중에 에 제가 아흘해까지 중부서에 있었어요.
-네
-그러니까 밖에는 이제 학생운동하는 친구들 국민회에 있던 선배들
또 임시정부 김구선생을 모시는 요인들이 총동원했어요. 또 인촌선생까지도.
-네
-그 이럴수가 있느냐
-그 잡아넣어서 내놔라 석방운동이 벌어졌어요. 그니께 인촌선생 사모님이 또 사식을 넣는다고 ..푼 보내가지고 사식을 넣어주시고 그래서 제가 9일만에 김구선생과 이박사가 창당선생한테 그 장택성씨한테
-네
-그 어디까지 어린 학생들의 애국적인 학생들을 잡아 넣는거냐.
-네
-그래서 그날 제가 이제 아흘해만에 나왔어요.
-네
-그랬더니 이제 장택성씨가 이제 자기 체면이 참 곤란했다는거 이 사람아 내가 그래도 이렇게 무마해서 자네를 이렇게 기소도 않고 내주는것 만으로 다행으로 아소. 응? 그래서 바로 그 해 이박사가 죽점장으로 아니 죽점장이 아니라 이와장으로 오라그래서 이와장에 갔습니다. 그때는 윤치형씨하고 이명선씨가 그 비서로 계셨고 뭐 여러분이 비서들이 많이 계셨어요. 뭐 난 노상 출입을 했으니깐 그 이박사께서 그냥 어떻게 좋아하는지. 그때 참 이박사의 사랑을 최고로 받았다고 참 평도 받고 내 자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던 이박사와 오늘날 그양반의 고집 혁명적 그 고집은 외골수라 융통이 없어요. 우린 그때는 이박사 말이라면 지상 명령이었으니깐.
-네
-그런일이 있었습니다.
-또 뭐 학생운동에 걸친 다른 재밌는 얘기를 내일 듣기로 하고 오늘은 시간 됐으니 이만 합시다.
-예

(입력일 : 2008.05.28)
프로그램 리스트보기

(주)동아닷컴의 모든 콘텐츠를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에서 무단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by donga.com. email : newsro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