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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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6회 해방직후의 서울
이철승 편
제6회 해방직후의 서울
1965.04.08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해방 후 20년간 흘러간 역사의 물결속에 숨겨진 새 얘기를 다시 찾아보는 정계야화 오늘도 역시 전 민의원이었던 이철승 씨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의 얘기를 들으시겠습니다.

- 어제는 이 의원이 학병으로 일본 중부지방에 끌려 갔다가 거기서 8·15 해방을 맞이해서 거의 밀선을 타고 한국에 돌아와서 여수에 상륙해서 고향이 전주라 그러셨죠?

- 네. 그렇습니다.

- 갔다가 전주에서 인제 서울로 올라오셨던 얘기까지 들었는데 그때 처음 서울 올라오신게 그러니까 8월 몇일날쯤 됐어요?

- 글쎄요. 제가 8월 30일경일것 같습니다.

- 네. 그때만 하더라도 고향에 여러분들이 계시고 그랬었을텐데 거기에 좀 오래 묵지 않고 바로 올라오신건 역시 무슨.

- 글쎄요. 우리가 모처럼 고향산천 밟고 부모님 만나니 여러 친구들이 살아 왔다고 환영들 하고 못 가게 붙드는 것을 단지 성묘만 하고 친부모들에게 인사하고 올라간 이유는 박다에서 하카다라는데서 우리는 빨리 올라가가지고 신화같이 꿈같이 그려오던 선배들을 만나뵙고 이 독립건국에 이바지 해야 할 것 아니냐. 죽을뻔알았던 우리가 뭘 집에 있을 수 있겠느냐 해서 될수록이면 빨리 서울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저는 아주 순진해서 그 약속을 지킨다고 이틀만에 올라 갔습니다.

- 모두들 많이들 모였댔습니까?

- 서울 와서 보니까 서울 미리 와있는 사람, 또 이북에서 온 친구, 만주에서 온 친구들 빼놓고는 거의 약속한 사람들이 거의 안왔어요.

- 역시 뭐 여러가지 사정도 많았겠지요.

- 그런 모양이에요.

- 뭐 서울 와보니까 굉장히 감격들 하고 야단이었겠지만 어땠습니까.

- 글쎄요. 서울 와서 해방 되었으니까 캄캄한 어두운 굴 속에서 별안간 이 광명속에 나온것 같은 그런 기분이라 그랬는지.

- 네.

- 어지러울 정도의 혼란이 있었고 특히 예를 들면 화신 그 담벼락 보면 어떻게 벽보가 많이 첩첩으로 붙어놨던지 단체도 많고 애국단체도 많고 그래서 요새말로 흔히 우후죽순 처럼 생긴다는 말 그때부터 우린 듣고 있습니다. 그래 얼마나 그 단체도 많고 사람도 많고 거리에 나돌아 댕기는지 정신을 못차렸는데 특히 인제 저는 마침 국내에서 보성전문을 다녔기 때문에 와보니 대강 그 학교에 관계되던 분들 또 이 동아일보라든지 거기에 민족운동 하던 분들이 대부분 결국 그 서울에 일본 청중의 망언투의 직설을 수습하고 앞으로의 문제에 대해서 대책을 세우는 세력이 그 거기에 관계된 사람이 아닌가.

- 네.

- 두 가지 조류가 있더군요.

- 그렇지요.

- 하나는 건준이라는 조류가 있고.

- 건국준비위원회.

- 네. 하나는 국민대준비위원회.

- 그렇지요.

- 한민당의 전신 이 세력이 둘이 있더군요. 그래 건준를 제가 찾아가 봤습니다.

- 아. 여훈영 씨가 하는.

- 예. 건국주문학교. 갔더니.

- 어디죠? 그게.

- 그게 그 풍문고녀에서 있었습니다.

- 네.

- 거기에서 가봤더니 거기는 조직이 거의 정부기구나 가까운 혹은 정당기구나 가까운 준비가 만반히 돼있어요. 그것은 결국 건국동맹이라는 왜정시대 때부터 하던 여훈영 씨 조직이 일본 총독이 물러가면서 그 정권을 아마 여훈영 씨와 건준에 이행한 것 같은 그 형태기 때문에 그 호기를 이용해서 지방조직을 다 끝내고 또 특히 우리가 주의 해야 할 문제는 치안대.

- 네.

