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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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10회 군정탄압과 학생운동
이철승 편
제10회 군정탄압과 학생운동
1965.04.13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해방후 20년간 흘러간 역사의 물결 속에 숨겨둔 새 얘기를 다시 찾아보는 정계야화. 오늘도 역시 전 민의원이였던 이철승씨와 신동진 동아 일보 정치부장의 얘기를 들으시겠습니다.

-해방 직후의 학생운 동얘기를 계속 듣고 있습니다만 학생운동 하면 예나 지금이나 할거 없이 그 일반 정치운동이나 이런거 하고 달라서 당국과의 그 일종의 절충이라고 할까요? 탄압같은거에 그 반항한다고 그럴까요? 이런걸 끊임없이 또 해야할 그런 특수한 입장에 있는데요? 그 해방 초기 학생운동에 있어서는 어땠습니까? 그 어떤 당국의 탄압이나 이런거는 없었던가요?
-왜요, 그 학생운동이 당국의 탄압이 없는 역사가 없었던거니깐 그 학생운동이 외로운것이고 의의가 있는것이다. 이렇게 되는 생각이 드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래서 그때의 그 학생운동이 매일매일 고생을 하고 어려운 난관은 우리 민족진영이 여러 단계에 대가리가 많다는것도 또 하나의 어려운 난관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보단 제일 문제는 한쪽으로는 좌익의 침투하고 경장하고 한쪽으로는 군정이 그 당시 대한민국에 거의 그 통치권을 가지고 있었지 않았었습니까? 그 군정의 관리들한테 탄압을 받고 방해를 받고 가령 미 24군 사령관 하치중장 또 민정장관 또 미,소 공동위원회 미국 대표 이런분들하고 싸우는것이 대부분 학생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습니다.
-뭐 그런 그 학생운동중에 사건같은...
-예 그참 많이있습니다만 여기서 제가 퍽 인상적이고 지금도 우리나라 민족운명 정치운명을 규정하는데 적지않은 영향력을 가하게 되었다는 사건을 하나 줄여서 말씀 드릴것 같으면 이 1946년 12월
2일날 이승만 박사가 미국을 가셨습니다. 그 이박사가 미국가시게 될때 배경은 미군정당국과의 그 과히 좋지 않을때입니다.
-그쵸 그때 하치중장하고 아주 막바로 정면대립하였던 그때...
-그렇습니다. 미국사람과 소련사람은 신탁통치를 기여코 시켜야겠다. 막부 삼상회의 결정을 받아들이게 해야겠다. 그런데 우리는 이박사는 조건없는 독립이다. 그러니 유엔에서라도 미국서 다시 재고해가지고 한국에 다시 독립 정부를 세워달라. 그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 미국가셨는데 그 양반 가실때 그 외교 후워회를 조직을 했어요. 외교 후원회 그 후워회 회장은 지금 그 민통 본부에 조수항씨가 아마 후원회 회장을 했습니다. 드러고 전국적으로 성금을 걷어가지고 그 양반 돈을 대는데 아신바와같이 이박사께서는 지금도 그점은 내 퍽 존경해마지않을수 없습니다. 돈을 퍽 금이야 옥이야 하고 애껴쓰는거 그 분이 망명하실때도 일일히 치부를하고 돈을 애끼고 또 특히 망명해본 사람 아니면 그 심정은 모릅니다. 그 정치가와 망명해본 사람들이 해외에서 돈이 없어가지고일을 못할때 임시정부 요인들때메 그런경우를 많이 당한것으로 아는데 그분에게 돈을 대주는 분들이 그동안에 경계보국회라는게 있어가지고 에 한쪽에는 공진안씨라던지 전용순씨 돌아가신 삼공회 회원분들 또 인촌선생 또 김연수씨 이런분들이 돈을 걷어서 냈지만 그 어른이 그 관리를 철저히 했어요. 그 돈받아가지고 그 어른이 또 사..단체나..단체에 조금씩 줄때 저만 불러서 한번에는 자네 이 돈이 얼마나 의로운건지 아는가? 그러니 이돈은 아주 애껴쓰소. 그리고 일일히 발길을 내고 영수증을 만들어야해. 이 양반이 이렇게 까지 돈을 이렇게 쓰던때가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그때 후원회때 배은희 목사라던지 이런분들이 이제 백성욱씨가 이제 자기 매부가 에 군산에 검은공장 이만우씨라고 사장을 하고있는 분이라던지 공잔안씨도 농림장관을 한 일이 있습니다. 정부수립 후에 이박사가 돈을 고생할때 댄 분들은 감사말씀 다드렸습니다.
