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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5회 밀선 타고 학병에서 돌아온 이야기
이철승 편
제5회 밀선 타고 학병에서 돌아온 이야기
1965.04.07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해방 후 20년간 흘러간 역사의 물결속에 숨겨진 새 얘기를 다시 찾아보는 정계야화. 오늘도 역시 전 민의원이었던 이철승 씨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어제는 이 의원이 보성전문 다니다가 학병 강제 지원 문제로 해서 우리 조선인 대학생들 대표들하고 함께 그때 고이소 일본 총독 그 지금은 청와댑니다만 총독 관저에까지 몰려 가서 직접 면단 하고 담판 하고 그래서 결국 끝내는 학병에 끌려가고 말았다 그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 네.

- 오늘은 그 이 의원이 마지막 그게 정전 직전이었으니까 학병으로 해서 정전을 맞이하셨죠.

- 그렇습니다.

- 어떻게 해서 8·15를 맞이 하셨나 그때 얘길 좀 경황을 들려 주세요.

- 글쎄요. 그 말씀을 다 더듬어 하려면 한이 없겠지만은 제일 제가 일본 제국주의라는 그 고목나무가 우드득 소리나고 그 쓰러지는 대목을 역력히 보는 그 순간을 말씀 드리지요.

- 네. 일본에 학병으로 가셨다 그랬지요?

- 네. 그랬습니다.

- 어디였나요?

- 제가 있었던 곳은 일본 중부지대에 와카야마라고 하는데에 거기에 연한 방비로써 마지막 연합군이 맥아더 사령관이 결국 본토 상륙 할것이다.

- 네.

- 그러니 한국에 있는 일본 군대나 만주에 있는 일본 군대를 전부 본토에 집결해서 최후의 1인까지 소모품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대기를하는 그런 연한에다가 구멍을 파놓고 오늘 내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죽는 날짜를.

- 아 이 소모품으로 갖다 놨군요.

- 그렇습니다.

- 그때에 마침 참 쓰라린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별안간 그 훈련과 그 대기를 하지 말고 연대 본부로 오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 네. 그러니까 현역병이 됐었나요? 학병이라면 어떻게 돼있었어요.

- 학병은 그때도 저는 일등병에서 결국 제대할때 상등병까지는 올라갔습니다만은 거기서 성적 좋은 사람 혹은 이쁨받은 사람은 간부생도 되고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 아. 그랬어요?

- 정기군이지요.

- 아.

- 그래 인제 그 연대본부에 전부 집결해서 모였더니 일본천황 유이란 사람이 그 방송 한다고 중대방송 한다고 그 뭔가하고 우리는 뭐 의미가 없지요. 우리야 뭐 누가 방송하든 관계 있습니까. 언제 죽느냐 하는 것만 지금 기다리고 있는 정도고 입장에서 있으니깐. 한참 들었더니 무슨 잡음이 하도 나싸서 아마 한국도 그랬다는 말 나중에 들었어요.

- 스피커로 했겠지요.

- 예. 스피커로 듣는데 도저히 못 알아 듣겠어요. 일본말 잘 알아듣는 그 부대장이나 우리 중대장은 잘 알아듣는줄 알고 우리가 물어 봤지요. 이게 무슨 방송이오? 그랬더니 아 이게 여러분이 종반기에 있어서 그 연합군을 무찌르라고 더욱 격려의 말씀을 우리한테 참 송구하게끔 천황께서 직접 하셨다고 이런 얘길 해요. 그래서 바로 싱거운 일이다 하고 우리는 그러자 마침 그날 우리 일선에서 고생한다고 일본 사람들 그 위문대들이 가끔 위문하고 다닙니다.

- 네.

- 그 한참 일본서 유명하던 야나기야긴고로라고 하는 위문들이 우리 산중에 와서 위문을 했어요.

- 아 만담간가 그렇지요.

- 만담가 입니다.

- 아니 그런데 그 일본 장교들이라든지 그 방송 들은 사람들이 그 충격 받은 상황이 좀 눈에 안띄었어요?

- 근데 우리는 그 만담을 듣고

- 네.

- 그리고 인제 내려왔어요.

- 네.

- 그랬더니 동네가 조용하단 말씀이에요.

- 네.

- 왠일인가 그랬더니 조금 있으니까 우리 부대에 가서 밥을 저녁밥을 먹고 쉴라고 그러니 뒤에서 뭐 요란스러운 소리가 나요. 나가 보니까 일본 하사관 사람들 혹은 장교들이 칼을 뽑고 나무를 찍고 술을 먹고 울고 궁굴고 그 뭐 별짓을 다했어요.