- 건청치안대를 만들때 각 학교 선생들 특히 무도부들.

- 네.

- 특히 그 학생들을 동원해가지고 치안유지를 해서 일본사람들 돌아가는데에 그 질서를 유지해주고 앞으로 건국에 대한 준비를 한다. 그렇기때문에 가보니 제가 아는 사람들이 거의 다 집결하고 있어요. 특히 말씀드릴것 같으면 그 이호재라고 민회청 나중의 책임자 됐던 이호재가 내 학교 선배고 이병학 선생이라고 고려대학교 체육 선생이 학교 선배고 그런데다가 그 뒤에 그 군사단체를 건준에선 많이 무장단체를 많이 준비를 하더군요.

- 음.

- 그 무장단체는 국군준비대 총사령부라든지 또는 지원병 이런 동지회라든지 혹은 그 학도재라든지 뭐 이런 조직을 다 외곽단체로 다 가지고 있더군요.

- 하여튼 이 건준이 저 총독부가 8·15 되기 직전 그러니까 8월 12일인가 13일경에 말이죠 그 한국인 지도자한테 정권을 넘겨 주겠다 해서 맨 첫번에 그 송진우 선생에게 그 아마 의향을 떠봤더니 송 선생이 그때 반대를 하고 거절을 해서.

- 네.

- 그 다음에 인제 여훈영 씨 한테 아마 그걸 교섭을 해가지고 여훈영 씨가 그걸 받아들였다는 얘기 아닙니까.

- 네. 그렇다는거에요. 그래서 송진우 선생은 명분론을 주장을 하고 또 여훈영 씨는 실질론을 주장 하고 송진우 씨는 그렇기때문에 임정이 오더라건

- 네. 기다리지 않고.

- 또 군정이 또 미국 사람이 인계해주더라건 기다려야겠다 했기때문에 불행하게도 그 당시 순진한 지방 유지 또 학도들은 건준에 거의 휩쓸리다시피 됐는 것이 하나의 그 당시의 불행한 일이 아니었는가. 이런 또 얘기도 하고 싶습니다.

- 그렇지요. 그때 이틀 사흘이라는 그 시간은 굉장히 중요한데.

- 네.

- 그걸 인제 좌익계라고 단정을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여훈영 씨께서 꽉 잡았다 이것이 아마 두고두고 그 후에 여러가지 정치적으로 아마.

- 체육인, 교수, 학생 전부 노동단체 전부다 접었던것만은 사실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학병동명.

- 네.

- 거기도 가보고 국군준비대 총사령부라는 특히 제가 관심이 있는것은 그게 굉장히 큰 단체였습니다. 지금 이 시공간에 있던 단체.

- 그니까 뭐 군대 관계했던 사람들이 주동이 됐던거 아니겠어요?

- 네. 그랬습니다. 그래서 마침 거기 총사령관으로 있던 친구가 그 이혁기라고 저번에 제가 방송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학병 거부운동에 여훈영 씨의 백번호로 거부운동 하다가 우리 같이 잡혀갔던 그 서울대학 대표.

- 네.

- 그 사람이 와보니까 국군준비대 총사령관을 하고 실지는 그 건준의 외곽단체 노릇을 하고 있더라.

- 아. 그리고 아까 그 들렀다는 학병동맹은 어땠습니까.

- 글쎄요. 그 학병동맹은 아시는바와 같이 저도 학병에 갔다왔고 또 일년 후에 온 학병들도 있고 그때에 속속 들어오는 학병들이기 때문에 와보니 미리 간판이 학병동맹이라고 붙어 있어요.

- 어디에요?

- 그 종로에 학병동맹본부라 붙어 있습니다. 종로2가에.

- 네.

- 그래 우리가 안갈 수 있습니까.

- 그렇겠지요.

- 가서 보니까 뭐 굉장히 움직임이 있어요. 우리 학병들이 건국에 이바지 하자. 또 우리 국방력을 앞으로 확보해서 독립국으로써의 마련할걸 다 마련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도 다 가서 등록을 했습니다.

- 네.

- 그러면 등록을 하면 회원이 되고 가니까 또 보성전문 출신 우리 친구들이 이미 학병으로 있던 사람이 있습디다.

- 네.

- 한번은 그래 내가 재밌는 얘기를 한말씀 드릴것 같으면은 학병동맹이 이 긴급총회를 한번 한다고 그래요.