-네
-그 앞으로 얘기하면 나올 일이 있습니다만 그런 일이 있었으나 그런 배경밑에서 이제 우리가 1월 18일 학생운동 사건 어제 제가 말씀 한 그 일주년 기념행사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네
-그래 이박사가 단신으로 미국을 갔는데 한쪽에서는 항공민의는 신탁통치를 지지하는거다. 이게 좌익에서 지꾸 선전을하고 동원을 하고 있고 또 민족진영엔 그 반대다. 민영에 따라서 우리 그 가문이 강대국가가 약소민족을 굴레를 세워서라도 민영에 따라야 하는게 민주주의 아니냐? 이걸 경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바인데 우리 선금으로 이박사가 미국가서 ..밀어주는 세력이 있어야 할것 아니겠습니까? 그 여론을 또 환기 시켜야겠다. 그래서 오로지 그당시에는 벌써 이법위원이 생기고 김규식박사가 좌우 합작을 하게 되니깐 또 관리들 꾀 많고 그 지조없는 사람들 이리붙고 저리붙고 하고 또 민족진영이라고 한 사람들도 반탁운동에 대해서 열이 식어가지고 있어요. 겨우 인정에 김구선생하고 이박사하고 사이가 조금 벌어지던 것을 그때 독립촉성국민회를 만들어가지고 ..위원회로 다시 손을 잡고 김구선생이 이박사를 뒷받침 해주는 그땝니다.
-네
-하루는 제가 그 제 학년본부 사무실에서 아침새벽에 에 추워서 말씀이에요 그때는 우리는 요새 학생들은 어떻게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루에 잔국밥 한그릇에 지내고 뭐 넥타이 해본 일도 없고 뭐 양복한벌 제대로 세탁하고 빨아본 일 없이 추우면 나무 책상을 뜯어 떼면서 그리고 이집가 자고 저집가지고 굴러다니면서 종가식 사가수거를 하면서 학생운동을 할때였는데 아침에 이제 그 미군정 미,소양군철퇴회라 또 하치중장에 그 성명 신탁통치를 지지해야한다. 반탁은 완전한 이 한국사람들의사가 아니다.라는 그런 의견을 취소해라. 이런 삐라를 만들어가지고 프린트를 하고 있는 도중에 에 미국사람들이 저를 잡으러 찾아왔어요. 책임자라고 해가지고. 그래 저는 그때 오는걸 알고 이제 피했었습니다. 그랬더니 1월17일날 제가 저녁을 인촌선생댁에서 자고 그 사람방은 노상 무상출입을 하는데고 아침에 일어나면 누구나 다 밥 한그릇씩 먹고 자기 일보러가는 그 ..하고 참 형제간 같이 지낸 터이기 때문에. 거기에 자고 이제 아침에 일어나보니깐 별안간 소식 듣기론 그 전날 저녁에 학생운동회 주동 역할하는 사람들 다 잡혀갔다 미국CIC에 잡혀갔다. 그건 미,소양군철퇴회라는 삐라를 뿌렸다는 것과 이박사가 미국가 계시는데 지원하기 위해서 대다적인 최후의 일인까지 지상하더라도 반탁을 성공에 이끌겠다는 그 결의문. 그것때문에 미군의 산하 혹은 미인들의 거주민들에 대해서 외출금지를 하고 각계 주제소 마다 그 기관포를...기관포라니 기관총을 달고 탕굴을 동원해놓고 일체 못오게 했습니다. 그래 우리는 그당시 묘한 일이 있어도 우리는 그 일주년기념행사에 가야겠다. 그래가지고 준비를 진행하는데 아침에 인촌선생댁에서 계단에서 이렇게 내려오고 나니깐 송원영군 아시는바와 같이 그 신부장도 송원영군 잘 알거예요?
-네 지금 민주당...
-네 그분이 이제 CIC집차에 잡혀가지고 타고 나를 찾으러 혹시 인촌선생댁에서 숨어 있지않느냐 그래 나를 태우고 데려오다가 나는 내려오면서 그사람하고 마주쳤어요. 마주쳐서 서로 손을 번쩍 들었더니 미국CIC사람이 저게 이철승인가보다 하고 나를 올라타라고 하지않아요?
