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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20년간 흘러간 역사의 물결속에 숨겨진 새 얘기를 다시 찾아보는 정계야화. 오늘도 역시 전 민의원이었던 이철승 씨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어제는 이 의원이 보성전문 다니다가 학병 강제 지원 문제로 해서 우리 조선인 대학생들 대표들하고 함께 그때 고이소 일본 총독 그 지금은 청와댑니다만 총독 관저에까지 몰려 가서 직접 면단 하고 담판 하고 그래서 결국 끝내는 학병에 끌려가고 말았다 그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 네.
- 오늘은 그 이 의원이 마지막 그게 정전 직전이었으니까 학병으로 해서 정전을 맞이하셨죠.
- 그렇습니다.
- 어떻게 해서 8·15를 맞이 하셨나 그때 얘길 좀 경황을 들려 주세요.
- 글쎄요. 그 말씀을 다 더듬어 하려면 한이 없겠지만은 제일 제가 일본 제국주의라는 그 고목나무가 우드득 소리나고 그 쓰러지는 대목을 역력히 보는 그 순간을 말씀 드리지요.
- 네. 일본에 학병으로 가셨다 그랬지요?
- 네. 그랬습니다.
- 어디였나요?
- 제가 있었던 곳은 일본 중부지대에 와카야마라고 하는데에 거기에 연한 방비로써 마지막 연합군이 맥아더 사령관이 결국 본토 상륙 할것이다.
- 네.
- 그러니 한국에 있는 일본 군대나 만주에 있는 일본 군대를 전부 본토에 집결해서 최후의 1인까지 소모품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대기를하는 그런 연한에다가 구멍을 파놓고 오늘 내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죽는 날짜를.
- 아 이 소모품으로 갖다 놨군요.
- 그렇습니다.
- 그때에 마침 참 쓰라린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별안간 그 훈련과 그 대기를 하지 말고 연대 본부로 오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 네. 그러니까 현역병이 됐었나요? 학병이라면 어떻게 돼있었어요.
- 학병은 그때도 저는 일등병에서 결국 제대할때 상등병까지는 올라갔습니다만은 거기서 성적 좋은 사람 혹은 이쁨받은 사람은 간부생도 되고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 아. 그랬어요?
- 정기군이지요.
- 아.
- 그래 인제 그 연대본부에 전부 집결해서 모였더니 일본천황 유이란 사람이 그 방송 한다고 중대방송 한다고 그 뭔가하고 우리는 뭐 의미가 없지요. 우리야 뭐 누가 방송하든 관계 있습니까. 언제 죽느냐 하는 것만 지금 기다리고 있는 정도고 입장에서 있으니깐. 한참 들었더니 무슨 잡음이 하도 나싸서 아마 한국도 그랬다는 말 나중에 들었어요.
- 스피커로 했겠지요.
- 예. 스피커로 듣는데 도저히 못 알아 듣겠어요. 일본말 잘 알아듣는 그 부대장이나 우리 중대장은 잘 알아듣는줄 알고 우리가 물어 봤지요. 이게 무슨 방송이오? 그랬더니 아 이게 여러분이 종반기에 있어서 그 연합군을 무찌르라고 더욱 격려의 말씀을 우리한테 참 송구하게끔 천황께서 직접 하셨다고 이런 얘길 해요. 그래서 바로 싱거운 일이다 하고 우리는 그러자 마침 그날 우리 일선에서 고생한다고 일본 사람들 그 위문대들이 가끔 위문하고 다닙니다.
- 네.
- 그 한참 일본서 유명하던 야나기야긴고로라고 하는 위문들이 우리 산중에 와서 위문을 했어요.
- 아 만담간가 그렇지요.
- 만담가 입니다.
- 아니 그런데 그 일본 장교들이라든지 그 방송 들은 사람들이 그 충격 받은 상황이 좀 눈에 안띄었어요?
- 근데 우리는 그 만담을 듣고
- 네.
- 그리고 인제 내려왔어요.
- 네.
- 그랬더니 동네가 조용하단 말씀이에요.
- 네.
- 왠일인가 그랬더니 조금 있으니까 우리 부대에 가서 밥을 저녁밥을 먹고 쉴라고 그러니 뒤에서 뭐 요란스러운 소리가 나요. 나가 보니까 일본 하사관 사람들 혹은 장교들이 칼을 뽑고 나무를 찍고 술을 먹고 울고 궁굴고 그 뭐 별짓을 다했어요.