- 네.

- 그래 나도 총회 맴버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저녁에 한번 풍문고녀에서 한다고 갔었습니다.

- 네.

- 보성전문 출신들은 그래도 인촌 선생의 영향력이라든지 송지우 씨 영향력 때문에 그 우리하고 다 통하는 길이 많이 있었어요.

- 네.

- 그래 같이 한 그룹이 돼가지고 각 학교 출신 특히 인제 유학생들 또 만주나 이북에서 국내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이 와서 그 누가 누군지 몰라요. 나중 알아보니까요 학병에 가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학병 맴버로 돼가지고 그 컨트롤 해나갔다는거에요.

- 그 건국준비위원회 인제 그 공작이겠지요.

- 네. 그러니 그거 참 우리 몰랐습니다.

- 네.

- 그래가지고 회의를 하는데.

- 안건이 뭐였습니까.

- 별안간 인제 안건은 우리가 모르고 나갔습니다. 갔더니 오늘 인민공화국이 9월 6일날 발표를 했는데 인민공화국이 발표 되었으니 만큼 우리는 학병 갔다 온 사람으로서 이걸 절대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대모를 해서 지지해야 앞으로 인제 국군화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 아.

- 그런 그 결의를 하자는거에요.

- 아 그럼 그게 그 건국준비위원회에서 9월 6일인가요 그 서울에서 전국 대표자 대회를 열고 그

- 그렇습니다.

- 소위 조선인민공화국을 뭐 날조하다시피 해서 선포한 그 의미시겠군요.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걸 바로 서포트 하기 지원해주기 위해서 외곽단체가 총동원 하는 거에요.

- 아 예.

- 그날 회의는 그건지도 모르고 갔다가

- 네.

- 우리는 절대 반대를 했지요. 그 반대하는 이유는 지금 이 학병동맹이 어느파 어느파의 어느 단체에 가담할 수가 없다.

- 네.

- 순수한 친목을 위해서 앞으로 초호하는 입장에서 있어야 할것인데 어떻게 인민공화국에 지지한다고 할 수 있느냐. 여기는 한민당도 있고 국군준비대 아 국군준비대가 아니라 거기에는 국민대의 준비위원도 있고 그러면 우리는 당파를 초월해야 할 것 아니냐. 안된다. 그랬더니 결국은 뒤에 위협하는 사람들이 저희한테 둘러싸더니 꽉 둘러싸고 있어요. 너 듣지 않으면 안된다. 밤 11시 반까지 끌고 나갔어요. 끝끝내 내 반대한다. 그리고 이제 나올려니 주먹질 할라 그래요. 그래서 나오고 내가 열성적으로 얘길 했더니 마침 우리 보전 출신들이 다 퇴장을 해 나왔어요. 나오는데 나중에 따라오는 친구가 퍽 그 중간적 노선 발언을 해요. 얼굴이 새파래지고 창백한 청년인데 나중 알아보니까 그 친구가 누구냐면 김종회라고 국회의원도 여러번 하고 부산서 작고한 국방위원장 한 젊은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 아 김종회 위원. 네.

- 그 친구가 나오더니 자기는 먼저 학병동맹에 관계 있다는거야. 관계 있는데 지금 너 죽일라고 지금 권총을 지금 가지고 니가 지금 보전 중심으로 이 학병동맹을 반대하고 인공지지를 않기 때문에 죽일라고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 자기를 날 나가라고 했다는 거에요. 그래 나오니까 너 참 구사일생 한거라 그리고 나왔어요. 그랬더니 그 이튿날 학병동맹들이 그 지지 성명서를 내는데 학병동맹위원장은 왕익권이라고 하는 사람이고 또 부위원장은 이춘영이라는 사람이고 이거 다 나중에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래가지고 알아봤더니 그 이북으로 넘어 갔다고 그럽디다.

- 그게 저 그러니까 신탁통치 얘기가 나오기 좀 전이지요 9월달이니까.

- 그랬습니다.

- 그때서부터 인제 학병문제니 학생문제가 그 소위 싹트기 시작한 때 아니겠어요?

- 네.

- 시간이 다 됐으니까 오늘은 그 쯤 하고 내일은 그 신탁통치 때 얘기를 좀 들려 주세요.

- 네.

(입력일 : 200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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