-미국인이였군요.
-그렇습니다.
-그러고 이제 올라타라고 할때 저는 벌서 육감으로 알아채리고 나하고 같이 내 수양을하던 친구보고 가서 인촌선생사모님께 이철승이가 이차에 탄다그랬다고 미국사람집차에 오면 그렇게 말을해라. 그러고 그차를 몰고는 원서동 용용시티댁 가는데 그 근방으로 돌았어요. 그 사간을 좀 벌기위해서 가다가 그 막다른 골목이 되기때문에 집차를 다시 되몰아가지고 와서 인촌선생댁으로 갔더니 사모님이 나오시자 글쎄요 미리 연락을 다 전했지 그 미국사람이 이 통역을 시켜가지고 이 사람이 이철승이냐? 사모님이 똘래똘래 보시더니 아 여기 이철승이 난 몰른다고 그 사람 요새 몇일 안왔다고 이렇게 얘기해서 그 장면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래도 놓아주질 않고 이사람이 데리고나 댕길만한데는 다 돌고 나보고 너 이철승이 아니냐? 아니 난 이철승이 아니오. 난 이철승이 친구요. 이철승이가 내일 큰 대모를 한다고 그렇게 준비한다고 바쁘다고 어디로 갑디다. 그래 난 아니오. 그래서 날 갖다가 CIC본부까지 갖다나와요. 근데 어제 잡혀갔던 우리 학년동지들을 그 저짝에 그 열쇠구녕으로 내다보게 하고 저게 이철승이 아니냐 이걸 대조시키는거예요. 한놈은 기라그러고 한놈은 아니라 그랬어요. 결국 미국사람이라 그점이..되더군요? 다른때 같으면 다 바로 고문을해서 전기고문 할텐데 그 시간을 난 벌라고 어떻게 하면 그날만 지나면 내일이 1월18일이기때문에 우리 대모는 원만히 마치겠다. 그랬더니 그 수도청에 사찰과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에 최운하씨라고 하는 사람이예요. 그 사람이 떡 들어와요. 그때 장철승씨가 수도 청장할때고 미군의 명령에 움직일때 아닙니까?
-네
-그러니 문을 턱 열고 들어오니까 아 미스터 리 왠일이요? 여기?
그래가지고 제가 걸렸습니다. 그래노니깐 미국사람들이 God Them그러면서 저를 돌렸다고 그랬다가 나를 장덕수 선생이 한민당을 통해서 이걸 알고는 만일 이철승군을 여기에 풀어주지않을것 같으면 내일 대 소란이 난다. 그러니까 조건부로 해야한다그래서 김영문씨가 시장때 서울시청에가가지고 서울 미인 시장을만나가지고 내가 싸인을 했어요. 내일 대모를 안한다는 조건으로 그러고 석방이 되지않았습니까? 그 이틑날 이제 천주교에서 정식 우리 그 결의대회가 일주년 기념행사겸 이박사 지원하는 반탁결의를 하고 성명서를 냈단 말씀이예요?
-네 대모는 안했습니까?
-네 그런데 장택성씨가 그날 나와야한다.
-네
-경찰들이 입추의 여지가 없어요. 우린 경찰들 나가라. 우리끼리 단독 결의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모한다. 그래가지고 하니깐 그때 마침 미국에서 이박사가 전보가 저한테 날라왔어요. 그걸 김구선생이 와서 읽어 주셨어요. 이박사는 한국의 학생들과 한국민은 전부다 반탁이다 봐라. 그 신뭉이 미국과 전 세계에 퍼졌거든. 한국에 그 소란이 난다. 전 민중이 학생운동을 지원한다. 반탁운동을 지원한다. 이박사가 격려의 전보가 왔습니다. 그러니가 우리는 그걸 가지고 이박사 지원한데 대해서 큰 성과를 거뒀기때문에 이박사가 돌아와서 나를...20일날 들어오더니 날 껴안고는 참 잘했다고 어깨를 치면서 껴안읍디다.
-네 결국 대모는 않하셨군요?
-네 대모는 않고 그걸로 끝냈습니다.

(입력일 : 200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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