- 아.
- 그래서 이게 왠일이냐고 물어 봤더니 일본 천황이 항복 했다. 이 말이 그 시내에서 부터 동네에서 올라오기 시작 하더군요.
- 아.
- 그래 우리 4사람 꼭 학병이 있었습니다 우리 반에.
- 네.
- 이걸 딱 우리끼리 비밀리에 소집을 했어요.
- 네.
- 그래가지고 이거 큰일이다. 이거 잘못하면 우리 까딱하면 저놈들한테 맞아 죽을테니 좀 조심하자. 좌우간 올 때는 온 모양이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그 이튿날 별안간 일본천황의 그 뭐라그럴까 항복 방송에도 불구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라는거에요.
- 어.
- 다시 일전을 불사할테니까 우리는 최후의 1인까지 싸우니까 천황 방송과는 관계 없다. 이것이 일본의 독재 군벌의 말로에 있어서의 혼선 혼란 상태를 우리한테 뵈주더군요.
- 그때만 하더라도 그 일본 천황 방송에도 불구하고 군부에서는 다시 정한다 뭐 이런 얘기가 돌았죠.
-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제 산에 올라가서 불평 천지지 아 그 천황 말도 안 듣느냐. 우리는 자꾸 인제 그 동급 사람들 한테 그런 애기를 하지. 그랬더니 가서 하루 나절 있으니까 또 내려 오라는 그 명령이 왔어요.
- 네.
- 명령이 와서 우리는 보따리 쌀 준비를 할라고 하고 있었더니 그 다음날 연대에서 한국 학병 학도병들은 전부 모여라. 여기 산산 흩어져 있는 부대에 우리 부대에 있는 한국 학도병이 한 30, 40명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너희는 바로 19일 까지 하카다 라는 그 구주 북부에 있는 항구로 집결해라.
- 아 그게 몇일 날 쯤 됐지요?
- 그때가 18일날 우리보고 떠나라고 그런 거에요.
- 아 사흘 뒤로구만.
- 그래서 우리끼리 짐을 싸고 이게 정말로 꿈이냐 생시냐 도저히 우리 저승에 가서 죽을 날을 기다려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게 19일날 간다는게 참 도저히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좌우간 가라니까 좋아서 우리들이 뭉쳤는데.
- 어떻게 가요.
- 돈을 이 사람들이 돈 12월을 주더군요.
- 아.
- 어떤 부대는 또 인심을 써서 좀 많이 준데도 있어요. 돈 10월이 우리가 생명을 바꾼 돈 입니다. 그 실컷 그 놈들한테 맞고 기합 받고 죽을 직전에서 그래가지고 쌀을 몇 되 가지고 우리가 하카다로 집결했던 것입니다.
- 아 그러니까 저 후쿠오카 인가요? 복강. 구주. 그게 아마 하카다죠?
- 네. 그렇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인제 우리가 그 하카다에 갔더니 학도병, 지원병 뭐 징용 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한 2,3천명이 모이기 시작해요. 속속 일본내에 있는 사람과 남방 이런데서 갔던 사람은 미처 그 시간이 없으니까 안오고 모이기 시작 하더군요.
- 바글바글 했겠군요.
- 네. 그냥 그 사람들이 숙소도 없고 잘데도 없어 가지고 들판에서 모래사장에서 자는데 나중에는 돈 떨어지고 쌀 떨어지고 뭐 어쩔 수가 없는 그런 혼란 상태에 빠졌습니다.
- 그 뭐 저 우리 한국인들이 고국에 돌아올라고 모인데가 구주고 또 구주에서 인제 그 복강 입니까 후쿠오카.
- 네.
- 거기 였으니까 뭐 굉장했겠지요.
- 그래서 거기서 인제 우리가 인제 이 난장판인 질서를 또 회복해야 하지 않겠느냐.
- 네.
- 그래서 거기 또 우리 스스로가 자치회의라든지 질서 회복하는 기구가 자동적으로 사람이 사는 사회라는게 생기게 돼요.
- 그렇겠지요.
- 거기까지는 역시 우리의 질서를 회복 하려면 할수없이 부대에 계급을 가지고 할수 밖에 없다.
- 아.
- 그래 나는 또 거기 그 여러 친구들이 원래 학교 다닐때 부터 대장 노릇을 좀 그러니 저러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