- 아.

- 그래서 이게 왠일이냐고 물어 봤더니 일본 천황이 항복 했다. 이 말이 그 시내에서 부터 동네에서 올라오기 시작 하더군요.

- 아.

- 그래 우리 4사람 꼭 학병이 있었습니다 우리 반에.

- 네.

- 이걸 딱 우리끼리 비밀리에 소집을 했어요.

- 네.

- 그래가지고 이거 큰일이다. 이거 잘못하면 우리 까딱하면 저놈들한테 맞아 죽을테니 좀 조심하자. 좌우간 올 때는 온 모양이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그 이튿날 별안간 일본천황의 그 뭐라그럴까 항복 방송에도 불구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라는거에요.

- 어.

- 다시 일전을 불사할테니까 우리는 최후의 1인까지 싸우니까 천황 방송과는 관계 없다. 이것이 일본의 독재 군벌의 말로에 있어서의 혼선 혼란 상태를 우리한테 뵈주더군요.

- 그때만 하더라도 그 일본 천황 방송에도 불구하고 군부에서는 다시 정한다 뭐 이런 얘기가 돌았죠.

-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제 산에 올라가서 불평 천지지 아 그 천황 말도 안 듣느냐. 우리는 자꾸 인제 그 동급 사람들 한테 그런 애기를 하지. 그랬더니 가서 하루 나절 있으니까 또 내려 오라는 그 명령이 왔어요.

- 네.

- 명령이 와서 우리는 보따리 쌀 준비를 할라고 하고 있었더니 그 다음날 연대에서 한국 학병 학도병들은 전부 모여라. 여기 산산 흩어져 있는 부대에 우리 부대에 있는 한국 학도병이 한 30, 40명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너희는 바로 19일 까지 하카다 라는 그 구주 북부에 있는 항구로 집결해라.

- 아 그게 몇일 날 쯤 됐지요?

- 그때가 18일날 우리보고 떠나라고 그런 거에요.

- 아 사흘 뒤로구만.

- 그래서 우리끼리 짐을 싸고 이게 정말로 꿈이냐 생시냐 도저히 우리 저승에 가서 죽을 날을 기다려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게 19일날 간다는게 참 도저히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좌우간 가라니까 좋아서 우리들이 뭉쳤는데.

- 어떻게 가요.

- 돈을 이 사람들이 돈 12월을 주더군요.

- 아.

- 어떤 부대는 또 인심을 써서 좀 많이 준데도 있어요. 돈 10월이 우리가 생명을 바꾼 돈 입니다. 그 실컷 그 놈들한테 맞고 기합 받고 죽을 직전에서 그래가지고 쌀을 몇 되 가지고 우리가 하카다로 집결했던 것입니다.

- 아 그러니까 저 후쿠오카 인가요? 복강. 구주. 그게 아마 하카다죠?

- 네. 그렇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인제 우리가 그 하카다에 갔더니 학도병, 지원병 뭐 징용 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한 2,3천명이 모이기 시작해요. 속속 일본내에 있는 사람과 남방 이런데서 갔던 사람은 미처 그 시간이 없으니까 안오고 모이기 시작 하더군요.

- 바글바글 했겠군요.

- 네. 그냥 그 사람들이 숙소도 없고 잘데도 없어 가지고 들판에서 모래사장에서 자는데 나중에는 돈 떨어지고 쌀 떨어지고 뭐 어쩔 수가 없는 그런 혼란 상태에 빠졌습니다.

- 그 뭐 저 우리 한국인들이 고국에 돌아올라고 모인데가 구주고 또 구주에서 인제 그 복강 입니까 후쿠오카.

- 네.

- 거기 였으니까 뭐 굉장했겠지요.

- 그래서 거기서 인제 우리가 인제 이 난장판인 질서를 또 회복해야 하지 않겠느냐.

- 네.

- 그래서 거기 또 우리 스스로가 자치회의라든지 질서 회복하는 기구가 자동적으로 사람이 사는 사회라는게 생기게 돼요.

- 그렇겠지요.

- 거기까지는 역시 우리의 질서를 회복 하려면 할수없이 부대에 계급을 가지고 할수 밖에 없다.

- 아.

- 그래 나는 또 거기 그 여러 친구들이 원래 학교 다닐때 부터 대장 노릇을 좀 그러니 저러니 해서 그 상등병이 그 소위자리 뱃지를 여기다 달고.

- 아 자기 마음대로.

- 마음대로 달고 누가 뭐 감독할 놈도 없고 말이야. 달고 인제 구두 하나 얻어 신고 하사관 소위 구두하나 신고.

- 장화 아닙니까?

- 네. 장화. 그걸 신고 거기 인제 몇 몇 동지들 모였는데 자꾸 인제 물어보지요. 누구는 어디 있었는데 왔느냐 안왔느냐 전부 체킹 해보는 판인데 과거에 그 일본애들이 학병 들어갈때만 돼도 퍽 타이밍이 늦은 때입니다.

- 그렇지요.

- 그렇기때문에 일본이 그 수송력도 없고 항공기도 없어가지고 많이 그 일선에 보낼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도 죽은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건 참 천우신조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 네.

- 그래서 거기에 인제 우리들이 모였는데 학병 간 사람들은 학병끼리 주로 모이고.

- 네.

- 또 지원병은 지원병끼리 모이고.

- 그렇게 되겠지요.

- 이래 모여서 보성전문 출신 연세대학 출신 뭐 법전 출신 이렇게들 모이기 시작 했어요.

- 네.

- 그래서 그 사람들이 모여가지고는 붙들고 울고 너 살았구나 뺨을 대고 그냥 둥굴고 그 참 환희의 그 정열이라고 할까 이루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 그랬겠지요.

- 그러다가 뭐 참 너무나 기쁘고 웃음이 있으면 눈물이 나오고 하는 말과 같이 희비쌍곡선으로 그 당시 바로 어떻게 되느냐 우리 동지는 못 온 사람은 맞아 죽었다 혹은 병나 죽었다 골병 들었다 못 온 사람이 많았어요.

- 네.

- 그래 우리가 거기서 추도회를 하자.

- 네.

- 그래 밤에 우리끼리 모여서 묵념을 하고 추도를 하면서 우리가 빨리 돌아가가지고 건국 기해서 그 일본 사람들에 못지않는 나라를 만들어서 좀 뽑내야만 죽은 동지들에 대한 보답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 얘기를 하면서 빨리 귀국하자 그렇게 우리가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 네. 뭐 귀국 할래도 방법이 막연 했겠지요.

- 네. 그때는 뭐 맥아더 사령부가 일제 연락선도 없고 또 귀국할 길도 없고 그런걸 우리가 서두르기 때문에 학병들만 모여서 돈 있는걸 털어서 조그마한 60톤 짜리 배를 우리가 샀어요.

- 아 그 살 수가 있었어요?

- 예. 그 샀더니 배를 운전할 사람이 없어요. 없어서 해군 그 출장소가 있어서 우리가 해군 사람을 찾아 가가지고 너희들 우리를 이렇게 부려먹고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니 이럴 수가 있느냐. 우리 가도오도 못하는데 너희 동포들은 만주나 한국에나 많이 있지 않느냐. 너가 길을 항해에 대해서 길을 안내해라. 우리 반 위협하다시피 감금하다시피 했습니다.

- 네.

- 그래가지고 우리가 일주일 있다가 그 배를 그 사람이 그 안내를 해서 가이드를 해가지고 그래가지고 인제 우리가 떠나기 시작 했어요.

- 얼마나 몇 명이나.

- 한 60톤 짜리 배를 가지고 300명이 탔으니 뭐 알아볼 수 있잖아요?

- 아 그거 뭐.

- 말할 수 없는 더군다나 풍랑을 만났습니다. 뭐 죽은것으로 알고 죽었다가 살아가는거니까 운명에 맡기지 별 수 있느냐 그러고 갔더니 여수 앞에다가 이 배를 떡 앞에 어느 조그만한 섬에다 띄워 놓고 우릴 살려달라고 이 이상 못 가겠다고 그래서 우리가 그 내려가지고 거기에서 여수에 내렸더니 여수의 인심은 어떻게 좋은지 한국사람이야 인심 좋은거고.

- 뭐 그렇겠지요. 네.

- 한국 사람 인심이라는건 일본 사람 다 때려 죽이고 뭐 희생한줄 알았더니 도리어 정 반댑디다.

- 네.

- 그래서 서울서 만나기로 우리가 맹세를 하고 다들 시골로 갔습니다.

- 네. 그럼 여수에서 상륙을 한 셈이군요.

- 그렇습니다.

- 그러면 고향이 어디시던가?

- 전주인데 가서 바로 그냥 서울로 이틀 있다가 서울로 올라 갔습니다.

- 아 그럼 그 서울서의 얘기를 내일 또 듣기로 하지요.

- 네.

(입력일 : 200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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